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aise a Skeleton RAW novel - Chapter (250)
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250화
2024, 세계 랭커 발표식 (2)
“자자.”
칼리페나가 가볍게 걸으며 조곤조곤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저는 여러분을 죽일 생각이 없어요.”
그러고는 묶여 있는 김진아에게 다가가더니, 손끝으로 그녀의 턱선을 스으윽! 쓸었다.
“생각해 봐요.”
후훗.
짧은 호흡 후.
“제가 여러분들을 죽여서 뭐 하겠어요? 죽인다고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기연이 쏟아지는 것도 아닌데. 그렇지 않아요?”
“크읏.”
김진아가 힘을 주어 벗어나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랭커도 아닌 그녀가 세계 랭킹 12위의 무력행사를 떨쳐낼 수는 없는 일.
“저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를 정도로 멍청하지 않답니다.”
김진아가 눈을 깜빡였다.
사실 맞는 말이다.
칼리페나보다 센 사람이 전 세계에 고작 11명뿐이다.
다 웬만해서는 몸을 움직이지 않는 거물들이며.
사실, 칼리페나가 마음먹고 몸을 숨기면, 랭킹 10위 이상의 하이퍼 랭커들도 그녀를 찾아내기란 쉽지 않을 거다.
그래서 그녀는 이런 방법을 주로 사용하곤 했다.
이른바 길드의 식민지화.
힘으로 조져놓고 목숨을 담보로 삥을 뜯는 거다.
“……그래서 질질 끌지 말고, 원하는 게 뭔데요?”
김진아가 묻자, 칼리페나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마치 이제야 말이 좀 통하는 것 같다는 느낌.
사람을 죽일 듯 패놓고도, 참으로 친근하게 웃었다.
“뭐, 그렇게 어려운 부탁은 아니에요. 합법적으로 10억 불을 건넬 것.”
10억 불이면 대략 1조 원 정도.
그야말로 깡패나 다름없는 제안이었다.
“그리고 스켈레톤 엠페러가 복귀하기 전까지 그쪽의 신변과 별천지의 랭커 하나를 무장해제 상태로 넘길 것. 그렇게만 한다면, 여기 있는 분들. 목숨만은 살려드릴게요.”
마치 별거 아니라는 듯한 어조였지만, 김진아는 그 한마디에 칼리페나의 의도를 파악했다.
“하, 말하는 꼬락서니가.”
김진아의 입가가 비틀렸다.
“지금 우리보고 살기 위해 길드 마스터를 배신하라는 거예요?”
저자의 의도는 뻔했다.
나중에 복귀할 길마를 대상으로 인질극을 펼치려는 거겠지.
김진아는 죽어도 그건 싫었다.
살기 위해.
돈을 가져다 바치고 인질을 자처한다?
그다음 길마님한테 해결해 주세요! 하고 찡찡거린다?
그런 마인드였으면, 애초에 단체 설립조차 안 했을 거다.
“에이, 배신이라니. 말을 뭐 그렇게 극단적으로 해요? 배신이 아니라 합리적인 생존인 거죠.”
“시끄러워! 우린…… 절대 악에 굴복하지 않을 거다!”
으드득.
김진아가 이를 갈자, 칼리페나가 빙긋 웃었다.
“그 마음. 계속 유지하길 바랄게요.”
스스슷!
그 순간, 그녀의 팔이 떨쳐졌다.
콰드드득!
동시에, 바닥에서 자라난 해초가 벽에 기절해 있는 남자 하나를 잡고 끌어당겼다.
기절해 있는 인도자, 카푸였다.
“그쪽의 소중한 동료들이 하나하나 죽어 나가더라도 말이에요…….”
기운을 끌어올린 칼리페나가 떨친 손을 들어 올리며 주먹을 움켜줬다.
그에 맞추어.
“커, 커허억!”
기절했던 카푸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질긴 해초가 날카로운 칼날로 변해 그의 온몸을 뚫어버린 것이다.
푸부부북!
가죽 찢기는 소리와 함께 피부를 뚫고 들어가자 카푸가 멈칫 몸을 떨더니, 허파에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카, 카푸!”
김진아가 비명 지르듯 외쳤다.
“이런 씨발!”
구석에 널브러져 있던 플로아도 다시금 달려들어 덮쳤다.
불시에 기습을 받은 칼리페나였지만, 그녀는 여유로운 미소를 유지했다.
플로아 역시 기습이 통하지 않을 걸 알았지만.
‘그래도 멈출 수 없어.’
정든 동료들이 당하고 있는데, 가만히 누워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별천지의 랭커들의 낯이 어두워졌다.
절망.
그리고 좌절.
아아, 역시 아직 갈 길이 먼 걸까?
빅3를 능가하는 최고의 단체가 되자며 파이팅할 때가 엊그제 같은데.
