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121)
나는 떨리는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며 카이킬리아의 침실로 향하는 복도를 걸어가고 있었다. 오늘따라 황궁의 복도가 더없이 짧게 느껴졌다.
무려 자신의 침실씩이나 되는 공간으로 나를 불렀으니, 이번에는 또 무슨 짓을 당할지 몰랐다. 그렇다 해서 내가 황제의 명령을 거부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침착하자.’
일단 내가 카이킬리아에게 죽을 위험이 없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설령 한두 번 말을 잘못 내뱉더라도, 황제가 그 자리에서 성검을 꺼내들어 내 목을 자르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테니까.
게임에서는 잊을 만하면 함정 선택지로 등장하곤 했지만 여기서는 다르다. 죽을 위험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긴장하지 않아야 할 이유는 충분했다.
마지막으로 제복의 옷매무새를 점검한 뒤, 마음을 굳게 먹고 카이킬리아의 침실 문 앞에 섰다. 심장이 평소보다 몇 배는 더 빨리 박동하는 기분이었다.
침실의 방문은 중앙 홀에 입장할 때 거쳐가야 하는 문과 비교하면 상당히 작았다. 내가 아슬아슬하게 머리를 부딪히지 않고 지나다닐 수 있는 높이였다.
하지만, 그 화려함만큼은 절대로 뒤지지 않았다. 문의 재질은 순금에, 하나하나가 내 눈동자보다 훨씬 더 큰 보석들이 완벽한 조화를 이룬 모습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나는 오직 황금만 사용해 만들어진 길쭉한 손잡이를 조심스럽게 쥐었다. 메이드의 말로는 손잡이를 잡는 순간 문에 새겨진 보호마법이 작동한다던가.
살기를 띠고 있거나 불순한 목적을 지닌 존재라고 여겨지면 그 즉시 처분이 이루어진다는데, 처분의 조건과 원리는 마법의 시전자인 미네르바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달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잠금장치가 해제되었다는 뜻이었다. 보호마법한테 불순한 목적을 지닌 사람이라고 여겨지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이대로 기다리면 알아서 열린다고 했지.’
손잡이를 쥐었던 손을 떼고서 문이 완전히 열리기를 기다렸다. 카이킬리아가 나를 부른 것이니, 통상적으로 거쳐야 하는 다른 복잡한 절차는 아무것도 필요 없었다.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동안, 아우로라와 기사단장들이 황궁으로 향하기 전에 말해준 수칙과 메이드가 당부했던 주의사항들을 머릿속으로 되새겼다.
속도는 너무 빠르지도, 너무 느리지도 않게. 눈은 정면에서 살짝 아래쪽을 쳐다보고, 허리는 바닥에 무릎을 꿇어 예를 표하기 전까지는 꼿꼿이 세우되, 절대로 눈을 마주치지는 말 것.
그 주의사항을 따라 자세를 유지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안으로 들어가기가 무섭게 문이 도로 닫혔다. 철컥, 곧이어 잠금장치가 작동했다.
철컥, 철컥. 두 번이 더 들렸다.
‘……왜 열렸던 자물쇠보다 잠긴 자물쇠가 더 많은 것 같지?’
기분탓인가.
찜찜한 기분을 애써 머리에서 치워버리며 침실 내부로 조금 더 발을 내딛자, 그 안에 서 있는 카이킬리아가 눈에 들어왔다.
고풍스러운 커튼이 쳐진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사색에 잠긴 표정으로 창틀에 몸을 반쯤 기댄 모습이었다.
‘옷이…….’
그런데, 옷차림이 내 예상과 전혀 달랐다.
카이킬리아는 평소에 입고 다니던 제복이 아니라 전신을 꽁꽁 싸맨 정장 차림을 하고 있었다.
첫눈처럼 새하얀 와이셔츠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다른 옷은 다 검은색인데 혼자서만 흰색인지라 시선이 확 끌렸다.
