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gressed and I'm the only one with infinite traits RAW novel - Chapter (324)
회귀했더니 나 혼자 특성 무한-324화(324/330)
“이건…….”
갑자기 텐릴이 고개를 들어 저 먼 곳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세요?”
“어디 불편한 것이라도 있으신가요?”
갑작스러운 텐릴의 반응에 얼음의 정령들이 놀랐다.
앞다투어 텐릴에게 무슨 일이 물어왔다. 그만큼 지금 얼음의 정령들이 텐릴을 의지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하긴, 텐릴이 키릴을 없애고 얼음의 정령왕이 되면 그들이 모셔야 할 미래의 왕이 눈앞에 있는 것이다. 텐릴의 사소한 반응 하나하나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게 이해가 갔다.
“오고 있다.”
텐릴이 성식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끄덕.
성식은 텐릴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텐릴 보다도 먼저 놈의 움직임을 알아차린 게 성식이었다.
성식이 아무 말 하지 않은 것은 이번 일에 관해서는 철저한 방관자 역할을 하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키릴이!”
“그자가 움직였다는 말인가요?”
“으으…….”
키릴이 오고 있다는 말에 얼음의 정령들의 안색이 대번에 굳었다.
그들에게는 키릴이 움직였다는 말은 저승사자가 움직였다는 말과 동일하기 때문이었다.
“일단 결계 밖으로 나가겠다.”
텐릴은 그 말과 함께 은신 결계 밖으로 나갔다. 키릴이 자신의 존재를 알아채고 이쪽으로 오는 게 확실했다. 그렇다면 굳이 여기서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전투가 펼쳐진다면 이곳은 쑥대밭이 될 터였다. 괜스레 이곳에 숨어있는 얼음의 정령들에게 피해를 줄 필요가 없었다.
“이곳이 적당하겠군.”
텐릴은 결계에서 제법 떨어진 곳에서 널찍한 공터를 발견했다. 이곳에서 전투를 펼치기에 딱 좋아 보였다.
“텐릴 님이 이길 수 있을까요.”
“제발…….”
공터에서 제법 떨어진 곳까지 얼음의 정령들이 따라 나왔다.
그들은 자신들의 존망이 걸린 전투를 결계 속에서 기도만 하고 있을 생각이 없었다.
텐릴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도울 수 있는 게 있다면 돕고자 하는 게 그들의 심장이었다.
“너무 그리들 걱정할 필요 없어요.”
“…….”
“그러고 보니 당신은 누구죠? 인간이 맞는 거죠?”
“혹시 텐릴 님의 게약자이신가요?”
얼음의 정령들이 성식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분명히 느껴지는 기질은 인간이 확실했다. 어떻게 인간이 이곳에 들어올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텐릴과 연관이 있는 존재이고, 텐릴이 은연중에 깍듯이 대하는 것을 보고 범상치 않은 존재라고만 생각했다.
“아무리 계약자라고 할지라도, 인간이 정령계에 들어설 수는 없을 텐데…….”
상급의 얼음의 정령인 아이서 중 하나가 중얼거렸다. 그의 말대로 계약자라 해서 정령계에 들어 올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건재했던 펜릴의 계약자면 또 몰라도.
완연한 얼음의 정령왕이었던 펜릴이었다면 이곳은 그의 의지로 만든 공간이기 때문에 계약자가 넘어올 수 있었다. 하지만 텐릴은 펜릴이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얼음의 정령들이 성식의 존재에 대해서 의문을 품은 것이었다.
“그…….”
얼음의 정령들은 말없이 미소를 짓고 있는 성식을 보며 무언가 더 물으려 했지만, 그 물음을 이어가지 못했다.
쿠아아아아앙!
저편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오며 거대한 존재감을 가진 자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키릴……!”
“그가 왔어.”
“으으으…….”
얼음의 정령들은 키릴이 내뿜는 기운에 노출된 것만으로도 벌벌 떨었다.
순수한 냉기의 정령력만을 접해온 그들에게 키릴이 내뿜는 혼탁한 기운은 소름 끼칠 정도로 끔찍한 기운이었다.
“크하하하하.”
키릴은 텐릴을 마주하고 나서 대번에 광소를 터뜨렸다. 환희에 가득 찬 웃음이었다.
“맞구나. 정말로 마지막 파편이야.”
그의 눈이 희열로 물들었다. 파편 중 하나가 다른 차원으로 튕겨 나간 것을 알고 나서 포기할까 고민하던 중이었다.
그런 중에 제 발로 찾아온 텐릴의 존재는 그렇게 기꺼울 수가 없었다.
기분이 좋은 듯 푸른 털을 휘날리는 거대한 늑대. 외형만 보면 펜릴의 재림이라고 부를 수 있는 키릴이 텐릴에게 선고하듯이 입을 열었다.
