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possessed a villain with nothing but a death flag RAW novel - Chapter 99
사망 플래그밖에 없는 악역에 빙의했다 099화
099
건방진 실비아를 교육(?)한 뒤, 나는 요루아가 수련하는 생활 공간으로 향했다.
안에 들어가지 않았지만, 밖에서부터 그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백만 스물하나… 백만 스물둘…!”
그리고 내 귀를 의심했다.
백만?
백만이라고?
순간 어처구니가 없어, 냉큼 생활 공간 안으로 들어서자니.
“이백만… 스물하나… 이백만… 스물두울…!”
그럼 그렇지.
요루아는 거의 눈이 뒤집힌, 반쯤 정신을 놓은 상태에서 팔 굽혀 펴기를 하고 있었다.
“오천… 만 스물… 하나… 오천만… 흐윽! 스물둘…!”
“고생이 많구나. 요루아.”
“보, 스… 으?”
“어떻게, 성취는 있었는가?”
성취? 요루아가 그리 반문하며 철퍼덕 쓰러졌다. 마치 일전에 팔 굽혀 펴기를 하던 나와 비슷한 꼴이었다.
참으로 못나 보였다.
“보스가… 흑. 시키는 대로… 후우. 하고는… 있었지만… 성취…? 성취는 무슨…!”
운동을 열심히 해서인지, 아니면 분해서인지. 요루아의 얼굴은 잘 익은 홍시처럼 빨갰다.
“나… 는… 분명…! 마력 수련을 한다고 들었는데… 왜… 왜…! 이런 운… 동을 하는 거지?!”
나는 뒷짐을 진 채, 흔한 무협지의 사부처럼 무심한 눈길로 말한다.
“네가 약해빠졌으니까.”
“전에는…! 원로… 들도 두려워할… 엄청난! 재능! 이… 라면서어엇…!”
“아이러니하게도 그게 문제다.”
하아?! 요루아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치들었다가, 팔에 힘을 잃고 콰당 엎어진다.
“으각! 보, 보스! 그게 무슨 소리인가!”
“네가 가진 힘은 거대하다. 허나 그걸 다루는 네 육신과 정신은 그야말로 애송이 그 자체지.”
마력의 컨트롤이라는 건,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한다. 당연 흑염룡의 힘을 ‘다루려면’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정신력이 필요할 터.
‘특히나 흑염룡은 일종의 잠식이라고 할까… 정신 감염 같은 것을 일으키지.’
숙주의 정신을 아예 지배하는 것은 아니지만, 마치 마검(魔劍)처럼 정신을 미치게 만드는 것이다.
당연, 그것에 저항하기 위해서라도 정신력을 굳건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요루아, 솔직하게 말하겠다. 지금 네 상태로 흑염룡이 깨어날 경우, 너는 틀림없이 예전처럼 ‘폭주’하게 된다.”
“…꿀꺽.”
요루아의 표정에 긴장의 기색이 어린다.
“그것만큼은 싫겠지?”
“무, 물론이다. 보스!”
“그렇다면 조금 더 열심히 해야 하지 않겠나.”
“하, 하지만 보스! 이미 이 몸의 체력은 한계다. 더, 더는 정말 움직일 수 없다….”
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말한다.
“그렇지 않다. 이 샘의 축복이 깃들어 있는 한, 그 정도 운동한다고 체력이 방전되지는 않는다.”
물론 체력이 방전되지 않는다 뿐이지, 힘든 건 매한가지다. 하지만… 그런 의미에서 이 수련이 더욱 두드러지는 거다.
‘육체의 단련은 물론, 힘들다는 정신의 한계를 극복하는 거니까.’
나는 씨익, 멋진 웃음을 지으며 헬린이를 다루는 헬스 트레이너처럼 말한다.
“고로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드는 법이지.”
“하, 하다못해 잠이라도 잘 재우던가! 나는 오늘 4시간밖에 자지 못했단 말이다!”
“밥은 잘 먹이지 않던가.”
매끼 식사는 우리의 샘지기 아타샤가 이를 갈며 잘 갖다주고 있다.
