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aise a Skeleton RAW novel - Chapter (476)
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476화
“흐음?”
“정령계 소환……?”
막 소환당한 정령왕들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본인들이 사랑하는 계약자, 유이사 스톰트리의 부탁이었다.
당연히 부탁이야 들어줄 수 있다.
유이사가 아니더라도, 주동훈과도 약속했었으니까.
위기의 순간에 도와주겠다고.
하지만, 이곳 마계에 정령계를 소환하기는 쉽지 않은 문제였다.
네 정령왕 모두의 기억 희생이 필요하며, 그렇게 한다고 하더라도 정령계를 오랜 기간 유지할 수는 없다.
너무 멀리 떨어져 있기도 하고, 이곳이 일반 세계가 아닌 마계이기 때문이다.
“유이사.”
화르륵!
따듯한 불줄기와 함께 정령왕 샐리온이 등장했다.
“이곳에 정령계를 소환하려면 꽤 많은 기억이 사라지게 될 거다.”
“그래요……? 얼마나요?”
유이사가 미안한 듯, 눈썹이 아래로 늘어졌다.
“몰라, 한 수천만 년 정도 사라지겠지. 우리 넷 전부. 어쩌면 유이사, 너와의 추억을 잊을지도 몰라.”
“…….”
정령왕은 기억이 중요하다.
모든 정령의 어른이자, 억겁의 세월 동안 쌓아온 지혜로 정령들을 이끄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또한, 기억이 곧 힘이었다.
정령왕은 세월을 잃으면, 그만큼의 힘도 잃게 된다.
하물며, 정령왕들은 계약자와의 기억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당연히 신중하게 선택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엘라임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가레스 하나에 의해 초토화된 대지와 그 밑에 깔려서 아등바등 싸우고 있는 존재들이 보였다.
“이런 꼴을 보고 그냥 넘어갈 수는 없겠네요. 우리의 은인인 주동훈이 힘들어하는 꼴을 볼 수는 없으니까.”
엘라임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하자.
“흐음.”
아가레스가 내리던 철퇴를 다시 들어 올렸다.
저 밑에 깔린 벌레들보다 정령의 존재에 더욱 흥미를 느낀 탓이다.
“정령왕인가?”
“당신은…….”
“오랜만에 보는군. 그런데 내가 아는 정령왕은 아니야.”
오직 하나인 마계와 달리 우주에는 수많은 정령계가 있다.
그렇기에 정령왕을 만났어도 같은 개체를 만날 확률은 낮았다.
“후후, 당신이 알고 말고는 중요한 게 아니죠.”
촤르르륵!
엘라임의 몸 주변에 물줄기가 퍼지기 시작했다.
아가레스가 눈을 껌뻑였고.
화르륵!
샐리온이 그 물줄기에 불을 얹었다.
“그래, 결국 소환하는 건가?”
콰아아아앙!
골렘, 노아스가 등장해 바닥에 손을 짚었다.
마지막으로.
휘이이잉!
바람의 정령왕, 실피드까지.
“기억이 소중하다고 약속을 깨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천천히 중얼거리며 바람의 기운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이내.
네 존재의 안광이 동시에 번뜩였다.
“정령계여, 우리의 기억을 희생함에 따라 이곳에 현신하라.”
“뭐 하는 짓이지?”
아가레스가 고개를 갸웃하며 철퇴를 들었다.
심상치 않은 기운이 몰아치는 게, 빠르게 처리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일시적으로 정령계가 현현합니다.] [정령 본신의 힘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쿠구궁!
그 기점으로 정령왕들의 기세가 완전히 달라졌다.
네 성운급 정령왕의 본체가 이곳의 현신한 것!
화르르륵!
“그 시커먼 날개 죽지부터 어떻게 태워줄까?”
유쾌한 샐리온의 목소리가 들렸다.
“뭐라?”
멈칫한 아가레스가 코를 실룩거리자, 그 주변에 불줄기들이 마구 생겨나기 시작했다.
당황한 그가 자리에서 벗어나려 하는 순간.
콰아아아아앙!
불줄기들이 일시에 광채를 폭사하며 화려한 폭발을 일으켰다.
“흐읍?”
아가레스가 당황했다.
그래, 하나하나의 개체는 자신에게 한참 못 미치지만, 저 넷이 모이면 다르다.
촤르르륵!
쿠르르르……!
휘이이이잉!
네 원소의 힘이 합쳐져, 소용돌이가 생기듯 일그러지더니 돌풍처럼 위로 솟구쳤다.
“흐읏.”
아가레스가 숨을 들이켰다.
‘진짜 정령왕 넷을 소환했다고?’
억겁의 세월 전, 수많은 우주를 거닐면서도 처음 보는 광경에 아가레스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 시각.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돼요!”
정신 차린 주동훈이 일갈했다.
유이사가.
