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120)
미네르바는 400살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도, 옅은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아주 즐거운 표정으로 스크롤에 글자를 적어나가는 중이었다.
호기심이라는 감정을 아주 오랜만에 느껴보고 있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이백 년쯤 지나고부터는 그저 의무감 때문에 해왔던 마법 연구도 오랜만에 활기를 되찾았다. 평생 겪어보지 못했던 일들이 며칠 사이에 두 개나 생겨났으니 당연했다.
하나는 크리스탈 스크롤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걸 찾아주겠다고 말한 장본인인 델타에 관한 것이다. 둘 모두, 무척이나 호기심을 자극해대는 주제들이었다.
‘생각할수록 신기한 아이로구나.’
미네르바는 요 며칠 사이에 괄목할만한 변화를 이루어 낸 델타를 떠올리며, 스크롤에 무엇인가를 계속해서 적어나갔다.
아우로라의 저택에서 처음 확인했을 때는 분명 내재된 마나량이 형편없는 사내였다. 저위계 마법 한두 번이면 마나가 모두 떨어지리라는 사실이 거의 확실시 될만큼.
하지만, 황궁에서 다시 마주쳤을 때는 놀랍게도 마나의 총량이 몇 배나 상승해 있었다. 미네르바는 너무 놀란 나머지 잠시나마 스스로의 감각을 의심했을 정도였다.
침실로 데려왔던 날짜와 황궁에 도착한 날짜 사이의 간격이 얼마 되지 않았음을 감안하면,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수준의 변화였다.
물론 기본적인 마나량 자체가 터무니없이 적었기에 몇 배가 늘어났다고 해도 그렇게 큰 수치는 아니었으나, 그것보다는 급격한 증가를 보였다는 사실 자체가 더 중요했다.
‘재능만 따지자면 마탑에 들어와서도 충분히…… 아니, 어쩌면 그 이상.’
지금껏 수많은 마법사들을 가르쳐온 미네르바였고, 그중에는 분명 델타와 비슷한 상승세를 보이거나 혹은 더 가파르게 두각을 드러냈던 마법사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마탑의 아낌없는 지원을 받아 만들어낸 성과였다. 델타처럼 그 어떤 지원이나 노력도 거치지 않고 그만한 성장을 일구어 낸 사례는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자고로 마법이란 수많은 지식을 습득함으로써 점차 발전해나가는 것이다. 그런 과정 없이 그저 가만히 있기만 했는데도 어느 순간 깨달음을 얻는다?
미네르바가 아는 한, 그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미네르바는 지금이라도 델타를 마탑에 끌어들여 마법사로서 키워야 할지를 정말로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쪽에서 원한다면 자신과 사제 관계를 맺어줄 의향까지 있었다.
제국의 수백 년 역사를 통틀어 가히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수준의 특혜였지만, 델타에게서 엿보이는 잠재력을 생각해본다면 투자할만한 가치는 충분했다.
무엇보다, 본인이 크리스탈 스크롤이 숨겨진 던전의 위치를 알려주겠다고 말하지 않았었는가.
그 말이 진실이라고 증명되는 순간, 제국에 존재하는 모든 마법사들이 델타를 배척하기는커녕 제발 자신에게도 은총을 베풀어달라며 손이 닳도록 빌어댈 것이 분명했다.
“……흐음?”
문장을 마무리하고 새 스크롤을 집어들려던 미네르바는, 근처에서 이질적인 마나의 흐름을 감지하고 눈살을 찌푸렸다.
카이킬리아의 침실과 더불어, 미네르바 본인이 직접 구사한 수십 겹의 보호 마법으로 지켜지고 있는 장소가 바로 이곳 미네르바의 침실이었다.
어지간한 마법은 이 안에서 시전조차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마나의 흐름이 느껴진다는 건…….
“이것 참 놀랍구나. 그 무거운 몸뚱아리를 이끌고 여기까지 오다니. 무슨 바람이 분 것일까?”
미네르바는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그렇게 말했다.
한 발 늦게, 허공에서 검은 마력이 모여들었다. 단순히 감지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나빠지는 그 질척한 흐름에, 미네르바의 얼굴이 잔뜩 구겨졌다.
순간이동 마법과 비슷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전혀 달랐다. 검은색의 탁류가 소용돌이치며 거대한 원이 생겨났다. 미네르바는 펜을 내려놓고 몸을 반 바퀴 돌려 뒤를 쳐다보았다.
회오리치는 검은 탁류 사이에서, 사람 한 명이 걸어나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한 미네르바의 얼굴이 더욱 크게 구겨졌다.
검은 탁류 사이로 걸어나온 것은 웬 여자였다.
미네르바와 비교해 머리 세 개 가까이 작은 키. 미네르바가 여자는 물론 남자들과 비교해서도 굉장한 장신이라는 걸 감안한다 한들, 무척 짜리몽땅한 키였다.
그에 비해 가슴은 터무니없이 커다랬다. 미네르바도 평균 이상의 크기였지만, 저 여자는 그보다 훨씬 더 묵직한 중량감을 자랑했다. 심지어는 자기 머리보다도 컸다.
특히, 키가 압도적으로 작은 탓에 가뜩이나 커다란 가슴이 한층 더 커보이는 효과도 있었다.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출렁출렁 위아래로 정신없이 흔들려댔다.
그렇지 않아도 잘록한 허리는 위쪽에 매달린 두 개의 지방덩어리와 비교되어 훨씬 더 얇게 느껴졌다. 게다가 바로 아래에는 포동포동한 허벅지까지 있어서 더했다.
뭔가를 입었나보다 하는 수준밖에 안 되는 하의와, 가슴을 거의 드러내놓다시피 한 상의가 잔뜩 굴곡진 몸매와 합쳐져 커다란 시너지 효과를 냈다.
