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111)
‘한쪽은 이미 알고 있긴 하지만…….’
성에 걸린 마법의 진짜 정체에 대해서는 진작부터 알아차리고 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미네르바의 원본이 되는 NPC에게서 직접 들었으니까 말이다.
인간에게는 아무런 해악도 없고 오히려 도움을 주는 마법. 영주 본인은 저주가 제대로 먹혀든 줄 알아서 스스로를 자화자찬해댔지만, 그 실상은 전혀 다르다는 사실도 알았다.
하지만, 황제가 그 놈이 멋대로 날뛰는 걸 왜 방치했었는지는 충분히 들어볼만 했다.
게임에서도 황제는 전 영주놈이 자기 멋대로 은빛 여명 기사단을 해체시키는 것을 그저 방치했다고만 묘사될 뿐, 방치한 이유에 대해선 나와있지 않았으니까.
유저들이 끙끙대며 정보를 끌어모아 브닼뇌를 총동원해 추측해야만 했고 그마저도 100% 확실한 게 아니었는데, 미네르바의 입으로 진실을 들을 수 있다면 두 팔 벌려 환영이었다.
“좋습니다, 미네르바님. 저는 뭘 하면 됩니까?”
“지금 당장은 내 말을 듣기만 하렴. 아이가 도와줄 것은 그 다음이란다.”
테이블에 놓인 과자를 하나 집어든 미네르바가 그걸 오독 깨물며 입을 열었다.
“성의 마법에 대해서는 어디까지 알고 있니?”
목 끝까지 올라온 전부 다 알고 있습니다, 라는 말을 조용히 집어삼켰다. 혹시 게임에서와 달라진 점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당장 게임에서는 연무장 딸린 평범한 건물이었던 기사단장들의 숙소가 커다란 성으로 바뀌었지 않은가. 다른 것에도 변화가 생겼을 수 있었다.
“그 인간이 어딘가에서 오래된 저주를 발견했고, 은빛 여명 기사단을 괴롭히기 위해, 혹은 죽이기 위해 막대한 재산을 줘가면서까지 성에 그 저주를 걸어달라고 부탁했다, 정도로만 알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그렇게 알려져 있지.”
“……겉으로는, 말입니까?”
“그 마법을 사용한 사람이 바로 나란다. 그러니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도 오직 나 한명 뿐인데, 내가 입을 다물고 있었으니 당연한 것 아니겠니?”
일단 여기까지는 같았다.
미네르바의 선홍색 혀가 입술 사이로 살짝 튀어나와, 손가락에 묻은 과자 가루를 요염하게 핥아먹고선 다시 입 안으로 들어갔다. 약간 번들거리는 검지와 중지가 다음 과자를 집었다.
“아우로라의 아버지…… 음, 이제 이 호칭은 더 쓰면 안 되려나? 아우로라의 아버지였던 것이 내게 들고 온 저주는, 사실 저주가 아니라 마법이었단다. 아주 강력한 몇몇만이 사용할 수 있는, 무척이나 고등한 마법.”
오독, 과자가 앞니 사이에서 부서졌다.
“아이도 그 성에 거주하며 몸으로 직접 겪어봤으니 깨달았을 테지만, 얼마나 편리하니? 물건이 멋대로 사라지는 일만 조심하면, 세계의 법칙을 거스르고 모든 것을 무한히 늘릴 수 있는데.”
확실히, 편리하긴 할 거다.
마법이 성 전체에 걸려 있어서 그렇지, 만약 어느 특정한 장소에만 걸려 있었다면 음식, 혹은 무구를 무한히 보급받을 수 있도록 해주는 어마어마한 마법이 될테니까 말이다.
정말 극단적으로 말해, 상자에 황금을 넣어놓고 마법을 사용해서 황금을 무한히 만들어 낼 수도 있는 것이다. 빵은 물론 한낱 스프까지 복구시키는 마법이 황금을 다시 못 만들겠는가.
정작 미네르바가 그런 용도로 마법을 사용하지 않은 걸 보면 만능은 아니고 뭔가 제약이 있는 듯 하지만, 자세한 내막은 불명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착각을 바로잡아주지 않았단다. 만약 그 마법이 저주가 아니라는 게 밝혀진다면, 세상은 분명 큰 혼란에 빠지게 되겠지. 나는 그런 걸 원하지 않거든. 아이도 비슷한 생각이지 않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조금만 생각해보아도 짐작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
“또 한가지. 저주를 걸어달라는 부탁이 거절당했다면 그 녀석은 틀림없이 다른 흉계를 꾸몄을 테고, 그러니 차라리 자기 계획이 성공했다고 착각하도록 내버려 둔 것이라고 생각하렴.”
과자 몇 개를 더 집어들어 오독오독 갉아먹고, 다시금 손가락을 할짝인 미네르바가 말을 이었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지극히 사적인 이유이긴 하지만…… 그 녀석이 마음에 안 들었거든.”
