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125)
‘뭔가 방법이 있나?’
나는 세계를 먹는 자의 눈이 다시 검은색으로 물드는 모습을 보며 고민에 빠졌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로 기억을 읽히고 말 거다.
그리고 다 같이 사이좋게 죽겠지.
더 암울한 건, 게임에서 벌어졌던 대로 강제 패배 이벤트를 겪는다 한들 저놈이 돌아갈지 의문이라는 사실이었다.
첫 만남에서 주인공을 죽이기 직전까지 갔던 세계를 먹는 자가 순순히 물러나 준 것은, 주인공의 기억을 읽고 자신이 오해를 했었단 사실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저 놈에게 기억을 읽힌 시점부터 이미 끝난 것과 다름없었다. 비밀을 알고 있는 인간은 무조건 죽이려 들테니.
‘아마 다짜고짜 브레스를 내뿜지는 않을 텐데…….’
처음에는 제일 걱정했던 패턴이 브레스였으나, 걱정이 차차 가라앉고 상황을 냉정히 분석할 수 있게 되니 생각이 바뀌었다. 곧바로 브레스를 내뿜어 날 죽이지는 않을 거라고 말이다.
워낙에 오랜 시간을 살아온데다 그 시간동안 축적해 온 지식이 어마어마하다보니, 저 놈은 자신의 입으로 새로운 지식에 상당히 굶주려 있다고 말했었다.
실제로 첫 만남에서 주인공의 기억을 읽을 때, 주인공이 DLC 지역인 지옥에 방문한 이후라면 흥미로운 장소에 다녀왔다며 기억을 읽는 시간이 조금 더 길어지는 식으로 컷신이 바뀐다.
지금도 그랬다. 웬 인간이 신에게 버림받은 피조물을 처치했다고, 그 인간을 직접 만나기 위해 친히 저 거대한 몸뚱아리를 이끌고 제국의 수도까지 날아오지 않았던가.
여기서도 그 성격은 어디 안 간 모양이니, 내가 신에게 버림받은 피조물을 죽인 방법을 알아내기 전까지는 대뜸 브레스를 갈기거나 하진 않을 확률이 높았다.
저놈도 자신이 사용하는 브레스의 위력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잘 알고 있고, 평범한 인간은 맞는 순간 잿더미조차 남지 않고 증발해버린다는 사실 또한 아주 잘 알고 있다.
세계를 먹는 자의 힘이 아무리 강대하고 강력하다 해도, 뼛조각 하나 남기지 않고 타버린 인간의 기억을 읽지는 못하니까.
새로운 지식을 습득할 기회인데 그걸 제 발로 걷어차 버리지는 않을 거다.
“어떤 이유로 공격했냐니, 당연히 그쪽이 뭔가 수상한 짓을 하려 했으니까 그렇지.”
일단은 적당한 방법이 떠오를 때까지 시간이라도 끌어봐야 한다. 나는 그런 생각으로 입을 열었다. 이런 내 말에, 세계를 먹는 자의 몸뚱아리가 잠시 주춤했다.
대화용으로 생성한 마나 인간의 몸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잘려나간 머리가 붙고, 뒤통수에 돋아났던 눈과 입이 사라졌다. 생성된 몸뚱아리가 비척이며 걸어왔다.
아직 말로 해결할 여지가 남아있단 뜻이었으니 좋은 징조였다.
“방금 나한테 뭘 하려고 했던 건데?”
“기억을 …… 들여다 볼 것이다…….”
“내 기억? 왜?”
금방이라도 덤벼들 듯 하던 조금 전까지의 기세와는 달리, 놈은 순순히 내 질문에 대답을 해주고 있었다. 혹시 안 싸우고 넘어가려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신에게 버림받은 피조물…… 그것을 죽인 방법을…… 알기 위함이다…….”
“그러면 나한테 먼저 말이라도 해봤어야지. 다짜고짜 눈깔부터 빛내니까 그쪽이 뭘 저지르려는 줄 알고 목 날린 거잖아.”
“말……?”
마나 인간의 입이 멈췄다.
