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possessed a villain with nothing but a death flag RAW novel - Chapter 85
사망 플래그밖에 없는 악역에 빙의했다 085화
085
월요일까지 이어졌던 중간고사가 끝나고 맞이하는 금요일.
1학년은 모두 공통 과목이라 1주일 안에 시험이 끝나지만, 다른 학년들은 보통 2주 동안 중간고사를 진행한다.
그런 그들도 오늘을 마지막으로, 해방을 맞이하게 되었다.
다만, 학내의 분위기가 그리 밝지만은 않았다.
—들었어? 시험장으로 쓰였던 강의실 자체가 폐쇄되었다더라.
—사로잡았던 망령들을 전부 성불시키고, 새로 포획한대!
—우리 부모님은 샤프란을 못 믿겠다면서, 집으로 돌아오라던데.
오스트람이 치안국의 조사는 무마했다지만, 기초 신성 마법 시험에서 벌어진 사고 탓에 다소 뒤숭숭한 분위기는 남아있었다.
일부 학부모들은 기숙사에서 방을 빼고, 통학을 시키려 한다든가. 황족에게만 허용된 ‘호위 제도’를 이용하겠다고 떠들었다든가.
그런 이유에서, 샤르미넨은 급작스럽게 행사를 열었다.
「 샤프란의 밤 」
마치 개교 기념 파티 때처럼, 주류 무제한에 다양한 음식과 안주거리를 공급하는 행사를 연 것이었다.
심지어 꽤나 이를 갈았는지, 총학생회까지 적극 동원해 각종 이벤트를 열었다.
—학생회 간부들이 직업 운영하는 헌팅 포차.
—총상금 1만 리브라(한화 1,000만 원)가 걸린 노래 경연 대회.
—철인 3종 경기의 변형으로, 남자가 난관을 헤쳐 여자를 구하는 프린세스 나이트.
등등.
급조한 것치고 꽤나 다양한 이벤트들이 준비되었다. 당연 우중충하던 학내 분위기는 대반전을 맞이하고, 나 역시 여기서 빠져나갈 순 없었다.
다른 게 아니라, 서브 퀘스트가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 『 샤프란의 밤 』 ――――
▶ 분류 : 서브 퀘스트
▶ 등급 : F
▶ 설명
: 샤프란 마법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위한 축제가 열렸다.
: 마음껏 먹고, 마시며 축제를 즐기자.
▶ 보상
: 매력 +1
: 자정까지 행사를 즐길 경우, 추가로 매력 +1
――――
보상 자체는 소소했다. 최대한으로 받아봐야 매력이 2 상승하는 게 전부니까.
‘그래도 뭐, 없는 것보다는 낫지.’
만일 조건이 조금 까다로웠다면 그냥 무시해버렸겠지만, 퀘스트의 조건은 그저 축제를 즐기라는 것이 전부.
다시 말해, 자정까지 이 교내에 있으면서 술 한 잔 정도만 마셔도 된다는 소리다.
그런 이유에서 나는 조금 전에 와인 한잔을 마신 뒤, 한적한 곳을 찾아 신문의 특집기사를 읽고 있었다.
―잠룡(潛龍)의 준동, 호륜 산맥 이대로 괜찮은가.
―아이언포지 공방, 용광로 문제로 인해 이전 준비.
병구류 시장의 장악, 그것을 위한 첫걸음인 아이언포지 공방. 슬슬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공방을 운영하려면 안정적인, 광석 수급처가 필요하고 그를 위해 광맥이 있는 땅을 사긴 했다만….’
여기에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는, 광맥을 광산으로 개발하기 위해 필요한 돈.
둘째는, 거기서 광부로 일할 인력의 부재.
‘전자야, 요루아를 성장시켜서 샤르미넨에게 지원금을 받던가. 여차하면 아이템 몇 개를 처분하면 대충 시작은 할 수 있다. 하지만….’
후자는 굉장히 곤혹스러운 문제였다.
