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10)
브라이티스트 다크니스 4의 전투 시스템은 크게 두 가지 계열로 나뉜다.
대체로 인간형 적을 상대할 때 사용되는 회피와 튕겨내기, 그리고 대체로 괴물형 적을 상대할 때 사용되는 방어와 구르기. 마지막으로 특수한 카운터 공격인 패링.
물론 괴물형 적을 상대할 때 회피와 튕겨내기를 사용할 수도 있고, 인간형 적을 상대할 때 방어와 구르기를 사용할 수도 있다. 딱히 시스템적으로 강제된 사항도 아니었고.
그건 어디까지나 효율의 문제였다.
“역시 아이리스가 보는 눈이 있다니까!”
예를 들어 지금처럼 최대 13연타까지 이어질 정도로 무지막지한 연격 패턴을 사용하는 보스 앞에서 구르기를 썼다간, 구르기의 후딜레이동안 한 대를 얻어맞고 경직에 걸린 다음 이어지는 공격으로 난도질당해 뒈져버리기 딱 좋았으니까.
얼음으로 뒤덮인 쌍단검과 붉은 칼날을 가진 검이 연신 충돌하며 날카로운 금속음을 만들었다. 손이 저릿저릿했다. 인간 도살자의 거대 둔기를 튕겨냈을 때보다도 훨씬 더.
팔은 톡 치면 부러질듯이 가녀렸는데 힘이 무지막지했다.
내가 마지막 13번째 공격까지 튕겨내자, 뒤로 몇 발자국 물러나더니 곧바로 다음 패턴을 선보였다. 몸을 앞으로 확 낮추고, 두 팔을 머리 앞에서 교차하며 달려드는 자세.
‘7연격.’
어떤 패턴인지 떠올린 다음, 나도 받아칠 준비를 했다.
저건 3번째와 6번째 공격이 미묘하게 엇박이고, 거기에 낚여서 정박으로 튕겨냈다간 전투 피로가 터져서 사망 확정이었다.
리제의 뒤로 얼음길이 깔렸다. 얼음으로 이루어진 길은 잠시 유지되는가 싶더니 곧 서릿빛 알갱이를 흩뿌리며 폭발을 일으켰다. 서리로 이루어진 안개가 사방에 자욱이 깔렸다.
서리 안개가 깔린 지역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휘둘러지는 쌍단검을 튕겨냈다.
오른손, 왼손, 다시 엇박인 오른손. 그리고 오른손 두 번에 엇박인 왼손 한 번. 마지막은 오른손으로 대각선 긋기.
마지막 대각선 긋기까지 모조리 튕겨내고, 리제가 잠시 멈칫한 틈을 타 내쪽에서 공격해 들어갔다. 검이 팔을 베고 지나가자 그 자리에 옅은 자상이 새겨지더니 피 몇방울이 흘러내렸다.
‘이번에도 분명 제대로 들어간 것 같았는데.’
칼이 무방비 상태에서 맨살이 훤히 드러난 팔뚝에 꽂혔음에도, 생긴 상처라고는 옅은 자상 하나가 전부였다. 고작해야 피 몇방울 흘리게 하고 말 정도로 옅은 자상.
이전에도 공격을 제법 적중시켰었는데, 전부 다 가벼운 상처만 입히고 끝났었다. 아마 게임에서의 HP 개념이 저런 방식으로 적용되는 듯 했다.
리제는 생채기가 죽죽 새겨진 자기 팔뚝을 흘끗 내려다보더니 즐거운 목소리로 외쳤다.
“그래, 그렇지! 그래야지! 남자라면 그 정도 강단은 있어야 하는거잖아? 너,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들어!”
그러더니 다시 한 번 땅을 박차고 내게 달려들었다. 날 쳐다보는 표정엔 명백한 즐거움이 깃들어 있었다. 전투 자체를 즐기는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날 향한 관심과 즐거움이었다.
팔이 베인 것 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느낌이었다. 어차피 게임에서도 한 대로는 안 죽었으니 예상한 일이었다.
