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101)
‘기 빨린다는 말이 이럴 때 쓰는 표현인가.’
나는 비틀거리며 방을 나섰다. 양 옆으로 여전히 방긋거리는 표정인 플로레타와 뺨이 약간 붉어진 루나가 따라붙었다. 루나는 옷을 갈아입기 시작한 뒤로부터 쭉 저런 표정이었다.
뭐 한 것도 없고, 교황들의 탈의 장면을 눈앞에서 직관했을 뿐인데 기운이 죄다 빠져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반응 안 하려고 필사적으로 긴장하다가 힘이 풀려서 그런 모양이었다.
결국 내가 마지막으로 고른 것은 플로레타와 루나가 처음으로 집어들었던 드레스였다.
두 명이 고르지 않고 남아있던 옷은, 아니, 그 도저히 옷이라고 불러주기가 불가능한 무언가에 대해서는 더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아주 특별한 날에만 입을 수 있는, 신에게 제일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만들어진 의상이라는데…… 그냥 노출이 제일 심하다는 걸 돌려서 말한거였다.
플로레타와 루나가 집어든 C스트링에 가슴 가리개, 마이크로 슬링샷보다 노출이 훨씬 더 심했다. 처음에는 진짜로 그냥 다 벗고 있는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그게 입은거라더라.
선택지는 사실상 하나 뿐이었다.
‘내 앞에서 옷 갈아입던 것도 그렇고.’
교황들이 시착을 해보겠다며 내 눈앞에서 성복을 풀어헤치기 시작했을때는 정말로 과장 하나 안 보태고 소파에서 펄쩍 뛰어올랐을 정도였다. 도저히 머리에서 잊혀지지가 않았다.
내가 식겁하는 모습을 본 플로레타가 꺄르륵 웃으면서 뒤돌아주긴 하던데, 플로레타의 머리카락이 워낙에 풍성해서 다 가려진거지 어지간한 사람이었다면 택도 없었을 것이다.
당장 루나가 그랬다. 루나도 나름 머리카락이 화려한 편인데, 뒤돌아서 옷을 갈아입다가 중간중간 엉덩이가 밖으로 삐져나오는 걸 보고 잠시 생각이 멈췄었다.
도통 진의를 알 수가 없었다. 굳이 남자가 보는 와중에 옷을 갈아입을 필요가 있는건가. 사방에 널린 게 커튼이니 그 뒤로만 가더라도 절대 안 보일텐데.
노출 자체에 대한 거리낌이 없는건가 싶었지만, 내가 삐져나온 엉덩이를 쳐다봤다는 사실을 들키자 루나가 곧바로 얼굴을 붉혔던 걸 보면 그런 것은 또 아니었다.
‘……모르겠다.’
나는 생각을 포기했다. 여기서 이러고 있어봐야 답을 맞힐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방 안으로 들어갈때처럼 플로레타와 루나가 나를 가운데 두고 양 옆으로 둘러싼 채, 우리는 원형 공간으로 돌아왔다. 저쪽도 끝났으려나, 하는 생각으로 커튼을 열어젖혔다.
나와 똑같은 표정을 한 기사단장들이 소파에 널브러져 있었다.
“…….”
넋을 거의 놓아버리다시피 한 얼굴이었다. 눈에는 초점이 없는데다, 소파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선 전신이 축 늘어진 상태였다. 입에서는 흐으으으으, 하는 신음이 새어나왔다.
제각기 멋을 뽐내던 드레스들은 차곡차곡 정리되어 한 곳에 모여 있었다. 그 옆에서 아주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두 손을 한 데 모으고 차렷 자세로 서 있는 수녀들은 덤이었다.
발소리가 들리자 기사단장들의 고개가 돌아갔다. 리제가 진이 다 빠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델타 너는 어디 갔다왔어?”
“교황 성하들 드레…… 드레스, 골라드리러.”
그것들을 차마 옷이라고 부를 수가 없었던 탓에, 잠시 내적 갈등이 일어나 말을 버벅거렸다. 내 대답을 들은 리제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교황 성하들 드레스를 왜 델타 네가 골라?”
그러게 말이다. 교황들이 입을 드레스를 이단심판관이나 이단심문관도 아니고 왜 내가 골랐을까. 대답해주고 싶어도 나 역시 아는 게 없었다.
기묘한 침묵이 이어졌다.