제복을 입고 있을 때는 밖으로 한껏 드러내놓았던 윗가슴과 그 사이의 가슴골 역시 와이셔츠 안에 가려진 채였다. 정장 바지 속으로 집어넣은 아랫단이 정갈함을 한층 더했다.
물론 별 의미는 없었다. 리제나 교황 자매 급은 아니더라도, 상당히 큰 축에 속하는 가슴이 옷 밑에서 열심히 자기주장을 펼쳐댔기 때문이었다.
앞섬의 단추는 넥타이로도 미처 가리지 못할만큼 팽팽히 부풀어 올라 있었다. 금방이라도 단추가 터질 낌새였다. 가슴이 커서, 혹은 와이셔츠가 작아서 그런 듯 했다.
아니면 둘 다거나.
커다랗게 굴곡진 가슴 탓에, 와이셔츠 위로 정갈히 늘어져 있어야 할 넥타이는 가슴 아래에서부터 허공에 반쯤 떠 있다시피 했다. 그 사이로 검은색 란제리가 얼핏 보였다.
와이셔츠 자체가 제법 많이 얇은 재질인지 그 위로도 속옷의 실루엣이 훤히 드러났다. 가슴을 절반도 채 가리지 못하는 크기였다.
발목까지 내려오는 길이의, 제법 헐렁한 트렌치 코트는 앞섬을 조금도 여미고 있지 않은지라 오히려 그 사이에 끼인 가슴을 강조하는 효과밖에는 내지 않았다.
게다가, 정장 바지는 저걸 입은 채로 어딘가에 앉을 수 있는지조차 의문이 들 정도로 다리에 착 달라붙어선 카이킬리아의 각선미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금빛 황혼 기사단의 정복인 레깅스가 떠오를 수준으로 타이트한 정장이었다. 엉덩이와 허벅지 라인이 제복 치마를 입었을 때보다 훨씬 더 강조되어 보였다.
‘분명 노출은 하나도 없는데.’
노출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뭔가 전체적으로 굉장히 야한 느낌이었다.
황금빛 동공이 날 향했다. 손에 들려있던 성검의 형태가 점차 희미해지더니, 이내 빛무리로 화해 사라졌다.
“제 시간에 도착하였구나.”
“저를 부르셨다 들었습니다. 감히 그 의중을 여쭈어보아도 되겠습니까?”
의문을 꾹 눌러 참았다. 원래는 왜 옷을 바꿔 입었는지부터 물어보고 싶었지만, 제대로 된 대답이 돌아오지는 않을 것 같았다. 아니면 뭔가 터무니없는 거래 조건을 제시해오든지.
카이킬리아는 나를 위아래로 몇 번 훑어보더니, 창틀에서 몸을 떼고 이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 발걸음에 맞춰 또각, 또각 하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네게 명을 내리겠다.”
“무슨 명령이십니까?”
나는 잔뜩 긴장한 채로 되물었다. 대체 무슨 명령이 떨어질지 몰라서였다.
카이킬리아의 몸이 빙글 돌아갔다. 내게 등을 보이며 돌아서고, 골반을 뒤틀면서 팔을 좌우로 살짝 벌려 엉덩이와 허리 라인을 한층 강조하는 자세를 취했다.
“벗겨라.”
“……예?”
“여의 의복을 벗기라 일렀다. 우선은 이 코트부터 시작하면 되노라.”
사고가 잠시 멈췄다. 정말로 순수하게, 저 명령을 이해하지 못해서였다. 갑자기 나더러 옷을 벗기라고? 왜?
“그것이라면 메이드가 훨씬 더ㅡ”
내가 우물쭈물하며 내뱉은 말에, 카이킬리아의 고개가 홱 꺾여 나를 쳐다보았다. 황금빛의 동공이 조금 전보다 훨씬 더 차갑게 물들었다.
“나는 지금 당장 이 갑갑한 복장을 풀어헤치고 싶은 것이다. 설마하니, 네놈이 여의 명령을 거역하려는게냐?”
“절대로 아닙니다.”