눈앞의 인영이 공중으로 훌쩍 뛰어올랐다. 그 몸에 얼음과 서리가 모여들었다. 양손에 든 단검을 각각 역수로 잡고, 칼 끝이 아래로 향하도록 돌려 내리찍을 준비를 했다.
가드 불가 공격이다.
재빨리 거리를 벌리며 뒤로 한 바퀴 굴렀다. 콰드드드득! 하고, 바로 근처에서 얼음 운석이 땅과 충돌하는 섬뜩한 소리가 들렸다. 보자마자 굴렀는데도 아슬아슬했던건가.
‘바닐라였으면 걸어서도 피했는데.’
리제가 착지한 자리를 중심으로 사방팔방에 뾰족한 얼음 송곳이 돋아나 있었다. 끄트머리가 소름끼치게 날카로웠다.
정작 저걸 만들어낸 당사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송곳을 부러뜨리며 밖으로 걸어나왔다. 하긴, 자기가 만들어낸 얼음에 자기가 찔려서 상처 입으면 그건 그거대로 코미디일 것이다.
곧바로 다음 공격이 이어졌다. 팔을 교차시키며 한 번, 우하단에서 좌상단으로 왼손의 단검을 휘두르며 한 번, 그리고 4연격.
그걸 모조리 튕겨내고 마지막 공격을 받아치려 검을 가슴께까지 끌어올렸다. 리제는 한쪽 팔을 뒤로 당기며 단검을 수평으로 맞추고 있었다.
무기 방어로는 가드가 불가능한, 찌르기 계열의 공격이었다.
파훼하려면 공격 타이밍에 맞춰 튕겨내든가, 아니면 회피나 구르기로 피하든가, 그것도 아니면 방패를 들든가 셋 중 하나였다.
ㅡ채앵!
내가 선택한 방법은 당연히 튕겨내기였다.
검신에서 자라난 얼음으로 인해 어지간한 롱소드 수준으로 길어진 푸른색 칼날이, 피 묻은 검의 붉은색 칼날과 마주했다.
몸이 반동을 견디지 못하고 뒤로 주욱 밀려났다. 칼 끝을 땅에 박으며 간신히 다리를 멈췄다. 리제는 내가 이것마저 튕겨낼 줄은 몰랐다는 듯 깜짝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와, 이것까지 막았다고? 아이리스 얘는 어디서 이런 훌륭한 신입을 데려왔대?”
그 틈을 타 팔에 달라붙은 성에를 털어내고, 저릿저릿한 손아귀도 가볍게 털었다.
검에 빙결 저항 인챈트가 되어있지 않으니, 아무리 완벽하게 튕겨낸다 한들 빙결 게이지는 조금씩 쌓이고 있을 것이다. 그 전에 끝낼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다.
리제의 몸에 자잘한 상처가 제법 있다고는 하지만, HP를 확인할 수가 없으니 체력은 어디까지나 어림짐작으로만 계산해야 했다.
예전에 스피드런을 할 때는 그런 자잘한 사항까지 다 외우고 다녔었는데, 나중에 가서 스피드런보다는 1렙 맨손런에 집중하다보니 금세 다 까먹어버렸다.
“힘 조절 해주신다고 하지 않으셨던가요?”
“아니, 나도 봐주려고 했지. 봐주려고 했는데, 네가 너무 잘 막는걸 어떡하라고? 그러니까 나도 자꾸 어디까지 받아칠 수 있을지 궁금해지잖아. 아이리스랑 에리카도 그렇게 생각할걸?”
저만치에서 우리 대련을 구경중인 둘을 흘끗 돌아보았다.
리제의 말대로, 아이리스는 가슴 밑에서 팔짱을 낀 채로 미동도 없이 우릴 쳐다보고 있었고 에리카는 흥미진진하다는 눈으로 우릴 쳐다보고 있었다.
뭐가 됐든, 둘 다 대련을 종료시킬 생각이 없다는 것 만큼은 사실인 듯 했다.
“아이리스, 이만하면 시험은 통과 아니야? 대체 언제까지 싸우게 하려고?”