“식사의 문제가 아니다! 이 몸에게는 휴식이… 휴식이 필요하다!”
“그게 바로 나약함의 증거이다. 나를 보거라. 나는 이 샘에 들어온 뒤, 단 일초도 잠들지 않았다.”
“그, 그건 보스가 미친놈이라… 끄엑!”
얘는 실비아랑 붙어 다니더니, 뭔 이상한 것만 주워들어 가지고.
나는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으며 말한다.
“후우, 어쩔 수 없군. 그러면 딱 팔 굽혀 펴기 10개만 더 하지.”
“10, 10개나 더?! 자, 잠깐만. 보스 나는 이미 한계….”
“한 번이라도 더 토를 달면, 15개로 늘리겠다.”
요루아의 얼굴이 보기 좋게 구겨졌다.
“으, 으윽….”
“자, 요루아. 복창해라. 내려갈 때는 정신이. 올라올 때는 육체를 지배한다.”
“으응?”
나는 친절하게 요루아를 붙잡고 자세를(억지로) 잡아주었다. 그리곤 그의 등을 지그시 누르면서 말했다.
“자, 요루아. 정신이.”
“어흑! 저, 정신이… 이익!”
“육체를 지배한다.”
“유… 욱… 체를 지배한… 다앗!”
이 순간, 내 마음은 틀림없이 헬스 트레이너의 그것이었다.
“자, 한 번 더. 정신이.”
“정… 시, 이인… 이!”
“육체를 지배한다.”
“육…! 체를… 지… 배한… 다!”
후후.
나는 웃으며 10개를 채웠고, 마법의 주문 ‘마지막 하나 더!’로 3번을 더 시켰다.
* * *
샘에 들어온 지도 어언, 일주일의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요루아는 내게 집중 케어를 받으면서 여러모로(?) 성장했다. 육체도 육체지만….
—보스는 거짓말쟁이다!
—마지막이라고 했으면서! 정말 마지막이라고 했으면서!
—찐막은 뭐고 찐찐막은 뭐냔 말이다! 거기에 찐찐찐막이라니!
어른의 거짓말을 조금.
인생의 쓴맛도 조금.
한편 요루아의 눈물 글썽이는 얼굴을 보며, 나 역시 깨달은 것이 있었다.
‘이래서 트레이너들이 고통받는 회원들을 보며, 언제나 미소로 대할 수 있는 것이로군.’
의외의(?) 사실을 깨우친 바닥에 엎어져 헐떡이는 요루아를 바라본다.
“하악. 학. 하아… 하아….”
“요루아.”
“하, 하나 더…?”
이름만 불렀는데도 제가 먼저 ‘하나 더’를 입에 담을 줄이야. 그야말로 장족의 발전이었다.
“아니다. 오늘은 이 정도면 되었다.”
“후, 흐읍… 아니다, 보스. 하나 더 할 수 있….”
—꾸욱.
나는 요루아의 정수리를 꾹 누르면서, 일어나려던 것을 억지로 눕혔다.
“흐앗!”
“요루아, 모순되는 것처럼 느낄 수도 있겠다만 무리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 그건 분명 맞는 말이지만 육체에도 한계라는 게 존재한다.”
아고니아의 샘이 체력 회복을 탁월하게 도와주는 것은 맞다. 그로 인해 적당한 운동 정도로는 소모되지 않지만… 그렇다고 그게 팔굽혀펴기를 수천, 수만 개 연속으로 하게끔 도와주는 건 아니다.
‘한계치를 늘려주고, 근육통으로 인해 쉬어야 할 것 역시 면해주긴 한다만… 육체의 한계를 줄넘기하듯 뛰어넘을 수는 없는 게지.’
요루아가 어딘가 아쉽다는 듯 말한다.
“그렇지만 나는… 아직 할 만한 거 같은데….”
“지금은 초반이니 한계까지 몰아붙이며 무리하게 했지만, 앞으로는 그 한계치를 점점 더 낮출 거다.”
“…………?”
“아마 마지막 즈음에는, 적당히 했다 싶으면 힘들지 않아도 쉬게 할 거다.”
