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aise a Skeleton RAW novel - Chapter (427)
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427화
모두가 별천지로(4)
무릉도원 성채 꼭대기.
황혼으로 붉게 물든 노을 아래에서.
휘리릭!
만술 노인이 절도 있게 검을 회수했다.
“후.”
그러고는 다시 자세를 잡은 채, 양손에 칼을 꽉 쥐었다.
동시에.
스걱!
다시금 꺼내진 검이 번개처럼 세상을 번쩍였다.
발도술.
‘좋군.’
요즘 다시 점검하고 있는 술(術) 중 하나인데.
손에 촥! 감기는 게, 제법 훈련이 잘 먹는 느낌이었다.
“후후.”
칼을 천천히 늘어뜨린 그의 시선이 저 아래 훈련장 쪽을 향했다.
제법 거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훈련하는 멤버들의 모습이 또렷하게 보였다.
뛰어난 시력 덕이었다.
“녀석.”
노인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요즘 노인은 주동훈만 바라보면 헤실헤실 웃음이 나온다.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자신의 한을 완전히 해결해 준 아이.
자신에게 육체를 선물한 아이.
그거로도 모자라 청출어람을 목전에 두고, 이제는 더 가능성 있는 제자까지 키우는 아이인데.
이쁘지 않을 수 없었다.
“잘하고 있구나. 아주 잘 배웠어.”
퍼버버버벅!
밤낮 가리지 않고, 가망이 보이는 멤버들에게 몽둥이찜질을 가하는 제자.
“그래, 그래. 저렇게 패야지. 아이고, 시원해라. 저 소리는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단 말이지. 끌끌.”
노인은 알았다.
제자 녀석이 저만큼의 실력을 갖추는 데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때론 목숨을 걸고 고난을 뛰어넘었고, 그 와중에도 자신의 고된 훈련과 고통을 꿋꿋이 견뎌내었다.
‘그리고.’
이제는 드높은 위치에 서서, 자신을 관조하는 과정이었다.
제자를 기르고, 누군가를 가르치며 자신의 술(術)을 한 번 더 재정비하는 과정…….
그러다 보면?
지금 자신이 뚫으려 하는 만술(萬術) 상급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노인은 즐거웠다.
만술은 자신이 만든 무술.
그 경지를 이어받은 전인이 자신보다 더 높은 경지에 올랐을 땐, 어떤 쾌감이 들까?
“스승 된 도리로 제자에게 쉽게 질 순 없지.”
녀석과 약속했었다.
한을 풀어준 대가로 평생 옆에서 조언해 주겠노라고.
그러기 위해선?
끝없이 훈련해야 한다.
녀석이 더 깔끔하고 정제된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앞서 나아가야 한다.
“가 보자고.”
스릉!
다시 검을 검집에 넣은 노인이 발도를 준비했다.
“녀석을 위해.”
아주 행복한 표정으로.
* * *
“끄아아악……! 아, 아파!”
“뜨아압! 자, 잠깐만요! 갈비뼈가 나간 것 같아요! 갈비뼈가아아아앍!”
“살려줘어어어, 제발 좀 살려달라고 이 주인 새끼야아아!”
이제 익숙해질 때도 되었건만, 아직까지 비명을 내지르는 멤버들.
‘익숙은 개뿔.’
플로아가 이를 갈았다.
평생 적응이 안 될 것만 같은 통증이 신경을 파고들었다.
여태껏, 아포피스의 무덤이 최고의 지옥도라 생각했었는데…….
‘아포피스는 무슨.’
진정한 지옥은 따로 있었다.
바로 여기.
도하랑과 에밀리는 아예 쭈구리처럼 몸을 둘둘 만 채,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고.
세상에.
저 독한 광전사 아재가 침과 눈물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아.’
원래 광전사는 침을 흘렸었나?
하여튼.
전신에서는 땀이 비처럼 쏟아졌고, 온몸이 파들파들 떨리는 것은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성좌가 되는 지름길이 그렇게 쉬운 줄 알았습니까? 빠른 만큼 경사가 높을 것은 예상했어야지요.”
