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aise a Skeleton RAW novel - Chapter (310)
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310화
미친년들의 소굴
“……!”
어셔의 안색이 살짝 굳었다.
김진아가 왜 여기에?
별천지의 부길마씩이나 되는 이가 포탈의 문지기를 맡고 있을 리는 없을 테고.
굳이 먼저 인사했다는 건, 볼일이 있다는 건데.
‘설마 듣지는 않았겠지?’
불과 몇 분 전.
대놓고 별천지 욕을 하긴 했지만, 그때는 분명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게다가.
혹여 들었다 하더라도, 그때 따져야지 굳이 지금 나타나서 저렇게 인사할 일은 없으니…….
‘아니겠지.’
어셔는 순간 자신이 심리적으로 구석에 몰리긴 했다고 생각했다.
김진아면 랭커도 아닐 텐데.
그런 그녀한테 쫄아서 당황하다니.
‘후, 정신 차리자.’
마음을 가다듬은 그가 김진아를 바라봤다.
“보다시피, 안녕하지는 않은데……. 크흠, 대 별천지의 부길마께서 어쩐 일로 배웅까지 나오셨습니까?”
“후후, 배웅이라뇨.”
“…….”
“배웅이란 떠나가는 손님에게 하는 거지요.”
“……아?”
잠깐 멈칫한 어셔가 곧 입을 살짝 벌렸다.
그러니까.
그냥 인사치레로 쓴 ‘배웅’이란 단어였는데.
그걸 저렇게 받아친다고?
우린 손님이 아니라는 말로?
“이보시오!”
브랜던이 발끈해서 앞으로 나섰다.
“그 말은 우리가 손님도 아니었단 말입니까? 별천지가 압도적으로 이긴 것은 인정하나, 상호 간에 기본적인 예의라는 게 있는 겁니다!”
으드득!
브랜던이 바득바득 이를 갈았다.
아무리 발렸다고 해도, 저런 비랭커 따위가 와서 도발을 해?
마음 같아서는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지만, 이곳은 별천지 내부다. 저년은 부길마고.
그랬다가는 생사를 장담할 수 없을 거다.
“아아.”
그게 아니라는 듯, 고개를 좌우로 흔든 김진아가 입을 열었다.
“조금 오해가 있었나 보네요. 우리 별천지는 패자도 존중해요. 당신들이 마탑에서 쫓겨났든, 우리 마법사들한테 에너지 볼트로 털렸든…… 존중은 해야지요. 교류의 장이었으니까.”
“이 작자가?”
브랜던이 눈을 부릅떴다.
무슨 존중한다는 자의 워딩이 저래?
안 그래도 기분 잡쳐 있는 상황에 속에 불이 활활 타올랐다.
확, 그냥 조져버려?
쿠구구구……!
브랜던이 위협적으로 마력을 끌어올렸다.
과연 92위 랭커가 뿜어내는 기세일까?
“제법 살벌하네요.”
팔짱을 낀 김진아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지만, 말과는 다르게 그녀의 표정은 여유롭기만 했다.
“브랜던, 잠깐 멈추거라.”
어셔가 나선 것은 그때였다.
그가 손짓하자, 브랜던의 기세가 차츰 줄어들었다.
어셔가 입을 열었다.
“우릴 존중할 수 없는 다른 이유가 있다는 뜻으로 들리는데요?”
“오오, 제법 괜찮은 판단력이네요. 그런 분이 왜 커뮤니티에서는 애처럼 성급하게 행동하셨나 몰라.”
“그건 당신네들이 먼저……!”
흥분하려던 어셔가 말을 멈추었다.
저 부길마라는 존재.
조금 이상하다.
무언가 자신들에게 굉장한 적대감이 있는 것 같다.
그게 아니고서야, 말끝마다 저렇게 속을 벅벅 긁을 수 있을까?
그것도 별마전을 깔끔하게 이긴 마당에 말이다.
“에이, 우리 쪽에서 쓴 건 결국 맞는 말이었잖아요? 그쪽들이 쓴 건 틀린 말이었고. 뭐, 아무래도 좋아요.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픽 웃은 김진아가 따악! 오른 손가락을 튕겼다.
“선지야?”
“예, 부길마님!”
“이분들께 네가 본 걸 천천히 알아듣기 쉽게 읊어드리렴.”
“옙!”
단아하게 머리를 묶은 비서 복장의 여성이 앞으로 나섰다.
역시나.
아무런 기세조차 없는 인물이다.
랭커는커녕, 지나가던 잡 몬스터 한 마리조차 못 잡을 기운인데…….
그런 인물이 무언갈 봤다고?
