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109)
“쟤들, 이단심문관이 남겨둔 전투 수녀들이잖아? 뭔데 단체로 저러고 있어?”
우리가 본 것은 셀레네가 아우로라를 호위할 목적으로 저택에 남겨두었던 전투 수녀들이었다. 숫자도 열두 명 그대로였고 옷이나 외모가 크게 달라지지도 않았다.
그런데, 상태가 조금 많이 이상했다.
원래라면 그림자 속에 녹아들어 저택 근처를 호위하고 있어야 할 전투 수녀들이, 팔을 축 늘어뜨린 채로 흐느적거리며 정원을 걸어다니기만 하는 중이었다.
한 눈에 보기에도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한꺼번에 열둘이나 되는 여자들이 초점 없는 눈으로 주변을 배회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약간 소름이 끼치기도 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직접 알아봐야 할 듯 하군. 전원, 무기를 들어라.”
아이리스가 그렇게 말하며 허리춤에 매인 롱소드를 뽑아들었다. 다른 기사단장들도 투구를 벗으려다 말고 도로 착용한 뒤, 각자의 무기를 빼들었다.
나는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느라 가만히 있었다. 뭔가 생각이 날듯 말 듯 했다. 분명 어디서 본 것 같은 모습인데, 정작 그게 뭐였는지가 떠오르질 않았다.
내가 분명히 어디서 본 것 같은 상황의 정체를 떠올리려 애쓰는 와중에, 검을 단단히 움켜쥔 아이리스가 제일 가까이 있는 전투 수녀에게로 다가갔다.
바로 뒤에 리제가 따라붙었고, 마지막이 클라우디아였다. 에리카는 날 지키려는 목적인지 클라우디아를 따라가지 않고 내 옆에 남았다.
그 앞까지 다가간 아이리스가 손목을 확 잡아끌었다. 전투 수녀는 순순히 딸려왔다. 잠시 균형을 잃고 휘청이는가 싶더니, 다시 멍한 눈으로 팔을 늘어뜨렸다.
아이리스는 수녀의 눈앞에 대고 손을 흔들어보거나, 팔을 이리저리 만져보거나, 손가락으로 이마를 톡톡 건드려보기도 했다. 물론 아무런 반응도 돌아오지 않았다.
약간의 침묵 끝에 결론이 내려졌다.
“마법이다.”
“마법? 이게?”
“누가 무슨 마법을 걸었기에 이렇게 됐는지까지는 모르겠다만, 일단 정신계 마법이라는 건 틀림없을거다.”
“정신계 마법 중에 이런 모습으로 주변을 배회하게 만드는 게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 없는데. 새로 개발됐나?”
“그것까진 모르겠군. 하지만, 어렴풋하게 마나가 느껴진다. 성국의 전투 수녀들이 마나를 사용했을 리는 없지 않겠나.”
“음…… 정말이네. 미세하긴 해도 마나가 남아있어.”
마나. 정신계 마법. 늘어뜨린 팔. 멍하니 걸어다니는 행동.
그 키워드를 조합하자마자 머리에 떠오르는 상태 이상이 있었다. 확실한 건 아니지만, 비슷하게 여길 정도는 됐다. 내 생각이 맞는지는 직접 실험해보면 될 일이었다.
“잠깐만, 아이리스.”
“왜 그러지, 델타? 뭔가 아는 게 있나?”
“확실한 건 아닌데, 비슷한 걸 알고 있어서. 뭐 하나만 시켜보려고.”
나는 아이리스가 붙잡은 전투 수녀에게로 걸어갔다. 에리카가 내 뒤를 쫄래쫄래 따라왔다. 수녀의 몸을 뒤적여 신성 촉매를 꺼내들자, 리제가 의문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질문했다.
“그건 왜?”
“말했잖아. 시켜볼 게 있다고. 이게 그거야.”
꺼내든 신성 촉매를 전투 수녀의 손에 쥐어주었다. 툭, 손에 들린 신성 촉매가 힘없이 떨어졌다. 다시 손바닥을 펼쳐 촉매를 놓고, 수녀의 손가락으로 단단히 감쌌다.
별 소용은 없었다. 나는 다시 한 번 바닥을 나뒹구는 신성 촉매를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내가 그러는동안 아이리스가 몇 번 더 시도해봤으나 결과는 동일했다.
“아이리스, 잠깐 얘 손 좀 잡아봐. 악수하듯이. 너무 세게는 말고 살짝이면 돼.”
“알았다.”
아이리스는 순순히 내 말을 따랐다. 건틀릿을 낀 손이 가죽 장갑으로 감싸인 손을 악수하듯 쥐었다.
꽈아악, 손아귀가 순식간에 조여들었다. 갑옷에서 이상한 삐걱삐걱 소리가 났다. 아이리스가 당황한 기색으로 손을 풀려고 시도했지만, 오히려 점점 더 강하게 옥죌 뿐이었다.
