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aise a Skeleton RAW novel - Chapter (380)
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380화
배지민 (3)
“확실히 천재는 천재네요.”
“인정한다.”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배지민의 능력은 놀라웠다.
나야 뭐……. 유령화된 노인이 하나에서 열까지 다 인도를 해줬다면.
그녀는 하나를 알려주면 열이 아닌 천(千)을 아는 느낌?
“독을 빨아들이는 속도가 무지막지해요.”
아린이 입맛을 다시며 말을 이었다.
“교수님이 독무(毒霧)를 가슴에 품었다면, 저 애는……. 그냥 독연을 본인의 기운으로 흡수해 버리고 있는 것 같은데요? 아예 본인만의 기운으로 만들고 있어요.”
사실, 내가 알려준 배합법은 둘 뿐이다.
‘노블레스’와 ‘세인트 포이즌’의 결합.
그리고 ‘학령초’와 ‘학정홍’의 결합.
과거, 노인이 내게 알려줬던 대표적인 독의 배합이었다.
‘그런데.’
배지민, 그녀는 본능적으로 다른 배합식을 찾아내었다.
찾아내는 정도가 아니라, 접근법을 달리했다.
나는 독무(毒霧)를 받아들여 공생하는 방식을 택했다면, 그녀는 독연을 죽이고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있었다.
이는 확실히 장단점이 있다.
난 독을 인정하고 친구가 됨으로써 다른 좋은 독이 있으면 녀석을 더더욱 키워낼 수 있지만, 그게 온전히 내 기운은 아닌 거고.
배지민은 저기서 독을 더 키울 순 없겠지만, 온전히 자신의 기운이 되는 거고.
쿠과가가가!
그녀는 마치 정수기 필터 같았다.
입으로 흘러 들어가는 모든 독이 정순하게 정화되어 내부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와.’
노인이 저 모습을 보았다면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물론, 내가 중요 극독들을 다 뺏어왔기에 가능한 일이라지만, 그래도.
“괴물이네요.”
아린이 중얼거렸다.
맞다.
배지민을 보는 우리의 시선.
그것은 딱 사람이 아닌 일종의 괴물을 지켜보는 마음이었다.
흠.
그러고 보니.
제대로 훈련하기 시작한 이후로, 어르신이 주변에 이토록 오랫동안 없었던 것도 처음이다.
‘보고 싶긴 하네.’
어르신이자 뼈십이.
어?
그럼 족보가 어떻게 되는 거지?
내 스승이면서 또 내 수하잖아?
– 에라이, 고얀 놈! 다 키워줬더니, 이젠 머리 위로 올라가려 하는구나.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었거늘!
어르신의 목소리가 귀에 생생히 울리는 건 착각일까?
‘걱정하지 마세요.’
만술(萬術) 중급의 경지.
금방 달성해 낼 테니까.
“우선, 아린아.”
“네, 교수님.”
“네가 배지민 좀 잘 봐줘.”
“교수님은요?”
“이제 슬슬 움직여야지.”
누가 보면.
여기 시련에 참여한 이유가 배지민을 키우러 온 줄 알겠다.
스윽.
내가 그녀에게 받았던 주문서를 꺼내 바라봤다.
나의 궁극적인 목표는 내 성장이고.
아직 갈 길이 멀었다.
정확히는 아직도 안개가 가득해 목적지가 어디인지 모르겠는, 그런 느낌이다.
‘이 주문서가…….’
그 안개를 좀 치워줄 수 있으려나?
* * *
“끌끌끌.”
시커먼 우주 한복판으로 쏟아지는 수많은 황금색 빛줄기.
그 사이에서 두건 쓴 성좌가 즐겁다는 듯 웃었다.
“이제 정말 머지않았구나.”
촤르륵!
빛줄기 중 가장 빛나는 부분을 손으로 훑은 성좌의 존재는 바로 고대 마법(SSS급).
우주에서 가장 오래된 성좌였다.
“나의 후계자.”
아린.
그녀가 최근 거성(巨星)을 상대로 ‘파워 워드 킬’을 사용했던 장면이 생생하게 들어왔다.
저 황금 빛줄기는 우주에서 흘러나오는 정보다.
그것들이 모이는 곳이 바로 이곳.
아카식 레코드, 그만의 서고였다.
“아주 잘하고 있구나. 생각보다 더 빨리 자리를 물려줘도 되겠어.”
고대 마법에게 삶이란 곧 무료함이었다.
세상 모든 것을 다 경험했고, 알고 있는 상황에서 ‘재미’라는 감정을 잊은 지 오래였다.
그런데.
“재미있어.”
다른 기록보다.
유난히 아린의 기록을 보는 게 신비하고 새로웠다.
자신의 유일한 후계자.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후계자.
