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aise a Skeleton RAW novel - Chapter (57)
거대마룡의 최후
구(舊) 하이엘프 퀸.
세르핀, 정확히는 거대마룡이 전선 한가운데로 옮겨졌다.
옮기는 방법은 간단했다.
엘드린이 쏘았던 월광의 화살을 이동시키면.
– 크으으, 이놈들! 당장 풀지 못하겠느냐?
금제 때문에 부수지 못하는 용이 자연스레 딸려온다.
– 지금이라도 풀거라! 그리하면 최소한 멸족은 면하게 해줄 터이니!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하면서 말이다.
거대마룡의 실체가 전 세상에 까발려진 순간이었다.
“……저, 저자는?”
“세르핀?”
“빌어먹을 엘프족의 퀸 아닌가? 퀸이 왜 저기에 묶여 있는 거지?”
드워프들이 충격에 빠졌다.
그럴 수밖에.
세르핀이면 볼카누스와 함께 절대 건들 수 없는 초월자로 알려져 있다.
저렇게 무기력한 모습으로 잡혀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을 터.
더 놀라운 것은.
“……죽어라!”
“우리 일족을 농락한 간악한 마룡이여! 언제까지 진실을 감출 수 있을 줄 알았느냐!”
“숲을 더럽힌 마룡이다! 흉악한 마귀다!”
엘프들 역시 분노에 찬 낯빛으로 세르핀을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었다.
드워프들은 그제야 내가 했던 말을 하나둘 믿기 시작했다.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야 달라진 것이다.
하지만, 아직 멀었지.
더 쐐기를 박아줘야 한다.
“엘드린.”
난 뼈삼이의 몸을 빌린 그녀를 불렀다.
“예, 말씀하세요.”
“저 화살의 틈을 더 옥죄어주세요.”
조금 더 작은 몸으로 변할 수 있도록.
드워프, 정확히는 볼카누스 크기에 맞게.
나는 바위 일족에게 의장의 정체도 확인시켜 줄 생각이었다.
– 흥, 허접한 술수로군.
하지만 거대마룡은 재빠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전부 모여 있는 종족들과 그 앞에 내세워진 본인.
그게 무얼 의미하는지, 용이나 되는 존재가 모를 리 없었다.
– 후.
용은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망설임 없이 볼카누스로 변해버렸다.
호오, 자신 있다는 건가?
– 바위 일족의 순진한 전사들이여, 들어라!
의장 볼카누스의 포효가 전선을 쩌렁쩌렁 울렸다.
– 왜 이렇게 멍청하느냐? 내 항상 말하지 않았나! 엘프들의 사술이야말로 마룡보다 간악하다고! 너희는 속고 있다. 간악한 하이엘프 퀸의 계략에 걸려, 나 의장을 억압하고 있다!
용의 마지막 선택.
그것은 바로 드워프들을 다시 회유하는 것.
– 기억하라. 500년 전쟁에 있어 진정한 억제력이 누구였는지! 나 없이 바위 일족이 미래를 그릴 수 있을 듯싶으냐! 정녕 내가 죽고 나서야 땅을 치고 후회하겠느냐!
거대마룡의 시선이 전장을 오시했다.
“뭐, 뭐지?”
“뭐가 맞는 건지 모르겠다!”
“의장의 말이 사실이라면? 알고 보니 주동훈이 엘프의 첩자라면?”
“이봐! 주동훈이 그럴 리가 없잖아!”
“호감을 얻으려 했던 첩자일 수도 있지! 솔직히 하이엘프 퀸이 아니면 어떻게 의장을 잡겠어?”
거대마룡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확실히 드워프들은 순진무구, 아니…… 멍청했다.
고작 저런 선동에 당할 정도라니.
“…….”
용은 계속해서 설득했고, 드워프들은 그야말로 대혼란에 빠졌다.
500년간 믿고 따랐던 의장.
그리고 최근 나타난 은인.
“쩝, 미안하네.”
지켜보던 다그나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우리 일족이 저렇게 멍청할 줄이야. 부끄러워서 얼굴을 못 들겠구만.”
그러고는.
내 옆으로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증폭(A급) 스킬은 일정 공간에 걸리는 기술이다.
그렇기에, 다그나르 역시 효과를 받는다.
– 이 멍청이들아!
그가 배에 힘을 주고 외쳤다.
– 왜 가린 눈을 벗기고 진실을 보여줘도 다시 눈을 감는가! 망치질을 놓았다고 뇌 질까지 놓아버린 게냐? 이 후레자식들아!
다그나르의 신랄한 욕설.
‘호오?’
나는 그 모습을 한 발짝 비끼어 지켜보았다.
그래.
너희 종족 일은, 너희 종족끼리 해결해야 하는 게 맞는 거지.
