I possessed a villain with nothing but a death flag RAW novel - Chapter 83
사망 플래그밖에 없는 악역에 빙의했다 083화
083
유령종은 기본적으로 물리력을 행사할 수도 없고, 그에 영향을 받지도 않는 영체(靈體)이다.
그런 유령종의 공격은 당연, 마력을 이용하거나 정신에 타격을 주는 방식으로 특화되어 있다.
‘그에 맞서는 유령사냥꾼은, 당연 정신방벽류의 특성을 갖고 있다.’
그 특성을 획득하는 것 역시 어렵지 않다. 오스트람 같은 정식 유령사냥꾼에게 직업을 부여받으면, 그 즉시 특성이 생기니까.
—부러지지 않는 신념.
물론 처음은 F등급에서 시작하고, 이 특성은 쉽게 성장하지도 않는다. 어쩌면 이 게임의 엔딩까지도 F일 수 있다.
하지만,
‘이 특성의 진가는 등급이 아니라, 특성 그 자체에 있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특성은 부러지지 않는다. 비유하자면, 아무리 술을 마셔도 절대로 필름이 끊기지 않는다는 말이다.
토악질을 하고, 숙취에 괴로워하고, 온갖 주사가 튀어나올지언정… 결코 필름은 끊기지 않는다.
‘다시 말해 두려움에 떨고, 매혹에 동요하고, 절망에 빠질 수 있겠지만… 절대 완전히 무너지진 않는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것은 나, 한유진이라는 인간의 정신력과 맞물려 최강의 정신방벽이 된다.
레베카의 마성에 얼굴이 붉어질 수 있다.
내 의지와 다르게 심장이 제멋대로 뛸 수 있다.
잡념이 생겨 정신이 혼탁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절대 그 마성에 함락되어, 그녀를 추종하진 않는다.’
물론 보통 사람이라면, 95%쯤 레베카에게 함락되어 추종하는 거나 다름없는 상태에 빠질 터다.
하지만 비정상적으로 발달된 내 정신력은 그것을 버텨낼 테니.
‘완벽해.’
이제 필요한 건, 오스트람을 설득해 그에게서 유령사냥꾼의 직업을 전수받는 것뿐.
* * *
오스트람은 굉장히 독특한 포지션을 갖고 있는 NPC이다.
신전의 인간이면서, 동시에 마법사이고. 샤프란에 속해 있으면서, 샤프란을 감시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이것은 현 샤프란 마법대학의 총장이 샤르미넨이기에 생긴 일이고… 여기엔 꽤나 복잡한 정치적 계산이 들어가 있다.
‘샤르미넨 바타체스 폰 멘체스터 레일라인….’
—제국의 4황녀.
—임볼릭의 대마도사.
—샤프란 마법 대학의 총장.
그리고,
‘오컬트 연구회의 고문이자, 흑마술의 대가(大家).’
대신전도 그 사실을 파악하고 있다.
다만,
—의혹은 궁금할 때 하는 게 아니라, 상대를 감당할 능력이 있을 때 제기하는 것이다.
제아무리 대신전이라 해도, 제국의 황족이자 임볼릭의 대마법사를 쉽게 건드릴 순 없다.
그렇기에 타협점으로 샤프란에 감시역을 파견한 것이다.
‘물론 대놓고 감시를 할 순 없으니, 엘베드의 칭호를 단 이를 계약직 교수로 보낸 것이지.’
웃긴 건, 샤르미넨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점이다. 대신전이 자신을 의심하고, 또 감시로 오스트람을 파견했다는 걸.
‘아주 기묘하고, 독특한 관계란 말이지.’
아마 오스트람이 생각보다 별 볼 일 없는 인물이었다면, 소리소문없이 죽어 사라졌을 터다. 샤르미넨이라면, 대신전의 인간이고 나발이고 심심하다는 이유로 죽였을 테니까.
하지만 오스트람은 아무리 샤르미넨이라도 죽이는 걸 ‘망설이게’ 만들 만한 배경을 지닌 인물이고.
그 배경 중 하나가 바로 ‘유령사냥꾼’이다.
—똑똑.
오스트람의 교수실에 노크를 하자,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누구십니까.”
“기초 신성 마법을 수강하고 있는, 류리크 아스트레이다.”
“………….”