혹시나 싶은 마음에 아이리스를 넌지시 떠보았다. 내 입장에서는 밑져야 본전 아닌가. 되면 리제의 최종 패턴을 스킵하고 넘어갈 수 있으니 좋고, 안 돼도 딱히 손해볼 건 없었다.
어차피 여기서 끝난다고 해도 리제나 에리카가 나를 불합격시키지는 않을 것 같으니 말이다.
아이리스는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이제껏 보여준 실력만으로도 자격은 충분히 입증됐다. 시험의 측면에서라면 지금 끝내도 문제될 일은 없겠지. 둘 모두가 원한다면 여기서 종료하도록 하겠다. 그래도 상관없나, 리제?”
“뭐? 잠깐. 여기서 끝내자고? 진심이야?”
“이만하면 실력은 충분히 확인했을텐데. 나는 입단 시험을 치르라고 했지, 사생결단을 하라고 하진 않았다만.”
“아니, 아직 못 써먹은 기술이 얼마나 많은데! 넌 낭만도 없어, 아이리스?”
“낭만은 다른 곳에 가서 찾아라. 이건 낭만이 아니라 입단 시험이다.”
“이익…… 그럼 딱 하나! 기술 딱 하나만 더 시험해보고 합격시켜줄게! 공격을 그렇게 많이 퍼부었는데 신입을 한 대도 못 때리면 기사단장인 내 체면이 뭐가 돼? 그리고 솔직히, 아이리스 너도 신입이 어디까지 받아칠 수 있을지 궁금하잖아. 안 그래? 응?”
“…….”
아이리스는 잠시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내 입장에서는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저딴 변명이 통한다고? 진짜로?’
“……마음대로 해라.”
‘저게 통하네.’
이것도 옷차림처럼 상식이 개변돼서 그런건가. 저게 왜 통하지.
내가 황당해하든 말든, 아이리스의 허락도 떨어졌겠다 기세가 등등해진 리제가 다시 단검을 치켜들었다. 결국 한 번은 더 싸워야 된 신세가 된 나도 다시 자세를 잡았다.
어차피 기술 하나만 더 쓰고 끝이라 했으니ㅡ
‘……잠깐만. 기술 하나?’
문득 등허리를 오한이 타고내려갔다. 느낌이 많이, 그것도 아주 많이 안 좋았다.
“자, 신입! 조금 미안하긴 하지만, 기사단장의 위엄은 세워야지!”
“힘 조절은 해준다더니, 입단 시험에서 그게 뭐 하는 짓거리에요? 그리고 만약 제가 그것까지 다 막으면 어떡하시려고요? 그러면 위엄이고 나발이고 아무것도 안 남을텐데!”
“이걸 막겠다고? 우리 신입 당돌하네! 그러면 뭐, 좋아! 까짓거, 신입 네가 이것까지 막으면 소원 하나 들어줄게! 야한 것도 괜찮아! 어때, 이러면 좀 각오가 서?”
“그런 거 필요 없으니까 그만둬주면 좋겠는데요!”
“미안, 그건 무리야! 대신 정말로 뭐든 괜찮으니까 잘 생각해봐!”
리제가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쌍단검을 얼음으로 뒤덮었다. 전신에 새하얀 성에가 끼고, 주변 공기가 급속도로 냉각되기 시작했다. 그걸 보자마자 한숨이 푹 새어나왔다.
‘결국 이렇게 됐네. 저 기술 이름이 뭐였지? 서리 폭풍 난격이었나?’
서리 폭풍 난격이란, 닼라 모드에서 추가된 리제 보스전의 최종 연격이었다.
연타 횟수가 20번이나 되는데 한번 한번의 대미지는 더럽게 높고, 유도성까지 미쳐 날뛰어서 구르기로는 어지간하면 못 피하는 지랄맞음까지 갖추고 있었다.
때문에 대방패를 들거나 공격 하나하나를 전부 다 튕겨낼 것을 사실상 강요하는 미친 패턴이었다. 재수가 지지리도 없으면 연격 튕겨내다가 중간에 빙결이 터져서 훅 가기도 했고.