아무리 호감도 100이라 해도 난 결국 외부인일 뿐이니까.
“뭐라? 후레자식?”
“쟨 누군데?”
“다그나르다! 주동훈 옆에 있었던 놈!”
“네가 뭔데 후레자식이니 뭐니, 막말하는 게냐!”
안 그래도 혼란스러운 상황에, 갑작스러운 욕설까지 가미되자.
드워프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하지만 다그나르는 물러서지 않았다.
– 흥, 눈앞에 위대한 조상을 두고도 예를 갖추지 않고 있으니, 후레자식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아까 드미르와 엘드린의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일까?
몇몇 드워프들이 움찔했다.
– 여기! 위대한 드미르의 영혼이 지켜보고 있다! 더는 쪽팔린 모습 보이지 마라! 바위 일족이여! 의장이 정말 강하다면, 왜 저런 저급한 화살에 갇혀 있겠는가! 내가 보았다! 내가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의장은 간악한 마룡이었고! 우린 위대하신 조상 덕에 용의 폭압에서 벗어나 엘프들과 싸우는 것만으로 그칠 수 있었던 거다!
다그나르의 연설은 단순하고 무식했다.
하지만 확실한 건 호소력이 있었다.
‘역시 도움 될 줄 알았다니까.’
나는 미소를 지었다.
다그나르는 본인보다 종족을 위하는 자였다.
그렇기에, 그 진심이 더욱 절절하게 느껴졌다.
– 저기 엘프들을 보아라! 색안경을 벗어던지고 보아라! 저 눈물이 거짓으로 보이는가? 악어의 눈물로 보이는가? 저들은 진심으로 분노하고 있다! 본인들의 퀸이었던 세르핀에 대해! 500년간 우릴 속여왔던 거대마룡에 대해 말이다!
– 시끄럽노라!
용이 간섭한 것은 그때였다.
– 선동당한 것은 저 미숙한 드워프다! 너희는 너흴 위해 500년간 일해왔던 의장의 말보다, 고작 엘프의 사술에 걸린 어린 드워프 말을 믿을 것인가? 정녕 멍청해도 그렇게 멍청하단 말인가?
– 닥쳐라! 마룡!
– 뭐라?
– 네가 한 짓만 생각하면 아직도 열불이 난다! 네가 우리를 위해 한 게 뭐가 있느냐! 전쟁을 벌여놓고 뒤에 빠져서 구경만 한 거? 아니면, 블랙스미스 기술을 매장시키고 어린 드워프들에게까지 전쟁을 강요한 거?
– 이놈이?
– 네가 진짜 의장이라 해도 탄핵이다, 이 새끼야!
– 새끼? 크아아아아! 이 어린노무 드워프가! 죽고 싶으냐!
“…….”
정정한다.
드워프만 멍청한 게 아니라, 용도 멍청했다.
세상에.
때려잡는 거밖에 할 게 없어서, 지능이 덜 발달한 건가?
“…….”
내가 딱히 나설 것은 없었다.
이건 명백히 다그나르의 캐리.
드워프들의 민심은 이미 돌아섰다.
웃기는 건, 되찾은 민심이 용의 분노 때문이 아닌…….
단순히 드미르 때문이라는 것.
“맞아, 그 솜씨. 조상님의 것이었어.”
“그……. 망치질, 역시 예사롭지 않더라니. 위대한 드미르셨던 거야?”
“나는 간만에 심장이 뛰는 걸 느꼈다네. 비록 망치를 놓은 지 200년이 흘렀지만……. 우린 역시 태생적인 대장장이였던 걸세.”
“하지만 의장은 우릴 탄압했지.”
“망치를 들지 못하게 했어. 자유를 억압했어.”
“자유…… 억압…… 거대마룡.”
“그래, 의장이 마룡이었다.”
하나둘.
정신을 차려갔다.
그래, 500년 동안 농락당해 놓고.
또 당하면, 그때부턴 유죄지.
“그래, 우리가 왜 엘프랑 싸워야 하는가? 그 이유도 어이없다. 고작 선조의 유물 하나를 찾기 위해 500년간 고통받아야 한다니……. 그게 말이 된다 생각하는가?”
“맞네, 선조 시절엔 모두가 동포였다지?”
“숲이나 바위나 다 같은 자연인데, 척질 이유가 없었지.”
그들은 단순한 만큼 고집도 적었다.
인정할 건 인정할 줄 아는 멋진 종족이었다.
‘좋구나.’
이곳 던전, ‘숲과 바위’에 온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두 종족이 전쟁을 멈추고, 정신을 차리고 있는 모습이다.
“세외의 존재여.”
옆에서 드미르가 중얼거렸다.
