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aise a Skeleton RAW novel - Chapter (468)
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468화
전투 장소는 따로 있었다.
콜로세움을 연상케 하는 경기장, 그리고 그곳엔 군단장들뿐만 아니라 수많은 마족이 몰려 있었다.
“책사님이 싸우신다고?”
“갑자기?”
“원래 책사님이 박살 내기 전문이잖아. 또 개념 없는 놈이 힘자랑하러 제국까지 찾아온 거겠지. 군단장 자리 하나 달라고.”
“어? 아니야. 내가 듣기로는 마르바스 님이 보낸 손님이라던데?”
“5사도 마르바스 님? 헐, 그럼 이번 매치는 좀 남다르려나?”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지!”
“크으으으, 재미있겠구만!”
마족들은 천성적으로 싸우는 걸 좋아했다.
이 경기장만 봐도 알 수 있다.
얼마나 싸움을 많이 하면, 이렇게 거대한 전투장을 만들어놓았겠는가.
“책사님 전적이 어떻게 되지?”
“말해 뭐해. 100전 전승 무패! 현존하는 군단장님들도 책사님은 못 이긴다고.”
“맞아, 제국의 이인자잖아.”
제국의 일반 마족들은 책사가 바사고인지 모른다.
정확히는 바사고가 누구인지 모른다.
일반 마족들이 바사고의 존안을 직접 뵐 기회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책사가 바사고라는 사실은 제국의 극비사항이며, 절대 누설할 수 없었다.
최상급 마왕의 괴상하고도 유일한 취미를 방해하다간 골로 가기 십상이다.
아, 물론.
평소에 기괴하게 생긴 10군단장이 바사고 행세를 한다는 것은 일반 마족들도 잘 안다.
10군단장에겐 미안하지만, 그 흉악한 페이스를 모른다는 건 말이 안 된다.
하여튼.
둘의 싸움 소식은 제국 내에 빠르게 퍼져 나갔으며, 커다란 경기장에 마족들이 빽빽이 들어차는 데는 얼마의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가운데, 주동훈과 바사고가 서로를 마주 보고 서 있었다.
화르륵!
창을 뽑아 든 주동훈이 물었다.
“이거……. 판을 너무 키우신 것 아닙니까?”
“내기판인데 당연히 판을 키워야지요. 증인은 많을수록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그러다 지기라도 하시면 어쩌려고.”
“후후, 도발하시는 겁니까?”
휘리릭, 탁!
바사고가 부채를 펼쳤다가 손바닥에 말아 쳤다.
그 순간이었다.
마치 천지가 개벽하듯 엄청난 기세가 주동훈에게 집중되었다.
‘크윽.’
주동훈이 자세를 낮췄다.
과연 최상급 마왕 중 하나라는 걸까?
어마무시한 기운이었다.
‘바로 시작하는 건가?’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답답했지만, 자세를 낮춘 후 참아내었다.
‘그래, 네가 아무리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여기 잡힌 정수의 힘만큼은 아닐 터.’
스슷!
마계에도 빛이 있고,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다.
잠깐의 발놀림으로, 바사고의 등 뒤로 이동한 주동훈이 하얀 도포를 향해 있는 힘껏 창을 내질렀다.
쐐애애액!
붉은 창이 벼락같이 쇄도하는 순간.
인기척을 느낌 바사고가 귀신처럼 몸을 비틀며 부채로 내려쳤다.
퍼어억!
“……!”
가볍게 뒤틀리는 궤도.
손아귀에는 엄청난 충격이 일었다.
‘진짜 부채로 싸우는 건가?’
물론, 평범한 부채가 아니라는 걸 방금 충돌로 알았다.
저 부채는 일단 용의 뼈보단 더 단단하다.
단단한 것뿐만이 아니라, 맞으면 회복이 꽤나 어려울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하긴.’
만술을 배운다는 작자가 무기에 연연하고 방심하면 안 되지!
“후.”
주동훈이 머리를 차갑게 가라앉혔다.
이제 잡다한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그저 본능으로.
지금껏 해왔던 훈련대로 움직일 차례였다.
만술(萬術).
비기(祕技).
융합(融合).
독섬무진(毒閃武進).
– 키아아아아아아아아!
몸 안에서 숨죽이고 있던 독무(毒霧)와 무각의 비전이었던 무진(武進)이 융합되어 터져 나왔다.
한 초 한 초 진심을 다해 펼쳐지는 육연격!
쾅, 쾅, 쾅, 쾅, 쾅!
공격 하나하나가 간결하면서도 정확하게 꽂혔고.
마지막으로.
스슷!