그리고, 본체 쪽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놈의 머리가 천천히 아래를 향해 내려왔다. 몸이 낮춰지고, 목이 바닥과 수평을 맞추며 내려앉았다. 우리 둘 사이의 거리가 좁혀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한쪽 눈동자가 내 키와 비슷하고, 내 키보다 훨씬 큰 이빨을 가진,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머리가 내게서 몇 걸음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까지 들이밀어져 있었다.
ㅡ주제넘는 소리다…… 인간…….
찢어지는 듯한 소음이 들이닥쳤다.
머릿속에 사념을 직접 밀어넣는 거라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반사적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귀에서 삐이이이ㅡ 하는 이명이 몰아쳤다. 다리가 절로 휘청여댔다.
이를 악물었다. 단순히 머릿속에 저놈의 목소리가 울렸을 뿐인데, 금방이라도 몸이 무너져버릴 것만 같았다. 힘이 풀려 주저앉으려는 다리에 억지로 힘을 줘서 버텨냈다.
고작 한 번의 대화에 불과했을 뿐인데, 그 여파가 쉴 새 없이 머리를 헤집었다. 대체 말 한마디에 얼마나 많은 힘을 때려 박았던 건지 온 몸이 다 욱신거렸다.
아니면 저 놈한테는 방금 그게 평범한 대화였거나.
ㅡ파악하지 못했다면…… 깨닫게 해주겠다…….
그 말을 듣자마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방금 내뱉은 말은 세계를 먹는 자가 주인공과의 첫 만남에서 전투를 개시하기 직전에 했던 말과 완벽히 동일한 대사였다.
허공으로 흩어지는 마나 인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저걸 흩뜨렸다는 건 더 이상 대화를 할 마음이 없다는 뜻과 마찬가지였다. 약간이나마 품었던 희망도 같이 흩어졌다.
나는 미친 듯이 울려대는 머리를 한 손으로 감싸쥐고 비틀거리며 자세를 잡았다. 저런 말을 내뱉은 데다 마나 인간까지 없앴으니 전투는 불가피했다.
그렇다면, 결과가 어떻게 되든 강제 패배 이벤트의 조건만은 충족시켜 놓아야 할 것이다.
이제 와서 게임대로 흘러간다느니 하는 건 바라지도 않지만, 눈앞에 기회가 찾아왔는데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야 훨씬 낫겠지.
드래곤은 아직도 머리를 바닥으로 내린 채 이쪽의 머리에 사념을 끊임없이 밀어넣어대는 중이었다. 그 탓에 전신의 힘이 풀리기 직전이었으나, 억지로 팔다리를 질질 끌며 움직였다.
지금 이 순간이 아니고는 기회조차 없을 테니까.
피 묻은 검을 양손으로 붙잡았다. 저 놈이 왜 굳이 머리를 여기 들이밀면서까지 내 머릿속에 사념을 직접 때려박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무기를 역수로 돌려 내 복부를 향했다. 그대로 칼날을 푹 찔러넣었다. 이런 내 행동이 의아하게 생각됐는지, 머릿속에서 울리던 목소리가 뚝 멎었다.
온 몸에서 피가 빨려나가는 감각이 느껴지고, 그 감각이 한계에 도달했을 때쯤 피 묻은 검을 뽑아냈다. 칼날이 미처 흡수하지 못한 핏방울 몇 개가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새빨간 핏빛으로 물든 검을 들고 거리를 좁혔다. 한낱 인간 따위의 발악을 감상이라도 하려는 건지, 놈은 내가 칼을 휘두르는 걸 보면서도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ㅡ쨍강!
칼날이 놈의 머리에 닿음과 동시에, 피 묻은 검이 날카로운 쇳소리를 내며 두 동강으로 부서졌다.
“키힛…… 히히힛…… 엄청 아프다. 그렇지?”
수도의 어느 뒷골목. 세계를 먹는 자로 인해 사람들이 모두 대피한 장소에서,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된 여자가 벽에 손을 짚어대며 주춤주춤 걸어나가고 있었다.