게다가 정말 무진장 악랄하게도, 보스전을 다 통틀어 딱 두 번밖에 안 쓰는 패턴이라 연구를 하는데도 엄청나게 오랜 시간을 들여야 했다.
리제가 팔을 가볍게 수직으로 휘두르자, 사이에 얼음으로 된 길이 깔렸다. 이제 집중해야 한다. 잡생각을 모조리 지워버리고, 오직 저 손에 들린 단검에만 의식을 몰아넣었다.
흐릿한 잔상을 남기며, 리제의 몸이 쏜살같이 앞으로 튀어나갔다.
‘일단 첫 4연격부터.’
몸을 시계 반대방향으로 한 바퀴 돌리고, 그 상태에서 회전을 실은 2연타가 날아들었다. 검과 단검이 충돌하자마자 손에 찌릿한 전기가 느껴졌다. 하마터면 검을 놓칠 뻔 했다.
하지만 그걸 아파하고 있을 틈은 없었다. 서리로 이루어진 폭풍이 단검에 휘감겼다. 첫 2연타를 튕겨내고, 곧바로 피 묻은 검을 가슴 앞까지 끌어당겼다.
팔을 끌어올리자마자 강렬한 충격이 가슴께를 두 번이나 스치고 지나갔다. 충격을 받은 몸이 뒤로 주욱 밀려났다. 보고 막으려 했다면 절대로 못 막았을 속도였다.
그걸로도 모자랐는지 주변에 서리와 냉기가 자욱하게 깔려선, 기껏해야 팔 하나 거리밖에 안 떨어져 있는 리제의 몸이 흐릿하게 보일 지경이었다.
게임에서는 그래도 어느정도 가시성이 확보됐었는데, 지금은 그런것도 아니었다. 솔직히, 이제는 단검의 윤곽조차 희미했다.
눈으로 따라가기를 포기하고, 대신 머리가 아니라 몸이 기억하는대로 움직였다. 마우스 우클릭으로 튕겨내기를 사용했던 기억을 되새기면서 마치 리듬을 타듯이 팔을 휘둘렀다.
‘다음 8연격.’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검과 검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정확히 8번 들리고, 내 몸이 또다시 한참을 뒤로 밀려났다. 리제는 곧바로 덤벼들었다. 자세를 정비하거나 숨을 고를 틈도 주어지지 않았다.
이제는 팔과 다리에 성에가 덕지덕지 달라붙어 움직이기조차 힘들었다. 억지로 팔다리를 움직이는 것에도 한계는 있었다. 19번째, 아니면 마지막 공격에 빙결이 터질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이대로는 못 버틴다. 중간에 한 대 쳐서 공격을 캔슬해야 돼.’
내가 그런 생각을 할 때쯤 16번째 공격이 날아들었다. 그걸 튕겨내고 머리를 굴렸다. 이 다음, 17번째 공격을 튕겨내면 아주 잠깐 한 대를 때릴 틈이 생겨난다.
타이밍을 정말로 잘 맞춰야하는 공격이긴 한데, 성공만 한다면 그대로 경직을 먹여 패턴을 캔슬시킬 수 있었다. 결단을 내리고 날아드는 단검을 맞받아치며 공격할 준비를 했다.
그러자마자 몸이 확 무거워졌다.
무언가가 몸 전체를 밑으로 잡아끄는 느낌에 다리가 크게 휘청였다. 덕분에 칼 끝이 잠시 멈칫했다.
‘전투 피로……!’
급격하게 무거워진 몸을 가다듬었다. 아직 연격은 이어지지 않았으니 시간은 있었다. 내가 다시 피 묻은 검을 휘두르기 직전, 리제의 입꼬리가 끌어올려지는 모습이 보였다.
자세를 살폈다. 얼핏 보기에는 어정쩡하게 서 있는 것처럼 보이는 자세. 하지만 나는 저게 뭘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지금 공격했다간, 곧바로 검이 패링당하고 카운터를 얻어맞을 것이다.
그 사실을 인지한 내가 억지로 검의 궤도를 비틀어버리기 전에, 나와 리제의 사이에 누군가 흐릿한 잔상을 남기며 끼어들었다.
“그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