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aise a Skeleton RAW novel - Chapter (122)
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122화
탐욕룡 아란발론 (3)
파즛! 파즈즉!
허공에 핀 전류의 꽃 사이로.
새하얀 피부의 독일 소녀가 이를 갈며 나왔다.
“이 정신 나간 새끼!”
표독하게 눈을 뜬 채로 나를 바라보는 여성은 바로 플로아였다.
“테마2를 깼으면 깬 거지, 또 무슨 용을 건드려? 단체로 죽고 싶은 거야?”
말투는 거칠었다.
하지만.
나는 그 속에 묻어 있는 걱정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물론, 랭커답게 기세는 여전했지만.
“저분은…… 누구지?”
“심사위원……?”
눈살을 찌푸린 팀원들이 살짝 뒤로 물러날 때였다.
“뇌명?”
중년이 나섰다.
“오오! 설마 뇌명이십니까?”
“뭐야, 쟨?”
움찔.
플로아가 살짝 뒤로 물러섰다.
“오오, 뇌명이라니! 타지에서 이렇게 조국의 영웅을 만날 줄이야! 감개무량합니다!”
“뭐야, 독일인이었어?”
그러고 보니, 저 중년.
아직, 이름도 몰랐다.
올리비아랑 사이가 좋지 않은 것.
그리고 검을 쓰는 검사라는 것만 알 뿐.
“예, 저는 A급 검사, 막시밀리언! 평소 존경하던 뇌명을 뵈어 영광입니다!”
중년이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했다.
그 덕에, 살벌했던 분위기가 살짝 중화되었다.
“뭐야, 어쨌든!”
잠깐, 시선을 뺏겼던 플로아가 다시 날 쳐다봤다.
“이건 안 돼! 난 심사위원으로서 참가자의 돌발행동을 막을 권리와 의무가 있어! 너희도 다 안돼! 다들 무기 내려놔!”
“…….”
“잘 생각해 봐, 좋은 성적으로 잘 나아가고 있다가 왜 갑자기 삐딱선을 타는 거야? 저 용은 달라. 진짜 무지무지하게 끔찍한 놈이라고. 네가 먹은 독무를 ‘따위’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그건 나도 알아.”
용을 본 건.
처음이 아니거든.
“아는 놈이 왜 그래? 무슨 무모하지 않으면 숨 막혀 죽는 병이라도 걸린 거냐?”
“그건 아니지만.”
나는 웃었다.
“감.”
“뭐?”
“그냥 감이야. 내가 존경하는 분이 말했거든?”
만술의 노인.
“나는 만술(萬術) 중 천운(天運)을 이미 이뤘다고. 그런 내 심장이 말하고 있네. 저 용을 잡으라고.”
“그게 뭔 쌉소리야?”
“저 용을 잡으면 떡상이래.”
“……?”
문득, 플로아가 황당하다는 얼굴을 했다.
그 모습을 말로 표현하자면, [뭐, 이런 놈이 다 있지?]라는 표정이었다.
“어쨌든.”
나는 말했다.
“네가 굳이 나서서 막는다는 건, 너만 눈감아주면 잡아볼 수도 있다는 거잖아?”
“이런 미친놈이? 그걸 설득할 논리라고 내뱉는 거냐?”
파즈즉!
플로아의 손에 전류가 모여들었다.
“그딴 염병할 논리로는 절대 날 설득 못 한다. 가려면 날 밟고 가!”
“흐음.”
난감한 상황이었다.
설마 심사위원이 막아설 줄이야.
저번에 딴 소원권을 쓸 수도 있겠지만.
살짝 애매했다.
그녀가 비켜준다고, 모든 심사위원을 막아설 수 있는 건 아니잖아?
그때였다.
“……흥미롭네요.”
플로아의 살벌한 기운이 뚝 끊겼다.
동시에 사위가 고요해졌다.
서로 술렁거리던 팀원들도, 나와 플로아의 숨소리도 자취를 감췄고.
그 목소리만이 오롯이 남아 고막에 닿았다.
“여기서 용을 잡겠다고 나선 참가자는 시련을 연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에요.”
시련을 직접 열었다고 말하는 자.
“애초에 용의 존재조차 파악 못 하고 클리어하는 자들이 대다수였는데. 흐으음, 이건 확실히 애매하네요. 이걸 어떻게 처리해야 좋을까요?”
세계 랭킹 5위.
던전 메이커(Dungeon Maker) 델라일라.
그녀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침을 삼켰다.
팀원들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랭커들도 보기 힘들다는 그녀의 모습을 테마2에서 이렇게 마주할 줄은 몰랐기 때문.
“델라일라…….”
“예, 이렇게 직접 뵙는 건 처음이네요. 스켈레톤 킹.”
