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aise a Skeleton RAW novel - Chapter (39)
위기는 만들면 된다
시간이 유수처럼 흘렀다.
훈련은 반복됐고.
던전은 주기적으로 다녔다.
[‘초록 도마뱀 꼬리’(C급)를 획득합니다.] [‘크라임 울프 이빨’(D급)을 획득합니다.] [‘크라임 울프 발톱’(D급)을 획득합니다.] [‘저주 걸린 화살통’(D급)을 획득합니다.]…….
던전에서 얻은 잡재료들은 전부 연금대 속으로 들어갔다.
철괴, 은괴, 실, 천, 가죽 등등.
추후, 아이템 제작을 위한 재료를 쌓아두고.
뼈육이의 숙련도도 올리고.
그야말로 일석이조(一石二鳥).
‘천천히 해보는 거야.’
노인은 잠깐 삐쳐 있었으나.
내가 마사지 두 번, 연속으로 받아주자 귀신같이 풀렸다.
아.
귀신 같은 게 아니라, 진짜 귀신인가?
“이놈아.”
“네, 넵?”
“딴생각하지 말거라. 어떤 수련을 하든 몰입이 가장 중요한 거라고 몇 번을 더 설명해야 알아 처먹겠느냐?”
역시, 노인은 귀신이었다.
그것도 독심술을 깨우친 귀신.
후웅!
나는 칼을 휘둘렀다.
오늘은 돌고 돌아, 다시 ‘베기’의 숙련도를 쌓는 날.
스킬 하나의 등급을 올린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참(斬)’(C급).
아직 내 베기의 경지는 미천하고도 미천했다.
“후욱, 후욱!”
땀을 쏟아내며 미친 듯이 팔을 휘두를 때였다.
“이 녀석아.”
노인이 나를 멈춰 세웠다.
“후욱, 또 왜 그러십니까? 한창 집중하고 있었는데.”
“이제 5분밖에 남았다, 이놈아. 그래서 말이다. 한 가지 묻자꾸나.”
노인이 눈썹을 좁혔다.
표정을 보니,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했다.
덜크렁!
나 역시 뼈일이에게 빌린 뼈 칼을 바닥에 내려두었다.
어차피 훈련할 시간은 쌔고 쌨다.
하루에 1시간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노인과의 대화가 나에겐 더 소중했다.
“네, 말씀하십쇼, 어르신.”
“이전부터 하고 싶었던 말인데, 저 옆에 있는 계집 말이다. 나한테 도전했었던 계집.”
“기소율 씨요?”
“그래, 도대체 언제까지 곁에 끼고 있을 테냐?”
“…….”
노인이 담담히 말을 이었다.
“네 녀석은 더 강해져야 해. 지금도 나름 강해졌다 생각하겠지만, 아직 만술의 발가락도 못 미친 상태다. 하나, 네놈은 지금 분수에 맞지 않게 강한 존재가 곁을 지켜주고 있어.”
“위기가 없다는 말인가요?”
온실 속 화초보다 열악한 환경에서 자란 잡초가 더 억세다.
그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하지만.
“흠, 기소율 씨는 저와 한 약속도 있지만…… 본인이 원해서 남아 있는 것도 있는데요?”
정확히는 어르신 때문에요.
라는 말은 괜히 속으로 삼켰다.
스읏!
근처에서 기소율의 기척이 느껴졌다.
본인의 이름이 튀어나오자 신경 쓰였나 보다.
어차피 노인의 목소리는 듣지 못할 테지만.
“어떻게든 돌려보내야지. 나나 태양창의 ‘한’까지 받아냈던 네 녀석이 고작 누군가한테 처맞을게 두려운 건 아닐 테고.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않더냐.”
“그건 그렇지만…….”
사실, 그렇다.
나를 노리는 놈들.
솔직히 요즘에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
내 훈련이랑, 뼈육이의 숙련도에만 신경 써도 머리 아픈데.
“낭중지추라 했느니라. 네 녀석이 아무리 움츠리고 있어도, 세상은 널 알아보고 시기 질투할 게야. 그때마다 누군가의 등 뒤에 숨어만 있을 테냐?”
“어르신께서는…….”
내가 입술을 열었다.
“제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으면 좋겠습니까?”
나는 지금 등급을 숨기고 있다.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고, 수련에만 매진하고 있다.
공터, 던전, 공터, 던전의 반복.
특히, 던전 같은 경우는 최대한 날 드러내지 않는 방향으로 움직였었다.
노인은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그래, 정확하다. 이놈아. 그리하면 지켜야 할 것이 생기고. 그리하면 약해빠진 대장장이 질이나 배우겠다는 소린 안 했을 터.”
“네?”
이 노인, 설마.
아직도 삐쳐 있었던 거야?
만약 그런 거라면, 진짜 쫌생인데.
“근데, 괜찮다.”
“뭐가요?”
“나도 이번에 많은 것을 배웠어.”
“갑자기요?”
내가 고개를 갸웃했다.