짧은 새 숨을 고른, 요루아는 내 옆에 양반다리로 앉으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보스, 왜 그러는 거지?”
“네가 ‘한 번 더’를 말한 시점에서, 이미 정신력이라는 소기의 목적은 달성되었으니까.”
힘들다.
피곤하다.
그만두고 싶다.
한계의 상황 속, 누구나 느낄 그 감정을 앞에 두고 한 번 더를 외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요루아는, 거기에서 한 번 더를 말할 수 있는 인간이 되었다.
“요루아, 지금 네가 이렇게까지 무리할 수 있는 건, 샘의 축복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샘이 주는 피로에 대한 면역. 그리고 체력 회복에 대한 어드밴티지.
그런 것들이 엇물려서 이런 식의 수련이 가능한 거다. 당연, 버프가 사라지면 똑같은 수준의 수련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마지막 날까지 한계에 다다르도록 몰아붙이면….’
—괴리(乖離)가 발생한다.
아고니아의 샘 밖에서도, 마치 안에서처럼 무리하게 된다. 멈춰야 할 시점을 모르고, 머리가 계속 ‘이 정도는 거뜬했는데?’라는 생각을 한다.
그 결과,
‘…자칫 망가질 수도 있지.’
그렇기에 나는 여러 NPC들을 훈련시켰던 플레이어의 경험을 바탕으로, 요루아와 실비아에게 맞는 한계치를 설정했다.
그리고 그에 맞춰서 적당한 완급조절을 해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보스… 보스는 지금도 엄청나게 무리하고 있다.”
“내가?”
“여기 와서 보스가 잠든 것을 본 적이 없다. 지금까지 한숨도 잠들지 않은 것 아닌가?”
혈석의 파괴는 정체되었지만, 여기서 마력을 수련하는 게 마력량 증진에 큰 도움이 되기에. 나는 쉬지 않고 자신을 몰아붙이고 있다.
하지만,
“그건 나니까 가능한 거다.”
“…보스, 잘난 척인가?”
“아니, 순수한 사실이다만.”
요루아가 입술을 삐죽 내민다. 나는 녀석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나 말대로 해라. 너는 충분히 노력했고, 내가 기대한 것 이상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그, 그치만….”
음, 역시 어린애를 다루는 건 피곤하군.
나는 우는 아이에게 사탕 주듯, 요루아가 듣고 싶어 할 말을 꺼낸다.
“이제 슬슬 흑염룡을 다뤄 보도록 하지.”
“저, 정말인가?!”
실비아도 슬슬, 도깨비불이 아니라 주력기인 흑창을 다룰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뭐, 적당한 타이밍이라는 거다.
* * *
로스월드의 주방 구역.
가문의 특성상, 로스월드는 저택 내에 상주하는 인원이 많은 만큼 조리실 역시 상당한 규모로 운영된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이곳에서 일하는 이들은 평범한 ‘시종인’이 아니라 모두 로스월드의 인간이라는 점이다.
“아타샤 님, 오셨습니까.”
트레이에 음식을 싣던 힉스 로스월드는 아타샤를 보자, 꾸벅 고개를 숙였다.
인사를 받은 아타샤는 조금 질색하는 표정으로 말한다.
“힉스, 그놈의 님 자 좀 빼라니까요. 우리 같이 입양된 동기잖아요?”
“그래도 엄연히 원로님이신데.”
“그냥 간신히 엘베드 등위 얻어서, 말석에 발이나 걸친 건데요, 뭐.”
아타샤는 힉스를 도와 음식들을 트레이에 실으며 말한다.
“연구는 잘 돼 가나요?”
“아직 지지부진합니다. 빨리 성과를 보여야, 조리실에서 일 안 해도 연구비를 지원받을 수 있을 텐데 말이죠….”
입양아를 포함해 수많은 마법사를 거느린 로스월드.
그들 대부분은 최대의 연구 단지를 가진 로스월드에서 ‘연구’를 위해 머물고 있지만, 돈이 없어서 이런저런 일들을 한다.
힉스와 아타샤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 저택 내에서 이런저런 일을 하며 연구비를 충당하는 것이었다.
