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aise a Skeleton RAW novel - Chapter (293)
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293화
숙제
지수룡을 처리한 지도 꽤나 시간이 흘렀다.
세상이 들썩일 법한 사건이었지만, 인류는 생각보다 더 끈질겼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는 말처럼.
용이 가져온 풍파는 헌터들의 마음가짐을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무릉도원도 마찬가지였다.
휘이이이!
도시 근처에 부는 바람과.
까앙! 까앙!
아직도 마무리 작업 중인 도시는 그대로였지만.
그곳 내부에 있는 사람들은 확실한 변화를 맞고 있었다.
우선, 정보 조직 「스틱스」가 제대로 굴러가기 시작했다.
「스틱스」의 존재는 극비 사항이었다.
오직 길마인 나만이 김진아의 보고를 받고 있었고.
그 외.
암제(暗帝), 인도자(引導者), 영비(影秘)를 제외한 별천지 랭커들에게는 비밀로 하기로 했다.
조직 구성원 간 신뢰가 중요하다지만, 아직 만들어진 지 얼마 안 된 신규 길드이지 않던가.
조금 시간을 두기로 한 것이다.
당연히 대중들에게도 알려지지 않았다.
정보 우위를 달성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그 정보를 지키는 것.
특히 권선지와 권탐지의 능력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 사기이기에 엄중히 보호해야 했다.
별천지를 위해서도.
그녀들을 위해서도.
[약존(藥尊) : 다들! 오늘 자 영약 받아 가시게! 매일매일 먹다 보면 기력 증진이 있을걸세! 이 약존이 자부하는 세계 최고의 영약이니, 걱정은 말고!] [마더(Mother) : 아이고, 훈련들 열심히 하는구먼? 요리해 놨으니, 와서 먹어. 알제? 힘은 다 밥심에서 나오는 거시여.]지도익 할아버지와 양정애 할머니도 본격적으로 움직였다.
본인들의 할 일을 하면서도, 별천지 멤버들의 복지를 챙겼다.
하이 랭커가 만드는 영약과 정애루(正愛樓)의 음식이 그것이었다.
‘맛있긴 하지.’
양정애 표 음식은 확실히 끝내줬다.
훈련에 미친 내가 음식만큼은 매번 거르지 않고 먹을 정도?
“히야.”
오늘도.
아침 일찍부터 나와 국물을 한술 뜬 김진아가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늪 같네요.”
“늪이요?”
내가 본능적으로 젓가락을 놀리며 물었다.
“별천지에 들어온 사람들은 다른 복지보다도 이 요리 생각나서 그만 못 둘걸요?”
“아.”
그런 의미에서의 늪이란 거구나.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사실.
음식도 음식이지만, 별천지에 매력적인 요소가 많긴 하다.
용기사의 경우.
매번 비나사에게 음식을 가져다 바치며, 알을 지킨다.
던전도 가지 않고, 여가도 즐기지 않는다.
모든 시간을 지수룡의 알을 품는 데 소모한다.
그에겐 그게 가장 행복한 일인 것이다.
그런 일을 별천지 말고 다른 길드가 제공해 줄 수 있을까?
용의 알을?
‘천만에.’
별천지니까 가능한 일이었다.
알을 얻을 능력도, 알을 내어줄 배포도.
다른 전투 요원들의 상황도 비슷했다.
“후우욱, 좋군! 크하하하!”
광전사가 상의를 벗어젖혔다.
울끈불끈한 근육에는 땀이 줄줄 흘러나왔다.
무각 훈련장.
그곳에서 매일 아침 그가 하는 일은 바로 무각, 뇌명과 대결을 벌이는 것.
“제기랄, 아저씨! 살살 좀 하라고!”
파즈즈즉!
뇌명의 몸에서 평소보다 많은 양의 전류가 튀겼다.
“크하하하! 왜, 좋지 않나? 이게 바로 진권의 주먹이다!”
“무각이고, 진권이고, 나발이고. 빡세네 빡세.”
투덜거리는 플로아였지만, 분명 그녀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쳐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 체계적인 훈련은 상상해 본 적도 없는 그녀였다.
던전에 가고, 그곳에서 생존하는 것.
대다수 헌터들이 그렇듯, 그것만이 가장 효율적인 성장 방법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그녀뿐만이 아니라, 다른 별천지의 멤버들의 눈빛도 기존과는 많이 달라졌다.