안쪽에선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 다시 노크를 하자, 깊은 한숨 소리와 함께 답이 돌아왔다.
“…들어오세요.”
단정하게 빗은 백발. 주름진 얼굴에서도 느껴지는 강직한 인상과 눈을 가로지르는 흉터. 손등에 꿈틀거리는 힘줄과 가슴에 걸려 있는 로자리오까지.
그의 외견 하나하나에서 삶의 역사가 느껴진다.
“말투를 듣고 다른 교수님인 줄 알았습니다. 학생.”
“내 이 말투가 입에 배어 그런 것이니, 양해 바라네.”
“…샤르미넨 총장님께도 반말한다니 뭐라 못 하겠지만, 학생의 그 말투 정말 익숙해지지 않는군요.”
조용하다 싶으면 꼭 한 번씩 듣는 소리다.
“그래서 무슨 일입니까. 학생.”
“유령사냥꾼이 되고자 하네.”
순간, 오스트람의 손등 위의 힘줄이 꿈틀거렸다.
“…어디서 그런 얘기를 들은 겁니까.”
동시에 그의 몸에서 은은하게 신성의 힘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조바심을 가리며, 덤덤한 어투로 입을 열었다.
“왜 그렇게 흥분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만, 유령사냥꾼은 존재는 비밀이 아니다.”
“그렇지만 아는 사람은 극히 드뭅니다. 적어도, 당신 같은 일개 학생이 알 만한 집단은 아니지요.”
나는 조금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애당초 유령사냥꾼이라는 건 자네가 수업 시간에 직접 밝히지 않았나.”
“내가… 그랬습니까?”
“150분씩 연강을 하더니,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잊었는가. 자네가 직접 밝혔었네. 전직 이단심문관이고, 유령사냥꾼으로 일했었다고.”
당연, 그런 소릴 하진 않았다.
하지만 내가 아는 오스트람은 말문이 터졌다 하면 지독하게 말이 많아지고, 대체로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까먹는 인물이다.
그런 이유로, 나는 천연덕스럽게 덧붙인다.
“내친김에 말하자면, 150분 연강은 너무했네. 교육국에서 괜히 중등아카데미의 수업시간을 40분, 고등아카데미의 수업시간을 45분, 대학교의 수업시간을 50분으로 규정한 게 아닐세.”
그 나이대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그러하니, 그렇게 권고를 내린 것이지. 내가 덧붙이자 오스트람이 당황한다.
“그, 그런 게 있었군요.”
“어쨌거나 지금의 자네는 엄연히 교육자이지 않나. 그런 부분은 좀 지켜주었으면 하네.”
“그… 러도록 하죠.”
오스트람은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곧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런데 학생은 왜 찾아온 거였죠?”
“유령사냥꾼이 되고자 해서 찾아왔다고, 아까 말했었다만.”
“…………?”
나는 태연하게 묻는다.
“왜 그러나, 뭔가 문제라도 있나?”
“…이 상황, 저만 이해가 안 되는 겁니까?”
“글쎄.”
“갑자기 찾아와 대뜸 유령사냥꾼이 되고 싶다고 하는데, 제가 뭐라고 답해야 하는 겁니까?”
되도록 OK라며 승낙해주면 좋겠지만, 그럴 일은 없겠지.
그렇기에 나는 꽤나 길게, 그와 대화하면서 천천히 설득을 해야 할 터. 나는 가볍게 아이스브레이킹을 한다는 느낌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유령사냥꾼의 자격에 사제 서품 같은 건 필요 없는 것으로 아네만.”
“그 이전의 상식적인 문제가 아닐까요. 학생.”
“참고로 본인은 프레이야 교단의 신자라네.”
“…말장난하는 겁니까? 지금 그게 무슨 상관인 겁니까.”
여기서 실수로라도 웃으면 꽤 곤란해진다. 오스트람은 정말로 내가 장난한다고 여길 테니까.
하지만 반대로, 내가 정말 아주 진지하게. 농담기 하나 없는 얼굴로 말한다면… 참 묘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말장난이 아닐세. 나는 유령사냥꾼이 되고 싶다, 자네에게 말을 했을 뿐이고. 자네가 이해가 안 된다면 대답을 회피한 것이지.”
“아니, 그건….”
“허면 내가 묻지. 혹, 내가 유령사냥꾼이 되어선 안 될 이유라도 있나?”