미네르바는 그 평범하디 평범한 옷차림에는 신경조차 쓰지 않은 채, 잔뜩 굳은 얼굴로 눈앞의 여자를 노려보았다.
“아, 안녕하세요, 미네르바님…….”
잔뜩 주눅이 든 목소리에, 쭈뼛쭈뼛 눈치를 살피기 바쁜 얼굴. 소심하기 짝이 없는 제 주인의 모습과는 정반대로 금방이라도 옷을 찢고 나올 것만 같은 커다란 가슴.
보라색과 초록색을 반씩 섞어놓은 푸석푸석한 머리카락이 등 뒤에서 흔들렸고, 눈 근처까지 내려온 앞머리 사이로 검은색 눈동자가 데굴데굴 움직여댔다.
“우리 사이에 직접 여기까지 찾아왔으니, 그만큼 중요한 사항일 거라고 믿겠단다. 그렇지 않다면 제법 화를 내야할 것 같거든. 즐거운 시간을 방해하였잖니.”
허공으로 둥실 떠오른 지팡이가 미네르바의 오른손에 쥐어졌다. 탁, 그 끄트머리가 바닥을 가볍게 건드렸다. 푸른 마나가 피어오르고, 흰색의 동공과 흑색의 동공이 서로를 마주보았다.
“대답하렴, 닉스. 여긴 무슨 일로 왔을까?”
‘겨우 끝났네.’
나는 진이 다 빠진 얼굴로 황궁의 복도를 걸어가고 있었다.
은빛 여명 기사단의 근무지로 향해서 일반 단원들을 만난 것 ㅈ까지는 좋았다. 그것까지는 좋았는데, 내가 신입이라는 소리를 듣더니 관심이 죄다 나한테로 쏠려버렸다.
기사단장 넷 다 눈물 많은 성격과는 거리가 멀었으니, 오랜만의 재회에 울고불고 서로를 끌어안는 수준은 아니더라도 제법 반가워는 할 줄 알았는데 그냥 인사 몇 번 나누고 끝이었다.
덕분에 남은 시간 동안은 나 혼자서만 죽어라 시달렸다.
게다가 기사단장들도 몇 년만에 재회한 자기네 단원들의 관심이 내게만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을 전혀 신경쓰지 않는 듯 했다. 오히려 뿌듯하기까지 한 얼굴이었다.
결국 나는 번갈아서 들어오는 온갖 질문 세례에 집중적으로 타격당하다가, 거의 한 시간 가까이가 지나고 나서야 간신히 풀려날 수 있었다.
정말 더럽게 힘들었다. 차라리 일반 기사단원들과 20연속으로 대련을 하는 편이 훨씬 더 쉬울 것 같았다. 그건 최소한 정신이 피곤하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다.
‘역시 은빛 여명 기사단은 원래대로 되돌려주는 게 맞겠지?’
금빛 황혼 기사단과 은빛 여명 기사단의 결말은 플레이어가 결정할 수 있었다.
은빛 여명 기사단의 원래 직위를 되돌려놓거나, 역으로 황혼 기사단을 여명 기사단에 편입시키거나, 혹은 플레이어가 기사단장의 자리에 앉는 것도 가능했다.
원래 노렸던 건 황제의 직속 기사 자리였지만, 카이킬리아가 내게 보이는 관심이 심상치 않은지라 고민이 좀 됐다. 내가 과연 그 압박에 가까운 관심을 견딜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어서였다.
‘뭐,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되겠지.’
나는 그냥 생각을 포기했다. 그런걸 지금 당장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그냥 스토리가 진행되는 대로 그때그때 맞춰서 방법을 떠올리면 될 거다.
지금 당장 미래에 대해서 생각하는 건 무의미한 짓이었다. 이미 내가 아는 브닼 4의 스토리와는 너무 많이 비틀렸으니까.
당장 이 다음 알현 때 카이킬리아가 나한테 무슨 짓을 할지조차 모르는 상황이다. 그것보다 더 미래의 일을 고민하라니, 당치도 않았다.
“이곳에 계셨습니까.”
방으로 돌아가려는 나를 누군가 막아세웠다. 고개를 돌렸다. 전체적으로는 라나와 비슷한 분위기지만 훨씬 더 무감정한 표정을 하고 있는 메이드였다.
이미 어제부터 우리 시중을 들어오긴 했는데, 저 모습은 도저히 적응이 안 됐다. 그 라나보다 훨씬 더 기계적이었으니 보면서 위화감마저 느껴질 지경이었다.
그냥 사람의 껍데기를 쓴 무언가라고 칭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만큼 움직임이 딱딱했다. 황궁에서 직무를 수행하려면 저 정도는 되어야 하는구나 싶었다.
“무슨 일이시죠?”
“황제 폐하께서 찾으십니다. 지금 즉시 폐하를 알현할 준비를 하셔야 합니다.”
“……저 혼자서만요?”
“네, 그렇습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직감이 경종을 울려댔다. 아우로라와 기사단장들이 같이 있던 중앙 홀에서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기 다리 사이로 내 머리를 끌어당겼던 사람이 카이킬리아다.
보는 눈이 있는 장소에서조차 그런 짓을 태연히 저지르는 인간인데, 나 혼자서만 자길 알현하라고 따로 명령을 내리기까지 했다?
느낌이 안 좋았다.
그것도 아주 많이.
“알겠습니다. 어디로 가면 될까요?”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질문했다. 느낌이 좋든 좋지 않든, 황제 폐하가 나를 불렀다는데 그걸 무시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일말의 감정도 존재하지 않는 듯한 동공이 나를 향했다.
“폐하의 침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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