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123)
카이킬리아가 다른 황족들을 몰살시킨 진짜 이유. 그건 바로 자신을 제외한 일가친척들이 모두 다 악마와 연관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황족 중 누군가가 악마와 연관되어 타락했고, 주변 사람들에게 은밀히 물밑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카이킬리아가 그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너무나도 늦어버린 뒤였다. 자신을 제외한 대부분의 인간이 악마의 종복이 되어버렸거나, 되기 직전인 상태였으니까.
결국 카이킬리아는 미네르바의 도움을 받아 혼자서 몰래 성국으로 넘어갔다. 자격을 충족시킨 자에게 신의 권능을 내려준다는 성검을 얻기 위해서.
황궁 전체가 악마 소굴이나 다름없게 되었으니, 그 심각성을 고려한다면 이단심판관을 동원해 덤벼들어야 하는 것이 맞았다. 하지만 카이킬리아는 그 제안을 거절했다.
황족이 악마와 연관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제국 전체가 그 존재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될테니까 말이다. 그런 상황만큼은 반드시 피해야 했다.
다행히 카이킬리아는 성검을 뽑아드는 것에 성공해 그 힘을 손에 넣었고, 당당히 제국으로 돌아와선 악마에게 지배당한 일가친척들을 제 손으로 모조리 썰어버렸다.
그리고 대외적으로는 자신이 권력에 미쳐서 그랬다는 소문이 퍼지도록 방치했다. 진실을 아는 사람은 당사자인 카이킬리아와 미네르바, 교황을 포함한 성국의 몇몇 고위직 뿐이었다.
제일 의외였던 건, 아우로라의 아버지였던 전 영주놈이 악마와 연관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다른 사람들은 죄다 죽어나갔는데도 그놈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가 그래서였다.
자기딴에는 권력에 관심 없음을 어필하기 위해 벌인 망나니짓이 먹혀서 살아남은거라고 생각했겠지만, 실상은 그저 카이킬리아가 살려주었음에 불과했던 것이다.
미네르바가 추측한 바로는 너무 멍청하고 답이 없는 인간이라 계획에 방해만 된다고 판단해서 건드리지 않았을거라던데, 제법 그럴 듯한 추측이었다.
진실은 이러했으나, 그 일과 카이킬리아의 나를 향한 관심 사이에 무슨 연관이 있는지는 아직도 의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폐하께서 저를ㅡ”
“여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조용히 하거라.”
카이킬리아의 검지가 내 입술을 꾸욱 눌렀다. 나는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그 일이 있은 이후로, 여는 어떤 희생을 치르고 어떤 방법을 동원하더라도 반드시 악마를 처리하여야 된다고 생각하였다. 성전을 위해서라면 성국의 전투 수녀들이 제국에 자유롭게 출입하여도 된다는 허가를 내려준 이유 역시 그래서였느니라.”
어쩐지. 아라크나이네라 보스 필드는 엄연히 제국의 영토에 속하는 곳이었는데 이단심판관이 왜 나타났나 했었다. 저런 속사정이 있었던거였나.
게임에서는 한 번도 묘사되지 않았던 사건이었으니 당연히 내가 모를 수 밖에.
아니, 애초에 저런 일이 있었는지부터가 확실하지 않았다. 황제가 성검을 들고 있다는 게 정보의 끝이라 유저들이 알아서 추측해야만 했다.
“헌데, 어느 날. 나의 혈육이었던 것이 악마와 연관되었으니 처리해달라는 서신이 도착하였지.”
내가 전 영주놈을 처리하기 위해 벌인 일이었다. 저때까지만 해도 내가 황제한테 이런 관심을 받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는데.
“처음으로 든 생각은 의문이었노라. 그것은 남의 목숨 아까운 줄은 모르지만, 제 목숨 아까운 줄은 아는 인간이다. 절대 자의로 악마와 연관될 성격이 아니지. 너 역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느냐?”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점에 대해서는 솔직히 나도 동감이었다. 악마가 깃든 책을 보여주었을 때, 영주의 표정과 행동에는 불안감이 아주 깊게 자리잡고 있었으니까.
내가 여자를 마음대로 다룰 수 있다는 거짓말로 놈을 현혹하기 전에는, 책을 보고도 악마에게 정신을 지배당하지 않았었다. 그만큼 불안감이 컸다는 증거였다.
“그리고, 그것의 신체에 신성력이 깃든 무기로 새겨진 상흔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느니라.”
‘축복받은 단검으로 찔린 자국을 알아봤다고?’
