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129)
“풍유환이라…… 참으로 재미있는 짓을 벌이려는 여인이지 않니?”
미네르바의 얼굴에는 미소가 만연해 있었다. 세레스가 왜 자신을 본 직후부터 계속해서 시비를 걸어왔었는지, 그 이유를 알겠다는 듯 일말의 불쾌감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원래 NPC는 대머리여서 가슴을 없앤건가. 지독한 인간들 같으니.’
에리카와 셀레네가 빈약하다고 여겨지며, 아무도 그 인식에 토를 달지 않는 세계다. 그렇다면 세레스처럼 가슴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경우에는 과연 어떤 취급을 받을 것이란 말인가.
정작 이러는 나도 한때는 머리가 잠시 이상해졌었는지 그 둘을 빈약하다 단정지었기도 했지만.
사실 지금도 에리카와 셀레네 정도면 빈유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지속적으로 들고 있었다. 마음 속에서 두 개의 가치관이 충돌해대는 느낌이었다.
‘설마 이것도 그 흑마법 때문은 아니겠지.’
내 머리에 마법이 걸려있다고 하니, 인식이 조금만 뒤틀린다 싶어도 아무튼 죄다 그 흑마법 탓인 것만 같았다. 마녀를 만나면 적용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설명을 확실히 들어야 할 듯 했다.
“가슴 커지는 약이라는 거, 실제로 가능합니까?”
“이론상으로 불가능하는 않단다. 굳이 그런 약을 만드느니 마법 연구를 한번 더 하고, 포션을 하나 더 만드는 것이 더 이득이기에 시도하지 않았을 뿐이지.”
‘와, 그게 되네.’
먹는 것만으로 가슴을 키울 수 있는 약을 실제로 만들 수 있다니, 여러 의미로 신기한 세계였다.
사실 게임에서도 결국 발모제의 개발에 성공을 하긴 했었으니, 세레스가 만든 약 또한 성공을 거두리라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었다.
‘성공은 했지. 성공은…….’
그래. 성공하긴 했다.
“이제 성수를 구하러 가는거니, 아이야?”
상념에서 빠져나왔다. 그 뒤의 일은 이제 내가 관여할 게 아니었다.
“그래야죠. 구매 장소는 알고 계십니까?”
“알고 있단다. 예전에 그걸 구하러 잠시 들렀던 적이 있거든.”
“그곳으로 순간이동 해주시면 됩니다. 이후부터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미네르바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곤 지팡이로 바닥을 가볍게 쳤다. 전신에서 느껴지는 부유감과 함께 우리 둘의 몸이 푸른 빛무리로 감싸였다.
몸을 감싼 푸른색의 빛이 흩어졌을 땐, 어느새 주위의 풍경이 180도 바뀌어 있었다. 무척이나 특징적인 하얀색 건물들과, 하얀 벽돌로 이어진 길.
성국이었다.
나는 주머니에서 브로치를 꺼내 왼쪽 가슴께에 달았다. 그걸 본 미네르바가 아주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이야, 그것은…….”
“이걸 본 적이 있으신가요?”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들어본 적은 있단다. 교황의 귀한 손님을 상징하는 브로치, 그것도 태양과 달 중 어느 한 명이 아니라 양쪽 모두에 해당되는 브로치 아니니? 아이가 자신만만해 했던 이유가 있었구나. 그 브로치를 달았다면 필시 빛을 머금은 성수를 얻어낼 수 있을테지.”
은회색 동공이 살짝 가늘어졌다.
“헌데, 아이야. 아이가 그 브로치를 가지고 있다는 건…….”
“어서 이동하죠. 여기서 지체할 시간이 없습니다. 최대한 빨리 일 끝내고, 크리스탈 스크롤을 찾으러 가야하니까요.”
나는 말을 뚝 잘라먹으며 앞으로 걸어나갔다. 누가 보더라도 억지로 주제를 돌리려는 행동이었지만, 미네르바는 그냥 넘어가 줄 요량인 듯 얌전히 내 뒤를 따랐다.
그렇게 건물 사이로 몇 분쯤 발을 옮겼을 무렵.
“저기 옵니다.”
우리가 순간이동을 사용할 때 퍼져나간 마나의 파장을 느꼈는지, 열 명쯤 되는 성기사들이 저 멀리서부터 말을 탄 채 달려오고 있었다.
머리부터 발 끝까지 하얀색의 갑옷을 입은데다 심지어 타고 있는 말마저 새하얀 백마였다. 그나마 말 안장에 매어둔 무기의 색깔은 평범했다.
성별까지는 알 수 없었다. 갑옷이 워낙 두꺼웠던 탓에 체형이 전혀 드러나지 않기도 했고, 얼굴에도 투구를 뒤집어써서였다.