결국 아이리스는 양손을 전부 동원하고 나서야 건틀릿을 조여드는 손아귀를 풀어낼 수 있었다. 나는 건틀릿이 빠지자마자 그 위에 신성 촉매를 얹어주었다.
툭, 촉매가 힘없이 땅에 떨어졌다.
실험이 몇번 더 반복되자, 슬슬 기사단장들도 뭔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눈치챈 듯 했다. 다른 것들은 전부 멀쩡히 잡으면서 칼이나 신성 촉매같은 무기류만 놓치고 있으니 말이다.
이만하면 검증은 끝났다. 나는 전투 수녀를 놓아주었다. 자유의 몸이 된 전투 수녀는 다시 흐느적흐느적 저택의 정원을 배회하기 시작했다.
그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주 같지는 않지만, 내 기억과 어느정도 비슷한 뒷모습이었다.
“아이리스 네 말대로야. 마법이네. 혼란에 걸렸어.”
“……혼란?”
혼란은 브닼 4의 상태 이상들 중 하나였다. 그것도 특정한 마법으로만 걸 수 있는.
상태 이상들 중 하나인 감화가 오로지 신성 계열의 공격으로만 걸 수 있는 상태이상이라면, 반대로 오로지 마법로만 걸 수 있는 상태 이상이 혼란인 셈이다.
혼란의 효과는 간단했다.
무장해제.
걸리는 즉시 손에 들고 있던 무기를 떨어뜨린 다음 지속시간 동안 다시 들 수 없게 될 뿐만 아니라, 이동 모션이 두 팔을 아래로 축 늘어뜨린 채 천천히 걸어다니는 모습으로 바뀐다.
저 무기라는 카테고리엔 마법 지팡이나 신성 촉매, 방패 같은 부류도 당연히 포함되고 말이다. 그나마 소모품의 사용은 가능하다는 게 불행 중 다행이었다.
바닐라에서는 그냥 무기만 떨어뜨리게 만드는 상태 이상이라서 성직자나 마법사한테는 뭔가 있나보다 하는 정도밖에 안 됐는데, 닼라 모드에서 영창까지 같이 방해하는 떡버프를 먹었다.
플레이어 역시 쓸 수 있긴 했다. 정예 적들부터는 특정한 몇몇을 제외하면 기본적으로 혼란 면역을 갖고 있는지라 쓸만한 대상이 잡몹들밖에 없어서 그렇지.
“마법사가 다녀갔어. 그것도 제법 수준이 높은.”
물론 적들 역시 마법을 쓴다고 개나소나 혼란을 걸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일단 어떤 종류든 신성 주문을 처맞기만 하면 게이지가 쌓이는 감화와는 전혀 달랐다.
바닐라에서는 오로지 정예 마법사들만이 혼란을 걸 수 있었다. 닼라 모드에서도 마찬가지로 여전히 잡몹 계열의 마법사가 혼란을 사용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게 여기서도 똑같이 적용된다면, 그리고 게임에서는 정예몹 취급이라 기본적으로 혼란에 면역이었던 이단심문관 휘하의 전투 수녀들이 혼란에 걸려있다면, 여기 왔던 마법사가 보통 수준은 아닐거라는 사실만은 확실했다.
설마 진짜로 게임에서처럼 무기만 못 들게 만들었을 줄은 상상도 못하긴 했지만.
“아이리스. 어중이떠중이들 말고, 마탑에 있을법한 마법사들 중에서 여기 올 만한 사람이 있어?”
“……내 기억에는 없다. 클라우디아, 리제, 에리카. 너희들은 어떻지?”
셋 다 잠시 고민하더니, 똑같이 아는 게 없다는 답을 내놓았다.
“여기 온 게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른다니까 일단 제쳐두고, 그러면 여기 온 이유는…….”
나는 말꼬리를 흐리며 저택을 바라보았다. 기사단장들 역시 동시에 눈을 돌렸다. 내가 말하려는 바가 무엇인지를 알아챈 모양이었다.
네 명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저택으로 향했다. 나는 긴가민가하는 생각으로 따라서 움직였다.
저택의 입구는 여느때처럼 평범해보였다. 하지만, 이 안에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는 생각 때문인지 기사단장들의 무기에서 스멀스멀 원소가 피어오르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리스가 그대로 문고리를 쥐어뜯듯이 잡아당기려는 찰나.
“어서 오십시오. 기사단장님들.”
문이 안에서부터 열렸다. 아우로라를 어릴 때부터 모셔왔다던 메이드가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무뚝뚝한 표정으로 문 안쪽에서 우리를 맞이해주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생각과는 전혀 다른 상황에 기사단장들이 생각을 멈춘 채로 제자리에 굳어버리자, 메이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무감정한 눈이 나를 향했다. 아는 게 있냐는 뜻을 담은 시선이었다.