엘로이즈 아린.
촤르르륵!
고대 마법이 손을 떨치자, 허공에 수많은 추종자가 분할되어 보였다.
너무 많아서 눈으로 다 담기 힘들 정도의 마탑주들이 각자의 세계에서 자신을 따르고 있다.
태초부터 돌아다니며 뿌려 놓은, 온 우주에 퍼진 자신의 잔재.
“후후.”
당연히 그에게는 소중한 존재들이다.
자신을 기억하고, 추종하며, 힘을 실어주는 이들.
저들은 자신을 통해, 정확히는 서고를 통해 정보를 얻는다 생각하겠지만.
“실상은 다르지.”
오히려 고대 마법이 저들을 통해 우주를 기록한다.
저들이 보고, 듣고, 경험하고, 느끼는 것들이 정보화되어 자신의 서고에 기록되는 시스템이다.
그런데.
정말 전부 소중하냐 묻는다면,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다.
– 누가 누군지 모른다.
우주는 크다.
커도 너무 크다.
그 모든 곳에 퍼져 있는 추종자들이라니 얼마나 많겠는가.
그런 그가 유일하게 아는 추종자가 바로 ‘아린’인 것이다.
그러니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 있으랴!
고대 마법에겐 그녀가 유일한 희망이다.
성장해서 자신의 자리를 대체해 줄.
지친 자신에게 영원한 안식을 가져다줄 핵심 키.
“으음.”
고대 마법이 고개를 살짝 꺾은 것은 그때였다.
“……고대 서약인가?”
예전.
아카식 레코드가 구축되기 이전의 고대 마법은 직접 온 세계를 뛰어다녔었다.
직접 보고 느낀 것들을 서고에 기록했었다.
당연히 온갖 성좌들이 사는 우주인지라 정보를 얻기에 까다로웠고, 그때 써먹었던 게 바로 서약이다.
위기의 상황.
힘에 닿는 한 한 번 도와주는 서약.
“또 움직여야겠군.”
솔직히 지겨웠다.
하루에 대략 30건 정도 뛰지만, 어쩌랴.
과거의 자신이 벌여놓은 일, 처리하지 않을 수도 없고.
“음?”
한껏 나태한 표정을 지었던 고대 마법의 목소리 톤이 올라갔다.
표정이 보이질 않지만, 밝아진 느낌이었다.
“이 지역은.”
맞다.
분명히 아린이 있는 세계.
“허허허!”
고대 마법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자신을 부른 게 누군지 바로 깨달았기 때문.
‘주동훈.’
그로구나!
비록 그 근처에 있는 구신(舊神)의 잔재들 때문에, 머리를 바짝 숙여야 하는 게 흠이지만.
“하하하, 그게 뭐 어떠한가.”
그래도 아린이의 얼굴 한 번만 볼 수 있다면.
즐겁게 웃으며 달려가는 게 맞지.
스스슷!
고대 마법이 순식간에 신형을 감추었다.
* * *
찌이익!
주문서의 중앙을 천천히 찢어 버렸다.
오랜만에 느끼는 이 기분 좋은 감각!
번쩍!
그 순간이었다.
찢긴 주문서가 여느 때처럼 하얀빛을 뿜어내며 진동하기 시작했다.
[띠링!] [‘고대 마법’(SSS급)이 기다렸다는 듯 나타납니다.]참.
감회가 새롭다.
옛날에는 그 SSS급이라는 글자가 위대해 보였었는데, 이제는 내 수하 대다수가 성좌급이라니.
[‘고대 마법’(SSS급)이 경이로운 존재께 경배합니다.]어떻게 보면.
고대 마법 같이 예의 바른 성좌가 또 있을까?
다른 성좌들은 내 근처 정수가 있든 말든 그 존재 자체를 모르는 게 태반인데.
오직, 고대 마법만큼은 이들을 알아본다.
[‘토(土)의 정수’가 눈을 뜹니다.]오.
[‘토(土)의 정수’가 고대 마법의 존재를 인식하고 신기해합니다.]가만히 있던 정수가 또 깨어났다.
그만큼 고대 마법이 엄청난 인사라는 걸까?
[‘화(火)의 정수’가 자주 보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고대 마법’(SSS급)이 영광스러워합니다.] [픽 웃은 ‘화(火)의 정수’가 다시 눈을 감습니다.] [‘토(土)의 정수’가 빙긋 웃더니 다시 눈을 감습니다.]정수, 이분들…….
가만 보면 츤데레 같단 말이지.
항상 내가 위기일 때마다 눈을 뜨고 주시하다가 별일 아닌 것 같으면 다시 잠드는, 고런 느낌.