“원래는… 보는 즉시 찢어 죽이려 했으나, 마지막인 만큼 자비를 베풀어 편안하게 보내주마.”
키릴의 말은 이미 텐릴을 아래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무 근거 없이 하는 말이 아니었다. 키릴은 텐릴을 마주하자마자 텔릴의 전력부터 살피었다.
생각보다 가진 바의 힘이 다른 파편보다 컸지만 그뿐이었다. 자신의 상대는 아니었다.
저 멀리서 이곳을 지켜보고 있는 얼음의 정령들은 두말할 것도 없이 자신에게 위협이 되는 존재들이 아니었다.
특이한 게 있었다면.
“호오. 인간이라? 인간이 어떻게 이곳에 들어왔지?”
인간이 이곳에 들어왔다는 게 의외였을 뿐.
큰 의미는 두지 않았다.
“네놈의 계약자더냐? 크크크. 그렇구나. 펜릴의 계약자가 이곳에 들어올 수 있었듯이 파편의 계약자들도 이곳에 들어설 수 있는 것이었어.”
키릴은 혼자 결론을 내렸다. 인간이 이곳에 들어선 것은 특이하긴 했으나, 텐릴의 계약자라고 생각하면 이해범주 안에 있는 일이었다.
“좋다. 텐릴을 여기까지 데려온 것에 대해 네놈은 살려주도록 하마.”
키릴은 성식에게 자비를 베푸는 듯이 입을 열었다.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였다.
그 모습을 보는 성식은 기도 차지 않았지만 묵묵히 키릴이 떠드는 것을 지켜보았다.
―허허허.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딱 그 짝이구나.
상황을 지켜보던 파천이 기가 찬다는 웃음을 흘렸을 뿐이었다.
‘흐음. 확실히 심연의 마력에 잠식되어 있네.’
그사이에 성식은 키릴을 관찰했다. 놈은 근원은 심연의 기운에 잠식되어 가고 있었다. 아직 100% 심연의 기운에 잠식된 건 아니지만 절반 이상이 심연의 기운에 잠식당한 상태였다.
‘저 상태로 심연의 기운에 완전히 잠식되면 어떻게 되는 거지?’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이형의 신, 온-그라흔도 심연의 기운에 완전히 잠식된 상태는 아니었었다.
온-그라흔도 그렇고 키릴도 그렇고 심연의 기운에 온전히 잠식당한다면 무엇인가 대단한 이변이 발생할 것이라는 예감이 스쳤다.
그것은 절대 신격에 가까워지면서 생긴 예지에 가까운 예측이었다.
‘좋은 일은 아니야.’
성식의 눈이 가라앉았다.
느껴지는 기운부터 불결했다.
심연의 지배자 파르티엔. 그와 관계가 있어 보이는 이 힘의 정체를 알아낼 필요성을 느꼈다.
‘신계에 가봐야겠군.’
이번 전투가 어떻게 되든 이곳에서의 일이 마무리된다면 신계에 들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르티엔을 대면해서 직접 이야기를 들어봐야 전후 사정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생각하는 상황이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또 다른 근원 포식자의 탄생. 그것만이 아니기를 바랐다.
정녕 그런 것이라면 불필요한 피를 흘려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자, 그러면 처형식을 진행해 보겠노라.”
그사이 키릴이 전투태세를 완연히 갖췄다.
푸확―!
키릴의 몸에서 푸른 마나가 뿜어져 나왔다.
불결하고 조잡한 마력의 덩어리들.
심연의 마력이었다.
꽈르르르릉―!
우레가 우는 소리와 함께 강렬한 뇌전이 휘몰아쳤다. 조잡한 마력과 다르게 지금 이 뇌전은 강력한 힘을 품고 있었다.
파지지지지지짓―!
텐릴을 향해 직격을 쏘아져 간 뇌전은 텐릴의 앞에 세워진 얼음 방패에 막혀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쩌저적.
단 일격에 얼음 방패에 균열이 생겨났다.
“호오. 막아?”
키릴은 텐릴이 막아낼 줄은 몰랐다는 듯이 짙게 웃었다. 생각보다 텐릴이 지닌 냉기의 순도가 높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만큼은 아니었지만 텐릴도 정령계 밖에서 꽤나 힘을 쌓아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 이 정도는 되어야 왕의 자리를 건 투쟁이지 않겠느냐. 크하하하.”
키릴은 그리 웃으며 다시 마력을 흩뿌렸다.
이번에는 불이었다.
화르르륵.
키릴이 구현한 불은 그 색깔마저도 푸르렀다. 불의 온도 때문에 파랗게 보이는 게 아닌, 순전히 심연의 마력에 영향을 받은 불의 색깔이었다.
“이것도 막아보거라!”
슈와악!
불덩이들이 허공에서 긴 궤적을 그리며 텐릴을 폭격했다. 텐릴은 계속해서 얼음의 방패를 생성해 냈지만, 상성이 좋지 않았다. 얼음 방패는 처음에 뇌전을 막아냈던 것보다도 더욱 빠르게 파괴되어 갔다.