없겠지.
유령사냥꾼은 특별한 자격 제한이 있는 게 아니니까.
다만,
“정말 기괴한 논리를 펴는 듯한데… 반대로 묻겠습니다. 내가 학생을 유령사냥꾼으로 만들어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오스트람은 바보가 아니다.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고, 수업은 제멋대로 연강을 마구잡이로 하는 인간이지만… 바보는 아니라지.
그렇기에 나는 본격적으로 ‘설득’을 시작한다.
“누군가 본인에게 이런 말을 했었네. 북부인들은 머릿속에 극야뿐이 없다고.”
“계속 말을 돌리는데, 그게 대체 무슨 상관….”
“그래서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테니, 부귀영화를 무의미하게 여기는 듯하다고.”
이건 과거에 메이린이 했던 말이고, 실제 틀린 내용도 아니다. 적잖은 북부인들이 저런 생각을 품고 살아가니까.
“…갑자기 왜 그런 소리를 하는 거죠?”
“자네도 극야가 무엇인지, 영원의 벽이 무엇인지는 알 테지.”
“그렇긴… 합니다만.”
그리고 거짓말이 시작된다.
“영원의 벽 너머에서, 유령종이 발견되었네.”
“…………!”
오스트람이 눈살을 찌푸리고, 그의 콧날에 잔주름이 일어난다.
“공식적인 발표는 없을 걸세. 목격자 한 명의 진술일 뿐이고, 헛것을 본 걸 수도 있으니까.”
“그런….”
“하지만 아주 사소한 것을 간과하여 큰 대가를 치른다는 것은… 역사 속에서 무수히 반복된 실수이지.”
오스트람이 소리 없이 입술을 달싹인다. 나는 몰아붙이듯 말을 잇는다.
“오래전, 나는 영원의 벽 위에 서 본 적이 있다네. 까마득한 낭떠러지를 보았고, 벽 너머의 세계를 보았었네. 그때 깨달았지. 이 세계에 무엇이 존재하는지.”
내가 빙의하기 이전의 류리크가 영원의 벽에 가봤는지 아닌지는 모른다.
이건 그저, 내 플레이어로서의 경험에 기반한 말들이다.
“영원의 벽 아래에서는 사람들을 보았네. 팔 잘린 파수꾼을 보았고, 눈을 잃은 파수꾼을 보았네. 채 수습되지 못한 파수꾼의 시체를 보았고. 그 옆에서 덤덤하게 얼어붙은 죽을 핥고 있는 파수꾼을 보았네.”
나는 말한다. 말하고, 또 말한다.
“오스트람. 나는 알고 있다네. 사람들이 누리는 평화의 이면에, 어떤 것이 존재하는지.”
그의 마음이 움직이도록.
그의 마음이 움직일 수밖에 없도록.
“오스트람. 나는 알고 있다네. 세계를 지키기 위해 언제라도 모일 성전기사단이 존재함을. 저세상의 사자들을 막고자 죽어가는 영원의 벽의 파수꾼이 존재함을, 그리고 구원받지 못하는 영혼과 그에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자네와 같은 유령사냥꾼이 존재함을.”
오스트람 같은 인간들은 누가 인정해주지 않아도, 그저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하게 제 소임을 다한다.
그런 신념을 품고 있고,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들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인정받지 않는 것이, 몰라준다는 것이 괜찮다는 말은 아니다. 그것을 알아줄 때, 인정해줄 때… 그들은 더없는 보람과 삶의 의미를 느낄 터.
나는 오스트람의 자부심을 채워주며, 자연스럽게 나의 이야기로 화제를 전환시킨다.
“오스트람, 북부는 나의 고향이다. 내 가족이 있고, 내가 알고 지낸 사람들이 그곳에서 살아가고 있다. 나는 북부를 지킬 의무가 있는 아스트레이의 인간이고, 동시에… 소중한 이들을 지키고자 하는 한 명의 사람이다.”
“………….”
“오스트람 솔직히 말하지. 나는 유령사냥꾼이 되면, 그 노하우를 북부의 인간들에게 전파할 걸세.”
“………….”
“아마 자네가 이를 거절한다면… 나는 다른 유령사냥꾼을 찾겠지.”
침묵을 고수하던 오스트람이 어렵사리 입을 연다.
