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possessed a villain with nothing but a death flag RAW novel - Chapter 97
사망 플래그밖에 없는 악역에 빙의했다 097화
097
샘지기, 아타샤 로스월드는 무척이나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앞에는 내 일행과 우락부락 마개조 근육을 가진 가르테고가 있었다.
아타샤가 말한다.
“…갑자기 외부인을 샘에 들이라니요?”
“이미 아이 중 하나가 자네에게 말을 전했을 텐데.”
“예, 당주가 원로회의 동의 없이 외부인을 들이려 한다는 것을 들었지요.”
뾰족하게 나온 그녀의 입술이, 얼마나 큰 불만이 있는지 어림짐작게 한다.
“원로회의 동의? 아타샤, 이 로스월드의 당주는 나다. 바로 나 가르테고 로스월드란 말이다!”
“예, 알고 있습니다. 로스월드의 당주는 당신이지요. 하지만 이 아고니아의 샘은 당주가 좌지우지할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아타샤의 입장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의 임무는 로스월드의 비밀 장소 중 하나인, 아고니아(Agonia)의 샘을 지키는 것. 그런데 갑자기 당주가 외부인을 샘에 들이겠다며 저런 강짜를 부리는 것이니… 난감하긴 하겠지.
“아타샤, 정말로 이럴 건가?”
“내가 그러면 순순히 물러날 거라 생각했나요?”
아타샤가 뻣뻣하게 나서자, 가르테고의 마개조 근육이 꿈틀거렸다.
혹자라면 기겁을 하며 바짝 쫄 법하지만, 아타샤는 달랐다. 그녀는 방계이나 엄연한 가문의 일원이고, 엘베드 등위를 수여한 로스월드의 원로이기도 했으니까.
“당주. 아고니아의 샘은, 일 년에 한 번 신비한 기운이 깃드는 곳입니다. 누군가가 출입하면, 또다시 일 년을 기다려야 하죠.”
“아타샤, 내가 그것을 모른다고 생각하나?”
“이곳은 마법계의 미래를 밝힐 수 있는 빛나는 아이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장소입니다. 요루아는 그렇다 쳐도, 나머지 둘은 누굽니까? 듣도 보도 못한 외부인을 데려와서….”
나는 적당히 가르테고를 지원하기 위해 끼어들었다.
“본인의 이름은 류리크 바타체스 폰 드라스카 아스트레이. 로마노프 제국의 심장을 품고, 바타체스의 피를 흘리는 자.”
이름과 함께 내가 누구인지를 밝히자, 아타샤의 얼굴이 당혹으로 물든다.
“…자, 잠깐만. 설마 당신이 그 요루아를 교육한다던….”
“설마 본인에게 자격을 운운하는 것은 아니겠지.”
그녀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실비아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 그러면 이쪽은…?”
실비아가 ‘반즈’라는 건, 이들에게 알려져서 좋을 게 없다. 고로 나는 그녀를 대신해 재빠르게 답한다.
“이쪽 역시 어린 나이에 헤루인을 달성한 샤프란의 1학년생이라네. 이 정도면 자네들이 말하는 그 빛나는 아이에 해당한다고 생각하는데.”
“어, 어… 으음.”
“할 말이 없다면, 그 길을 좀 비켜주겠나?”
내가 움직이려는 제스처를 취하자, 우물쭈물하던 아타샤가 무언가 생각난 듯 말한다.
“부, 분명 아고니아의 샘은 빛나는 아이면 들어갈 수 있긴 하지만… 그래도 늘 원로회에서 회의를 통해 선별한 인원만 출입시켰어요!”
“글쎄. 원로회가 아고니아의 샘에 출입하는 문제로 매년 회의를 열던가?”
원로들은 주로 자신의 연구가 마법계의 발전에 가장 이바지할 거라 생각하는 족속들이다. 물론 뛰어난 인재는 반기지만, 우선순위가 뒤편이란 말이다.
‘애초에 후인의 반지도 적당히 자격만 있다면 던져주는 놈들이니까.’
그건 다른 누구보다 당주, 가르테고가 가장 잘 알고 있을 터.
내가 은근하게 곁눈질로 뒤를 보자, 가르테고가 성을 내며 나선다.
“그냥 적당히 빛나는 아이가 있으면, 원로들이 눈치껏 집어넣던 걸 무슨 회의를 운운하나! 헛소리 말고 비켜라, 아타샤!”
“저, 저는 원로회의 결정이 내려지기 전까진 못 비킵니다!”