“끄아아악!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오오!”
퍼억!
뭉쳐 있는 기맥에 몽둥이를 허용한 플로아가 외쳤다.
“쯧쯧.”
주동훈이 혀를 찼다.
“그 정도 고통도 못 참으면서 무슨 성좌의 자리에 올라가려 그러나? 빨리 움직여! 그냥 생각이란 걸 하지 말고 반복적으로 움직이란 말이야!”
“아니, 그전에……! 이렇게 처맞는다고 성좌가 되는 건 맞는 거야?”
플로아가 눈물을 주룩 흘리며 따져 물었다.
주인을 믿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모든 멤버가 궁금해할 법한 질문이긴 했다.
픽.
주동훈이 웃었다.
“난 거의 4년 내내 처맞았어.”
“…….”
“이젠 내성까지 생겨서 아프지도 않아.”
지, 진짜?
이런 지옥 같은 걸 4년 동안?
그게 말이 되나?
플로아가 눈살을 찌푸렸지만, 사실 주동훈이 거짓말할 이유는 없다.
나중에 권탐지에게 물어보면, 바로 확인 가능한 말이니까.
“그리고 아까부터 왜 이리 혀가 길어?”
주동훈의 몽둥이가 다시금 춤을 추었다.
이번에는 집요하게 플로아의 몸뚱이만 때렸다.
불만을 토로한 대가였다.
“꺄아아앍!”
새된 비명을 지르는 그녀.
주동훈이 핀잔을 주었다.
“저기, 기소율 씨 좀 봐.”
“…….”
“얼마나 꿋꿋하게 잘 참아.”
멤버들 중 가장 참을성이 높은 사람.
그것은 단연코 기소율이었다.
……으드득.
눈살을 찌푸린 채, 이를 악물고 있는 그녀.
눈동자가 살짝 풀려 있긴 했지만, 지금까지도 스텝을 밟고 있었다.
휘익!
단검으로 주동훈의 목을 노렸다.
거의 무아(無我)의 경지로 다가오는 직접적인 암살 시도였지만.
텁!
주동훈이 괜히 세계 랭킹 1위일까?
사방 모든 생명체의 움직임을 미세하게 잡아낼 수 있는 그가 손쉽게 단검을 잡아냈다.
“……!”
그것도 두 손가락으로.
놀란 기소율이 눈을 부릅떴다.
몽둥이로 쳐낸 적은 몇 번 있지만, 아예 손가락으로 잡힐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반응이었다.
“에이, 소리가 들리잖아요.”
주동훈이 고개를 천천히 저으며 말했다.
“아까부터 말했다시피, 전면전에서 암살을 노리려면 무음(無音)의 경지부터 밟아야 해요. 지금 하는 건 암살이 아니라, 그냥 조용히 공격하는 것밖에 안 돼요.”
그러고는.
퍼어어억!
몽둥이로 전완근을 가격했다.
열심히 하는 기소율이라고 예외는 없었다.
“……썩을.”
그녀의 입에서 욕이 튀어나왔다.
그래, 그래.
많이 아플 텐데, 그 정도 욕은 인정해 줘야지.
주동훈이 빙그레 웃으며 뒷발차기를 날렸다.
“다시.”
퍼어어억!
복부에 맞은 채, 저 멀리 나뒹구는 기소율.
“……무음.”
몸을 일으킨 그녀가 다시 자세를 잡았다.
소리가 없는 것.
그게 도대체 어떤 경지일까?
뭐가 되었든.
‘성공할 거야.’
저기 저 동훈 씨의 하얀 목덜미에.
단검을 한 번쯤 꽂아 넣고 싶은 그녀였다.
* * *
똑똑똑.
서류 작업을 마친 김진아가 공방의 문을 두들겼다.
“하하, 또 왔나? 어서 들어오게.”
드미르가 기다렸다는 듯, 문을 열어주었다.
까앙, 까앙!
정렬된 모루에서 울려 퍼지는 스켈레톤들의 망치 소리.