“그렇다면, 행동으로 증명하여라.”
카이킬리아는 그렇게 말하고 다시 고개를 돌려버렸다. 쭈뼛쭈뼛 그 뒤로 다가갔다. 단순히 다가가기만 했을 뿐인데도 은은한 향수 냄새가 확 풍겨왔다.
막상 그 뒤로 다가서고 나니, 이제는 어디를 잡아야 할지가 고민이었다. 칼라 부분을 잡자니 황제의 뒷목을 잡아채는 꼴이고, 앞섬을 잡자니 어딘가 이상야릇한 자세가 되니까.
‘……그래도, 전자보다는 후자가 낫겠지.’
결심을 굳힌 나는 카이킬리아의 몸 앞으로 손을 가져갔다. 최대한 그 몸에 팔이 닿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쇄골 근처의 코트 앞섬을 스리슬쩍 붙잡았다.
자연스럽게 내가 카이킬리아를 뒤에서 반쯤 끌어안다시피 하는 꼴이 된지라, 혹시 화를 내면 어떡하나 조마조마 했지만 카이킬리아는 의외로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머리카락 사이로 얼핏 드러나는 새하얀 뒷목과, 와이셔츠 밑에서도 커다란 볼륨을 자랑하는 둔덕을 애써 무시하며 붙잡은 앞섬을 뒤로 돌려 끌어내리기 시작했다.
내 손이 카이킬리아의 쇄골과 어깨를 차례차례 스쳐지나갔다. 돌아오는 반응은 없었다.
코트의 칼라와 어깨선이 더 아래로 향했다. 그러자, 와이셔츠와 코트 사이에 갇혀 있던 카이킬리아의 향기가 콧속으로 훅 끼쳐들어왔다. 꿀처럼 달콤하게 느껴지는 냄새였다.
순간 머리가 아찔해지는 듯한 감각이 느껴졌다. 나는 애써 정신을 다잡고 의식을 다른 곳으로 돌리며 코트를 완전히 벗겨내려다, 팔이 어딘가에 걸려버린 탓에 주춤했다.
살짝 접힌 카이킬리아의 팔꿈치였다.
코트를 벗겨내려 해도, 팔꿈치가 위를 향해 반쯤 접혀있는지라 그러기가 불가능했다. 내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로 굳어있으려니, 카이킬리아의 고개가 반쯤 돌아갔다.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
“……폐하, 팔을ㅡ”
“지금 여에게 명령을 하는 것이냐? 참으로 시건방지도다.”
“아니, 그것이 아니라…….”
나는 그 상태로도 어떻게든 옷을 벗겨내고자 노력해봤지만, 소용 없는 짓이었다. 이 상태로 코트를 벗기려면 아예 코트를 찢어버리지 않고서야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참으로 답답하다. 결국 여가 명령을 내려야겠구나.”
“…….”
“붙어라.”
“예?”
“내게 붙으라 하였다.”
카이킬리아가 내 팔을 붙잡고 앞으로 확 끌어당겼다. 나는 순식간에 카이킬리아에게로 끌려갔다.
내 가슴팍과 카이킬리아의 등이 맞닿고, 카이킬리아의 엉덩이와 내 고간이 맞닿았다. 하반신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운 여체의 감각에, 몸이 반사적으로 흠칫 떨렸다.
달콤한 꿀 냄새가 한층 더 진하게 풍겨왔다. 땀으로 아주 약간 축축해져 있는 와이셔츠의 느낌이 가슴팍과 맞닿았다.
내가 카이킬리아를 뒤에서 바싹 당겨 끌어안다시피 한 자세였다.
“폐하, 이것은…….”
“이제 코트는 되었다.”
카이킬리아의 손이 넥타이를 슬쩍 들추었다. 그리고, 내 손을 끌어당겨 와이셔츠의 단추를 향해 가져갔다. 금방이라도 터질 듯 팽팽하게 당겨진 단추였다.
“여기가 더 답답하니, 이것을 먼저 풀어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