‘역시 달라진 점이 있었긴 했구나.’
미네르바의 원본 NPC인 아르카나가 전 영주의 착각을 굳이 바로잡아주지 않은 이유는, 마법 연구를 제외한 다른 것에 조금도 관심이 없어서였다.
전 영주놈이 마법을 저주로 착각했든 말든, 그리고 자신이 건 마법으로 인해 무슨 결과가 일어나든 연구와 관계가 있지 않은 이상은 아르카나의 관심 밖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영주가 싫어서 착각을 바로잡아주지 않았던 거였고, 은빛 여명 기사단에 대한 배려심이 조금 더 녹아있었다.
‘게임에서보다는 인간적이네.’
아르카나는 사람 짜증나게 하는 재주가 아주 출중했었는데.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그러면 다음으로 알려주신다고 한 것은…….”
“카이킬리아가 그런 놈을 왜 살려줬는지에 대해서 말이지? 물론 말해줄 거란다.”
성에 걸린 마법에 대해서는 내 머릿속에 들어있는 지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니 더 들을 필요가 없을 듯 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이제 진짜로 궁금했던 내용을 물어볼 시간이었다.
“대외적으로는, 카이킬리아가 권력에 미쳐서 자기 자리를 위협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은 다 죽여버린 것으로 알려져 있을거야. 그건 도저히 황제의 자리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글러먹은 인간이어서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살려준거고.”
“그렇습니다.”
“내가 진실이라고 말했다는 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실상은 조금 다르단다. 대신, 지금부터 들을 내용에 대해서는 너 역시 비밀을 지켜야 해.”
“만약 그러지 못하겠다고 한다면 어떻게 됩니까?”
“그냥 알려주지 않고 끝나는 거지. 걱정 말렴. 죽일 생각은 없으니까. 어떡하겠니?”
미네르바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물론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그러죠. 반드시 저 혼자서만 알고 있도록 하겠습니다.”
여기까지 와서 물러서라니, 설마 내가 그러겠는가. 다른 사람한테는 알려주지 말라는 맹세가 어려운 것도 아니고 말이다.
내 그러겠다는 말을 들은 미네르바는 무척이나 진지한 표정으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진짜 이유는 바로, 악마 때문이란다.”
“많이 기다렸니?”
충분한 ‘대화’ 끝에 델타를 아우로라의 저택으로 돌려보낸 미네르바는 들뜬 마음을 안고서 어디론가로 다시 순간이동을 했다. 카이킬리아가 앉아있는 옥좌의 계단 밑이었다.
카이킬리아는 여전히 오른팔로 턱을 괴고 나머지 한 팔은 옥좌의 팔걸이에 올려놓은 채, 다리를 꼰 모습으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자연스레 카이킬리아가 미네르바를 내려다보는 듯한 구도가 되었으나, 미네르바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카이킬리아가 아기였던 시절부터 곁에서 지켜봐온 사람이 미네르바였으니까.
저런 귀여운 행동쯤은 얼마든지 웃어넘길 수 있었다.
“너 치고는 적게 걸린 편이겠지.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나 말하거라.”
델타가 마지막까지 알지 못했던 것.
그건 바로, 이번 만남이 미네르바가 독단적으로 벌인 행동이 아니라 카이킬리아의 사주라는 사실이었다.
물론 평소라면 이런 명령 따윈 받아들이지 않았을테고, 카이킬리아도 이런 명령 따윈 내리지 않았을테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그렇지 않아도 저번의 일로 인해 델타에게 제법 큰 호기심을 가졌던 미네르바였는데, 고작해야 기사 한 명 때문에 성국의 이단심문관까지 직접 나타난 것이다.
이런 재미있어 보이는 상황을 미네르바가 그냥 넘어갈 리 없었다. 카이킬리아의 요청을 빙자한 명령을 받아들인 이유도 그래서였다.
만약 이곳에 온 모든 이유를 하나하나 알려달라는 선택지를 골랐더라면 알 수 있는 사실이었을 테지만, 델타는 애석하게도 그러지 못했다.
미네르바는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 아이, 나와 거래를 제안하던데?”
“거래?”
카이킬리아의 눈썹이 살짝 위로 올라갔다.
“순간이동 마법에 대해서 이것저것 질문하더니, 나중에 자기를 몇 번만 도와달라고 하더구나. 절대로 후회할 일은 없을거라면서.”
“받아들였느냐?”
“물론.”
“거래라고 했으니 대가로 제시한 것이 있었겠지. 미네르바 너는 절대로 손해 보는 행동을 할 성격이 아니니…… 무엇을 제안받았길래 그리도 간단히 수락한 것이냐?”
“오래 전에 사라졌다고 알려진 크리스탈 스크롤. 그게 있는 장소를 알려주겠다는 조건이었지.”
“…….”