“사실 나도 간과하고 있었거든. 내가 살던 세계와 네 녀석이 사는 이 세계가 결이 다르다는 것을.”
“…….”
“스킬 하나에 아이템이 뚝딱 만들어지는 세계였다면, 그때 굳이 말리지도 않았을 게다.”
아아, 맞다.
노인에게 뼈육이의 제련과 연금과정을 보여준 적이 있었다.
그때 경악하던 노인의 표정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이 세계는 내가 살던 세계보다 더욱 신비롭고도 험악하다.”
“왜요?”
내 물음에 노인이 턱을 쓰다듬었다.
“나도 그렇고, 태양창도 그렇고. 생전엔 한 세계의 절대자였다. 적수가 없었던 존재. 내 세계 안에서는 그 어떤 존재도 개입하지 않았었다.”
“근데 여기는…….”
“그래, 다른 무수한 세계가 엮여 있는 곳이지. 그뿐이냐? 아예 ‘스킬’이라는 이름으로 초월자가 개입하는 세상이다.”
초월자.
노인은 시스템의 존재를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
‘그 말이 맞지.’
우리는 초월자의 존재를 모른다.
실험실 속 개미가 과학자의 존재를 알 수 없는 것처럼.
다른 차원의 존재, 혹은 ‘신’이라고 추측만 할 뿐이다.
노인 처지에서도 어이가 없겠지.
‘기’도 모르는 헌터들이.
‘스킬’ 하나로 수십 년간 노력해야 얻을 수 있는 깨달음의 정수들을 펑펑 사용하고 있으니.
“그렇기에, 넌 나보다 강해져야 한다. 더욱 위대해져야 한다. 만술이 최강임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내 세계뿐만이 아니라 모든 세계 위에 오롯이 존재하여야 한다.”
“그렇군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노인이 왜 저런 말을 하는지 이해했기 때문이다.
‘조급하신 거야.’
노인이 왜 ‘강함’에 집착하는진 모른다.
어떠한 사유가 있을 수도 있고, 그냥 만술에 대한 무한한 자존심일 수도 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노인의 의사와 내 의사가 합치한다는 것.
더하여 노인이 나보다 훨씬 경험 많고 강한 존재라는 것.
그것만으로 따를 가치가 충분하다.
“좋습니다.”
결정은 빨랐다.
노인이 원하는 것은 단 하나.
기소율의 보호에서 벗어날 것.
“대신.”
“대신?”
노인이 고개를 돌렸다.
“그 매개체 던전 있지 않습니까?”
“종족 갈등의 뿌리인가 뭔가 말이냐?”
“그렇습니다.”
[아이템 : 종족 갈등의 뿌리] [등급 : A] [종류 : 매개체] [설명 : 숨겨진 유적의 비밀을 파헤칠 수 있는 뿌리입니다.] [효과1 : 던전, ‘숲과 바위’를 개방할 수 있습니다.] [효과2 : 헌터, ‘주동훈’에게 귀속된 아이템입니다.] [효과3 : 해당 아이템은 헌터 등급 C 이상부터 활성화 가능합니다.]A급 매개체.
이제 C급 헌터가 되었으니, 충분히 도전할 수 있다.
나는 입을 열었다.
“바로 도전하겠습니다. 위기가 없는 것 같으면 만들면 되겠지요. 난이도 하나만큼은 빡세잖아요?”
저번 던전이 B급이었는데.
난이도가 태양창이었다.
‘측정 불가’의 난이도.
솔직히 떨렸다.
이번 던전은 또 얼마나 어려울까?
또 얼마나 나를 성장시킬까?
“허허, 이놈. 이제야 제법 말귀를 알아먹는구나.”
노인이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그 말이 나오나 기다렸다. 기꺼이 떠나도록 하여라.”
* * *
기소율은 의외로 쉽게 납득했다.
“헬하운드는 비열하면서도 겁이 많은 랭커예요.”
“…….”
“그렇기에 신중하죠. 서울 오성이 건재한 이상, 놈은 절대 동훈 씨 앞에 나타나지 않을 거예요.”
사실.
헬하운드만 없다면.
기소율의 보호는 조금 과한 편이 없잖아 있다.
“여태 보호해 주셔서 고마웠습니다.”
“고맙긴요. 저도 그만큼 도움을 얻었는걸요. 약속이기도 했고.”
“그래도 고마운 건 고마운 거죠.”
나는 마음을 다해 고개를 숙였다.
요즘 조금 친해졌다 해도, 랭커는 랭커다.
그리고.
수십억이 있어도 얻기 힘든 게 랭커의 경호다.
“다만.”
기소율이 말했다.
“넵.”
“제가 원할 때마다, 훈련은 꼭 참관시켜 주는 거예요.”
“음? 원하면 언제든지 참관할 수 있으시잖아요?”
그녀는 랭커.
현재 수준의 나 따위는 기척 없이 숨어서 볼 수 있는 경지다.
물론.