“아아아.”
“텐릴 님도… 안 되는 것인가.”
“키릴이 너무 강해.”
“이건… 정말…….”
“그런데 왜… 인간형으로 싸우시는 거죠? 저 모습이 본체일까요?”
밀리는 텐릴을 보며 얼음의 정령들의 탄식이 쏟아져 나왔다.
음울한 기운이 그들을 뒤덮었다. 탄식을 흘리면서도 텐릴이 왜 인간형의 모습으로 싸우는 건지, 저 모습이 본체인 건지 의문이 맴돌았지만 이내 암울함 앞에서 사라져 갔다.
지금 이 상태가 본체가 아니라 한들 결과는 바뀌지 않으리라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음.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보다 못한 성식이 한마디를 내뱉었다. 그러자 몇몇 얼음의 정령들의 시선이 성식으로 향했다.
“당신이 텐릴 님의 계약자인 것은 알겠으나… 이건 힘든 싸움이 될 것 같아요.”
“키릴의 전투력이 저희 예상을 넘어 섰어요. 아아… 설마 펜릴 님에 준하는 힘이라니…….”
“여차하면 저희가 시간을 벌겠습니다. 그대는 텐릴 님과 함께 후일을 도모하세요.”
얼음의 정령들은 현 상황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었다. 격돌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들은 텐릴의 패배를 기정사실화했다.
여차하면 시간을 벌 테니 후일을 도모하라는 얼음의 정령들도 있었다.
성식은 그런 그들을 보며 싱긋 웃었다.
“잘 보세요.”
성식의 음색에 강한 힘이 서렸다.
불안에 떨며 전방을 주시하던 잭 프로스트도, 입술을 앙다물고 침묵하던 애니비아도, 오들오들 두려움에 떨던 아이셔도, 모든 얼음의 정령들이 성식을 바라보았다.
“큰 흐름을 보세요. 지금 텐릴이 밀리는 것 같겠지만 유효타는 전혀 없어요.”
“……!”
“아…….”
성식의 말에 그제야 몇몇의 얼음의 정령들이 탄성을 내뱉는다.
키릴의 격렬한 공격들이 텐릴에게 쏟아지지만, 제대로 적중하는 공격이 하나도 없었다. 위태위태한 텐릴의 모습만 보면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만 같지만, 유효타의 공격이 없으니 또 한없이 계속해서 전투를 벌일 수 있을 것만 같아 보였다.
“미꾸라지 같은 놈!”
때마침 키릴의 분노한 음성이 울려 퍼진다. 그도 자신의 공격이 전혀 먹히지 않고 있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회피 능력만큼은 키릴보다 우위시네.”
“그러고 보니… 정말 공격이 제대로 적중되는 게 하나도 없어!”
이제야 얼음의 정령들의 눈에 희망의 빛이 서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피하기만 해서는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없었다.
“무승부를 노릴 수는 있지만, 이대로는 결코 이길 수는 없어.”
“어떻게든 반격의 기회를 찾아야 해.”
그들의 눈에 이 싸움은 아직도 전망이 밝지 않아 보였다.
“텐릴은 신중한 거에요.”
다시 한번 성식이 끼어들었다.
얼음의 정령들의 시선이 또다시 성식에게 몰린다.
“텐릴은 완벽한 승리를 위해서, 지금 키릴의 공격 패턴과 힘을 느껴보고 있는 것이죠.”
그 말에 얼음의 정령들은 혼란스러운 눈으로 다시금 전방을 주시했다.
성식의 말을 듣고 보니, 과연 그런 거 같아 보이기도 했다.
알쏭달쏭한 표정이 그들의 얼굴에 떠올랐다.
‘이런, 수준 차이가 너무 나는구나.’
성식은 쓴웃음을 지었다.
흐름을 짚어주었지만, 이들의 수준으로는 그 흐름을 읽는 것조차 버거웠다. 그나마 대전사라 불리는 최상위급 정령들만이 어렴풋이 흐름을 느끼기 시작한 것 같았다.
‘곧 승부가 나겠네.’
성식의 눈에는 서서히 공세의 흐름을 가져오려는 텐릴의 호흡이 보였다.
“크으으윽! 쥐새끼 같은 놈! 언제까지 피하기만 할 테냐!”
키릴이 소리치며 화염줄기를 쏟아 내는 순간, 텐릴의 눈이 번뜩였다.
고오오오오―
텐릴은 손에서 냉기의 기운이 응축됐다. 그러더니 잿빛의 기운이 섞이기 시작했다. 그리고서는 곧장 앞을 향해 그 기운을 쏟아내었다.
푸확!
잿빛의 기운이 스며든 냉기 파도가 마주 오는 화염줄기를 집어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