“나도 마찬가지예요. 그놈의 돈 잡아먹는 연구 때문에 이 모양이네요… 후우….”
“샘지기는 아직도 지원자가 없습니까?”
“네, 그렇게 됐어요. 원래 당직으로 돌아가던 건데, 아직도 나 혼자 이러고 있네요.”
같이 하던 인간들은 죄다 도망가버리고 말이죠, 아타샤가 덧붙인다.
“아니, 하다못해 요루아 저택에 들이자고 성화이던 인간들은 나서야 하는 거 아닌가요! 웃긴 게, 정작 샘지기 하면서 전담하라니까 그건 또 싫다고…!”
“만일 요루아가 그 안에서 폭주라도 하면, 책임 문제로 꽤 골치 아파질 테니까요.”
“책임이라면 원래 다 가르테고, 그 빌어먹을 당주 탓인데!”
가르테고.
그러고 보니 아타샤는 유독 당주와 사이가 안 좋기로도 유명했다.
힉스는 얼마 전 있던 일을 떠올리며, 아타샤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상처는 다 나으셨습니까?”
가르테고가 눈이 돌아가, 아타샤에게 주먹을 갈겼던 이야기. 물론 아타샤도 나름 실력 있는 원로이니만큼, 공격을 막긴 했다만….
“날아갔을 때 그놈의 첨탑에 부딪혀서, 허리가… 끄응.”
“약방에 들릴까요?”
“아니, 뭐 그 정도는 아녜요. 아직도 허리가 뻐근거리긴 하는데… 그냥 나이 먹어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음식을 모두 실은 뒤, 힉스가 트레이를 끌며 말했다.
“아직 삼십 대인데, 무슨 나이 타령입니까.”
“원로회의 할아버지들이랑 어울리다 보니, 몸도 마음도 늙어가는 기분이랄까요.”
아타샤는 푹, 한숨을 쉬었다.
“후우, 원래 아고니아의 샘은 연에 한 번 개방할까 말까 한 곳이니까, 당연히 샘지기는 꿀보직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연구비는 많이 주지 않습니까.”
“맞아요. 그래서 원래 샘지기는 꿀보직인 건데….”
그때 중얼거리듯 말하던 아타샤가 ‘아’ 하고 무언가 깨달은 듯 입을 다문다. 아무렴 샘지기로 꿀을 빠는 자신과 다르게, 힉스는 조리장에서 고생을 하고 있지 않던가.
아타샤가 멋쩍은 듯, 옆머리를 긁적이자 힉스가 다른 화제를 꺼낸다.
“요루아는 잘 돼 가는 거 같습니까?”
“으음, 잘 모르겠어요. 보니까, 샘은 류리크라는 남자가 독차지하고 요루아는 무슨 운동(?) 같은 거만 시키는 거 같던데.”
힉스가 놀란 눈으로 말한다.
“아고니아의 샘에 들어갔는데 육체를 단련한단 말입니까?”
“아까운 짓, 아니 미친 짓이죠. 이래서 기사 출신들은 마법을 배워도 반쪽짜리라니까요!”
하하, 힉스는 적당히 웃으면서 주방 문을 열었다. 문을 열고 나가자 저녁의 서늘한 바람이 느껴졌다.
아타샤는 약간 쌀쌀했는지, 자신의 옷을 여미며 말했다.
“아무튼, 그 남자도 큰일 났어요. 회의 때는 영감님이 중재해서 넘어갔지만, 다들 이를 박박 갈고 있으니까요.”
밤이 깊었음에도, 로스월드의 불빛은 꺼지지 않았다.
누군가는 연구비를 벌기 위해 일을 하고, 누군가는 잠들 수 없는 밤을 보며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아고니아의 샘까지 억지로 들어갔는데, 본인만 꿀을 빨고 요루아가 제자리걸음이라면….”
그런 것이 로스월드였다.
언뜻 정신 나간 듯하면서도, 마학이라는 것에 누구보다도 진지한 인간들. 당연 마학으로 그들을 기만하는 일이 생긴다면,
“류리크라는 그 남자, 꽤 곤란해질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