이것도 게임에서는 묘사되지 않았던 내용이다. 축복받은 무기로 놈을 두들겨팬다 한들, 황제의 대사가 바뀐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즉, 나는 아예 처음부터 잘못된 생각을 해버렸다는 뜻이었다.
“아우로라는 마나도, 신성력도 다루지 못하는 평범한 인간이다. 나머지 기사들은 마나를 다룰 수는 있지만 신성력을 다루지는 못하지. 또한, 성국 바깥으로 돌아다닐 수 있는 전투 수녀들 중에는 단검을 사용하는 자가 없느니라.”
“…….”
“그러니 묻겠다. 악마를 두려워하던 것을 악마로 변이시키고, 신성력이 깃든 단검을 다루어 처리한 사람이 누구이겠느냐? 그 모든 일을 계획한 사람이 누구이겠느냐? 침묵은 허용하지 않겠으니, 대답하거라.”
카이킬리아는 이미 내가 그런 짓을 저질렀으리라고 확신하는 얼굴이었다. 일단 그 확신이 맞았던데다, 여기서 따로 변명할 말도 없었기에 얌전히 긍정했다.
“저…… 입니다, 폐하.”
“그것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니라.”
“…….”
이제 앞뒤가 맞아떨어졌다.
카이킬리아가 내게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저 말대로라면, 그 놈을 악마로 몰아 처리한 시점부터 당연히 내게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던 셈이었다.
악마 때문에 자기 일가친척을 제 손으로 죽여버린 사람한테 마지막 남은 혈육이 악마로 변했다는 말이 전해졌는데, 그걸 가만히 두고보겠는가.
그 관심은 자연스레 사건의 범인임이 거의 확실시 되는 나한테로 옮겨졌고 말이다. 아우로라 빼고, 기사단장들 빼면 그런 짓을 벌일만한 사람은 나밖에 없었으니까.
게임에서는 그런 식으로 영주를 처리해도 황제가 일을 크게 벌리기 싫다며 대충 묻어두고 넘어간지라, 설마 이야기가 저렇게 이어졌을 줄은 전혀 몰랐다.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한 나를 위에서 내려다보며 카이킬리아가 또다시 입을 열었다.
“여는 해야 할 일이 있다. 염원, 희망, 목적. 좋을대로 받아들이거라.”
“……?”
“이 세상에서, 그 빌어먹을 존재들을 모조리 치워버리는 것이다.”
카이킬리아의 얼굴이 내게로 바싹 들이밀어졌다. 뜨뜻한 바람이 입술을 간지럽혔다.
“미네르바에게서 그 교황 년들이 너를 이곳에 직접 데려다주었다는 말을 들었느니라. 필시 성국에서 무언가를 성취하고 온 것일테지. 그렇지 않고서야, 지난 몇 년간 각자의 대성당에 틀어박혀 두문불출하던 년들이 너를 친히 이곳으로 옮겨주지는 못하였을테니. 그 말을 듣고 확신하였다.”
내 어깨를 잡은 손에 들어가는 힘이 점점 더 강해지기 시작했다.
“여는 너에게서 가능성을 보았다. 특별한 능력을 보았다. 망상을 실현시킬 희망을 보았다. 너 스스로가 그 사실을 깨달았든, 깨닫지 못하였든 그것은 중요한 사항이 아니니라.”
“…….”
“미네르바 역시 긍정하였다. 자신으로서는 감히 네 안에 잠재한 능력을 측정조차 할 수 없다고. 네가 원한다면, 그 무엇이든 될 수 있을거라고. 그 미네르바가 너를 그리 평가하였느니라.”
무엇이든 될 수 있다, 라. 브닼 4의 주인공을 정확히 표현하는 말이긴 했다. 과거 행적을 어떻게 고르고 스탯을 어떻게 찍느냐에 따라 빌드가 확 갈리니까.
초고레벨대에서는 딱히 의미 없는 분류긴 하지만.
“그러니, 제국의 황제로서 묻겠노라. 너는, 여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 줄 능력이 있느냐? 성국의 교황조차 불가능하다 평한 염원을, 이루어 줄 수 있느냐?”
플레이어가 저 말대로 할 수 있냐고?
있다.
당연히 있다.
브닼 4의 DLC는 총 4개인데, 그 중에 세 번째로 발매된 DLC가 ‘악마들의 성소’라는 이름을 가진 DLC였다.