음, 더는 못 들어주겠군.
“가르테고. 이래서야 오늘 하루를 그대로 날릴 듯한데….”
최후의 통첩을 날리자, 가르테고가 뚜둑뚜둑 근육을 풀며 아타샤에게 다가간다.
아타샤는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치며 몸을 떨었다.
“다, 당주! 왜 다가오는 것이지요?!”
“그야 자네 면상에 내 마개조 주먹을 갈기기 위해?”
“미, 미친 겁니까!”
“내 희망사항은 자네가 날아가 저기 탑 꼭대기에 대롱대롱 걸리는 거라네.”
살기를 느낀 아타샤가 급하게 태도를 바꾸며 자세를 낮춘다.
“이, 일단… 일단! 진정하는 게 어떻습니까, 당주!”
“왜 그러나. 아타샤. 방금까진 감히 내 앞에서 목대 뻣뻣이 세우더니.”
그야 방금까진 원로회를 믿고, 가르테고가 진짜 실력행사를 할 줄 몰랐을 테니까.
다만, 가르테고가 이리 나온다면 아타샤도 어쩔 수 없을 터. 그는 마지막 용기를 쥐어짜듯, 어렵사리 목소리를 낸다.
“지금 본인이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 알고 있습니까…!”
“마지막 경고다. 비켜라. 아타샤.”
“후, 후회할 겁니다! 저도 엄연한 로스월드의 원로예요! 당신이 함부로 힘을 쓰면 원로회에서 가만두지 않을…!”
가르테고의 주먹에 마력이 깃들었다.
“사라져라, 아타샤아아아아…!”
“꺄, 꺄아아아악…!”
이것이 정녕, 고귀의 13가문의 당주와 원로가 나누는 대화인가 싶었지만.
‘원래 로스월드는 이런 족속들이니까.’
그렇게 아타샤 로스월드가 푸른 하늘의 별처럼, 첨탑으로 날아갔다.
한편 탁탁, 손을 털어낸 가르테고는 후련하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내 이대로는 안 되겠어. 원로회의 늙은이들을 아예 작살을 내버려야지. 외부인을 두고 당주 체면이 말이 아니야.”
“식사만 잘 부탁하네.”
“그건 걱정 말아! 아타샤의 엉덩이를 차서라도 확실하게 챙길 테니까.”
나는 샘지기가 버텨서고 있던 입구를 바라본다.
두 개의 마력등이 장승처럼 서 있고, 그 사이의 입구는 지하로 향하는 계단이 죽 늘어서 있다.
가르테고가 말한다.
“그럼… 건투를 비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침내 아고니아의 샘으로 발을 들였다.
* * *
아고니아의 샘은 단순히 ‘샘’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포함하는 넓은 특수 지역을 의미한다.
내부는 크게 3가지 구역으로 나눠진다. 먼저 심부에 위치한 샘. 바로 그곳에서 축복이 깃든 샘물이 솟아난다.
다음은 로스월드의 인간들이 인위적으로 만든 연무장. 마지막은 취침, 식사를 위한 생활공간.
내부에는 마력으로 밝힌 등이 24시간, 전 구역을 환하게 밝히고 있고, 모든 구역에서 샘의 축복이 적용된다.
“으음, 생각보다 계단이 엄청 기네?”
“누님… 벌써 다리가 아프다….”
폐인 A인 나도 이렇게 잘 걷는데 엄살은.
“조금만 참아라. 샘에 도달하면, 그 축복으로 조금 편안해질 테니.”
“류리크 씨, 그런데 이렇게 깊은 곳에 우리 셋만 들어가는 거야?”
“그렇다만.”
실비아가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에엑, 이런 지하에 2주일 동안 류리크 씨랑 같이…?”
“뭔가 문제라도 있나.”
“아~니이, 나 같은 나 같은 아리따운 소녀랑? 이런 곳에? 2주 동안이나 같이 있으면? 아무래도… 악! 아악! 악! 알았어! 농담이야! 농담이라고!”
그즈음, 우리는 계단의 끝에 도달했다.
그리고,
[ 업적 ‘아고니아의 샘에 발을 들이다’를 달성하였습니다. ] [ 샘의 영험한 기운이 몸에 깃듭니다. ] [ 마력 수련에 대한 상당한 어드밴티지가 부여됩니다. ] [ 건강이 대폭 회복됩니다. ]…
수많은 시스템 메시지들이 떠오르는 가운데, 실비아와 요루아 역시 축복을 느끼는지 표정이 한결 나아졌다.