아아.
나 지금 세계 랭킹 5위랑 말 섞어 본 거야?
어쨌든.
그녀가 직접 나섰다는 건.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다.
마치 회사 문 앞에서 직원과 투덕거리다가 사장이 눈앞에 직접 나선 느낌?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저 용, 잡아도 되는 겁니까?”
“으음.”
그녀의 시선이 내 얼굴을 훑었다.
“과연, 대단하시네요.”
“…….”
“테마1도 다시 못 쓰게끔 폐기해 놓고, 이제는 테마2까지 파괴하려 하시다니. 그대 덕분에 다음 참가자들은 아예 새로운 테마에서 진행해야 하겠네요.”
뼈가 있는 말.
하지만, 나는 그것보다 다른 워딩에 더 집중했다.
‘파괴했다고 말했어.’
그렇다는 건.
비로소 확실해진 것.
‘여기, 다른 세계구나.’
만들어진 가상의 세계가 아닌 실존하는 세계.
그녀는 던전을 만드는 게 아니었다.
그저 이어주는 거였다.
Maker가 아닌 Linker.
매개체 던전을 통해 다른 세계를 겪었던 것처럼.
어쩌면 델라일라는 존재 자체가 세계와 세계를 잇는 매개체가 아닐까?
“으음, 저는 우려스러워요.”
델라일라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날 바라본 것은 그때였다.
“킹, 그대는 제 시련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는 존재예요. 지금 이대로 버텨만 줘도, 광전사 이후로 제가 낼 수 있는 최고의 아웃풋이 될 텐데. 굳이 무모한 도전으로 목숨을 잃게 되면 다 소용없는 일이잖아요? 그대에게도 안 좋고. 저 역시 시간을 낭비하는 꼴이고.”
“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겠죠.”
당당하게 입을 열었다.
원래 이럴 때는 당당해야 한다.
기세를 죽이면 될 것도 안 된다.
“하지만 세상에 위기 없는 성장은 없는 법입니다. 애초에 안전하게만 갈 거였으면, 이런 시련을 열 필요가 없는 거였어요. 방금 그 말은 취지에 맞지 않아요.”
“인정해요. 하지만.”
“이길 거예요.”
“…….”
나는 목소리에 확신을 담았다.
“충분한 아이디어도 있고, 승산도 있습니다. 실제로 잡아본 적도 있고요.”
“용을 잡았다……?”
“델라일라께서는 강자를 배출하길 원하고 계시죠?”
시련.
그녀의 시련은 난이도가 올라간 개연성만큼 보상을 내어준다.
거기에 심사위원이나 델라일라가 관여하는 건 없다.
그저 관리만 할 뿐.
그렇기에 나는 생각한다.
“당신은 제가 강해지길 원하고 있어요.”
그녀가 날 키우고 있다고.
날 돕고 있다고.
그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지금은 그 정도로 충분했다.
“저는 들은 적 있어요. 랭커의 격차는 한 자릿수로 갈수록 극대화된다고. 광전사가 말했었죠. 세계 랭킹 20위인 그가 세계 랭킹 3위인 천마를 상대할 때 고작 삼초지적(三招之敵)뿐이 안된다고. 그 자존심 강한 양반이 그랬어요.”
한 자릿수의 벽은 그 정도로 거대하다.
또한 그 격차가 우주와도 같이 넓다.
“저는 평범한 랭커가 되려 하는 게 아닙니다. 이왕 시작한 거 모든 랭커 위에 올라서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범한 방법으로 클리어하면 안 돼요. 이 시련에서 얻을 수 있는 개연성을 강제로 충당시켜 보상을 받아내야 해요.”
“…….”
“저는 당신에게 감사합니다.”
내 일생의 꿈이었다.
일생의 숙원이었다.
랭커가 되는 것.
그녀는 그걸 시스템화했고, 제도화했다.
상황이 어찌 됐든 나에게 기회를 주었다.
더 높이 날아갈 수 있는 기회를.
“그렇기에 꼭 보답하고 싶습니다. 더 강해지는 길로요. 종국에는 당신을 넘어서 그 누구도 넘볼 수 없을 만큼 강해지고 싶습니다. 그것이 당신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 아닌가요?”
나는 그녀를 바라봤다.
“…….”
긴 침묵이 있었다.
그러던 순간.
피식.
그녀의 입술에서 바람이 새어 나왔다.
“그러니까 지금.”
델라일라가 미소 지었다.
“도박을 하라는 거군요? 그대의 목숨을 걸고.”
“…….”
“지금보다 더한 시련으로 팍팍 몰아넣으라는 거죠? 거의 죽을 만큼, 아니, 진짜 죽을 만큼.”