나는 기사단장들의 손에 들린 무기와, 바깥에서 흐느적흐느적 정원을 배회하고 있는 전투 수녀들을 번갈아 가리켰다. 상황을 단번에 이해한 메이드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셨군요. 영주님을 지켜야 할 분들이 저런 모습이니 당황하신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만, 영주님께서는 무탈하시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영주님께서 무사하시다면 다행이다. 헌데, 저 수녀들은ㅡ”
“제가 여기서 설명드리는 것보다는 직접 확인하시는 것이 더 나으실겁니다. 안내해드릴테니 따라와주시겠습니까?”
그렇게 말한 메이드가 몸을 돌렸다. 기사단장들은 서로를 쳐다보다가, 뻘쭘한 기색으로 무기를 집어넣고 그 뒤를 따라 계단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메이드의 다리는 2층의 응접실 앞에서 멈췄다. 짝, 가볍게 손벽을 치자 다른 메이드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들어가시기 전에, 갑옷을 벗겨드리겠습니다.”
기사단장들은 순순히 갑옷을 맡겼다. 이런 일이 있을까봐 연습을 제법 많이 했는지, 갑옷을 벗기는 손놀림이 아주 자연스러웠다.
투구가 벗겨지고, 얼굴이 드러났다. 그러자 넷의 표정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혼란스러움이 반에 어리둥절함이 나머지 반이었다.
하긴, 나 같아도 그럴 것이다.
성국에서 돌아오자마자 아우로라의 호위를 맡았던 전투 수녀들이 저런 모습이라 신변에 문제가 생긴 줄 알고 단단히 긴장했었는데, 실상은 전혀 달랐으니까.
갑옷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전부 벗겨졌다. 흰 민소매와 돌핀팬츠가 밖으로 드러났다. 나는 씰룩이는 엉덩이를 보면서도 태연하게 서 있었다.
저런 걸로 흥분하기엔 아주 여러가지 의미로 너무 멀리 와버렸다.
“아우로라님, 기사단장들께서 복귀하셨습니다.”
“들어오라고 해. 열려 있어.”
“예.”
메이드가 문을 열어주었다.
응접실 안으로 들어가자, 제일 먼저 평소처럼 드레스를 입은 모습으로 한쪽 다리를 꼬고 상석에 앉아있는 아우로라가 눈에 들어왔다. 떠나기 전과 다른 점이 하나도 없었다.
옆에 처음 보는 사람이 앉아있는 것만 빼고 말이다.
‘……뭐지?’
문득 위화감이 들었다.
분명 누군가 눈앞에 있는데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자리에 앉아있다는 사실만은 확실하건만, 그게 끝이었다. 얼굴도, 체격도, 성별도, 옷도, 무엇 하나 머릿속에 떠오르질 않았다.
혹시나 싶어 고개를 돌렸다. 시선이 소파에 앉은 사람에게서 떨어지자마자 그 모습이 머릿속에서 깨끗이 사라졌다.
기사단장들도 나와 마찬가지인 느낌을 받았는지, 얼굴에 당황이 한가득 떠올라 있었다.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내린 아우로라가 태연하게 질문했다.
“생각보다 늦었네. 교황들만 만나고 올거라더니, 일이 잘 안 풀렸었나봐?”
“그런 것은 아닙니다, 영주님. 일은 잘 마무리 되었습니다. 그런데, 옆에 계신 분은 대체……?”
“바로 앞에 있는데 누군지 모르는 걸 보니까 아직 마법 안 푸셨나보네. 나도 처음에 그래서 엄청 당황했었거든. 괜찮아, 위험한 건 아니니까.”
“그 말대로란다. 위험한 건 아니지.”
무척이나 긴, 흰색의 생머리를 가진 여자가 우리를 돌아보았다. 드디어 머리카락의 색깔을 인지할 수 있게 된 걸 보니, 마법이 점차 풀려가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얼굴까지 알아볼 수 있을 정도가 되자, 기사단장들이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저 여자의 얼굴을 알지 못하는 나만이 어리둥절한 얼굴 그대로 있을 뿐이었다.
“다들 오랜만이구나. 잘 지냈니?”
“미네르바…… 님?”
‘미네르바?’
기억을 되짚었다.
예전에 기사단장들이 지나가듯 언급했던 이름이었다. 게임에서 아르카나 대서고와 아르카나 마탑이었던 장소가 미네르바 대서고와 미네르바 마탑으로 바뀌었다고 했었던가.
그렇다면 저 사람이 게임에서는 아르카나 마탑주라고 불렸을 NPC가 분명했다. 역시 남자가 아니라 여자로 바뀌어 있었다.
“여긴 어떻게…….”
“개인적으로 흥미를 가지게 된 일이 생겼단다. 얼굴도 볼 겸 해서 이곳으로 왔는데, 너희들이 성국으로 향했다지 않겠니? 그래서 잠시 기다리는 중이었단다.”
그 말과 함께 여전히 색깔이 확인되지 않는 눈동자가 날 향했다.
혹시나 싶어 자리를 한 걸음 옆으로 옮기자, 눈동자도 똑같이 나를 따라왔다. 조금 더 옆으로 옮겼지만 그래도 시선이 따라붙었다.
‘……또 나야?’
역시 이번에도 나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