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117)
머리가 핑핑 돌았다. 뭔가 생각을 해보려 해도, 시야를 뒤덮은 검은색 란제리와 달콤한 과일향 탓에 머리가 쉽사리 돌아가지 않았다. 자꾸 의식이 다른 곳으로 쏠렸다.
“정신을 어디에 두고 있는 것이냐? 여가 묻고 있노라.”
어쩐지 살짝 들뜬 기색의 목소리가 날 재촉했다. 어깨에 얹어진 다리가 장난스럽게 앞뒤로 까딱였다. 발뒤꿈치가 내 등허리를 톡톡 건드려댔다.
음부에서 풍기는 과일 냄새의 농도가 점차 짙어지고 있었다. 이제는 약간의 습기 뿐만 아니라 어렴풋한 열기마저 느껴질 지경이었다.
카이킬리아가 오른무릎을 더 굽혔다. 내 몸이 앞쪽으로 당겨졌다. 그렇지 않아도 가까웠던 거리가 훨씬 좁혀들었다. 일자로 갈라진 균열에 코가 닿기 직전이었다.
피부에 질척하게 달라붙은 속옷 위로 그 너머의 실루엣이 훤히 드러났다. 여기서 더 입을 다물고 있었다간 정말로 내 얼굴을 자기 음부에 문질러댈 기세였다.
이대로는 안 된다.
“있습니다.”
“호오?”
날 끌어당기던 오른다리가 동작을 멈췄다. 음부에 코를 박기 직전이던 내 몸도 아슬아슬한 위치에서 같이 멈췄다. 나는 그 틈을 타 말을 이었다.
“제국의 어느 신하가, 자신을 다스리는 황제 폐하께 관심을 가지지 않는단 말입니까.”
“…….”
콧잔등으로 란제리 특유의 까끌까끌한 감촉이 스쳐지나갔다. 내 숨결이 속옷 위로도 느껴지지 않을까 싶을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진짜로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후우, 무심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마자 카이킬리아의 다리가, 그리고 내 얼굴과 맞닿은 허벅지가 파르르 떨렸다. 허벅지 근육이 얼굴 양 옆을 꽈악 조여들었다.
생각을 바꿨다. 내 숨결이 속옷 위로도 느껴지지 않을까 싶은 거리가 아니라, 느껴지는 거리였다. 방금 카이킬리아가 보여준 반응을 생각해보면 틀림없었다.
“신하라…… 그래. 그렇겠지. 참으로 영리한 대답이었다.”
조금 전보다 확연히 차가워진 목소리였다.
어깨를 옥죄고 있던 다리가 느슨해졌다. 이제 끝난건가 하고 한숨 돌리려는 찰나, 얼굴에 소름끼치는 미소를 띄운 카이킬리아가 허리를 더 깊게 숙여왔다.
“헌데, 문제가 하나 있구나.”
내 귀와 카이킬리아의 입술이 맞닿았다. 귓가에서 입술의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느슨해지는가 싶던 무릎이 어깨를 훨씬 더 강하게 조이기 시작했다.
귓가에 입술을 바짝 붙이고 나를 자신의 무릎으로 단단히 고정시킨 채, 카이킬리아는 특유의 오싹한 목소리로 작게 속삭였다.
“이 세상의 그 어떤 신하가, 섬기는 주인의 다리 사이에 코를 처박고 정신없이 그 살내음을 맡는단 말이냐.”
내가 일부러 그런게 아니라 그쪽이 강제로 밀어붙인거고, 정신없이 맡았던 적도 없습니다. 하는 말이 입 안을 멤돌았다.
어디까지나 생각만이다. 나는 머릿속에 떠올린 말을 입 밖으로 필터 없이 내뱉을 정도로 멍청한 인간은 아니었다. 그랬다가 무슨 짓을 당할 줄 알고.
귓가에 바짝 붙어 내 귓바퀴를 톡톡 건드려대던 입술이 멀어져갔다. 반면에, 카이킬리아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는 한층 더 잔혹해져 있었다. 보기만 해도 소름이 돋는 미소였다.
톡, 오른쪽 다리에 신겨진 가죽 부츠가 나를 뒤로 살짝 밀었다. 코 끝에 강하게 멤돌던 과일향이 사라지자 간신히 몸의 자유가 되돌아왔다.
얼굴 한가득 소름끼치도록 아름다운 미소를 띄운 카이킬리아가, 다리를 꼬며 날 내려다보았다. 달콤한 과일향을 풍기던 음부가 허벅지 사이로 자취를 감췄다.
정신을 차린 내가 서둘러 무릎을 꿇으려는 순간, 무뚝뚝한 목소리가 제지했다.
“그 장소가 아니다.”
길고 가녀린 손가락이 옥좌의 대각선 방향을 가리켰다. 카이킬리아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장소였다. 나는 군말없이 몸을 일으켜 그곳으로 다가갔다.
