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119)
이상하다.
뭔가 이상하다.
금빛 황혼 기사단의 제4 부기사단장, ‘라크시아’가 검을 휘두르면서 떠올린 생각이었다.
처음에는 초조 때문에, 그 다음에는 분노 때문에 제대로 된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지만, 초조와 분노라는 감정이 차차 가라앉은 후엔 이상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지금껏 수십, 수백 번을 공격했건만, 단 한 번의 공격조차 성공시키지 못했다. 유효타를 넣지 못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말 그대로 저 사내의 몸에 스치지조차 못했다는 의미였다.
불안한 감정을 떨치려 검을 휘둘렀다. 우하단에서 좌상단으로 그어지는, 정석적인 대각선베기.
하지만 라크시아가 휘두른 검의 궤적은, 이가 모조리 다 빠져서 금방이라도 부러질 듯 위태위태한 검의 날에 맞부딪힘과 동시에 궤도가 크게 비틀려 이상한 방향으로 튕겨나갔다.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라크시아 자신의 검은 매일같이 손질을 했고, 저것보다 훨씬 더 좋은 금속으로 만들어졌고, 저 금방이라도 망가지기 직전인 검보다 몇십 배는 더 비싸다.
‘그런데, 대체 왜!’
라크시아는 이를 악물고 다시 검을 휘둘렀다. 째앵! 하는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이번에도 어김없이 검의 궤적이 바뀌었다. 그에 맞춰 라크시아의 몸 역시 크게 휘청였다.
뒤로 쭈욱 물러나서 다음 공격을 준비했다. 팔을 뒤로 당겼다가, 다리를 활시위 삼아 앞으로 크게 내쏘았다. 몸이 허공으로 붕 떠오르고, 최고점에 도달하기 직전 칼을 쭉 뻗었다.
눈앞의 상대가 피하는 방향을 확인한 다음, 공중에서 몸을 비틀어 궤적을 바꿀 준비를 했다. 각도를 완전히 비트는 건 무리지만, 궤적을 살짝 바꾸는 정도라면 어떻게든 가능하다.
공중에 떠 있는 상태로 궤적을 조절한다는 건 정말 쉽사리 하기 힘든 행동이었으니, 금빛 황혼 기사단의 제4 부기사단장이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은 검술 실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자세도, 각도도, 위치도. 모든 것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다.
ㅡ콰앙!
실패했다는 것만 빼면 말이다.
눈앞의 사내는 왼쪽으로 슬슬 움직여 피하려는가 싶더니, 라크시아가 그쪽으로 방향을 꺾자마자 거리를 벌리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달려드는 방향으로 냅다 굴러버렸다.
그 탓에 라크시아의 칼 끝은 사내를 스치지도 못한 채로 애꿎은 땅에 처박혔다.
ㅡ짝!
“꺄앙!”
“아, 실수. 일부러 때린 건 아닙니다.”
자세를 바로잡는 틈을 타, 망가진 직검이 왼쪽 엉덩이를 짝 소리가 나도록 때리고 지나갔다. 탱글탱글한 엉덩이살이 부르르 흔들렸다. 짜릿한 아픔이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라크시아는 자신도 모르게 야릇한 비명을 질렀다. 사실, 비명 정도로 끝나서 다행이었다. 저게 다 망가진 검이 아니라 정말로 실전에서 사용하는 무기였다면 엉덩이살이 베여나갔겠지.
갑옷만 입었더라도, 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차라리 진검을 들려주고 갑옷을 입는 편이 훨씬 더 나을 것 같았다. 적어도 이런 꼴사나운 비명을 지르게 되지는 않았을테니까.
처음에는 라크시아도 갑옷을 벗고 싸울 생각은 전혀 없었다. 이대로 가다간 전패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1승은 거두어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다.
하지만 라크시아 본인이 말했던 대로 상대가 신입 기사였을뿐더러, 무기로 저런 걸 들기까지 했으니 갑옷을 입고 싸우는 건 너무 과하다는 말이 나온 것이다.
‘설마, 일부러 이런 걸 노리고 망가진 직검을 든 건가?’
라크시아는 다시금 겨드랑이 근처를 얻어맞아 야릇한 비명을 내지르며 그렇게 생각했다.
정작 망가진 직검을 든 장본인은 갑옷을 입어도 괜찮다 했었고, 라크시아가 괜한 자존심을 부려서 벗은 거였다는 사실은 이미 기억 어딘가로 사라져버린 뒤였다.
이미 그런 자존심을 세우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사실도 같이.
“야! 델타! 너 지금 일부러 그런 곳만 때리고 있는거지! 아까는 엉덩이였는데 이번엔 겨드랑이잖아!”