독기라는 게 생겼달까?
‘주인 녀석.’
플로아가 누군가를 떠올렸다.
주동훈.
매일 비어 있는 뼈십이의 훈련장에서 생전 처음 보는 무기를 휘두르며 훈련을 하는 사내.
그가 변화의 중심이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빨리 하이퍼 랭커에 진입한 헌터다.
그런 그가 던전을 마다하고 훈련에 집중한다.
그런데, 훈련하지 않고 배길 수 있을까?
눈앞에 살아 있는 증거물이 있는데?
“그래, 조져보자고!”
파즈즈즈즉!
그녀의 손에 전류가 튀었다.
몸이 상하면?
어차피 훈련장 중심에 앉아 있는 묘이 하나와 다나가 치료해 준다.
세계 랭킹 221위, 봄사도(春使徒).
그녀도 말했다.
웬만한 던전에 따라나서는 것보다, 여기 훈련장에 대기하는 게 훨씬 스킬 숙련도가 많이 쌓인다고.
왜냐?
투호(鬪虎), 쌍도(雙刀), 검투사(Gladiator), 절대무쌍(絶對無雙), 쇠주먹, 드루이드(The Druid), 아수라(Asura) 등등.
이런 헌터들이 서로 겨루며, 끊임없는 부상을 만들어내거든.
‘좋네.’
퍼어어억!
복부에 틀어박히는 광전사의 주먹을 느끼며, 플로아가 그만 웃어버렸다.
‘그래.’
처음엔 살짝 불안한 감정도 있었다.
독일을 버리고 별천지로 온 것.
오직 주동훈만을 보고 저질렀다지만, 그 당시엔 자신이 강해질 수 있는 기반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보라.
정사각형 모양으로 펼쳐진 훈련장에서 각자가 훈련에 매진한다.
날마다 성능 좋은 영약과 요리가 제공되며, 부상 시 치료도 해준다.
그뿐이랴?
그 누구보다 훌륭한 훈련 교관이 있다.
그것도 다른 세계에서 절대자씩이나 했던 교관들이란다.
‘내가 장담한다.’
파즈즉!
주먹을 휘두르는 플로아의 눈빛에 확신이 담겼다.
‘머지않아 별천지는 세계 위에 우뚝 설 거야.’
세계 3강.
마왕군, 천마신교, 마탑도 감히 넘보지 못할 위치에 말이다.
* * *
노인과의 훈련이 끝난 직후.
스윽, 슥!
걸쳐 둔 마른 수건으로 흐르는 땀을 닦아낸 내가.
“후우.”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최근 별천지가 급속도로 성장하는 것은 좋은데, 그 성장 속도에 맞추어 나 역시 조바심이 났다.
‘빨리 뼈구 각성도 시켜야 하는데.’
성장이 정체된 기분이었다.
만술 노인은 기초를 강조하며, 잡다한 도구들을 사용하기를 강조했고.
그러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창이나 격투, 주술 등은 꺼내지도 못했다.
혹여 조금이라도 사용한 기색이 보일 때면.
– 이런 미련한 놈! 그렇게 창이 좋으냐? 그럼 처음부터 창을 썼어야지, 이미 잡다하게 다 파놓고 이제 와서 창만 팔 생각이더냐? 그게 뭐 하는 시간 낭비냐! 쯧쯧.
바로 이런 식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물론, 지금도.
“왜 또 한숨인 게냐?”
내 마음속을 읽었는지, 노인이 도끼 눈을 뜨며 쳐다본다.
이게 좀 불편하긴 했다.
노인이 허공에 떠 있을 때는 마음대로 생각조차 못 하는 거잖아?
“후우, 이놈이.”
결국, 노인도 한숨을 내뱉었다.
그러고는 중얼거렸다.
“대충 역소환까지 1시간 정도 남은 것 같으니……. 좋다!”
짝!
손뼉을 친 노인이 눈짓으로 주변 바위를 가리켰다.
“저기 앉아보거라.”
“왜요?”
“왜긴 왜야! 훈련 중에 잡생각은 기본이요, 믿고 가만히 놔뒀더니 매개체 던전이나 열려고 했던 놈이!”
“…….”