“어셔, 브랜던, 데미안. 이 세 분이서 각종 커뮤니티에 별천지에 대한 악성 글들을 남겼어요. 예, 찌질하게 사람들까지 고용해 가면서 좋지 않은 여론을 형성하려 했지요. 근데 그게 되겠어요? 이미 대세는 별천진데? 당연히 별 소득이 없었고, 그거에 열 받아서 결국 대 별천지 테러 집단을 설립. 역시나 찌질하게 직접 별천지는 타격 못 하고, 별천지를 옹호하는 불쌍한 중소규모 길드만 털면서 살인과 약탈을 일삼아요. 완전 쓰레기 같은 작자들이죠.”
“……?”
어셔는 황당했다.
저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란 말인가.
악성 글을 남겼다고?
남기려고 한 건 인정한다.
근데 실제로 남긴 적은 없다.
‘아니, 그건 둘째 치고.’
사람을 고용해?
테러 집단을 설립해?
살인? 약탈?
게다가 하는 말이 꼭 지금이 아니라, 나중에 그럴 거란 식으로 말하는데…….
“하.”
절로 헛웃음이 나왔다.
“적당히 좀 하시지?”
결국, 어셔는 끓어오르는 화를 참지 못했다.
“내 경고하건대, 더는 선을 넘지 마시오. 당신이 별천지의 부길마라 해도, 나 역시 잃을 것 없는 랭커이니까.”
“아, 그러세요?”
김진아가 아랑곳하지 않고 싱긋 웃었다.
“전 경고가 아니라 그냥 말씀드리는 건데요. 제가 이렇게 사람 좋아 보이게 생겼어도, 감히 우리 길마님이나 별천지를 건들려고 한 놈들에게는 사람처럼 행동하지 않거든요.”
김진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사실, 저놈들은.
권선지가 예언 내용을 말해주기 전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관상은 과학이거든.’
제법 통찰력이 강한 그녀는 이제 사람 생김새만으로도 성격을 파악한다.
비열하게 올라가 있는 입꼬리, 욕심 많아 보이는 광대, 표독한 주름.
“그래서.”
투웅!
어셔가 지팡이를 바닥에 내려찍었다.
쿠과가가가……!
순간적으로 엄청난 기운이 공간 일대를 장악하기 시작했다.
“그쪽이 사람처럼 행동하지 않으면 어쩔 거요? 랭커도 아닌 주제에 입을 털어도 적당히 털어야지.”
“어쩌긴 어쩌겠어요?”
김진아가 어깨를 으쓱했다.
“랭커도 아닌 제가 그쪽을 직접 후드려 깔 수는 없으니, 부탁드려야죠.”
“…….”
“아린 님?”
그녀가 허공에 대고 중얼거리자.
“예.”
스스슥!
순간, 허공에서 붉은 머리칼의 아이가 등장했다.
‘헉?’
‘제길.’
‘아, 아린이 있었어?’
세 노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분명 기력으로 주변에 누가 있나 체크한 결과, 아무런 기척도 없었는데.
어찌 아린이 이곳에 등장한단 말인가?!
‘아린은 괴물이야.’
그냥 괴물이 아니라, 진짜 괴물이다.
마탑주를 마법으로 발라먹는 게 괴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퓌쉬이이…….
끓어오르던 그들의 기세가 팍 꺾였다.
“와.”
그 모습을 보던 김진아가 감탄했다.
“강약약강의 표본.”
‘저 빌어먹을 년이……!’
어셔의 눈에 핏줄이 섰다.
호가호위(狐假虎威)도 정도껏이지.
숨어 있던 아린을 믿고 저렇게 조롱해도 되는 건가?
“강자를 앞세워 약자를 농락하는 건 그대들 아니던가!”
분노에 가득 찬 어셔의 입가가 꿈틀거렸다.
“별천지도 참 실망스럽…….”
“아아, 됐어요. 진부한 대화는 여기까지만 하죠.”
김진아가 이제 더 이상 상대하기 귀찮다는 듯, 손을 휘저었다.
“어차피 여기서 제가 더 말해봤자 소용없겠죠? 그쪽은 계속해서 피해자 코스프레 할 테고, 그렇다고 앞서 선지가 말했던 부분에 대해서는 인정도 안 할 테고요, 그쵸?”
“그 살인이니, 약탈이니. 말도 안 되는 소설 말인가?”
“예예.”
김진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인정할 거라 생각 안 했어요. 느끼셨겠지만, 어차피 미래의 일이거든요. 현재의 사람이 어떻게 미래의 일을 다 알 수 있겠어요. 사람이 전지전능한 것도 아니고.”
“……?”