아니, 정령왕들의 자신의 소중한 것을 희생해 가면서 만들어준 그 기회를 잠깐의 안락을 위해 놓칠 수 없었다.
쿠과가가가가……!
남은 모든 정수의 힘을 끌어올렸다.
머리를 찌르르 타고 올라오는 통증.
집중하자.
빈틈을 찾아야 한다.
원래라면 털끝조차 건드릴 수 없었던 아가레스의 몸에 분명한 충격을 주고야 말겠다.
“후우.”
급박한 상황에서도 심호흡을 통해 태청심법을 운용했다.
내부에서 정제된 기력이 들끓었다.
스슷!
일단, 그림자를 밟았다.
가만히 서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다간 그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
‘무얼 사용할까.’
화(火)? 수(水)? 목(木)? 금(金)? 토(土)?
지금 무언갈 섞어서 사용할 여력은 없다.
그렇다면?
제일 익숙한 거지.
화르륵!
주동훈이 불의 창을 피워올렸다.
눈앞에는 정신없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후웅, 후우웅!
당황한 아가레스가 눈을 치뜬 채, 미친 듯이 철퇴를 휘두르고 있었고.
형체가 없는 정령들은 그것을 다 받아내며 끈덕지게 달라붙었다.
바사고와 마르바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두 존재가 마치 빛이 되기라도 하듯, 허공에서 이리저리 꺾어 움직이며 수없이 난타를 가하고 있었다.
파가가가가가각!
아가레스의 주변으로 불똥이 튀고 철 긁는 소리가 들렸다.
스슷!
주동훈 역시 계속 그림자를 밟으며, 그 빈틈을 찾다가.
‘오.’
눈을 부릅떴다.
아가레스가 휘두르는 철퇴의 움직임에서 패턴을 읽었기 때문.
‘지금이다.’
스스슷!
그가 정신없는 틈을 타, 사각지대로 은밀하게 이동한 주동훈이 불의 창을 내질렀다.
오랜 고민 없는 본능적이면서도 직감적인 과감한 판단이었다.
‘방향은 아가레스의 눈.’
보고 찌른 게 아니다.
이쯤이면 이렇게 고개를 틀겠지? 하고 예상하고 내지른 창이었다.
[화(火) : 좋다.]그리고 그 결과.
판단은 정확했다.
마침 딱 고개를 트는 순간, 아가레스의 눈에 정확하게 창이 꽂혀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 어떠한 단단한 것도 뚫는 신살(神殺)급 창이 부드럽게 각막을 파고드는 순간.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
무시무시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아가레스의 입에서 듣는 첫 비명이었다.
“이 벌레들이……!”
눈가에 충격이 상당한지, 한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쥔 아가레스가 분에 찬 고함을 내질렀다.
“안 되겠다! 그냥 여기 있는 모든 것들을 다 소멸시키고 말겠다아아!”
그 순간.
쿠구구구구구……!
아가레스의 전신에서 어두운 기운과 함께, 그의 몸집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인 기운이 공간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커, 커헉!”
주변에서 구경하던 마물들이 목을 잡은 채 쓰러져 질식하고 있었고.
“끄아아악!”
이곳, 저곳에서 무릎을 꿇은 채 비명을 내지르고 절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시각.
“오라버니.”
지켜보던 가미긴이 눈살을 찌푸렸다.
“정령왕이 개입했는데도 가만히 있을 거야? 밸런스가 무너졌잖아.”
“밸런스가 무너져?”
바알이 픽 웃었다.
“저기 저 모습을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오나?”
“……아가레스? 그냥 평소보다 좀 더 커졌는데? 아, 기운이 무시무시하긴 하네. 근데 오라버니보다는 아니잖아.”
가미긴이 고개를 갸웃했다.
아가레스가 강하단 것은 당연히 안다.
그런 그녀도 아가레스의 저런 기술은 처음 봤다.
“커지기만 하는 게 아니다.”
바알이 미소 지었다.
그는 지금 이렇게 치열한 전투 그 자체를 관람할 수 있다는 것에 행복을 느끼는 것 같았다.
“저 기술을 쓰는 동안에는 모든 물리적인 공격과 마법적인 공격에 면역을 가지게 되지.”
“……무적이란 거야?”
“응.”
“그럼 오라버니가 공격해도 못 뚫어?”
“맞다.”
“…….”
바알의 쿨한 인정에 가미긴이 당황했다.
바알이 누구던가.
명실상부 마계의 일인자이자, 마신의 오른팔 정도가 아닌 양팔이라 불렸던 최고의 비서 아니던가!
“나 역시 아가레스, 저놈이 저 기술을 쓰면 도망가는 것밖에 답이 없다. 다만, 내가 더 빠르니까 잡히진 않겠지.”
“……그 정도야? 그럼 저걸 어떻게 상대해?”