그리고 뜨겁게 올라오는 후끈한 열기.
“후아, 여기는 항상 뜨겁네요?”
“그런가? 엘드린 표 냉방 시설이 있기야 하네만, 본래 뜨거운 열은 공방의 상징 아니겠나? 하하핫! 얼른 이리로 올라오게나.”
“옙.”
둘은 1층을 지나, 드미르가 쓰는 공방 옥상으로 이동했다.
그곳 소파에 편히 앉는 김진아.
“별일 없으시죠?”
“별일이 뭐 있겠나? 자네가 항상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는데, 덕분에 좋아하는 망치질만 원 없이 하고 있지. 하하하하.”
드워프.
바위의 종족은 무언갈 만드는 것에 행복을 느끼는 종족이다.
드미르뿐만 아니라, 그 수하 스켈레톤들도.
덕분에 행복한 제2의 삶을 맛보는 중인 거다.
“크, 그렇게 말해주시니 고맙네요. 아, 저번에 말씀드린 건 어떻게 되어가고 있으세요?”
“도시 계획 말인가?”
“네.”
현재 무릉도원에는 두 도시가 있다.
수도, 무릉도원과 아린의 마탑 도시.
원래 거기에 추가적인 계획을 짜고 있었는데, 이번에 내용을 살짝 변경했다.
‘새로운 집단이 들어왔으니까.’
바로 빅3 때문이었다.
자존심을 굽히고 별천지 아래로 들어온 그들에게 자그마한……. 아니, 제법 큰 선물을 주고 싶었기 때문.
‘빅3를 위한 컨셉 도시를 만들어, 그들에게 선물한다.’
그들은 땅과 건물을 받아서 좋고.
별천지는 강한 랭커들을 무릉도원에 상주시킬 수 있어서 좋으니, 서로 윈윈인 셈이기도 했다.
“후후, 설계는 거의 완성되어 가지. 여기 한번 보시겠나?”
씩 웃은 드미르가 책상에 깔린 도면과 벽면에 붙어 있는 설계도를 가리켰다.
“아린의 마탑 도시 위쪽에는 옥스퍼드를 위한 부속 마법 도시를 추가로 만들 생각이네. 아예 수도 북쪽을 마법 특화 도시로 탈바꿈시키는 게지. 수도 이름은 옥스퍼드. 괜찮나?”
“옥스퍼드! 좋네요.”
원래 마탑이 쓰던 도시의 이름이니, 정 붙이기도 쉬울 거다.
김진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수도가 중심이고, 각 방위에 맞게 컨셉별로 가는 것.
나쁘지 않은 아이디어다.
“그럼 마왕군은요?”
“마왕군은 아예 구역을 바깥으로 빼버렸네.”
“그래요?”
“아포피스의 무덤 근처 광활지가 있지 않나. 거기 분위기가 마계(魔界)랑 어울릴 것 같더군.”
“아?”
김진아가 괜찮다는 듯 손뼉을 쳤다.
“아예 마계 이미지가 무릉도원이랑 정반대니까, 거리를 두려는 속셈이죠?”
“그렇지. 어차피 걔네 특성상 마물도 키울 테고. 마물들에게 아포피스의 독과 사체는 충분한 양분이 될 테니까.”
이건 좀 좋은 생각이었다.
아포피스 무덤 주변, 그 넓은 땅을 어떻게 이용할까 고심하던 차였는데.
차라리 마왕군에게 주고, 어느 정도 경계를 지정해 주면 마계 분위기 나게 잘 꾸며줄 것 같았다.
“마지막, 천마신교는요?”
“수도 남쪽에 있는 깊은 산맥을 활용할 생각이네.”
“산맥이요?”
“나무가 무성한 만큼, 엘드린의 도움을 받아야겠지. 여기 대충 그려놓은 건데, 한번 쓱 봐보게.”
“…….”
설계도를 몇 장 넘긴, 드미르가 새로운 도시의 모습을 대강 그려놓았다.
“오……?”
김진아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건 정말 기대 이상이었다.