내가 뜨끔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
사실, 노인이 없을 때.
뒷산에서 구슬을 활성화한 적이 있었다.
[아이템 : ‘정령왕의 의지’(SS급)] [등급 : SS] [종류 : 매개체] [설명 : 숨겨진 유적의 비밀을 파헤칠 수 있는 구슬입니다.] [효과1 : 던전, ‘정령계’를 개방할 수 있습니다.] [효과2 : 헌터, ‘주동훈’에게 귀속된 아이템입니다.] [효과3 : 해당 아이템은 헌터 등급 SS 이상부터 활성화 가능합니다.]사상 최초의 SS급 매개체 던전.
그 난이도가 어느 정도일지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던전이다.
이전 뼈팔이 각성 당시 성좌급인 ‘투신’(SSS급)과 싸웠으니, 어쩌면 그 이상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나 같은 상남자는 이런 던전을 보면 참을 수가 없다고…….
“상남자는 개뿔. 이 호랑 말코 같은 놈이!”
“하하하, 죄송함다.”
내가 머리를 긁적였다.
“어차피 어르신 허락 없이는 들어갈 생각 없었어요. 그냥 진짜 궁금해서 펼쳐본 거라고요.”
물론, 구라다.
조급했던 나는 실제 던전을 들어가기 위해 구슬을 활성화했고.
우우웅!
구슬이 활성화되는 순간.
[주의! 주의! 주의!] [경고합니다!] [‘정령왕의 의지’가 활성화되면, 돌이킬 수 없습니다.] [해당 던전은 1인 특수 던전입니다.] [던전 입장 시 가지고 있는 모든 스킬이 봉인됩니다.] [그래도 입장하시겠습니까?]눈앞에 보이는 시스템의 경고문을 보고 바로 활성화를 취소했다.
‘스킬 봉인이라니, 그건 좀 심하잖아?’
그 말은.
내 뼈다귀는 물론, 노인도 부를 수 없다는 뜻.
무모해도 너무 무모한 건 둘째 치고.
저질러 놓고 노인의 허락을 구하는 것과 아예 한동안 노인을 부르지 못하는 건 아예 다른 얘기다.
“후우우, 이놈아. 이 스승이 그렇게 못 미덥더냐?”
“아뇨, 그럴 리가요. 당연히 저는 어르신뿐이죠. 다만…….”
잠깐, 고민하던 내가 결국 말을 이었다.
“제 단계에서 실전에서 사용하는 무기는 정해져 있는걸요.”
만술(萬術).
다 좋다.
엄청나게 강한 기술이란 것도 안다.
그 부분은 과거 노인이 던전에서 증명했으니.
‘하지만.’
하이퍼 랭커에 오르니, 자연스레 생각이 들었다.
과연.
한 가지 무술을 깊게 파는 게 아닌, 잡다한 무술을 넓고 얕게 익혀서 대성할 수 있을까?
마왕과 천마를 넘을 수 있을까?
또한.
전투 상황일 때 만 가지의 무술을 전부 쓸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던가.
계속해서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해소가 되지 않았다.
심지어.
채찍이나 레이피어, 체인 등등의 전투술은 그렇다 치더라도.
농사, 낚시, 목공, 음악, 약초, 채집, 의학, 조각 등등의 비전투술까지 익히려니, 마치 한도 끝도 없는 느낌이었다.
이런 걸 배워서 다 어디다 써?
“네놈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
노인이 기꺼운 미소를 지었다.
“분명 나 역시 그럴 때가 있었으니 말이다.”
“정말요?”
“그럼.”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해야 하느니라. 항상 말하지 않았더냐. 모든 술(術)은 극(極)에서 만난다고. 이렇게 말하면, 네가 물을 수 있겠지. 그럼 그냥 하나만 파서 극에 달하면 되지 않느냐고. 어차피 종착지는 같은 것 아니냐고. 아니, 천부당만부당이다.”
“…….”
“모든 술(術)은 극(極)에서 만난다. 그 말을 반대로 풀어보겠느냐?”
“반대로요?”
“그래.”
음.
극(極)에 달하기 위해 모든 술(術)이 필요하다?
“정답이다.”
노인이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극(極)이란 객관적인 것이야. 사람마다 다 다르지. 누군가는 그 한계가 조화경(造化境)일 수 있지만, 또 누군가는 그 한계가 현경(玄境)일 수도 있다는 말이니라.”