“억울하겠죠. 하지만 저도 억울해요. 미래에 일이 일어날 게 뻔한데, 그래서 응징하고 감방에 처넣어서 벌을 받게 하고 싶은데, 증거가 없잖아요? 증거도 없이 공론화시켜봐야 별천지가 얻을 것도 없고 말이죠. 그렇다고 또. 그 일이 벌어질 때까지 그쪽들을 감시해요? 어우, 그게 무슨 시간 낭비예요. 저 생각보다 많이 바쁜 여잔데.”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어셔는 황당해 미칠 지경이었다.
‘진짜 미친년인가?’
일어나지도 않은 짓을 징벌하기 위해 이곳에 찾아온 거라고?
정신병도 그런 정신병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결국 답은 하나로 귀결되더군요.”
“……그게 뭔가?”
“맞으세요.”
“뭐?”
“감히 별천지에게 수작질할 생각 자체가 들지 않을 만큼 맞다 보면…… 그쪽들도 살인이나 약탈 등의 범죄를 저지를 일도 없을 테고. 우리도 귀찮은 일 없어서 좋고. 서로서로 윈윈 아니겠어요?”
윈윈?
그게 어떻게 윈윈이야!
“아린 님?”
“예?”
“아까 말씀드렸죠? 저분들이 뒤에서 길마님을 음해하려고 했던 분이에요. 그냥 죽기 전까지만……. 아시죠?”
김진아가 눈을 찡긋 깜빡했다.
“교수님을 건드리려 했던 자…….”
그럼?
적이다.
쿠과가가가가가!
그 순간 미증유의 기운이 세 노인을 강하게 옭아맸다.
“커, 커허얽!”
“자, 잠깐……!”
“이, 이건 아니지 않나!”
숨이 턱 막힌 어셔가 자신의 목을 부여잡았다.
브랜던도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지팡이를 떨어뜨렸다.
가히 압도적인 기세!
쐐, 쐐애애애액!
이윽고 공포의 「에너지 볼트」가 그들에게 사정없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도하랑과 에밀리가 쓰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강도로.
퍼버버버버벅!
강도뿐만이 아니라, 그 수량도 엄청났다.
“끄아아아아악!”
“끄아아악!”
절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생각할 새도 없이 쏟아지는 고통에, 더 황당한 점은…….
‘힐링?’
그 와중에 그들의 전신을 힐링의 기운이 덮고 있다는 점이었다.
맞자마자 회복되면서, 그 고통만 뇌리에 남는 수법이었다.
퍼버버버벅!
“끄, 끄아아악!”
그냥 때리는 게 아니었다.
하나하나, 날아오는 것에는 살이 떨릴 만큼 강렬한 적의(敵意)가 있었다.
‘저건.’
아린의 기세를 느낀 어셔는 직감했다.
진짜다.
그녀는 진짜 분노하고 있다.
마치 정말 우리가 길마를 음해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 그만!’
‘도대체 왜 우리가 왜 맞고 있어야 해?’
‘차라리 진짜 그랬으면 말이라도 안 해!’
억울한 일이었다.
아직 하지도 않은 일에 대해서 처맞고 있는데 어찌 억울하지 않겠는가.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혔다.
“후, 참으로 안타깝네요. 마탑의 중직이면 사회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높디높은 분들이실 텐데, 뒤에서 그런 야비한 짓이나 하려 하다니.”
근처 바위 위에 사뿐히 걸터앉은 김진아가 그들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난 그런 적 없어! 그런 적 없다고!”
어셔가 맞으면서도 억울한 듯 외쳤다.
“즈, 증거를 가져와라! 끄아아악!”
“……증거?”
권선지 자체가 증거인데.
그걸 굳이 저들에게 알려줄 필요는 없다.
그녀는 소중한 1급 비밀이니까.
“증거가 어디 있어요. 아니, 솔직히 말해봐요. 별천지 음해하려고 했던 건 진짜잖아.”
“그런 적 없다니까아아아!”
어셔가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김진아를 바라볼 때였다.
“거짓.”
권선지 반대편에 있던 권탐지가 손가락으로 어셔를 가리켰다.
“거짓이에요.”
“아하, 거짓이라네?”
김진아가 픽 웃었다.
그러고는 아린을 바라봤다.
“아린 님, 쟤만 더 세게 패주세요. 정신 못 차리고 거짓말했대요.”
“예.”
퍼버버버벅!
“그, 그게 무슨? 끄, 끄아아악!”
어셔가 비명을 내질렀다.
그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웬 여자가 미래의 일을 제법 근접하게 추측하고 있질 않나.
그걸 믿는 부길마와 아린은 또 뭐고.
이젠 뭐?
거짓말 탐지까지 하려 한다고?
그냥 차라리 이유 없이 패고 싶다고 해!
‘미친년들이다.’
그래.
별천지는 미친년들 소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