하늘로 올라선 주동훈이 핑그르르 몸을 돌리며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동시에.
콰아아아아아앙!
엄청난 폭음이 경기장 전체를 쩌르르 울렸다.
마치 공간이 말려들어 가는 듯한 현상까지 일었다.
“미, 미친!”
“와아아아아아!”
“사, 상대가 보통 놈이 아니다!”
“책사님을 상대로 저렇게까지 공격할 수 있다고? 대단한데?”
푸쉬시시시…….
한차례 공격이 끝났고, 무너진 바닥으로부터 피어오르는 흙먼지 사이로 한 인영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휘리릭, 탁!
놀랍게도 책사는 방어의 자세를 취하고 있지도 않았다.
“후후, 설마 그게 전부인가?”
그저 편안한 자세로 걸어 나오며 미소 짓고 있었다.
동시에.
휘리릭!
부채가 단순하게 휘둘러졌다.
하지만, 주동훈에게는 단순한 휘두름이 아니었다.
‘허억?’
등골이 서늘해지는 느낌에 급하게 금(金)의 기운을 끌어올렸다.
까아아아앙!
복부 쪽에 고철 패는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공간이 뒤틀렸다.
이것은 통상의 물리 법칙으로는 상상할 수도 없는 공격이었다.
‘심…… 검?’
아니, 부채니까 심선(心扇)인가?
어쨌든 제대로 직격당했다면, 온몸의 내부가 뒤틀리고 폭발했을 법한 막대한 힘이 딱 복부에서 멈추어 있었다.
무시무시한 압박감을 느낌 주동훈이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다음 순간.
번쩍!
주동훈의 세상이 온통 하얀 빛으로 물들었다.
‘뭐지?’
당황했지만, 집중하고 있던 터라 희미하게나마 볼 수 있었다.
부채에서 나온 빛의 기둥이 핑그르르 돌아 얼굴로 날아오는 것을.
주동훈이 금(金)의 기운을 본능적으로 얼굴로 올렸다.
까아아아아앙!
“크흐윽.”
기운이 막아주었다지만, 그 충격만큼은 온전히 전달되었다.
또한, 그 소리가 얼마나 컸을까.
“무슨.”
“끄으윽.”
마족들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한쪽에서 지켜보던 배지민이 벌떡 일어났다.
“스승님! 조심하세요!”
그녀는 자신의 스승을 믿었다.
물론, 현재의 스승이 바사고를 상대로 이긴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긴 하나, 스승님은 항상 기적을 이끌고 오시는 분 아니던가!
필승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볼거리는 보여줄 거라 생각했다.
까아앙! 까아아앙!
부채는 계속해서 휘둘러졌다.
한번 휘두를 때마다, 고막을 터뜨리는 굉음을 만들어냈고.
이미 주동훈의 주변은 비산한 흙먼지로 가득했다.
“허.”
“역시 책사님인가?”
“……정말 사기적이시라니까. 어떻게 저런 말도 안 되는 위력을.”
지켜보던 마족들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항상 똑같은 결과였다.
제국에 온 손님에게 책사님이 나서는 순간?
저 부채질에 온몸이 피떡이 된 채 실려 나가곤 했다.
‘쯧쯧.’
‘그러게 왜 제국에 와서는.’
‘뭐, 그럴 수 있지. 다른 곳에서는 본인이 최고인 줄 알 수도 있었을 테니까.’
이미 바사고 제국의 마족들에게 책사란 무적이었다.
그렇기에 저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흙먼지가 걷히면, 손님이란 작자가 피떡이 된 채로 누워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 당연한 모습을 편안하게 지켜보려던 순간.
“어?”
“……뭐지?”
그 안에서 뛰쳐나오는 인영의 속도가 남달랐다.
쐐애애액!
쏘아진 화살처럼 튀어나온 주동훈이.
촤르릇!
수(水)의 기운을 끌어올려, 수압 칼날을 만들어낸다.
“무…… 슨?”
살짝 당황한 바사고가 부채로 그것을 튕겨내려다가.
콰가가가가!
예상 못 한 힘에 오히려 뒤로 물러난다.
마족들이 모두 입을 쩍 벌리며 눈을 부릅떴다.
‘밀렸다고?’
‘책사님이?’
도무지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이 시야에 보이는 상황이었다.
“세상에…….”
“이거…….”
“재밌잖아?”
마족들이 눈을 반짝였다.
“일 안 하고 이곳에 달려온 보람이 있어!”
“당장 내일 죽더라도 이 경기를 눈에 담아야겠어! 그 책사님이 당황하는 순간이라니!”
“와아아아! 상대가 누구냐!”