그 DLC에서, 플레이어는 지옥에 끌려갔다가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오는 동안 수많은 악마들을 학살하는 겸사겸사 해당 DLC의 최종 보스인 ‘악을 인도하는 자’의 목까지 따버린다.
일단 최종 보스를 처리하면 모든 악마 계열의 보스를 클리어한 것으로 판정되어 전리품을 획득함과 동시에, 해당 회차에서 다시는 악마 계열의 적이 나타나지 않게 된다.
그러니 카이킬리아의 염원을 이루어주는 것 자체는 가능하다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DLC를 깨지 않고 내버려 둘 예정이었다.
‘내버려둔다고 세상이 멸망하는 것도 아니고, 위험을 감수할만큼 보상이 큰 것도 아닌데 굳이 깨야 할 이유가 없지.’
‘깨어나는 악’ DLC의 최종 보스인 신에게 버림받은 피조물과는 달리, 활성화된 DLC를 깨지 않고 방치해둔다 한들 악마들이 넘어와 세계가 멸망한다거나 하는 일은 없으니 말이다.
애초에 플레이어가 지옥에 끌려간 것도 뭔가 거창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악마 숭배자들의 의식에 휘말려서 그런거였다.
굳이 클리어하지 않아도 엔딩에 아무런 지장이 없는데다, 하려면 할 수는 있지만 굳이 그래야 하나? 라는 느낌이라 악마 숭배자들이 있는 자리에는 얼씬도 안 하려고 했는데ㅡ
“있는 것이로구나.”
카이킬리아가 소름끼치는 미소를 지으며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 섬뜩한 얼굴에, 나는 강제로 상념에서 빠져나왔다.
속으로 아차 싶었다. 생각을 너무 오래 하고 있었다.
“역시, 있는 것이로구나.”
툭, 그 손이 나를 뒤로 밀었다. 상반신이 침대 위로 풀썩 무너졌다.
카이킬리아가 침대를 짚으며 무릎걸음으로 내 위에 기어올라왔다. 란제리로 감싸인 가슴이 묵직한 무게감을 자랑하며 아래로 쏠리고, 얼굴 옆으로 팔이 하나씩 자리를 잡았다.
“할 수 없는 것을 상상하는 인간은 그런 얼굴을 하지 않노라. 여의 눈은 정확하였다. 너는, 여의 염원을 이루어 줄 수 있는 것이다.”
황금빛 동공이 나에 대한 욕망으로 이글이글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 얼굴에는 희열이 한가득 떠올랐다. 심상치 않은 낌새가 느껴졌다.
“긴 말은 않겠다. 여의 것이 되어라. 그리하면ㅡ”
“카이킬리아!”
무척이나 다급하게 외치는 목소리에, 카이킬리아의 말이 뚝 끊겼다. 카이킬리아는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도 그 방향으로 같이 고개를 돌렸다.
목소리의 주인은 미네르바였다. 평소의 여유롭고 신비한 표정은 온데간데 없이 가쁜 숨을 몰아쉬어대는 중이었다.
“문제가 생겼으니, 지금 당장 전투 준비를 하렴.”
평소답지 않게 허둥대는 얼굴과 가쁜 숨소리를 본 카이킬리아는, 보통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직감했는지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우고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무슨 일인 것이냐, 미네르바?”
“드래곤이 나타났단다. 아직은 단순히 하늘을 날아다니기만 하는 중이지만, 느낌이 심상치 않구나.”
“……드래곤이?”
카이킬리아의 목소리가 살짝 높아졌다.
브닼 세계관에서 드래곤이란 걸어다니는 자연재해나 다름없는 취급이었다. 드래곤에 대한 공포가 표현된 문서도 수두룩했고.
물론 주인공한테는 그냥 잡기 귀찮은 보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지만.
‘그것들이 여긴 왜…….’
머릿속으로 브닼 4에 있는 드래곤 보스들의 목록을 천천히 되짚어보다가, 문득 떠오른 가능성에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미네르바님!”
“왜 그러니?”
“그 드래곤, 혹시 비늘이 어떤 색깔이었는지도 보셨습니까?”
“비늘의 색깔? 아마…… 검은색이랑 남색이 섞여 있었던 것 같은데.”
시발.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속으로 욕을 내뱉었다.
검은색과 남색이 혼합된 색깔의 비늘을 가진 드래곤. 그 하나면 충분했다. 브닼 4에서 그런 색깔의 비늘을 가진 드래곤은 단 하나 뿐이니까.
세계를 먹는 자.
브닼 4의 최종 보스 말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