카이킬리아는 한쪽 무릎을 꿇으려는 나를 제지하고 나서야 고개를 돌려 아우로라와 기사단장들을 내려다보았다.
자연스레 나도 일어선 채로 옥좌의 대각선 뒤에서 기사단장들을 내려다보는 자세가 되었다.
“머리를 들어라.”
그 말에, 하염없이 바닥만 쳐다보던 아우로라와 기사단장들이 자세를 바로잡았다. 날 보는 시선에 놀라움과 의문이 함께 스쳐지나갔다. 나도 내가 왜 이러고 있는지 무척 궁금했다.
이후로는 그저 형식적인 대화만이 이어졌을 뿐이었다. 아우로라의 안부를 묻고, 기사단장들에게는 대충 몇 마디 질문만을 던지고.
나를 다리 사이에 끼우고 대화할 때 목소리에 뚝뚝 묻어나오던 열락이나 희열, 흥분같은 감정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 목소리에 담긴 것이라고는 무뚝뚝함이 전부였다.
알현 시간은 금방 끝났다. 카이킬리아부터가 우리와 대화를 더 이어나가고 싶지 않은 듯 했으니 당연했다. 분위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고, 우리는 조용히 중앙 홀에서 물러났다.
돌아가도 좋다는 말이 나오기 전까진 황궁에 남아있으라는, 도무지 그 속내를 짐작하기 힘든 명령만을 받은 채.
“…….”
모두가 떠난 중앙 홀. 옥좌에 걸터앉은 카이킬리아는 아직 열락이 가시지 않은 눈으로 멍하니 허공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지금껏 무언가를 생각해야 할 일이 있을 때마다 수없이 많이 해 본 자세였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달랐다. 그야 당연히, 이토록 커다란 흥분과 열락에 잠겨봤던 경험이 없었으니까.
“하아…….”
입술 사이로 달뜬 한숨이 새어나왔다.
사실, 처음엔 그럴 생각까진 없었다. 그저 둘 중에 누가 더 우위인지를 확실히 알려주고자 했을 뿐이었다. 자신의 다리 사이로 그 머리를 끌어당길 생각 따윈 조금도 하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그 시선이 자신의 음부로 향해있다고 생각하니, 말로 형용하기 힘들만큼의 짜릿한 쾌감이 척추를 타고 전신으로 찌르르 퍼져나간 것이다. 그런 감각은 처음이었다.
카이킬리아는 성적으로 무지한 여자가 아니었다. 비록 성에 차는 남자가 없어 실전 경험이 전무하긴 하지만, 이론이라면 완벽히 습득하였노라고 스스로 자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단순히 제 성기를 바라보는 시선만으로도 그토록 강렬한 정신적 쾌락을 느낄 수 있으며, 심지어는 옅게나마 절정에마저 이르를 수 있다는 내용을 적은 책은 단 한 권도 없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쾌락이었기에, 더 강렬하게 다가왔다.
‘……지켜봐진 것 만으로 그 정도였는가.’
처음에는 그 사내를 욕망에 굴복하도록 만들려 했다. 하지만, 오히려 욕망에 굴복해버리고 만 것은 카이킬리아 자신이었다.
여성으로서의 가장 은밀한 부위가 보여진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 어마어마한 쾌감이 머릿속을 헤집어놓았고, 결국 그 쾌감에 굴복하여 절대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짓을 해버렸다.
그 입으로부터 내쉬어진 숨결이 속옷 위로 닿았을 때, 카이킬리아가 몸을 떨며 옅은 절정에 도달했다는 사실을 그 사내는 과연 눈치채었을까?
아니, 틀림없이 눈치를 채었을 것이다. 몸을 떨어댄 것으로도 모자라, 허벅지로 그 얼굴을 조여버리기까지 했으니. 바보가 아닌 이상은 알아차렸을거다.
황제로서의 위엄을 지켜야 하니 알아차리지 못하고 넘어갔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그걸 알아차려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가슴 한 켠에서 공존하고 있었다.
카이킬리아로서도 이런 혼란스러운 심정은 처음이었기에, 마음이 무척이나 복잡했다.
“역시 이곳에 있었구나, 아이야.”
“……미네르바.”
고풍스러우면서도 신비한 목소리가 생각을 와장창 깨부수며 머릿속에 박혔다.
카이킬리아는 약간의 짜증을 담은 시선으로 중앙 홀을 내려다보았다. 미네르바가 레드카펫 위를 한걸음 한걸음 걸어오고 있었다.
“지금쯤 마탑에 틀어박혀 한창 연구에 매진하고 있을 줄로만 알았더니, 무슨 일로 왔느냐?”
“감상을 들으려고 왔단다.”
