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aise a Skeleton RAW novel - Chapter (229)
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229화
헝가리 (4)
까앙! 까아앙!
약 천여 개의 만들어지고 있는 무릉도원의 도시.
가장 높은 임시 건물 옥상에 걸터앉은 내가.
“후우.”
길게 호흡을 내뱉었다.
날씨가 서늘한지, 하얀 입김이 허공을 수놓다가 사라졌다.
아린이에게 들은 정보, 성좌.
그것들에 관한 내용을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호기심이 들었다.
도대체 이 세상은.
이 우주는 어떻게 생겨 먹은 걸까?
내 신살(神殺)급 무기 속 정수는 누구이고.
갑자기 생겨난 시스템 메시지와 고유 능력은 또 뭘까?
– 거기까진 저도 모르겠어요, 교수님. 그래도 책을 읽다 보면 답이 보이겠죠? 아직 읽을 책은 많고 마탑의 서고는 이 우주의 진리를 담고 있다고 하니까요.
마탑의 서고.
아린은 아직 그 방대한 양의 서적을 약 1%도 채 읽지 못했다고 했다.
– 뭐, 우리가 상상할 수조차 없는 거대한 존재가 우주를 통제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저 우리의 수준이 낮아 밝히지 못했던 우주의 비밀들이 천천히 풀리고 있는 것일 수도 있죠. 전 오히려 교수님의 세상이 더욱 신기한걸요? 고철 덩어리가 하늘 위를 날아다니는 세상이라니. 이런 세상이 있다는 걸 책으로 보긴 했지만…… 읽는 거랑 직접 체험하는 거랑은 또 결이 다르니까요.
결과적으로는 아린도 몰랐다.
나도 모르고.
랭커들도 모르고.
델라일라도 몰랐었다.
어쩌면.
일부 천문학자들의 주장처럼 이 세상이 시뮬레이션으로 이루어져 있을 수도 있는 거고, 우리가 실험실 개미일 수도 있는 거겠지.
아니면 또 어떤 소설에서처럼.
이 세상 자체가 어떤 위대한 존재의 꿈에 불과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쨌든.’
성좌에 관한 아린의 조언은 도움이 되었다.
사실.
도착하자마자 김진아와 협회에게 요청했던 것이 있다.
바로 ‘투신의 파편’(SS급)에 관한 정보를 찾아볼 것.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감감무소식이었다.
이 헌터 세계가 정보 교류가 활발해 보여도.
상당히 폐쇄적인 부분이 있다.
당장에 이번 루마니아만 봐도 그렇다.
SS급 아이템, 「라파엘의 서」를 먹어놓고 아예 국가 기밀로 지정해 놨었다지 않던가.
특히 급수가 높을수록 ‘기연’이라 생각하며 정보를 ‘독점’하려 하게 마련이다.
나는 그걸 이해했다.
그렇기에.
‘이거. 가봐야 할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드는 거다.
그 회색 괴수가 ‘투신의 파편’(SS급)이든 아니든.
성좌의 파편이라면 그것에 관한 정보를 나 혼자 독점할 수 있는 거니까.
사실.
걱정되는 건 딱 하나뿐이긴 했다.
김진아.
그녀를 어떻게 꾀지?
큼, 크흠.
조금 전에 안 간다고 해놨는데.
* * *
“예에에에에?”
김진아가 경악한 표정으로 입을 벌렸다.
“잠깐만요, 길마님?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불과 몇 시간 전에 말씀하셨잖아요. 어허, 절 뭐로 보시는 겁니까! 라고 했었나?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쉽게 바뀌어요? 태세 전환이 빨라도 너무 빠르잖아요!”
“아하하하…….”
내가 땀을 삐질 흘리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역시 예상대로의 격한 반응이었다.
“안 돼요! 안 돼! 절대 안 돼요! 그리고 그거 알아요? 조금 전 헝가리 접경국에서 사절단을 보내왔어요. 그리고 제가 방금 전 깔끔하게 거절했죠. 그것도 완.전.히 매몰차고 도도하게 거절해서 보냈는데, 바로 지원 간다고 한다고요? 아이고, 두(頭)가 뜨거워지려 하네…….”
하지만 난 안다.
저게 다 내가 걱정돼서 하는 표현이라는 걸.
절대 사절단에게 했던 행동이 쪽팔려서 그런 게 아닐 거다.
“아이고오오. 길마님. 도대체 저한테 왜 이러시는 거예요.”
김진아는 자꾸 [아이고 두야]를 반복하며 관자놀이를 두들겼다.
내가 미소 지었다.
“사정이 있거든요. 제가 저번에 말했죠? 투신의 파편. 찾아달라고.”