현실은 상상보다 더 냉혹했다.
모든 랭커가 모였음에도, 고작 한 명을 제대로 상대하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플로아는 집중했다.
모든 기운을 끌어다 칼리페나를 교란하려 노력했다.
왜냐.
은닉하고 있는 기소율의 거리가 이제 칼리페나와 거의 근접했기 때문.
“하아, 정말…… 다들 한 끈질들 하시는군요.”
슬슬 짜증 난다는 듯 미간을 찌푸린 칼리페나가 다시 공격을 받아치려 할 찰나였다.
‘음?’
문득, 후방에 없던 기운이 생겼다.
‘뭐지?’
분명 랭커들의 위치는 계속해서 파악하고 있었는데.
지금까지 파악하지 못했던 완전히 새로운 기운이 등 뒤에까지 근접했다.
‘암살……자?’
그 순간 떠올랐다.
별천지의 암살자, 암제(暗帝) 기소율.
분명 인지는 하고 있었으나, 이곳에 없기에 다른 곳에 출장이라도 간 줄 알았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암제 따위가 아무리 암살에 능한들.
랭킹 12위인 자신의 감각에 걸리지 않을 리 없었으니까.
“흐읍!”
그리고 지금.
칼리페나의 입에서 처음으로 호흡 소리가 터져 나왔다.
등 뒤로 다가오는 묵빛 단검의 기세가 너무도 날카로워.
집중하지 않으면,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었다.
서걱!
그리고 방금.
단검이 그녀의 피부를 스쳤다.
푸확!
피가 터졌다.
“…….”
비록 치명상은 아니었지만, 천하의 칼리페나가 기습을 허용한 것이다.
등 뒤에 느껴지는 욱신욱신한 감각을 느끼며 칼리페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후, 정말…….”
요컨대, 이런 거다.
간단하게 잡힐 줄 알았던 잠자리가.
요리조리 빠져나가다가 손가락을 깨문 느낌?
“여러분들은 안 되겠군요.”
칼리페나는 화가 났다.
약자에게 상처를 입은 자신에게 화가 났으며, 의미 없이 발악하는 상대에게 짜증이 난 것이다.
“여러분께 자비 따윈 사치 같군요. 제 몸에서 피를 보이게 한 대가는 생각보다 혹독할 거예요.”
콰가가가!
그녀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섬뜩한 기세와 함께.
쿠구구구……!
건물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 * *
암제와 뇌명.
vs.
칼리페나.
그들의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됐다.
뭐, 싸움이라 보기엔 뭐 했다.
기소율과 플로아는 진짜 그야말로 버티고 있다는 말이 적합할 정도였으니까.
“끄하아아앗!”
플로아가 비명 섞인 기합을 질렀다.
“좋게 봐야 도둑년 새끼가 뭔 말이 그렇게 길어? 자비? 지랄하고 있네. 인질 협박범이 자비는 무슨 놈의 자비!”
그녀가 성큼 다가가 주먹을 내질렀다.
어차피 이러나저러나 싸울 건데, 강하다고 존중해 줄 필요 있겠는가?
말 한마디 못 해보고 죽으면, 그건 그것 나름대로 억울할 것 같았다.
“기소율! 저년 목 좀 따버려!”
파즉, 파즈즈즉!
플로아가 전류를 사방으로 튀겨댔다.
사실상 랭킹 차이가 날 뿐.
전기는 물에 강하다.
아무리 칼리페나라 하더라도 고압의 전류를 무시할 수는 없을 터!
괜히 신경 쓰게 만들어 기소율의 암습을 성공시키려는 의도였다.
‘최대한…… 최대한 버텨보자.’
스슷!
다시 어둠 속으로 숨은 기소율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과연, 칼리페나.
그녀의 모습에 빈틈 따위는 없었다.
특히나 자신이 숨은 걸 인지하고부터는 기운을 아예 철옹성처럼 둘러보았다.
‘어차피 이젠 암습 따위 안 통해.’
스스슷!
무호흡으로 그림자를 밟아, 칼리페나의 뒤로 이동한 기소율이 단검을 찔렀다.
훈련으로 수만 번이나 연습했던 찌르기.
하지만.
“커허어억!”
그녀는 휘두르던 단검을 놓칠 수밖에 없었다.
어디서 나타난 건지도 모르는 날카로운 해초가 복부를 파고들고 있었기 때문.
‘제기랄.’
기소율은 깨달았다.
이미 첫 암습이 실패한 순간부터.
모든 위치가 칼리페나에게 간파당했다는 것을.
“흐어억!”
뚫려 버린 복부 사이로 해초가 주룩주룩 자라나기 시작했다.
기소율의 몸이 맥없이 떴다.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김진아처럼.
“이런 씨발.”