“저거 말이냐?”
바알이 재밌다는 듯, 껄껄거렸다.
“그냥 가만히 내버려 두면 돼. 본인의 선천진기를 소멸해 가며 사용하는 터라 부작용도 크고……. 오래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제 몸 깎아 먹는 짓이거든.”
“아.”
가미긴은 이제야 이해했다.
‘그러니까.’
아가레스, 저놈이 진짜로 열 받았나 보구나?
얼마나 화가 나면 자신을 희생해서까지 상대를 족치려 할까.
“어쨌든.”
가미긴이 풀었던 팔짱을 다시 꼈다.
“아직까지는 밸런스가 괜찮다는 거네?”
“그래, 그리고 엄밀히 말하면 정령왕들 역시 바사고군이 준비한 카드의 일부라 볼 수 있다. 개입할 정도의 파급력은 아니야.”
“후후, 뭐 그러시겠지요.”
사실, 모든 것이 코에 붙이면 코걸이 귀에 붙이면 귀걸이다.
바알은 아가레스를 마음에 들지 않아 했었고, 그러하니 웬만해서는 돕지 않을 거다.
‘그냥.’
가미긴이 혀로 입술을 축였다.
‘재밌게 구경이나 해야지.’
그러고는 다시 박 터지는 아래를 응시했다.
“그냥 죽어라.”
변한 아가레스의 힘은 굉장했다.
콰득!
철퇴 한 방에, 땅의 정령왕 노아스가 자신의 복부를 부여잡았다.
– 그워어어어?
말도 안 되는 힘에 그 형체가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기 시작했다.
콰르르르르!
다시 들어 올려 골렘의 형상을 갖추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이미 에너지가 다 했기 때문이다.
또한.
휘이이잉!
사방으로 정신없이 부는 바람에 그저 왼손을 들어 올렸다.
그저 그랬을 뿐인데.
“끄읏?”
바람의 정령왕 실피드의 목이 잡혔다.
콰득, 콰드드득!
엄청난 바람의 폭풍이 그의 몸을 거칠게 긁었음에도 미동조차 없었다.
아예 딜이 박히질 않았다.
붙잡혀 버둥거리는 실피드의 몸을.
콰아아아앙!
오른손에 든 철퇴로 후려쳐 버렸다.
파스스스슷……!
순식간에 바람의 기운이 흩날렸다.
그 순간.
[현현한 정령계가 심각한 타격을 받습니다.] [정령계 소환이 해제됩니다.]소환된 정령계가 날아가 버렸다.
정령왕들의 거룩한 희생이 고작 아가레스의 철퇴질 두 방에 날아가 버린 셈이다.
‘미친.’
주동훈이 혀를 내둘렀다.
실로 어마어마한 존재가 아닐 수 없었다.
지금껏 봐왔던 것 중 저런 존재감을 뿜어내는 존재가 있었던가?
아, 하나 있었지.
우리 파괴룡, 비나사.
걔는 열외고.
‘바사고 이놈이.’
황당했다.
이런 놈을 잡자고, 군대를 모집한 거야?
애초에 군대고 뭐고 다 필요 없었다.
우리가 힘을 합쳐서 아가레스를 잡을 수 있을지 없을지부터 파악해야 했다.
‘하긴.’
사실, 주동훈도 그랬었다.
정수의 힘만 있으면 아가레스든 바알이든 다 잡아 족칠 수 있다고 생각했었지.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아무리 정수의 힘을 사용한들…….
[수(水) : 이놈이?] [수(水) : 지가 제대로 활용하지도 못해놓고 뭔 우리 탓이야?]‘그럼.’
제대로 사용하면, 저걸 뚫을 수 있어?
콰가가가가!
바사고군은 이미 혼란에 빠졌다.
철퇴 한 방에 바사고가 맥없이 내팽개쳐졌고, 마르바스가 잡혀 눌린 파리처럼 바닥에 박혀 버렸다.
아가레스의 주변은 땅이 갈라지고 뭉개져 용암이 솟구치고 있었으며.
주변 병력들은 누구의 진영이고 할 것 없이 그것을 피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너도 죽어라!”
콰아아아앙!
말 그대로 폭주.
아가레스는 폭주하고 있었다.
[수(水) : 아니, 저건 못 뚫긴 해.]수(水)가 웃었다.
[수(水) : 그러니까 그전에 한 방에 확실하게 처리했었어야지.]주동훈이 이를 악물었다.
이게 지금 누굴 놀리나!
이러다가 다 전멸하게 생겼는데!
“너도 죽어라.”
“흐읍!”
콰아아아앙!
눈을 부릅뜬 주동훈이 휘둘러지는 철퇴를 간발의 찰나로 피해낼 때였다.
[목(木) : 아가레스의 저 기술은 제가 좀 알아요.]이번엔 목(木)이 대화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