이곳에 있는 동안은 이론상 컨디션이 항시 최고조에 있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곳이 히든 스팟이라고 불릴 만한 이유가 여기 있다.
[ 상태이상 피로에 대한 면역이 형성됩니다. ]피로에 대한 면역. 이론상, 샘의 영험한 기운이 존재하는 동안 잠을 잘 필요가 없어진다. 다시 말해, 24시간 수련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모모란의 특제 단약을 항상 섭취하고 있는 것, 아니 그 이상의 효과지.’
샘의 내부는 약 4m 되는 높이의 천장이 있고, 그 아래 시설들이 있는 형태였다. 우리가 도착한 중앙 광장을 기점으로, 앞서 말한 3개 구역이 나뉘는 것이었다.
“여, 여기가 빛나는 아이들만 들어갈 수 있다던 아고니아의 샘…!”
역시 나는 가문의 비밀병기였던 거구나! 요루아는 어딘가 감개무량한 얼굴로 그런 소리를 했다.
그리고 실비아는 조금 감탄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생각보다… 넓은데?”
“구역들을 죽 둘러보면, 훨씬 넓다는 걸 알게 될 거다.”
“나는 진짜 무슨 방 하나 되는 샘을 두고, 거기서 2주 동안 있는 줄 알았는데….”
천장의 높이도 꽤 있고, 마력등이 모든 곳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거기에 인테리어도 꽤 깔끔하게 된 편이라, 지하라는 느낌은 거의 들지 않았다.
“흐흐, 왠지 몸도 상쾌해서… 이 느낌이면 뭔가 수련이든 뭐든 잘 될 것 같은 느낌인데?”
“생활공간은 이쪽이다.”
샘의 생활공간은 마법을 가미한 건축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었다. 일단 출입 인원이 3명으로 제한된 곳이니만큼, 3개의 방이 있었다.
방은 각각 10여 평 되는 그럭저럭 괜찮은 크기. 거기에 방마다 배수시설이 완비된 화장실도 갖추고 있었다.
“오, 오오…! 나는 샘물로 대충 씻으면서 거지처럼 살 줄 알았는데….”
나는 감탄하는 실비아와 요루아를 보며 말한다.
“그러면 각자 짐을 풀고, 중앙광장에 다시 모이도록 하지.”
* * *
아고니아의 샘에서 벌어진 일은, 순식간에 로스월드 전체에 퍼졌다.
당주가 샘지기이자 원로인 아타샤를 첨탑에 매달아 놓고, 외부인을 함부로 들였다는… 전대미문까지는 아니지만, 꽤나 충격적인 소식.
당연 원로회의 인간들은 발칵 뒤집혔고, 한창 연구에 매진하던 원로들까지 나와 회의를 열었다.
“가르테고… 어쩐지 잠잠하다 싶더니만, 이런 사고를 터뜨릴 줄이야!”
“미친 거 아니요?! 만일 요루아가 아고니아의 샘에서 폭주라도 한다면…!”
“샘지기도 넌지시 그걸 지적했다고는 하는데… 도저히 말이 통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더군.”
원로들의 말이 이리저리 얽히고설킨다.
“그러면 어떡하지?”
“일단 끌어내야지요!”
“샘은 이미 축복을 발했을 겁니다. 이제 와 끌어내는 것도….”
“다른 실험체를 집어넣으면 되지!”
누군가 명쾌하게 답을 내었지만, 호응은 크지 않았다.
“다른 실험체… 아니, 다른 아이를 그냥 넣는다고 될 일입니까? 우리의 기대에 충족하는, 이 마법계에 이바지할 수 있는 재능을 살려야지요!”
“하긴 딱히 샘에 넣을 만큼, 돋보이는 아이가 없긴 한데….”
일 년에 한 번 이용할 수 있는 게 아고니아의 샘이지만, 그리 잘 활용되는 건 아니었다.
마력 수련에 상당한 효과가 있긴 하지만, 이미 그런 수준을 초월한 엘베드 이상의 마도사들에겐 큰 의미가 없기도 했고.
만일 아이를 들여 넣자면, 그들이 기대하는 수준만큼 재능이 빛나야 하기에.
“으흠흠? 정 없다면 제 밑에 있는 아이를….”
“그 녀석을 집어넣을 바에는 그냥 내 쪽 애를…!”
“둘 다 뭔 소리를 하는 겁니까? 어처구니가 없네요. 아무렴 그래도 그렇지. 그런 희미하게 빛나는 아이들을 아고니아의 샘에 넣을 생각을 해요? 제정신입니까!”