저것이 왜 문제인가 하면, 아쉽게도 제국이 노예제를 폐지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적당히 노예를 사다가 부릴 수도 없고, 자유민을 끌어들이기엔 조건이 너무도 취약했다.
심지어 북부인은 자급자족과 안분지족이 패시브인 인간들이라, 어지간해선 광산으로 끌어들이기가 힘들다.
그렇다고 타 지역의 자유민을 끌어들이자니, 이게 굉장히 난감하다.
—살던 터전을 버리고.
—혹독한 추위의 북부로 와서.
—광산이라는 위험한 곳에서 일하는 것이니까.
정말 망국의 피난민이라도 받아야 할까 싶은 상황인데.
‘그러고 보니 가르시아 공화국의 내전이 슬슬 끝났을 무렵인가. 제국과는 거리가 상당히 멀긴 하다만, 잘하면 그쪽의 피난민을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때였다.
“류~ 우리크 씨이!”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싶더니만, 저편에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어딘가 붉은 홍조가 감도는 실비아가, 손에 무언가를 든 채 다가오고 있었다.
“용케도 내가 있는 곳을 찾았군.”
“으흥흥, 류리크 씨의 냄~새가 느껴졌달까?”
뭐야, 그거.
조금 소름 돋는데.
“그나저나 손에 든 것은 무엇이더냐.”
“이히히! 이거 말이지? 오컬트 연구회 선배들한테서 받아온 건데~ 소주라는 술이야!”
소주(燒酒).
원래 세계에서는 아주 저렴하게 알코올을 즐길 수 있는 주종이었지만, 이곳에서는 사치품으로 분류되는 물건이다.
기근이면 사람들이 배를 곯는 세계관인데, 곡류가 그 재료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꽤 귀한 걸 가져왔구나.”
“자자~ 일단 한잔 드시라구요!”
“요루아나 메이린은 없는 건가?”
“에이, 그 둘은 술 못하잖아. 요루아는 꼬맹이고, 메이린 씨는 술 별로 안 좋아하고.”
그 둘은 식도락 한다면서 잘 돌아다니던데? 실비아가 덧붙인다.
“그러니까 으~른은 으른들끼리 놀자고!”
털썩, 내 옆에 앉은 실비아는 넓적한 잔에다가 꼴꼴꼴, 소주를 따르고는 내게 건넸다.
“혹시, 이미 취한 건가?”
“으히히, 아직이지요오~. 아직 한참 남았지요오~. 하지만 류리크 씨랑 꼭 좀 마셔 보고 싶었다지요오~.”
“흐음.”
나야 구태여 사양할 생각은 없었다.
효율성과 능률의 문제로 삼가고 있었다만, 술을 싫어하는 건 아니고.
‘오늘은 축제이기도 하니까.’
나는 잔을 들었다.
“잘 마시도록 하지.”
꿀꺽.
익숙한 목 넘김. 익숙한 흥취.
분명 이 세계관에서 소주를 만드는 방법은, 21세기의 증류법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진행될 터다.
그에 따라 맛도 전혀 다를 터인데,
‘비슷한데?’
이슬이나 처음을 떠올리게 하는 맛.
나는 그대로 잔에 남은 술을 목구멍에 흘려 넣었다.
“오! 류리크 씨, 술 엄청 약할 줄 알았는데 꽤 잘 마시잖아?!”
“얕보지 마라. 술이라고 해서 네가 나를 이길 거라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본래의 나라면 절대 걸지 않을 값싼 도발이었지만, 너무 오랜만에 ‘익숙함’이라는 것을 느낀 탓일까.
저도 모르게 그런 소리를 하고 있었다.
“으히히… 류리크 씨, 괜찮겠어어? 이 소주들은 오컬트 연구회 선배들을 전~부 물리치고 가져온 거라고?”
“김이 새는군. 이미 한바탕 마시고 온 녀석을 상대하는 건, 이겨도 수치뿐이 남질 않는다.”
“도망가는 건가! 설~마 천하의 류리크 씨가 도망을! 치는 건가!”
살다가 실비아에게 ‘도망치는 건가’라는 말을 듣게 될 줄이야.