“……그랬었죠? 그것 때문에, 방금도 알아보고 있었어요.”
역시, 김진아.
이것저것 바쁜 와중에도.
이 길마가 시키는 일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참 인재다.
“어쩌면요.”
후르릅!
회의실 탁자에 놓여 있는 아이스티를 한 모금 마시며 말을 이었다.
“그 부다페스트의 괴물들이 그 파편일 수도 있을 것 같거든요.”
“……?”
“저는 그게 꼭 필요하고. 그게 있어야만 더 강해질 수 있습니다.”
“설마.”
김진아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냥 헝가리 돕고 싶어서 지어내는 말은 아니죠?”
“에이, 제가 무슨 성인군자입니까?”
“아뇨, 성인군자 정도가 아니라 무슨 히어로물의 주인공이라도 되는 줄 알았어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김진아가 이내 자리에서 일어난다.
“후우, 참. 간다는 걸 못 가게 막을 수도 없고……. 좋아요.”
김진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그녀의 허락을 구하고자 하는 게 아닌, 일종의 통보라는 걸 직감한 모양이다.
사실 그게 맞지.
내가 길마고 김진아는 부길만데.
“인원 지원은요?”
“다른 인원은 필요 없어요. 저 혼자 갈 겁니다.”
“괜찮으시겠어요?”
“세상에 이런 말이 있죠. 하이 랭커 걱정하는 거 아니라는.”
“그냥 걱정되는 걸 어떡합니까? 후.”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쉰 김진아가 종이에 무언가를 끄적여 적었다.
그리고 이내.
“대신.”
“예.”
“접경국 측 보상은 제가 다시 협상해서 최대로 끌어낼 거예요. 그건 인정하시죠?”
“저는 가서 그 괴수가 정말 파편인지 확인만 하면 됩니다. 나머지 사항은 부길마 판단대로 하세요.”
나는 던전에 가고 사냥만 한다.
나머지는 김진아를 온전히 믿는다.
그 마음이 전해진 걸까?
“알겠어요.”
구겨진 김진아의 미간이 살짝 펴진 느낌이었다.
“협회 측에는 제가 잘 말해볼게요. 별천지가 지원 간다고. 후.”
* * *
[세계 랭킹 69위, 스켈레톤 엠페러, 헝가리행 선언!] [현대판 스파이더맨! 과연 그에게는 영웅의 피가 흐르는 것일까? 헝가리 주민들 환호.] [한국 헌터 협회, ‘우리는 하이 랭커의 판단 존중’.] [EU, ‘헝가리 참사’ 위해 모금 캠페인 선포.]…….
하이 랭커의 첫 지원 선언은 세상을 들썩이게 했다.
▶ 크으, 역시!
▶ 와, 던전 브레이크면 보상도 없는데 선뜻 가준 거? 그것도 국가 궤멸 급 몬스터를 청소해주러?
▶ 이런 게 바로 노블레스 오블리주지! 힘 있는 자의 관용!
▶ 보상받긴 받았다더라.
▶ 보상? 무슨 보상?
▶ 나야 모르지. 극비 사항이라잖아. 헝가리 주변 접경국들이 모여서 줬다던데?
각종 커뮤니티에서도 다양한 말이 오갔고.
“으허허허! 결국 오는군요!”
접경국 회의실도 축제 분위기였다.
“제가 뭐랬습니까? 보상만 맞춰주면 바로 온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스켈레톤 엠페러면 그래도 요즘 핫한 랭커이니 신속히 문제를 해결해 줄 겁니다.”
부치치가 환하게 웃었다.
비록 별천지 측의 요구로 기존 보상보다 다섯 배 더 비싼 금액을 지급해야 했지만.
그래도 일곱 개국이 나누어 부담하니, 큰 무리는 아니었다.
“자, 그럼 축제나 즐겨봅시다. 우리 그동안 분위기가 좀 심각했죠?”
따악!
세르비아의 원수, 부치치가 손을 튕기자.
드르륵!
문이 열렸고.
그곳으로 준비된 와인과 각종 안주들이 회의실에 세팅되기 시작했다.
과연 음식과 술의 마력일까?
굳어 있던 총수들의 얼굴이 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 중 한 명.
루마니아 대통령, 클라우스만이 표정이 좋지 않았다.
마치 똥이라도 씹은 느낌.
옆에 있던 누군가가 물었다.
“클라우스, 무슨 일 있습니까? 안색이 별로 좋지 않은데.”
“하하, 별일 아니오.”
클라우스가 웃어넘겼다.
“거, 신경 쓰지 말고 드시오. 맛있어 보이는구먼, 큼큼.”