“그러면 뭐 어쩌자는 건데? 요루아를 저대로 두자고?”
원로들 사이의 목소리가 점점 커져가며, 감정싸움으로 이어질 것처럼 분위기가 험악해진다.
그때였다.
“으음… 저대로 두는 건… 어떤가…?”
금방이라도 감길 듯, 얇게 떠진 눈에 이미 노년에 접어든 육신. 그 노인의 한 마디에, 금방이라도 치받을 듯하던 원로들이 주춤한다.
“예? 그게 무슨….”
“…기왕 이렇게 된 거… 이대로… 두자는 게야….”
한창 투닥거리던 원로 중 하나가 말한다.
“그대로 둔다니요. 아무래도 그건 조금….”
“자네들도… 은근히 궁금하지… 않나…?”
노인이 홀홀, 웃으면서 말한다.
“요루아가… 그곳에서 용이 되어… 나올지? 아니면… 도랑에 갇힌 이무기로… 썩을지.”
* * *
간단히 짐을 정리하고, 우리는 광장에 모였다. 샘의 축복 덕분인지 실비아도, 요루아도 꽤나 의욕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나는 본격적인 수련에 앞서, 둘이 나아갈 방향을 정리해주기로 했다.
“실비아, 너의 목표는 마력량의 증가, 그리고 마력의 컨트롤이다.”
“………….”
“솔직히 말해, 네가 가진 마력의 양, 그리고 컨트롤 능력 모두 탁월하다. 단적으로… 이미 샤프란의 학생이라는 수준은 뛰어넘었다고 봐도 될 테지.”
애초부터 실비아는 루나사 등위의 실력을 자랑했다. 그리고 샤프란에 입학한 뒤에도, 일정 부분의 성과를 얻어 성장했다.
다만,
‘이 세계의 마법사를 나누는 등급은 8개의 등위밖에 존재하지 않고, 위로 올라갈수록 그 하나하나의 벽 사이엔 아득한 간극이 놓여 있다.’
루사나 등위 수십이 모여야 엘베드 하나를 상대할까 말까, 한 것이 현실.
다시 말하지만, 루나사 둘이나 셋이 아니라… 수십이 모여야 상대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연 루나사라는 등위 안에서도 실력의 높고 낮음은 명확히 구분된다.
‘지금의 실비아면 루나사 안에서도 나름 강한 편에 속할 실력이긴 하다.’
하지만.
“실비아, 네가 그 정도에 만족하는 건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그녀의 목표는 예전부터 분명했다. 그 누구도 경시할 수 없는 위대한 마도사가 되어, 그 ‘권위’를 바탕으로 어둠 마법이 마법계에 인정받게끔 하는 것.
“더 고위의 마법을 다룰수록 요구하는 마력량과 컨트롤 능력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은 채, 어설프게 고위 마법을 다루면 그대로 사망할 수도 있지.”
실비아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말하지만, 실비아. 네 목표는 마력량의 증가, 그리고 컨트롤 능력의 향상이다. 가장 간단하되, 가장 어려운 것이지.”
나는 고개를 돌려 요루아를 바라본다.
내 시선이 닿자, 요루아가 꿀꺽, 마른침을 삼킨다.
“요루아 너의 목표는 흑염룡을 통제하는 것이다.”
“…………!”
“어렸을 적에는 흑염룡이 ‘내뿜는 기운’만으로도 로스월드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마법사로 거듭날 수 있었을 터다.”
요루아 본인은 몰랐겠지만, 설정상으로는 그러하다.
그가 발했던 재능이라는 것은.
그 비밀병기니, 빛나는 아이니 했던 이명은.
사실 흑염룡이 내뿜는 기운을 어찌어찌 잘 갈무리해 쓰는 것에 불과했다. 그 말인즉슨, 흑염룡 본연의 힘은… 그야말로 규격 외의 수준이란 말이기도 하다.
“허나 흑염룡이 깨어나면서, 그건 통제할 수 없는 힘이 되었지.”
“………….”
통제할 수 없는 힘은, 나 자신의 힘이 아니라 나를 파괴할 시한폭탄에 불과하다.
고로,
“요루아, 너의 목표는 단 하나다.”
“………….”
“흑염룡의 힘이 개방된 순간… 단 한 번, 그것을 제대로 통제하는 것.”
나는 둘을 바라보며 말한다.
“자, 그러면 수련을 시작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