꿈틀, 내 안의 위엄 A가 반응했다.
“덤벼라.”
“간다, 구변(口辯)의 왕이여. 저장된 소주는 충분한가…!”
“소주가 넉넉한지는, 내가 물을 말이다만.”
우리는 그대로 마주 앉아 문자 그대로 누구 하나 쓰러질 때까지 술잔을 들었다.
기분이 썩 나쁘진 않았다.
축제였고.
술이 달았고.
실비아가 웃었으니까.
‘가끔은 이런 것도 나쁘지 않군.’
소주 네 병이 동나는 것은 금방이었다.
다섯 번째 병을 집어 들자니 어느샌가 실비아가 조용해졌다.
“퓨우우우… 퓨우우우….”
바닥에 대자로 드러누운 채 잠들어버린 것이었다.
나는 새근새근 잠든 그녀를 보며 소주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 옆에 누운 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술을 잘 마시는 듯 굴더니, 시시하군.”
하지만 말하는 동시에 나 역시 참기 어려운 수마가 밀려옴을 느꼈다. 류리크의 주사는 수면인 듯싶었다.
‘아직 읽어야 할 기사가 남았고, 저택에 돌아가서 수련도 해야 한다만….’
이대로 잠들면, 오늘 하루를 날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기분 이대로 잠들 수 있다면, 천만금이 아깝지 않았다.
‘이 정도 사치는… 괜찮겠지.’
그렇게 눈을 감으려는 순간, 흩날리는 벚나무를 가리며 누군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드리우는 그림자와 함께 흔들리는 단정한 머리카락, 그리고 깊은 호수처럼 고요한 청안. 흐려지는 안계(眼界)에 설핏 비친 그 모습은, 익숙한 누군가와 닮아 있었다.
‘리아….’
하지만 그럴 리는 없었다. 여기는 샤프란이니까.
그러니 아마,
‘헛것이라도 본 걸 테지….’
술에 취했으니까.
이상할 것도 없는 일.
“역시… 과음이… 문제….”
나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 * *
눈을 뜨니 리무진의 안이었다. 아주 찰나의 순간, 납치를 의심했지만, 눈앞에 실비아가 무릎을 꿇은 채 양손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대각선, 다시 말해 내 옆에는….
“리아.”
“기침하셨습니까, 류리크 님.”
자타공인 저택의 안주인(?)인 리아가 평소와 같은 무기질적인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덕분에 나는 모처럼 ‘당황’이라는 감정을 선명하게 느끼고 있었다.
―난데없는 리무진의 안.
—차창 밖을 보니 이른 새벽.
그리고,
―벌을 서고 있는 실비아.
나는 리아를 향해 의문의 시선을 던졌다.
“본인은 분명 기분 좋은 취기와 함께 잠들었거늘, 어찌하여 이런 곳에서 깨어났을꼬.”
“류리크 님께서 무방비하게 위협에 노출된 상태였습니다. 소인이 어찌 가만히 둘 수 있겠나이까.”
“…내가 잠든 곳은, 적지(敵地)가 아닌 학교의 정원이다만.”
물론 교내의 정원에서 그리 잠드는 게 바람직하진 않겠으나, 샤르미넨이 있는 학교에서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면 대체 어디가 안전하겠는가.
“류리크 님은 그 학교 안에서 이미 수차례 피습당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민머리 보이즈가 한 번. 드라카르 사교회의 카르시아가 한 번. 레베카의 이벤트에 휘말린 게 한 번.
그리고 카르시아가 폭주하면서 한 번 더.
생각해보면 입학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참 다채로운 일들을 겪었다.
“허나 본인은 그 피습들을 슬기롭게 이겨내고, 이후의 대처까지 완벽하게 해냈지. 이젠 학교에서 낮잠을 잔들 뭐라 할 놈들도 없다.”
“모름지기 세상일이란 알 수 없는 법이지요. 특히나, 그 주체가 류리크 님이라면 더욱.”
“상식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에 따라 예측할 수 있는 범주도 있는 법이다.”