아니, 그렇다고 진짜 죽이라는 건 아닌데.
괜한 말을 했나?
나는 심장이 뛰었다.
“뭐, 좋아요.”
델라일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도박, 받아들이도록 하죠. 대박 아니면 쪽박이라. 재미있겠군요.”
동시에, 손을 휘저었다.
“테마2는 잠시 연장합니다. 히든 퀘스트의 개념으로 다시 드릴 거예요. 지금부터 모든 심사위원들은 이곳 테마2에서 철수합니다. 또한.”
그녀는 나를 제외한 다른 팀원들을 바라봤다.
“그대들은 원하면 당장 테마3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필요 없다.”
심판창이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나는 지옥까지 친우를 따른다.”
상대가 델라일라임에도 단호한 말투.
과연 심판창다웠다.
“저희도 필요 없어요.”
묘이 하나가 말했다.
“이미 각오는 하고 있었어.”
카푸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미친놈의 친구가 되려면 나도 미친놈이 되어야겠지.”
“용이 마법을 잘한다죠? 마법사로서 안 보고 넘어갈 수 없겠네요.”
다른 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누구도 도망치려 하지 않았다.
내 옆에 꼭 붙어 있었다.
씨익.
나는 웃었다.
남는 게 고마워서 웃는 게 아니다.
어차피 난 혼자라도 상관없다.
‘다만.’
이번에 생긴 동기들이 용기 있는 사람들이어서.
발전 가능성이 충만한 사람들이어서 기뻤다.
아마.
살아나간다면.
다들 높은 위치에 올라서겠지.
이대로라면, 서로가 서로에게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과연.”
델라일라가 웃었다.
“이번 기수는 아름답네요.”
[띠링!] [히든 임무가 도착합니다.] [스테이지 : 용 잡기!] [7명의 팀원은 서로 ‘협동’하여, 중앙 거대 성(城)에 존재하는 탐욕룡 ‘아란발론’을 처리해야 합니다.]“그대들의 용기만큼, 성과 또한 빛이 나기를.”
[델라일라가 행운을 빌어줍니다.]힘겹게 얻어낸 기회였다.
* * *
[아란발론이 눈살을 찌푸립니다.] [이계의 존재에게 말합니다.] [규약을 어기는 거냐 묻습니다.] [아란발론이 대답 없음에 분노합니다.]* * *
쿠르르릉!
그 순간.
하얀 문이 사라졌다.
또한 사방에 존재하던 ‘보물’들 역시 사라졌다.
지진 난 듯 흔들리는 바닥과 그 위에 우뚝 서 있는 거대한 용.
샛노란 용의 눈동자가 우리 일곱 명을 빤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 의리 넘치는 가상한 놈들인 줄 알았더니만.
아아.
나는 전율했다.
이딴 걸 어떻게 잡을 생각 했나 싶을 정도로 막강한 힘.
“흐읍!”
숨이 턱 막혔다.
드래곤 피어(Dragon Fear).
그저 지켜만 볼 뿐인데, 본능적인 공포감이 발바닥부터 스멀스멀 올라왔다.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카푸의 영상으로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압박감이었다.
그래, 이건 용이 아니었다.
이것은 신.
모든 것을 파괴할 것만 같은 파괴신(破壞神)이었다.
– 주제를 모르는 멍청한 놈들이었구나.
과연.
델라일라는 약속을 잘 지켰다.
원래는 하얀 문으로 엘드린만 던져보려고 했던 걸.
아예 친히 우리를 용 앞에 데려다 놓으셨다.
‘젠장.’
이럴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나는 일행들을 쳐다봤다.
다들 목을 위로 젖히고 몸이 뻣뻣이 굳어 있다.
이러면 안 된다.
이러다가 모두 순식간에 밟혀, 고깃덩어리가 될 게 자명할 터.
“정신 차려요!”
스슷!
나는 ‘봉인된 일곱 정수의 영령’(1/7)을 건틀릿으로 변형시켰다.
동시에.
콰아아앙!
바닥을 향해 힘차게 내려찍었다.
“뭐, 뭐야!”
“훈?”
“다들 정신 차리고 뒤로 뛰어요!”
내가 일갈했다.
어차피 뛰어봐야 큰 의미 없겠지만.
적어도 여기 가만히 서 있는 것보단 나았다.
‘진짜 의미 있는 행동은.’
바로 이것.
“엘드린!”
“예, 주인님!”
“지금 당장 봉인 풀어!”
“알겠어요!”
엘드린의 손아귀에서 검은 기운이 급속도로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
고오오오오오오…….
마치 무저갱 속에서 들려오는 악귀의 울음소리와 함께.
우리는 이곳에.
거대마룡(巨大魔龍)을 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