헛기침하며 와인잔을 드는 클라우스의 손이 미약하게 떨렸다.
하지만, 분위기가 좋아서인지.
자리의 그 누구도 알아채지 못했다.
* * *
한참의 축제가 끝나고.
본인의 방으로 돌아온 클라우스가 재떨이를 있는 힘껏 벽면에 던졌다.
“이런 제기랄!”
쨍그랑!
유리 깨지는 소리와 함께, 쌓여 있던 잿더미가 허공을 향해 흩날렸다.
“부치치, 그 개새끼가…….”
으득.
클라우스의 이가 갈렸다.
방 내부의 소리를 들은 걸까?
“대통령님! 괜찮으십니까?”
호텔 옆 방에 머무르던 국방 장관이 달려왔다.
“……장관.”
“어떻게 되신 겁니까? 설마…… 핵 건의가 먹히지 않은 겁니까?”
핵.
놀랍게도 국방부 장관의 입에서 나온 단어가 ‘핵’이었다.
“하긴, 그렇겠습니다. 하이 랭커가 지원 온다는데 핵을 쏠 명분은 없을 테니까요.”
“그렇게 됐네.”
클라우스가 심기 불편한 표정으로 소파에 앉자.
“여기 있습니다. 대통령님.”
국방 장관은 장식대에 놓여 있는 양주 하나를 깐 뒤.
졸졸졸.
준비된 글라스에 샷으로 따랐다.
클라우스는 그걸 받아 신경질적으로 꼴깍꼴깍 털어 넘겼다.
“크흐. 제기랄. 이러다가 그 불법 실험을 들키기라도 하면…….”
사실.
클라우스가 전술핵을 갈기자고 했던 데는 이유가 있었다.
지금은 죽었지만.
헝가리 대통령과 짜고 부다페스트 안보 구역 쪽에서 불법적인 실험을 행했기 때문.
‘어쩔 수 없었다고.’
세상이 변한 이후, 국력은 곧 헌터였다.
국가 소속 헌터들이 강할수록 외교에서도 입김이 더욱 셀 수밖에 없었다.
부익부 빈익빈.
강한 헌터를 가진 자들이 타국에 지원을 가 얻어오는 보상이 GDP 대다수를 차지하고.
경제가 활발해진 만큼, 돈이 많아진 만큼, 더욱 강한 헌터를 영입할 수 있다.
‘우리만 손가락 빨고 있을 순 없잖아.’
강해지기 위해 실행한 비밀 프로젝트.
클라우스의 명에 수많은 성인 헌터들이 헝가리의 실험실로 끌려 들어갔고.
그곳에서 온갖 행위들이 벌어졌다.
그 실험이 얼마나 잔혹하고 끔찍했냐면.
과거 러시아의 「고담」과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
확실한 건 전 인류의 지탄을 받을 만한 실험이라는 거다.
대충 사람들을 해부하여, 고유 능력과의 상관관계를 파악하는 데 그 목적이 있었던 실험이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대통령님. 스켈레톤 엠페러인가? 그놈도 그냥 괴수만 잡고 가겠죠. 설마 헝가리 전역을 뒤져보진 않을 겁니다.”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닐세.”
“예?”
“헝가리 안보 구역에 그 실험실이 존재하는 한, 언젠가는 걸릴 수도 있다는 말이잖나?”
그게 당장 내일이 될지.
1년 후가 될지.
10년 후가 될지.
그 누구도 알 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그 순간만큼은 불안에 떨며 지내야 한다.
클라우스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번 일을 핑계로 핵만 날렸어도 깔끔하게 끝나는 건데.”
증거인멸.
클라우스가 생각하던 완전범죄가 한 하이 랭커의 참여로 무마된 것이다.
“제기랄.”
접경국 대통령들.
그 노망난 늙은이들이 터무니없는 짓거리를 할 때만 해도 분위기가 좋았다.
세상 물정 모르는 짠 보상을 제시할 때도.
밑도 끝도 없이 하이 랭커들에게 사절단을 보낼 때도.
그게 성사되리란 생각은 없었는데.
“놈은 대한민국의 헌터야. 그것도 하이 랭커. 거기다가 핵 쏘는 순간 세계 협회가 움직일 거고, 전 세계와 전쟁하는 꼴이겠지. 그것도 헌터 강대국들이랑…….”
일단, 핵은 절대 못 쏜다.
“대통령님.”
쪼르륵!
장관이 빈 글라스에 양주를 더 따르며 입을 열었다.
“우선 한 잔 더 쭉 드시고 기다려 보시죠. 생각하다 보면 방법이 보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