“아니, 실수라니까? 그 상황에서 때릴 곳이 저기밖에 안 나오는데 어떡하라고?”
“엉덩이라면 나중에 내꺼 실컷 때리게ㅡ 웁?!”
“미쳤습니까, 언니? 여기 연무장이에요! 다른 사람들도 다 있잖아요! 제발 상스러운 말 좀 그만 지껄이세요!”
더 열불이 뻗치는 건, 라크시아는 여유라곤 조금도 없이 필사적으로 싸우는 중인데 저쪽은 대기석에 앉은 은빛 여명 기사단과 잡담을 나눌만큼 여유가 넘친다는 점이었다.
대련을 지켜보는 기사단원들이 술렁술렁거리는 게 여기까지 들려올 지경이었다. 라크시아는 이를 악물었다. 이걸 진다면 개망신도 그런 개망신이 없었다.
반드시,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겨야 했다.
‘……충격이 너무 컸나?’
넋을 놓아버린 표정으로 팔다리를 하나씩 붙잡힌 채 질질 끌려가는 부기사단장을 보며, 나는 괜스레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게 갑옷 입고 싸우라니까.’
망가진 직검이라는 이름답게, 이건 검이라기보다는 회초리에 가까운 물건이었다. 상처는 거의 안 나는데 아프기는 더럽게 아픈지 연신 비명을 질러댔으니까.
그것도 이상야릇한 비명을.
대체 뭐가 문제였는지, 맞을 때마다 비명이라기보단 교성에 가까운 소리가 터져나와서 오히려 때리는 내 쪽이 더 당황했을 지경이었다. 덕분에 리제한테 이상한 오해도 사버렸다.
갑옷이라도 입고 싸웠더라면 그런 이상야릇한 비명을 질러댈 일도, 저런 비참한 몰골로 붙들려 갈 일도 없었을텐데 말이다.
왜 굳이 쓸데없는 자존심을 세워서 때린 쪽이나 맞은 쪽이나 곤란하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
날 보는 금빛 황혼 기사단원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경악으로 가득 차 있었다. 특히 대련 중간에 무슨 일인가 싶어 들어왔던 다른 부기사단장의 얼굴은 더더욱 그랬다.
그럴 만도 했다. 신입이라고 불리던 인간이 자기네 부기사단장을 대련에서 가지고 놀다시피 하며 이겼는데 안 놀랄 수가 있겠는가. 아마 충격을 좀 많이 받았을 것이다.
정작 내가 신경이 쓰이는 건 따로 있었지만.
‘쟤들도 복장이 참…….’
은빛 여명 기사단의 정복이 몸에 딱 달라붙는 흰 민소매에 돌핀팬츠라면, 금빛 황혼 기사단의 정복은 몸에 딱 달라붙어 굴곡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스포츠 브라에 레깅스인 듯 했다.
게다가 무슨 영문인지 스포츠 브라를 입고도 가슴이 엄청나게 흔들려댔다. 분명 스포츠 브라는 운동할 때 가슴이 흔들리지 않도록 잡아주는 속옷인 걸로 알고 있었는데.
팬티는 당연히 안 입었는지, 무슨 진공포장이라도 한 것처럼 하반신에 착 달라붙는 레깅스인데도 속옷 라인이 없는 것은 덤이었다.
“진짜 수고했어, 델타. 쟤들 표정 보이지? 완전 정신 나간 거?”
망가진 직검을 원래 있던 자리에 가져다놓고 관객석으로 돌아오자, 클라우디아가 낄낄대며 나를 맞이해주었다. 그동안 맺힌 게 제법 많았던 듯 아주 좋아 죽는 표정이었다.
“그렇게 좋습니까?”
“당연하지. 쟤는 이제 얼굴도 못 펴고 다닐걸? 아, 아니다. 쟤들 대가리도 너한테 덤볐다가 깨졌으니까 상관없을지도 모르겠네.”
연무장을 아주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목소리에, 금빛 황혼 기사단의 전원이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쩌적 굳어버렸다. 그 놈, 정말로 나한테 깨졌던 사실을 말 안 해준 모양이었다.
그 모습을 본 클라우디아는 아주 쌤통이라는 얼굴을 했다. 아이리스도 슬쩍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에리카도 다를 건 없었다.
“다른 여자 엉덩이 때리면서 마음껏 가지고 노니까 좋았어?”
단지, 리제만 한쪽 볼을 부풀린 채로 삐죽거리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저런 얼굴을 하고 있는 이유가 자기 엉덩이 말고 다른 여자 엉덩이를 때려서라는 황당한 사실 때문이긴 하지만.