“이미 알고 있지 않으냐. 굳이 내가 대답해주어야 할 필요는 없을 터.”
“아는 것과 듣는 것에는 차이가 있지. 아이가 직접 말해주려무나.”
카이킬리아는 후우우,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대놓고 짜증을 표출하는 모습이 훤히 보임에도, 미네르바는 싱글싱글 하는 웃음을 띄울 뿐이었다.
“만족스러웠다. 그 이상 만족할 수 없을만큼 좋았느니라. 되었느냐?”
끄덕끄덕, 미네르바가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이미 그렇게 대답할 줄 알고 있었다는 모습에, 카이킬리아의 얼굴에 서린 짜증이 한층 짙어졌다.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니?”
“내 것으로 만들 것이다.”
황금빛 눈동자가 희번뜩하게 빛났다.
아우로라가 보았다면 필시 공포를 견디다 못해 혼절하였을테고, 기사단장들이라 하더라도 몸을 파들파들 떨어대었을 게 분명할만큼 지독한 살기가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반드시 내 소유로 만들고 말 것이다. 누구에게도 넘겨주지 않고, 누구도 넘볼 수 없도록.”
ㅡ그것이 설령. 미네르바 너라고 할지라도.
흘러넘치는 살기와 서슬 퍼런 경고의 시선을, 미네르바는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넘겼다.
“알겠단다. 열심히 노력해 보려무나.”
얼핏 듣기에는 격려처럼 들리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 사이에 숨은 뜻이 있음을, 카이킬리아는 놓치지 않았다.
저 말은 곧, 지금의 네 능력으론 불가능하니 앞으로는 가능해질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라는 뜻이나 다름없었으므로.
적어도 미네르바가 사용하는 노력의 의미란 그러했다.
“……더 자세히 설명하거라. 그것이 무슨 의미이더냐.”
“말 그대로의 의미이지. 정말로 카이킬리아 네가 그 아이를 거두어들일 수 있다고 생각하니? 어쩌면 너보다도 훨씬 더 강해져서, 역으로 너를 굴복시킬수도 있는 아이를?”
미네르바가 이런 말을 하는 것에는, 다 이유가 존재했다.
모든 사람에게는 스스로가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는지, 그 한계를 나타내는 잠재력이란 개념이 있었다. 아직 이론이 완전히 정립되지 않았기에 마탑에서만 알음알음 퍼져있는 개념이었다.
대부분의 사람이 지닌 잠재력은 평범한 수준에서 그쳤다. 몇몇 특출난 사람은 자신의 재능을 열심히 갈고닦아 나름의 명성을 떨칠 수 있는 것이고.
하지만 델타는 달랐다.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모든 능력이, 이론상의 한계치에 근접해 있었다.
기사가 되고자 한다면 역사에 이름을 남길 것이요, 마법사가 되고자 한다면 마법서에 영원토록 기록될 것이고, 성직자가 되고자 한다면 무한한 시간을 성인으로 추앙받을 것이다.
작정하고 어느 한 길을 파고든다면 그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인간이 바로 델타였다.
혹은, 수명의 문제만 극복한다면 그 모든 분야에서 정점이 될 수도 있겠지. 그만한 잠재력을 지닌 인간이라면 결코 빈말이 아니었다.
그런 존재를 자신의 밑에 두겠다니? 미네르바는 카이킬리아의 그 앙증맞고 귀여운 포부에 속으로 살포시 웃었다.
“어디 두고보거라. 보란듯이 성공해 보일터이니.”
옥좌에서 일어난 카이킬리아가 위풍당당하게 선언했다. 그리고 옥좌의 뒷쪽 벽에 위치한 문을 열고 나가려는 걸, 미네르바가 멈춰세웠다.
“아이야. 자신을 갖는 건 좋지만, 자만은 하지 말려무나.”
“…….”
그 말을 듣고 잠시 걸음을 멈춘 카이킬리아가 고개를 돌려 미네르바를 쳐다보았다. 미네르바의 얼굴에는 여전히 신비로운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나는 자신과 자만조차 구분하지 못할 만큼 멍청이가 아니다, 미네르바. 나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라면, 쓸데없는 짓에 힘을 소모하지 말라고 해두겠노라. 다만.”
“다만?”
미네르바의 되물음에도 한동안 뜸을 들이던 카이킬리아는, 다시 고개를 돌리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 말대로 진정 여를 굴복시킬 수 있는 사내라면, 마땅히 그에 따를 의향은 있노라. 이 카이킬리아 리바누스조차 뛰어넘을 사내라니, 평생의 반려로서 조금의 모자람도 없는 남성이 아니겠느냐.”
카이킬리아는 그 말을 끝으로 중앙 홀을 나갔다.
카이킬리아가 사라진 자리를 오래도록 지켜보던 미네르바도, 얼굴에 띄운 미소를 그대로 유지한 채 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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