“그래서 유령사냥꾼이 되고자 한 것이었군요. 이해했습니다.”
“그렇다면….”
“하지만 학생을 유령사냥꾼으로 만들어줄 사람은, 찾기 힘들 겁니다.”
“………….”
“우리는 세계를 방랑하는 존재이고, 특히 대신전에서 직접 임명한 유령사냥꾼은 아주 드무니까요.”
유령사냥꾼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는 각 교단의 대신전에서 직접 임명한 유령사냥꾼.
둘째는 그 정식으로 임명받은 유령사냥꾼이 임의로 자격을 부여하는 견습 유령사냥꾼.
당연 견습 유령사냥꾼의 직업과 관련 특성을 부여해줄 수 있는 건 전자뿐이고, 오스트람이 바로 그에 해당한다.
“유령사냥꾼은… 학생이 말했듯 본래 세계를 방랑하며, 이단을 색출하고, 악령을 퇴치하는 인간입니다.”
알다마다. 약간의 활동비만 받으며, 결식과 노숙을 밥 먹듯이 하며 그저 신념과 신앙 이 두 가지를 동력으로 움직이는 인간들.
개중에서도 오스트람은 류네온과 같은 절대선(絕對善) 성향의 캐릭터이다.
“유령 사냥에 대한 노하우… 그런 건 얼마든지 말해도 상관없습니다. 우리는 대신전의 권위나 우리 개개인의 사익을 위해 움직이는 게 아닙니다.”
“………….”
“세계를 위해.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싸우는 것이지요.”
역시.
절대선 성향의 캐릭터답게, 류네온이 했던 것과 비슷한 말을 한다.
—언젠가 세상을 위해 싸워줘.
그리고 오스트람의 말은 이어진다.
“우리는 대게, 유령종에게 친구나 가족을 잃은. 복수심에 불타는 이들을 받아들였습니다. 왜인지 아십니까.”
“복수심은 아주 강렬하고, 또 투명한 감정이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는 신의 사랑을 설파하며, 이 세계에 구원과 심판이 실재함을 증명하는 존재… 사욕을 위해, 힘을 이용하는 자를 용납할 수 없습니다.”
요컨대 오스트람은 ‘사이비’를 말하는 것이다. 신의 사랑을 논하며, 대중을 기만하고 죄를 저지르는 이들.
현실에서도 그렇지만, 사이비는 명백한 이단이다. 그리고 각 교단과 대신전이 가장 증오하는 이단은, 아이러니하게도 흑마술이나 마녀가 아니라 사이비다.
“그렇기에 우리는 순수한 복수심으로 움직일 수 있는, 그런 이들만을 받아들였습니다. 그 밖의 사람들은, 우리의 이름을 내걸고 무슨 짓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죠.”
그에 대해 나는 영원의 벽과 극야라는 대의(大義)를 제시했다.
순수한 복수심보다, 흔들리지 않는 의지보다 더 크게 다가올 대의. 오스트람이 세계를 지키고자 하는 절대선의 인간이라면, 절대로 이것을 모른 척할 수 없는 터.
나는 확고한 믿음을 갖고 오스트람의 눈동자를 바라본다.
“내 의지는 틀림없는 진실이라네. 거짓이라 의심된다면, 아티팩트로 검증해도 좋네.”
영원의 벽 너머에 유령종은 존재한다. 다만 그것은 후반부에나 등장하고, 당장은 목격조차 되지 않는다.
내가 한 거짓말은 그것이 ‘목격’되었다고 한 것.
아주 사소한 말장난이지만… 유령종을 무찌르고자 한다는, 내 의지는 결코 거짓이 아니다.
“망나니를 그만두고, 개과천선했다더니… 정말로 다른 사람이 되었나 보군요.”
“그렇다네.”
자, 이제 끝이다. 이제 이걸로 나는 유령사냥꾼의 직업을 얻고 레베카의 마성에도 저항할 수 있게 된다.
“학생의 말을 믿겠습니다. 물론 지금까지의 모든 것이 거짓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저는 학생의 말을 의심하고 싶지 않습니다.”
나이스!
나는 쾌재를 불렀다. 그리고 머지않아 깨달았다.
“그런 의미에서 저도 솔직하게 말하겠습니다.”
일이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학생. 아니, 류리크 아스트레이. 당신은 지금, 유력한 ‘이단’으로 대신전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