“귀빈께서 아주 많은 도움이 되셨답니다. 안목이 무척이나 뛰어나신 분이셨지요.”
플로레타가 방긋 웃으며 내 팔에 달라붙었다. 리제는 설마 나 대신 교황이 직접 답변을 해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지 어버버거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렇습니다. 귀빈께는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루나도 평소의 차갑고 도도한 얼굴을 한 채 슬그머니 내 팔에 달라붙었다. 여기 들어오기 직전까지만 해도 뺨에 홍조를 띄웠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리제는 멍한 얼굴로 그런 교황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드레스는 모두 선택하셨는지요?”
플로레타의 질문에, 이번에는 아이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습니다. 교황 성하.”
“무엇을 고르셨는지 알려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교황의 요청에 수녀들이 다시 앞으로 나섰다. 아이리스와 에리카, 클라우디아는 소파에 늘어져있다 말고 동시에 흠칫 몸을 떨었다. 동공이 파르르 떨렸다.
오직 리제만이, 내 옆에 달라붙은 교황들을 조용히 쳐다보고 있었다.
우리가 그 장소를 빠져나온 것은 시간이 한참이나 흘러간 뒤였다. 밖으로 나가니 스텔라와 셀레네가 전투 수녀들과 함께 기다리는 중이었고, 또다시 호위를 받으며 숙소로 돌아왔다.
아침부터 하루종일 그놈의 연회용 의복에 시달리다시피 한 우리들이 지친 심신을 이끌고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려는 찰나, 클라우디아가 나를 멈춰세웠다.
“델타. 잠깐만.”
“네?”
“쉬기 전에 잠시 이야기 좀 하자.”
다른 기사단장들에게 먼저 올라가라는 손짓을 한 클라우디아는, 이쪽을 빤히 주시하던 리제까지 윗층으로 올라간 걸 확인하고 둘만 남은 것이 확실해진 이후에야 입을 열었다.
“오늘 밤 말인데. 방문 잠그지 말고 자라.”
“……그게 뭔 소립니까?”
“되묻지 말고. 그냥 시키는대로 해. 어차피 평소에도 안 잠그고 잤잖아.”
“원래부터 그랬던 거 알면 이런 부탁은 왜 하시는데요?”
내 질문을 들은 클라우디아가 히죽 웃었다.
“나는 감이 좋거든.”
“감이 좋다니, 그게 뭔…….”
“됐고. 내 말대로 하기나 해. 괜히 심술 부려서 반대로 하지 말고. 난 이제 올라간다. 하루종일 옷을 입었다 벗었다만 반복했더니 피곤해서 죽을 지경이야.”
나는 손을 흔들며 떠나가는 분홍색 뒷모습을 멍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갑자기 왜 저러는지는 당연히 알 수 없었다.
머리가 너무 복잡했다.
그날 밤. 나는 클라우디아가 남겼던 말 탓에 쉽사리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방문 잠그지 말라고?’
어차피 원래도 안 잠갔다. 클라우디아 본인이 직접 언급했듯이, 기사단장들도 아는 사실이었다. 이미 몇 번이나 내 방에 찾아왔었으니까. 자기들도 방문 같은건 안 잠그기도 하고.
그런데도 굳이 저런 말을 했다는 건…….
‘뭔가 다른 뜻이 있나?’
생각이 많아지니 자연스레 잠도 달아났다.
어차피 성국에서 할 일이라곤 쉬는 것 뿐인데다 연회까지는 이틀이나 남았으니 늦게 자서 늦게 일어나도 상관은 없었지만, 막상 이렇게 안 자고 있으려니 뭔가 기분이 묘했다.
시간이 흐르고, 밤이 찾아와 환한 만월의 달빛이 방 안으로 비쳐들 무렵이었다.
ㅡ달칵.
클라우디아가 했던 말의 진의가 무엇일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고 있은지 얼마나 지났을까, 누군가 내 방의 문을 여는 달칵 소리가 들렸다. 반사적으로 신경이 곤두섰다.
그 짧은 시간에 수많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눈을 뜨고 맞이해야 할지, 자는 척을 해야 할지. 눈을 뜨고 맞이해준다면 어떤 반응을 보여줘야 할지.
“…….”
결국 내가 선택한 것은 자는 척이었다.
이유는나도 몰랐다. 밤에 몰래 스마트폰을 하다가 인기척이라도 난다 싶으면 끄고 자는 척을 하던 게 습관이 돼서 그런건지, 아니면 뭔가 분위기가 그래야 할 것 같아서인지.