“마르바스가 초대한 주동훈이래!”
“주동훈?”
“그래, 주동훈!”
한창 여유롭기 짝이 없던 바사고의 얼굴 위로도 당혹감이라는 감정이 번져 있었다.
“……이게 무슨 힘이지?”
처음 보는 종류의 힘이었다.
순수한 원소의 힘.
이는 마치.
과거, 마신(魔神)의 힘을 보는 것과 같은 무거움이 있었다.
“허허.”
화르륵!
이번엔 불이 타오른다.
잠깐 넋을 놓고 있던 바사고가 그 화력에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뜨거움?’
이러한 감각을 도대체 얼마 만에 느껴보는 것이던가.
바사고는 불에 면역이다.
원하기만 하면 용암 속에서 온천을 즐길 수도 있다.
‘이게 무슨…….’
그러한 그가 잠깐이지만, 식은땀을 흘렸다.
최상급 마왕이 되기 전, 셀 수도 없는 억겁의 시간 전에 느꼈던 그 순수한 고통 때문이다.
‘바알 형님이나 아가레스 그 새끼도 못 하는 그것을……. 마족도 아닌 자가?’
심경이 복잡해졌다.
동시에.
희망 역시 피어올랐다.
‘저런 자가.’
지금 마신을 보고 싶다는 거지?
마르바스는 그것을 응원하고 있고?
“끌끌, 역시 재미있군요.”
바사고는 오랜만에 끓어오르는 호승심을 느꼈다.
그래.
‘상대는 강해.’
보는 것과 달리, 위험한 기운을 내뿜고 있다.
그냥 위험한 게 아니었다.
잘못하다간 목숨을 잃을 수도 있을 만큼 강대하면서도 순수했다.
어떻게 저런 기운을 사용할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되지만, 지금은 싸움 중.
“후후, 이거 반성하게 되네요. 저 역시 진심을 다해보겠습니다.”
잡념을 떨친 바사고가 부채를 끝까지 펼쳐 유려하게 춤을 추기 시작했다.
너울너울.
춤추는 몸 구석구석에서 풍(風)의 기운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휘이이이잉!
“어…….”
지켜보던 이들이 놀라운 광경에 숨을 삼켰다.
“저것은…….”
“바람의 춤!”
“책사님이 바람의 춤을 꺼냈다!”
책사가 인정하는 자에게만 꺼내는 비장의 기술.
저 기술이 나왔다는 것은 자칫하다가 상대에게 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여태껏 100전의 전투 중 단 한 번만 사용했던 기술이기도 하다.
‘그 기술의 대상이 1군단장님이셨지.’
쿠과가가가가!
바사고가 춤을 추며 서서히 본인의 영역을 넓혀 나갔다.
누군가는 말한다.
고수끼리의 싸움은 단순하게 서로 치고받고 싸우는 게 아니라 영역을 겨루는 싸움이라고.
바사고는 그것을 따랐다.
자신에게 안전한 영역에서 적을 공격하고, 적을 불안정한 공간으로 끌어들였다.
콰득, 콰드드득!
주동훈은 그 기운에 마주 대응했다.
아예 무기를 집어넣고, 눈을 감은 채 합장했다.
이번에 끌어올리는 것은 토(土)의 기운.
거기다가 목(木)의 기운까지 섞었다.
쿠과가가가가가!
뒤집히는 땅 사이로 수많은 덩굴이 자라나 올라오기 시작했다.
바사고의 춤이 덩굴을 다 잘라냈지만, 비옥한 토양이 그것을 다시 자라게끔 했다.
그렇게 서로의 영역이 충돌했다.
폭음 같은 것은 없었고, 그저 자연과 자연의 싸움을 보는 듯했다.
“와…….”
“저…… 게 뭐야?”
마족들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무언가 이제는 전투를 본다는 그 쾌감보다, 살짝 경외감이 들 지경이었다.
“크윽.”
주동훈이 이를 악물었다.
기운을 섞었다는 것은 이 공격에서 끝을 보겠다는 말.
기력 역시 이제 0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고, 속도 말이 아니었다.
외부에서는 바사고를 상대하랴, 내부에서는 정수들을 다스리랴…….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바사고 역시 쉽사리 다가오지 못한다는 점.
즉, 정수의 힘이 제대로 먹히고 있다는 거다.
그래.
어디 해보자.
주동훈이 고통을 참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주르륵.
피가 흘러내렸다.
마르바스를 이겼던 것처럼.
똑같이 조져보는 거다!
쿠과가가가가가!
주동훈의 온몸에서 목토(木土)의 기운이 더더욱 강하게 흘러나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