“허면 소인이 류리크 님을 이렇게 모신 것도, 그 예측 범위 안에 있었겠군요. 역시 놀랍습니다.”
짝짝, 리아가 무미건조하게 박수를 쳤다.
경멸이 반 스푼 정도 들어간 무표정으로 저러자니, 속이 쓰렸다.
나는 괜히 울상을 짓고 있는 실비아에게로 화제를 돌렸다.
“실비아는 나를 호위한다는 녀석이 술에 취해 쓰러졌으니, 그 벌로서 저리 있는 것일 테군. 말을 안 하는 걸 보면, 방정맞은 입을 다물라 했을 터이고.”
“정확합니다.”
실비아가 애절한 표정을 지으며, 눈으로 말했다.
―류리크 씨이이…! 제발 나 좀 살려줘! 리아 님 좀 설득해 달라고!
―미안하지만 나도 리아가 무섭다.
―류리크 씨이이! 우리 같이 술을 마신 사이잖아! 우리가 나눴던 우정의 잔은 뭐였던 거냐고!
실비아에겐 미안하지만, 내 계산상으로는 이렇게라도 리아의 화가 풀리는 게 훨씬 이득이다.
애석하지만 나는 그녀를 무시한 채, 본론을 꺼내 들었다.
“그래서… 본인을 이리 납치한 연유는 무엇인고.”
“류미엘 님께서 부르셨습니다.”
“류미엘이?”
“예. 일전에 류미엘 님과 약조하셨다 들었습니다. 지혜가 필요할 땐 지혜를 내어줄 것이고, 힘이 필요할 때는 류리크 님이 직접 가서 해결하신다고.”
분명 그렇게 말하긴 했다.
다만,
‘지금은 특별히 류미엘한테 일어날 일이 없을 텐데?’
나는 조금 의아해하며 리아에게 물었다.
“류미엘이 나를 부를 정도로 곤란한 일이 무엇인가.”
“광산입니다.”
설마하니 내가 매입한 토지의 광맥을 발견한 건 아닐 테고.
“광산이라면… 화이트밴 남작령에 있는 것 말인가.”
“예.”
화이트밴 남작.
아스트레이 공작령과 맞닿아 있는 북부 귀족. 류미엘, 류리크 그 어느 쪽의 편도 들지 않는 철저한 ‘류오넬파’의 무장.
‘사실 류오넬파라고 말하는 게 이상하긴 하다만….’
그가 당주직을 류미엘에게 대리로 일임하긴 했어도, 오래된 북부 귀족들은 대부분 류오넬에게 신망과 충성을 보내고 있다.
류미엘은 차근차근 그것을 자신에게 향하도록 노력하는 중인 거고.
“화이트밴 남작이 류미엘과 안 좋을 일은 없을 터이고, 광산 인수 역시 예전에 끝난 것으로 아네만.”
“광산 운영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습니다.”
“광산촌에 무슨 일이 생긴 건가.”
리아가 조금 딱딱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마을 전체가 반기를 들었습니다.”
나는 짧게 침음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건 본래의 흐름상 일어나지 않았을 사건이니까.
“화이트밴 남작이 그런 명령을 내렸을 리는 없을 테니, 퍽 곤혹스러워하겠군.”
“예. 남작도 난감해하는 눈치입니다. 영지민 때문에 아스트레이가 골머리를 앓는데, 그렇다고 아스트레이의 말을 안 듣는다는 이유로 그들을 살해할 순 없으니까요.”
“류미엘 역시 타 영지의 백성들을 살해하긴 어려울 터이니….”
확실히 애매하긴 하다.
하지만 여기서 의문인 건,
“그나저나 마을 전체라 하였는가?”
“예. 마을 전체가 일치단결하여 파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몇몇 개인이 아닌 마을 전체가 귀족의 비위를 거스른다라….”
그건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류미엘과 화이트밴 남작이 그런 선한 성품의 소유자라 해도, 감히 영지민이 귀족의 비위를 거스른다는 게 말이 될 소리인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 말인즉,
“…배후에 누군가 있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