엘드린도 가까이 다가와 말을 꺼냈다.
“감사해요. 덕분에 모든 준비는 끝났어요.”
“준비요?”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제 용을 완전히 봉인시켜야죠.”
“아?”
저거.
봉인시킬 수 있는 거였어?
“의식의 조건은 이미 이루었어요.”
엘드린이 하늘을 바라보았다.
비록 얼굴은 뼈다귀였지만, 은근히 미소 짓고 있는 것 같은 건 착각일까?
“조건은 바로 두 종족의 완전한 화합. 두 종족의 화합이 깨지지 않는 이상, 용은 절대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없을 거예요.”
“아아, 조건부 의식이군요.”
화합을 매개로 한 봉인.
완전한 봉인은 아니지만, 이 세계가 가질 수 있는 세계관으로는 적절한 듯싶었다.
마치, ‘신’이 정해 놓은 느낌?
싸우지 말거라.
싸우면 벌을 내리겠다.
이런 느낌으로다가.
– 크크크, 그래. 완벽하게 졌군.
의식이 성사됨을 알았음일까?
용은 포기했다.
푸념하며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나름 500년간의 노력에서 지쳤는지, 피로가 가득한 낯빛이었다.
– 하지만, 날 완전히 봉인할 수 없을 터. 기다리거라. 언젠가 다시 나타나서 너희를 파멸로 이끌 것이니!
스스슷!
용의 말투는 장엄했다.
나직한 경고와 함께 점점 세상과 멀어졌다.
금제의 구슬 속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고오오오오!
엄청난 폭압과 함께 세상을 드리우는 거대마룡의 그림자가 잠깐이나마 전선에 내비쳤다.
세상을 오시하던 용의 본 모습.
“흐억!”
“……저게 용의 모습?”
엘프도, 드워프도.
넋 놓고 그 모습을 바라봤다.
그 엄청난 모습에 경고 역시 더 크고 두렵게 와닿았다.
두 종족의 가슴을 울렸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내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끝났나?”
“그래, 다 끝났다네.”
다그나르가 웃었다.
처음으로 보는 환한 미소였다.
찐으로 행복했을 때, 나오는 웃음.
“자네 덕분에.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걸 경험할 수 있었네. 이제는 은인이란 말도 자네를 칭하기에는 아까운 단어야.”
“…….”
“우리 바위 일족은 영원히 자네를 기릴 것이네. 자네의 동상을 세울 것이고, 모든 고서에 자네의 이름을 기록할 것이야.”
순수한 고마움의 표시.
다그나르는 손에 흐르는 땀을 옷에 닦은 뒤, 나에게 내밀었다.
나는 미소와 함께 그 손을 맞잡았다.
‘좋네.’
미묘한 기분이었다.
누군가한테 받는 순수한 호의가 이렇게 기분 좋은 것이었나?
내 꿈이었던 랭커.
랭커로서 받는 헌터들에 대한 존경심과는 또 다른 기분이었다.
“들었죠? 화합 안 하면 또 용이 나타난다네요.”
“하하, 들었지. 나뿐만이 아니라, 여기 있는 모든 존재가 다 들었을걸세.”
얼마 지나지 않아, 퀘스트 클리어를 알리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축하합니다!] [마침내 두 종족의 갈등이 해소되고 평화를 되찾았습니다.] [보상이 도착합니다!]‘보상!’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단 하나.
뼈삼이와 뼈육이의 진정한 각성!
그에 맞추어, 드미르와 엘드린이 다가왔다.
“고맙네, 세외의 존재여. 그대 덕에 마음 편히 잠들 수 있겠어. 하나, 약속은 지켜야겠지?”
“저희는 이 영혼이 다할 때까지 그대를 진심으로 따를 거예요. 그대의 수족이 될 것이며, 그대를 위해 싸울 거예요.”
나를 위해 싸운다는 말이 이렇게 든든하게 들릴 수 있을까?
“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나는 마주 고개를 숙였다.
저들이 나를 따르는 만큼.
나 역시 저들에게 좋은 추억을 남겨줄 거다.
이 세계를 벗어나, 다른 세계를 여행하는 즐거움을 알려줄 거다.
‘이제, 슬슬 던전도 나가지겠지?’
다행히 아직 시간이 남아 있었다.
용이 완전히 봉인되어야 완전히 클리어 메시지가 뜨는 개념 같은데.
‘나야 좋지.’
챙길 건 챙겨가야 하니까.
엘프 쪽에서는 방직 재료.
드워프 쪽에서는 광물.
엘프야 엘드린의 말이라면 끔뻑 죽을 테고.
드워프야 의원들과 약속한 게 있으니, 당연히 내어주겠지?
나는 진심으로 웃었다.
왠지, 이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