조화경? 현경?
“과거, 이 스승의 세계에서 나뉘었던 경지의 등급이다.”
“아.”
“내가 만술을 익혔던 것도 그 이유에서야.”
“……?”
“오직 창으로만 극에 달한 사람은 창을 사용하면서 느끼는 깨달음밖에 얻지 못해. 본인의 한계를 본인이 알아서 축소하는 셈이지. 낚시할 때를 한번 생각을 해보거라. 붕어 같은 잡어 말고 영묘한 어종은 잡기가 굉장히 까다롭지 않더냐. 손놀림으로 시각과 청각을 속여야 하고, 입질이 와도 강약 조절을 하며 줄다리기를 해야 하지. 낚시뿐만이 아니다. 네놈이 좋아하는 망치질이나 재단, 재봉 등등. 많은 경험을 통해 얻은 깨달음은 그 극(極)의 한계치를 높여줄 게야.”
이해는 간다.
풍부한 경험이 다양한 깨달음을 준다는 거겠지.
결국 어떤 기술이든, 사람의 움직임을 통해 발현하는 것이니.
다만, 중요한 것은.
인간은 유한한 삶을 산다는 것.
나에겐 시간이 없었다.
모든 것을 배울 여유가 없다는 말이다.
“네놈의 끝이 고작 그 마왕, 천마라는 놈을 이기는 것이라면, 술(術) 하나만 파도 좋을 거다.”
“마왕, 천마가 고작인가요……?”
“네놈도 봤다시피, 이 우주란 놈은 끝도 없이 방대하면서도, 억 단위의 시간이 기본이야. 네놈이 인간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으면, 그저 인간 중 최강밖에 될 수 없는 게다.”
아.
예전에 아린이에게 들은 적 있다.
성좌라는 놈들은.
하나의 술(術)에 극에 달한 놈이라고.
그리고 그 성좌들에도 급이란 게 있다고.
본인이 추종하는 ‘고대 마법’(SSS급)은 그 성좌 중에서도 끝판왕이라 했었다.
‘그런 건가?’
그렇다면 정말 그 극(極)이란 게, 존재마다 다 다른 건가?
만약 극(極)이 누구에게나 같았다면, 성좌들의 급(級)도 다 같아야 하는 것 아니던가!
‘그렇다면.’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어르신을 믿는다. 100% 신뢰한다.
정말 어르신의 말처럼, 만술(萬術)로 그 극(極)의 한계를 넓힐 수 있는 거라면……?
당연히 해야지.
더 강해지는 방법이 있다는데, 그걸 왜 마다할까.
“감사합니다, 어르신.”
과연.
깔끔한 조언이었다.
마음을 가득 채웠던 조급함이 눈 녹듯 사라졌고, 복잡했던 머릿속이 말끔하게 정리됐다.
그래.
원래 하던 것처럼.
까라는 대로 까면 되는 거야.
“쯧쯧. 그걸 이제야 알았느냐?”
노인이 혀를 찼다.
“그렇다고 던전을 평생 가지 말라는 것은 아니니, 내 숙제를 내주마.”
“옙.”
“내가 제시한 만 가지 술법을 최소 기초 단계는 다 떼보아라. 기한은 딱 1년. 태청공재만성대법으로 억지로나마 천재 과로 만들어 뒀으니 충분히 가능할 거다.”
“……1년이요?”
길기도 하고 짧기도 한 시간.
“그래. 그때쯤 되면, 네놈의 생각도 분명 뒤바뀔 것이다.”
* * *
노인이 제법 장기 숙제를 내어준 후, 들어갔다.
이제 슬슬 씻고, 비나사랑 교감하러 뒷산에 올라야 할 때.
쭈욱!
가볍게 스트레칭하고 자리를 떠나려 할 찰나였다.
[김진아 : 길마님, 길마님!]채팅창에 김진아의 메시지가 떴다.
[김진아 : 커뮤니티 좌표 보내드릴 테니, 한번 가보실래요?]음?
갑자기?
[김진아 : 아린이네랑 마탑이랑 시비 붙은 거 같은데. 후, 이걸 뭐라 해야 할지. 아이고 두야.]엥?
그건 또 뭔 소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