문이 다시 닫혔다. 누군가 내 방 안에 들어와 있었다. 철컥, 손잡이에 달린 잠금장치를 거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아주 옅은 발소리가 천천히 내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방으로 들어온 누군가는 침대의 끄트머리에 잠시 멈춰서더니, 그 위에 손을 짚었다. 종아리 옆이 아래로 푹 꺼졌다. 곧이어 무릎 옆의 공간도 누군가 손을 짚은 듯 푹 꺼져들었다.
꺼져들어간 공간이 움직였다. 발목 옆에서 무릎 옆으로, 무릎 옆에서 허벅지 옆으로, 허벅지 옆에서 허리 옆으로, 허리 옆에서 어깨 옆으로.
나를 사이에 넣은 채로 기어서 올라오고 있는 듯, 양 옆의 침대가 마구 내려갔다 솟아났다를 반복했다. 몸이 계속해서 좌우로 들썩였다. 설령 내가 자고 있었더라도 이것 때문에 깼겠지.
움직임은 얼마 안 가 멈췄다. 얼굴 바로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 상태로 다시 조용해졌다가, 침묵을 깨는 목소리가 들렸다.
“델타, 자?”
‘……리제?’
리제였다.
당황한 나머지 계속해서 자는 척을 하고 있으려니, 문득 손가락 하나가 내 입술을 쓸어내렸다.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졌다.
“안 자는거 다 알아. 일어나.”
이쯤되니 더 이상 눈을 감고 있을 수도 없을 듯 했다. 슬쩍 눈을 떴다. 바로 앞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리제가 눈에 들어왔다. 눈이 마주치자, 리제가 베시시 웃었다.
내게 반쯤 올라타다시피 해서는 손으로 내 얼굴 양 옆을 짚고, 한쪽 무릎은 내 왼쪽 옆구리에 바싹 붙이고, 다른쪽 무릎은 내 배 위에 살짝 올려놓았다. 꼭 나를 덮치는 듯한 모양새였다.
일부러 그랬는지, 아니면 눈치를 못 챈건지. 왼쪽 민소매의 어깨끈이 팔뚝 중간까지 내려가 있었다. 그 탓에 윗가슴이 평소보다 더 많이 드러났다.
아래로 한껏 쏠린 가슴이 리제가 움직일 때 마다 좌우로, 혹은 위아래로 흔들렸다. 보는 것만으로도 묵직한 중량감이 느껴지는 무게였다.
그 사이로 생겨나 있는 거대한 협곡에 시선이 쏠렸다가, 내 행동을 자각하고 급히 눈을 올렸다. 이미 늦은 모양이었다. 리제는 나를 보며 방실방실 웃고 있었다.
“……여긴 왜 왔어? 그것도 이렇게 늦은 시간에.”
자기 가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는 걸 모를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헛기침을 하며 화제를 돌렸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궁색했다.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쳐다보던 리제는, 이번 한 번은 넘어가주겠다는 듯 순순히 질문에 대답해주었다.
“왜 왔겠어?”
“…….”
“늦은 밤. 남자 방에 혼자서 찾아온 여자. 잠긴 문. 우리 자세. 뻔하잖아?”
“알아. 그냥 해본 소리야. 이런 상황에서까지 억지로 모른척 할 순 없잖아. 내가 그렇게 눈치가 없는 사람도 아니고.”
“글쎄. 눈치 못 챈 것 같던데.”
“내가? 뭘?”
“이것 봐. 모르고 있네.”
리제가 팔꿈치를 굽혔다. 얼굴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리제가 내쉬는 숨결에 내 숨결이 섞였다. 따뜻한 입김이 내 입술을 스쳐지나갔다.
파랗디 파란 눈동자가 내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원래는 그냥 너 천천히 유혹하면서, 네가 더 못 견디고 나 덮칠때까지 기다리려고 했거든. 남자 위에 올라타는 건 내 취향이 아니라서.”
입술을 쓸어내리던 손가락이 앞머리로 옮겨졌다. 사락, 리제가 내 앞머리를 걷어올렸다.
“그런데, 이대로 가다간 빼앗겨버리겠더라고.”
“나를?”
“당연히 너지. 그럼 누구겠어?”
“누구한테?”
얼굴이 더 바싹 들이밀어졌다.
“교황 성하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