플로아도 마찬가지였다.
온 힘을 다 해봤지만, 얼마 견디지 못하고 결국…….
푸욱! 푹!
여타 다른 이들처럼 해초에 전신을 내어줘야 했다.
푸확!
뚫린 피부에는 피가 꿀렁꿀렁 나왔고.
역겨운 피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개 똥이군.”
플로아가 자신의 몸을 바라보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40분인가?’
그녀가 도착한 지 약 40분 만에.
한 집단이 전멸했다.
모두가 전투 불능 상태로 빠진 채, 아무것도 못 해보고 있다.
피식.
실소가 흘렀다.
‘만약.’
주동훈.
그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때도 이렇게 무력하게 당해야만 했을까?
정황상 그랬을 거다.
하이퍼 랭커 쪽으로 갈수록 랭킹 하나가 천지 차이라 했으니…….
하지만, 왜일까?
주동훈이 있었다면 다르게 흘러갔을 것 같았다.
그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남들이 무의식중에 정해놓은 한계를 보란 듯이 깨는 사람이었으니까.
“흐흐.”
실성한 듯 웃은 그녀가 대롱대롱 매달린 채 고개를 옆으로 꺾었다.
웃긴 게.
이 와중에도 TV가 켜져 있었다.
시간이 시간이니만큼, 「세계 랭커 발표식」이 진행되는 중.
– 발표까지 딱 10초! 10초를 남겨두고 있습니다!
– 같이 세볼까요? 10! 9! 8! 7!
사실, 플로아도 궁금하긴 했다.
지금 싸움과는 별개로.
주동훈의 랭킹이 어떻게 될지.
“뭐 하고 있냐, 이 망할 놈의 주인 새끼야…….”
정말.
죽기라도 한 거야?
– 6! 5! 4!
카운트는 계속되었고.
– 3! 2! 1!
곧 전 세계에 본인의 이름이 언급된다는 걸 알아서일까?
칼리페나도 여유롭게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 0!
그렇게 맞이하는 2024년의 정식 새해!
새로운 시작을 알리듯 전 세계 모든 인류의 시야에 갱신 메시지가 나타났다.
[랭킹이 갱신되었습니다.] [세계 랭킹 게시판을 참고하세요.]그리고 천천히 떠오르는 랭킹들.
[랭킹 1위, ???] [랭킹 2위, 마왕(摩王) 잭 스미스] [랭킹 3위, 천마(天魔) 하세라] [랭킹 4위, 옥스포드의 현자(Oxford’s Sage) 소피아 실버스톤] [랭킹 5위, 던전 메이커(Dungeon Maker) 델라일라]…….
약 2초에 하나씩.
화면에 랭킹이 갱신되기 시작했다.
여느 때처럼.
TV에 송출되는 MC들이 흥분하며 중계했고.
[랭킹 6위, 팔라딘(Paladin) 아리아 유엘] [랭킹 7위, 세계수의 은총(Grace of Yggdrasil) 니나 크리스틴] [랭킹 8위, 령제(靈帝) 이치카와 타케루] [랭킹 9위, 로이더(Roider) 로니 윌리엄스]랭킹 10위 이내의 하이퍼 랭커들이 순서대로 떠올랐다.
마치 콘크리트처럼.
변화 없이 그대로인 살아 있는 전설들.
그리고 이제.
모두가 중국의 랭커, 창왕(槍王) 진자의(陈子毅)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하지만.
…….
[랭킹 10위, 스켈레톤 엠페러(Skeleton Emperor) 주동훈]‘어?’
플로아가 눈을 깜빡였다.
“……?”
고통의 신음을 내지르던 기소율도 눈을 크게 떴다.
여유를 지키던 칼리페나도.
기절하지 않고 정신이 깨어 있는 별천지의 랭커들도.
아니, 이들 말고.
길가에 맥주를 들고 있던 일반 사람들도.
진자의를 기다리던 중국인들도.
“어?”
“어어어?”
“에?”
모두가 당황했다.
그들의 시야에 나타난 랭커가.
랭킹 10위였던, 진자의가 아니었기에.
그 이후로.
[랭킹 11위, 창왕(槍王) 진자의(陈子毅)] [랭킹 12위, 빙제(氷帝) 라릿사] [랭킹 13위, 바다의 여신(Doris) 칼리페나]…….
쭉쭉쭉.
랭킹들이 갱신되었지만.
사람들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순간.
덜컹!
드미르 공방 1층의 문이 열린 것은 그때였다.
“음, 다들 여기 있나요? 채팅창 닫혀 있던데.”
인도자(引導者)의 기절로.
채팅창이 닫혀 있느라 길드원과 소통을 못 했던 남자.
이제 세계 랭킹 10위에 당당하게 이름을 올린 사내.
주동훈의 등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