“실수였다니까. 그리고 누가 들으면 오해할라.”
“실수였다는 것 치곤 때리면서 기분 좋아 보이던데? 나도 지금 엉덩이 내밀어줄 테니까 기분 더 좋아지게 때릴래?”
“……그건 진짜 오해야.”
내가 부기사단장과의 대련을 웃으면서 끝낸 이유는, 그냥 오랜만에 느긋한 전투를 할 수 있어서였다.
저저번 보스로 상대했던 루치아나, 저번 보스로 상대했던 신에게 버림받은 피조물처럼 아주 악랄하기 짝이 없는 DLC 보스를 상대하다가 저런 걸 마주하니 심신이 치유되는 기분이었다.
물론 바닐라와 비교한다면 방금 전 역시 난도가 대폭 상승한 전투긴 한데, 지금은 딱히 의미가 없는 비교였다. 모든 난이도는 상대적이니까.
뭐, 나로서는 DLC 최종 보스든 방금 상대한 중간 보스든 둘 다 공격에 스치기만 해도 죽는 건 똑같지만 말이다.
‘……이것도 내 머리에 걸린 흑마법 때문인가?’
한 번 의심이 들기 시작하니, 공포가 조금이라도 덜 느껴진다 싶으면 죄다 그 흑마법 탓처럼 느껴졌다. 아무래도 최대한 빨리 그 마녀를 찾아가서 진실을 들어야 할 듯 싶었다.
“그래서? 더 해볼 건가?”
“…….”
아이리스의 물음에, 금빛 황혼 기사단 전원이 스리슬쩍 내 눈을 피했다. 시선이 닿는 자리마다 몸을 움찔거리며 눈동자를 내리깔거나, 우물쭈물 고개를 돌리기 일쑤였다.
전의를 완전히 상실해버린 분위기였다. 방금 전에 자기네들 부기사단장이 대련에서 압도적으로 패배한데다, 기사단장마저 내게 덤볐다가 깨졌다는 소릴 들었으니 당연하겠지.
그 모습을 쳐다보다가, 문득 떠오른 궁금증에 고개를 돌렸다.
“에리카.”
“네, 델타 씨. 왜 그러세요?”
싱글싱글 함박 웃음을 짓고 있는 에리카에게 말을 붙이자, 평소와는 전혀 다른 경쾌한 목소리가 되돌아왔다.
“쟤들이 먼저 시비를 걸었다고 했잖아. 뭐라고 그랬었어?”
“델타 씨랑 싸웠다가 졌던 그 부기사단장이, 저희한테 변두리로 쫓겨난 녀석들 주제에 이 고귀한 공간에는 왜 들어왔냐고 했었죠. 다른 기사들도 비슷한 분위기였고요.”
아, 그 녀석이 원인이었나.
어쩐지 기사단장들이 자꾸 대련 신청을 받아들이라고 등을 떠밀더라니, 그 여자가 지금 상황을 시작한 원흉이어서 그랬던 거였다. 어떻게든 대가를 치르도록 하고 싶었겠지.
그렇게 안절부절못하는 반응이었던 것도, 자기가 먼저 시비를 걸어서 대련을 벌이게 됐는데 한 번도 못 이긴지라 사태 수습이 불가능해져서일 테고.
‘아니, 그 조합으로 기사단장들한테 덤빌 자신감은 어디서 난 거야?’
연무장에 있는 전력이라고 해봤자 부기사단장급인 본인 한 명에, 나머지는 전부 일반 단원들이었을 텐데. 잘도 그 조합으로 시비를 걸 생각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 뭘 보고 그런 자신감이 생겨났는지 의문이었다.
“더 덤빌 생각이 없다면 돌아가겠다. 여기서 할 일은 끝났으니.”
아이리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말대로였다. 이제 여기서 할 일은 끝났다. 기사단장들은 그대로 연무장을 나가선, 어디론가를 향해 거침없이 걸어갔다.
리제를 포함해, 나만 빼고 다른 모두가 다음 목적지를 아는 눈치였다.
특히 리제는 처음엔 나랑 똑같이 어리둥절한 얼굴이다가, 다른 세 명의 표정을 보고 곧장 어디로 갈지를 알아차린 듯 했다.
“이제 어디로 갈거야, 아이리스? 더 들를 곳 있어?”
“있다. 정확히는, 원래 갔어야 했던 곳이겠지. 혹시나 다른 곳에 있을까 싶어 연무장에 먼저 들렀다가 그런 상황에 휘말리게 됐으니까.”
“원래 갔어야 할 곳?”
아이리스는 잠시 발을 멈췄다가,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우리 휘하의…… 아니, 우리 휘하였던 기사들이 있는 장소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