[‘고대 마법’(SSS급)이 반가운 표정으로 당신을 바라봅니다.] [‘고대 마법’(SSS급)이 ‘고대 서약’을 지키기 위해 왔다고 말합니다.]“고대 마법 님!”
손을 허공에 뻗은 아린이 반갑게 휘저었다.
“또 뵙네요! 잘 지내셨어요?”
[‘고대 마법’(SSS급)이 엘로이즈 아린에게 찡긋! 눈인사합니다.] [‘고대 마법’(SSS급)이 다시 당신을 바라봅니다.] [동시에 고민합니다.] [……아무리 주변을 둘러봐도 당신에게 위기가 없습니다.]“에이, 위기가 없다뇨.”
내가 고개를 저었다.
“제가 성장을 못 하고 정체하고 있는 것 자체가 위기인걸요.”
[…….]“사람마다 위기의 기준은 다른 거잖아요? 서약을 지키러 오셨으니.”
퉁퉁!
내가 오른손으로 가슴을 두 번 두들겼다.
“성장에 좋은 근사한 마법 하나만 걸어주십쇼.”
[‘고대 마법’(SSS급)이 쓴웃음을 짓습니다.]내가 뺀질거렸다고 느꼈음일까?
별다른 메시지 없이 잠깐의 적막이 흘렀다.
‘근데 뭐.’
내가 어깨를 으쓱였다.
나 역시 엄청난 기대를 하고 물어본 건 아니다.
그저.
고대 마법에겐 답답한 이 상황을 돌파해줄 무언가가 있을까? 싶었던 것일 뿐.
“마법 말고, 그저 조언도 괜찮습니다. 진짜 답답해서 그런 거거든요.“
[‘고대 마법’(SSS급)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당신은 아린의 주인.] [까다롭게 굴 필요는 없을 것 같다고 말합니다.]오.
과연, 아린.
천금 이상의 값어치를 지닌 우리 아린이 덕을 또 보는 건가?
[‘고대 마법’(SSS급)이 위기를 파악했습니다.] [시전자에게 필요한 것은 만술(萬術)의 성장.] [‘고대 마법’(SSS급)이 해당하는 마법을 찾았습니다.]‘어?’
내가 눈을 크게 떴다.
찾았다고?
그렇게 빨리?
과연 우주의 모든 것을 기록하는 자라는 거지?
이 정도면 포털사이트 그 자체였다.
우주 전용 포털사이트.
[‘고대 마법’(SSS급)이 그대에게 타 종족의 스킬을 가르치고자 합니다.] [동의하시겠습니까?]‘타 종족의 스킬…….’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지금은 뭐라도 필요한 때.
“동의한다.”
그 순간.
두쿵!
세상이 번쩍였다.
* * *
그 이후.
고대 마법은 사라졌다.
상태창이 말하진 않았지만, 그냥 느껴졌다.
내 주변에 나타난 성좌급 기운이 없어졌다는 걸.
그리고.
스킬 1개가 늘었다.
[스킬, 소울링크(S급)를 획득합니다.]‘소울링크…….’
신기했다.
잠깐의 어지러움으로 스킬 하나를 얻을 수 있다니.
“와.”
찐 고대 마법의 위엄을 느꼈음일까?
아린도 감탄했다.
“그런 신박한 방법이! 소울링크가 있었네요?”
“그게 뭔데?”
“전설의 종족, 도플갱어. 또 그들 중에서도 정점에 섰던 ‘도플갱어 킹’이 사용하던 스킬이에요.”
“도플갱어 킹?”
섀도우 셰퍼드 킹이랑 비슷한 놈인가?
내가 스킬 창을 열어봤다.
[스킬 : 소울링크] [등급 : S] [효과1 : 대상을 정합니다.] [효과2 : 대상의 능력이나 특성을 30% 모사합니다.] [효과3 : 해당 스킬이 발현되려면, 대상 근처 10m 내에 있어야 합니다.]“네, 사실 스킬이라기보단 그 종족만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긴 하지만……. 지금 상황에 딱 맞긴 하죠.”
“허어.”
대상의 능력이나 특성을 30% 모사한다는 말.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아직 감이 안 온다.
하지만.
아린과 나.
둘이 동시에 바라본 곳은 한 곳이었다.
독연(毒煙), 그 속에서 이제 적응한 듯 독을 무지막지하게 흡수하고 있는 여자.
‘설마.’
나는 문득 소름이 돋았다.
‘배지민을 대상으로 하라는 거야?’
그러면.
나도 그 말도 안 되는 사기 능력, ‘육망성의 축복’을 훔쳐다 쓸 수 있다는 거지?
만약 그런 거라면…….
“대박이죠.”
내 생각을 읽은 듯, 아린이 답했다.
“와.”
마침내.
시야에 안개가 확 걷힌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