“몰래 보라고요? 그건 예의가 아니죠.”
내 옆에 있는 기소율은 굉장히 자신에게 엄격한 사람이었다.
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럼 오실 때마다 말해주세요. 어차피 지금까지 보셨던 거니까 크게 상관은 없어요.”
“그리고 또 하나 있어요.”
“뭐요?”
“언제든 위기가 닥쳤을 땐, 파랑에 도움을 청하셔야 해요.”
“…….”
“노파심이 들어서 말하는 거지만, 동훈 씨는 가끔 터무니없이 저돌적이에요.”
“……제가 가끔 뒤가 없긴 하죠.”
나는 뒤통수를 긁었다.
확실히.
기소율이 없었으면 위험했던 순간이 많았다.
던전에서도 그렇고, 선유도에서도 그렇고.
“기억하셔야 해요. 동훈 씨의 기연은 동훈 씨 것만이 아니라는 걸. 분명히 제 지분도 있어요.”
“……오케이. 알겠어요.”
나야 내 편을 만들 수 있다면 큰 이득이다.
그것도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내 편.
그녀로서도.
내가 죽으면, 막힌 실력 향상의 실마리를 잃는 거니까 확실하겠지.
“그럼 조심하세요.”
그 말을 끝으로.
스슷!
그녀의 신형이 눈 녹듯 사라졌다.
언제 봐도 신비한 기술이었다.
“흐음.”
나는 그녀가 사라진 이후, 잠깐 휴식을 취한 후.
주머니에서 뿌리를 꺼냈다.
“이걸 땅에 심으랬지?”
종족 갈등의 뿌리.
매개체를 내 기운과 함께 공터 땅에 심자.
쿠구구구!
공간이 흔들림과 동시에, 나무가 주룩주룩 자라나기 시작했다.
뿌리가 바닥을 지탱하고.
기둥이 커져서 하나의 ‘문’을 만들어냈다.
[‘종족 갈등의 뿌리’를 활성화하시겠습니까?] [던전, ‘숲과 바위’를 개방할 수 있습니다.] [주의!] [해당 던전은 1인던전입니다.]두근, 두근.
심장이 뛰었다.
저 ‘문’ 건너에는 또 어떤 시련이 기다리고 있을까?
그 누구도 확정할 수 없다.
그 누구에게도 조언을 얻을 수 없다.
마치 심연을 들여다보는 느낌.
일반 헌터였다면 굉장히 두려웠을 거다.
하지만.
‘난 빠꾸 없지.’
고민하면 움츠러든다.
어차피 답은 하나.
고민 없이 뛰어들어서 부딪히는 게 낫다.
‘어떤 시련이 오든, 겪어내고 강해져 주마.’
번쩍!
눈 부신 빛이 시야를 점령했다.
* * *
“으음.”
고급스러운 빌딩 내부 사무실.
검은 정장 입은 한 사내가 자리에 앉아 턱을 잡고 있었다.
[이사 신종오]사내의 이름은 신종오.
C급 헌터이자, 국내 10대 기업 중 하나 오성 그룹 회장의 손자.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랭커, 기소율이 누군가에게 빠져 있단 소식에 이를 가는 중이었다.
“주동훈, 그놈에 대해서는 조사해 봤나?”
“그렇습니다.”
맞은편에는 비서로 보이는 여인이 안경을 치켜세웠다.
“암제 때문에 접근에 조금 무리가 있었으나…….”
“걱정하지 마라. 기소율, 그녀는 어차피 날 해하지 못해.”
‘파랑’이 아무리 막강한 명문이라지만.
오성 그룹 역시 커다란 고래다.
출혈을 감수하면서까지 칠 정도의 사이는 아녔다.
비서가 목을 가다듬었다.
“크흠, 조사 결과 놈의 동선은 단순했습니다.”
“그래?”
“네, 매일 뒷산에 있는 공터랑 고투몰 지하상가만 왔다 갔다 했습니다. 그 외 시간엔 암제의 경계가 더 살벌해지는 바람에…….”
“흠, 잠깐.”
신종오의 눈썹이 올라갔다.
“고투몰? 돈이라도 생긴 건가?”
“그건 아닌 거 같습니다. 놈이 가는 곳은 ‘스미스네 대장간’이라는 곳인데, 초보 생산직들이 비싼 기구 대여하러 가는 공방 개념이었습니다.”
“생산직이라…….”
신종오의 미간이 파였다.
‘뭐지? 특수 생산직이라도 되는 건가?’
설마.
기소율이 관심 가지는 것도 그것 때문?
“푸후.”
그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든, 한시름 놓았다.
고유 능력이 어떻든, 자신은 C급 헌터.
싸운다고 하더라도 생산직에게 쪽 당할 일은 없을 터.
경계심이 살짝은 누그러졌다.
동시에 분노도 차올랐다.
‘고작 생산직 따위한테 내가 밀린 거야?’
꽈악!
신종오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크크, 슬슬 손 좀 봐줘야겠군.’
그의 입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