커다란 지형을 바탕으로, 마치 무림 속 은거기인들이 거주할 것만 같은 선사들이 즐비해 있다.
그곳을 관통하는 커다란 계곡들과 어우러지는 다양한 크기의 식물들.
곳곳에 배치된 넓은 공터와 훈련장까지.
“마치 신선이 노닐 것 같은 분위기인데요? 정말 아름다워요.”
이런 곳에서 훈련한다면?
조금 더 자연과 가까워지지 않을까?
“마음이 드니, 다행이군. 도시 이름을 한번 지어주겠는가?”
“으음.”
도시 이름이라.
잠깐 눈을 감고 생각하던 김진아가 손가락을 튕겼다.
“신선들이 노닐 것 같은 곳이니까, 신선골 어때요?”
“신선골?”
드미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 이름으로 적어두지. 이대로 진행해도 되겠는가?”
“솔직히 말씀드려요?“
“말해보게.”
“완벽하다 못해, 뭐랄까……. 그냥 환상적이에요.”
퍼펙트!
베리베리 굿!
“후후, 그렇게 말해주니 기쁘구만.”
“그럼 바로 삽 뜨시는 건가요?”
삽을 뜨다.
일을 바로 착수하는 거냐 묻는 거다.
“물론이지. 주인이 웬만큼 소환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니……. 일단은 거기에 최선을 다해보지.”
물론, 이전에 약속했던 무기 50개 주문은 따로 처리해야겠지만.
대장장이의 신(神), 드미르에게 그 정도 일은 껌이었다.
* * *
시간이 흘렀다.
투호에게 뽑힌 50명의 랭커들은 지구에 있는 던전들을 전부 다 박살 내고 다녔다.
랭커들이 처리하도록 지정된 던전부터, 그냥 일반 헌터들이 들어가는 던전들까지.
거기서 나오는 재료로 최상의 무기를 만들어준다고 하니, 뭐라도 하나 얻어가려는 속셈이었다.
그 덕에.
불안에 떨던 세계인들이 환호했다.
[과연, 랭커는 랭커인가? 골머리 앓던 던전, 2주 만에 아예 자취를 감추어.] [파견 랭커, “던전 더 없습니까?”, “제발 던전 좀 더 알려주세요!”] [전 세계인 파견 랭커들의 초고속 던전 기행에 환호!]모두가 랭커들을 칭송했다.
랭커가 왜 랭커라 불리는지, 던전을 클리어하는 속도로 알려주었다.
고작 50명.
그것도 거의 100위권 밖 랭커들만으로 이렇게 쉽게 처리할 수 있는데…….
그 유명한 주동훈이나 별천지 멤버가 등장하면 얼마나 빠르겠는가?
파견이 끝난 랭커들은 거기서 나온 모든 재료를 드미르에게 가져다 바쳤다.
심지어 개인적으로 구한 재료들까지.
그 결과.
“아아아…….”
“드미르님. 드미르 신니이이임!”
“감사하나이다! 감사하나이다아아!”
그들의 손에 떨어진 영롱한 무기들.
대장장이라는 직업으로 성좌의 오른 드미르는 과연 위대했다.
구해온 재료를 절묘하게 섞어 최상의 옵션을 뽑아냈고, 또한 사용자의 특성과 원하는 바를 적당히 들은 뒤 그걸 센스 있게 녹여냈다.
당연한 말이지만, 무기를 들고 뒤늦게 합류한 멤버들은 확실히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훨씬 강해진 게 눈으로 보일 정도였다.
‘나도…….’
‘나도 받고 싶다.’
‘왜 그때 선착순에 밀려서는……!’
드미르는 확고했다.
3차전이 끝나고 나서 살아 있으면?
그때 또 50개를 만들겠다 약조했다.
‘다음번엔 꼭 내 걸 만든다…….’
‘숨겨둔 재료 다 가져다드릴 거야.’
덕분에 더더욱 의욕을 불태우는 이들.
별천지에 합류한 이후로, 이래저래 빠른 속도로 강해지는 랭커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