이번만큼은 그 무표정한 카이킬리아의 얼굴에도 놀라움이 깃들 수밖에 없었다.
크리스탈 스크롤이란, 아주 먼 과거에 실전되었다고 알려진 고대의 스크롤들 중 하나였다. 심지어 그 미네르바에게조차 먼 과거라고 인식될만큼 지독히도 오래된 물건이었다.
카이킬리아도 그 스크롤에 대해서는 들어본 기억이 있었다. 아주 어릴 적, 황제가 되기 전에 자신을 가르친 사람이 미네르바였으니까.
문제는, 그 존재 여부에 대한 기록은 분명 남아있지만 정작 제일 중요한 마법의 내용을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수없이 많은 마법사들이 고대의 스크롤을 찾으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여왔지만, 그런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여태껏 단 하나조차 발견되지 않았었다.
그런 물건을 거래의 조건으로 내건 것이다.
“무얼 도와달라는 요청을 하였길래?”
크리스탈 스크롤을 손에 넣을 수만 있다면, 설령 성국과 전쟁을 일으키라고 해도 망설임 없이 수락할 여자가 미네르바였다. 그러니 분명 말도 안 되는 조건을ㅡ
“무기 구하는 걸 도와달라던데?”
“……지금, 무기라고 하였느냐?”
“정확히 들었단다. 나중에 무기 하나를 구해야 되는데, 그걸 도와달라더구나.”
카이킬리아는 맥이 탁 풀리는 것을 느꼈다. 그만큼 황당한 발언이었다.
크리스탈 스크롤을 찾아주는 대가로 무기 구하는걸 도와달라고? 그 무기라는 게 끓어오르는 화산 한복판이나 깊은 바다 한복판에 처박혀 있기라도 한 건가?
“……되었다. 계속해보거라.”
아주 옅은 한숨을 내쉰 카이킬리아가 허궁에 손을 휘적였다. 이런 실없는 감정을 느껴본 적도 제법 오랜만이었다.
“어느 부분부터 시작해주길 원하니? 첫 만남부터? 아니면 결과만?”
“당연히 처음부터다.”
“그러면 일단 교황들이 그 아이를 직접 제국으로 옮겨주었다는 말부터 꺼내야 하겠네. 아마 달의 교황이 그랬을 거야.”
교황이 직접 관여했다는 말을 들은 카이킬리아가 눈을 부릅떴다.
“지난 몇 년간은 밖으로 모습조차 드러내지 않던 것들이 그랬었다는 말이냐.”
ㅡ내 분명 관심을 가지지 말라 친히 경고까지 했거늘.
반사적으로 옥좌의 팔걸이를 움켜쥔 손에 힘을 주었던 카이킬리아는, 빠직 하고 팔걸이가 부서지며 금이 가는 소리가 들린 후에야 힘을 풀었다.
하지만 팔걸이는 이미 움켜쥐었던 모양대로 움푹 들어가 있었다. 그걸 본 미네르바가 손가락을 까딱이자, 금이 갔던 부분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내 것에 눈독을 들일 일은 절대로 없다며 안심하라더니, 기어코 일을 저질러주었구나. 역시 믿을 것이 못 되는 년들이다.”
이단심문관이 직접 찾아왔던 일을 떠올리자 또 화가 치미는지 손아귀에 다시 한 번 힘이 들어갔다. 와직, 압력을 견디지 못한 팔걸이가 산산조각으로 부서졌다.
파편 하나하나가 극도로 날카로운 송곳이나 다름없었지만, 정작 그걸 움켜쥐어 박살낸 당사자인 카이킬리아의 손바닥은 생채기 하나 없이 멀쩡했다.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손바닥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카이킬리아가, 문득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미네르바. 지난 몇 년간 밖으로는 모습조차 드러내지 않았던 년들이, 아무런 관심도 가지고 있지 않은 인간을 친히 신성 주문까지 써가며 제국으로 옮겨주었을 확률이 몇이나 되겠느냐?”
“내가 답을 해줄 필요는 없을 듯 하구나. 아이도 이미 답을 알고 있지 않니?”
미네르바의 손이 푸르게 빛났다. 박살난 옥좌에서 팔걸이가 새로 돋아나고, 부서진 파편들이 하나로 뭉쳐지더니 어디론가로 사라졌다. 그리고, 미네르바 역시 자취를 감췄다.
이제 또 한동안 마탑의 공방에 틀어박혀 온갖 실험을 해대겠지. 카이킬리아는 관심을 아예 꺼버렸다. 지금은 다른 생각을 하기에도 바빴다.
“아우로라와 은빛 여명 기사단을 황궁으로 불러라.”
아무도 없는 허공을 바라보며 명령을 내린 카이킬리아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시선이 향한 자리에서 어렴풋하게 느껴지던 기척이 안개가 흩어지듯 사라졌다.
황금빛 동공에서 섬뜩한 이채가 일었다.
“내 친히 그들을 맞이하겠노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