온 몸에 성한 곳이 없었다. 가뜩이나 산발로 뭉쳤던 머리는 피에 절어 엉망이었고, 몸 곳곳이 상처 투성이였던데다 다리까지 다쳤는지 걸음걸이가 절룩거렸다.
무지막지한 노출도의 복장 탓에 가감없이 드러난 피부에는 상처만이 가득했다. 그 대부분은 칼로 베인 듯한 자상이었지만, 군데군데 심하게 멍들어 푸른색으로 변색된 피부도 보였다.
절대로 정상은 아닌 상태였다.
“황제 폐하도 너무하시지. 면전에다 대고 자랑 좀 했다고 다짜고짜 죽이려 달려들다니. 놀려먹은 게 죄인가. 히힛. 이거 성검에 당한 상처라서 지금 당장은 낫지도 않는데.”
머리보다 훨씬 더 커다란 가슴. 과장 좀 보태서 허벅지보다 얇아보이는 두께의 허리. 살이 포동포동하게 올라 가슴만큼이나 부드러워보이는 허벅지. 입은 것만 못해 보이는 의복.
다리를 절뚝거릴 때마다 터질 듯이 커다란 가슴이 위아래로 출렁대며 흔들리는 건 물론, 유두를 아슬아슬하게 가린 와이셔츠에서 금방이라도 삐져나올 것처럼 위태위태했다.
여자의 정체는 닉스였다.
“그러게 내가 도망치자고 했잖아! 황제 폐하도 지금 도망치면 몸 성히 보내주겠다고 하셨었는데 끝까지 놀려먹기나 하고! 너 때문에 나까지 이게 무슨 꼴이야!”
“헤, 나 아니었으면 죽었을 년이 뭐래?”
“너 아니었으면 처음부터 이렇게 될 일도 없었어!”
“먼저 황궁에 찾아가자고 한 건 너 아니었나? 그러면 미네르바 찾아가서 정말로 대화만 하고 올 생각이었어? 우리랑 미네르바 사이가 어떤지 알면서?”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대화의 내용으로 미루어보아 두 사람이 말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데, 정작 목소리가 둘 다 똑같았다. 게다가 이 뒷골목에 사람의 모습이라고는 오직 닉스 한 명 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진작에 다 대피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굳이 기사들이 대피시키지 않더라도, 드래곤이 하늘을 날아다니는데 제자리에 버티고 서 있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닉스의 목소리는 두 사람 분량의 대화를 아주 열심히 떠들어댔다.
“히힛…… 히히힛…….”
“뭐가 좋다고 그렇게 이상하게 웃어대? 응? 너 때문에 나까지 이런 꼴이 됐는데 웃음이 나와?”
“당연히 웃기지. 그렇게 폼이나 잡아대더니, 드래곤이 포효 한 번 내지르니까 싹 다 기절해버렸잖아. 우리 이런 꼴로 만든 황제 폐하도 마찬가지인데, 나중에 깨어나면 쪽팔려서 어떡하실까.”
“……정말로? 그런 건 어떻게 알고 있는건데?”
“너도 집중하면 느낄 수 있어, 멍청아. 내가 하는걸 네가 왜 못해?”
자신을 갈구는 목소리에, 닉스는 시무룩하게 눈을 감았다. 상처가 욱신거리고 다리는 후들후들 떨려댔지만, 어떻게든 감지 범위를 넓혀 드래곤의 근처를 확인했다.
“잘 들어봐…… 느껴지지?”
“그, 그렇긴 한데…… 지금 위험한 거 아니야? 드래곤이랑 딱 붙어 있잖아. 드래곤은 정신 지배도 걸 수 있다 그러는데, 만약 정신이라도 지배당하면 어떡해?”
“정신 지배를 당해? 그 사람이?”
닉스는 코웃음을 쳤다. 그 반응에, 닉스의 몸이 절로 움츠러들었다.
“우리가 그 사람 머리에 마법 어떻게 걸었는지 잊었어?”
“아, 참…… 그랬지.”
닉스는 머쓱하게 다시 발을 옮겼다. 그러면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정신 지배라니, 가능할 리가 있나.”
허락이 없다면 기억을 들여다보는 행위조차 불가능할텐데.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