우리 앞에서 말을 멈춘 성기사들이 단체로 철퇴를 쥐었다.
“멈춰라! 너희는 누구냐! 말하지 않는다면 이단으로 간주하고 처리하겠다!”
제일 선두에 위치한 성기사가 우리를 향해 외쳤다. 일단 목소리는 확실히 여자였다. 나는 말없이 내 왼쪽 가슴팍에 달린 브로치를 가리켰다.
내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쳐다본 성기사는, 잠시 굳었다가 불에 데인 것처럼 화들짝 놀라더니 추락하듯이 말에서 내려 바짝 엎드렸다.
그 뒤편의 인원들도 내 브로치를 확인한 순서대로 차례차례 똑같은 행동을 했다. 갑옷이 엎어지고 뒤엉키는 요란한 소리가 한참이나 울려퍼졌다.
곧 열두 명 전원이 바닥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귀, 귀빈님을 뵙습니다!”
“귀빈님을 뵙습니다!”
목소리가 아주 그냥 쩌렁쩌렁했다. 특히, 제일 처음에 강압적으로 입을 열었던 성기사는 중갑 너머로도 보일 만큼 애처롭게 몸을 떨어대고 있었다.
‘저 인간은 또 왜 저래?’
설마 이 브로치를 달고 있는 사람한테 목소리를 좀 높였다고 죽이기라도 하는건가. 애초에 여긴 교황청 근처니까 정체모를 사람한테는 당연히 해야 될 조치라고 생각하는데.
의문은 곧 사라졌다. 저 기사가 우리한테 대답하지 않으면 이단으로 간주하고 처리하겠다 말했던 사실을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몰랐다고는 해도 교황의 귀한 손님을 이단으로 취급하겠다고 한 셈이니, 저 독실한 종교인들의 입장에서는 그것보다 더 불경한 짓거리도 없을 것이다.
“고개 드세요. 저희는 그러려고ㅡ”
“귀빈께서 어떻게 감히 저희들 따위에게 말을 높이십니까! 부디 하대하여 주십시오!”
쾅! 성기사가 투구를 바닥에 힘껏 내리찍으며 다시 머리를 조아렸다. 그 행동에 오히려 말을 건넨 내가 움찔 놀랐을 정도였다.
떨떠름한 얼굴로 미네르바를 돌아보았다. 미네르바는 얼굴에 웃음을 띤 채로 내 귓가에 입술을 가져와 속삭였다.
“저쪽이 원하는대로 해주려무나, 아이야. 가끔은 과한 배려가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단다.”
나는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브로치를 맬 때만 해도 이런 대접을 받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조금 더 정중히 대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지.
“알았어. 그럼 말 놓을게. 고개 들고 나 봐. 너희들한테 절 받으려고 여기 온 건 아니니까.”
“알겠습니다! 귀빈이시여!”
또다시 울리는 쩌렁쩌렁한 목소리와 함께, 고개가 들렸다. 새하얗던 투구가 흙으로 엉망이었다.
“부탁할 게 있는데, 괜찮지?”
“부탁이라니, 가당치도 않습니다! 부디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그래. 명령할 게 있어서 왔는데.”
“기쁘게 받아들이겠습니다! 무엇을 명하시겠습니까!”
“빛을 머금은 성수를 구할 수 있을까?”
성기사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당연히 가능합니다! 어느정도로 원하십니까!”
미네르바를 살짝 돌아보았다. 제법 놀란 눈치였다.
“살다보니 이런 말을 듣는 날도 오게 되는구나. 역시 아이랑 있으면 놀랄 일이 끊이지를 않는걸.”
놀랄 만 했다. 게임에서도 빛을 머금은 성수는 사러 온 사람이 얼마나 살지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파는 쪽에서 얼마나 팔지를 정하는 물건이었으니까.
그 미네르바에게도 예외는 아니었을테니, 얼마나 필요하냐는 ‘정상적인’ 질문을 들어본 경험은 처음일 것이다.
“그렇다네요. 얼마나 필요 하십니까, 미네르바님?”
“……나 말이니, 아이야?”
“여기 미네르바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미네르바님 말고 또 있나요?”
세레스의 집에서 본인이 했던 말을 그대로 응용해 대답하자, 미네르바의 눈이 잠시 동그랗게 떠졌다가 곧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내 의도를 눈치챈 모양이었다.
“그러면 너무 많이는 말고…… 한 통 정도로 충분하다고 전해주렴.”
“들었지? 한 통. 그 정도면 충분해.”
“알겠습니다! 귀빈님들을 위한 건물로 모실테니, 저희들이 성수를 준비하는 동안 그곳에서 기다려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그러지.”
“예! 모시는 것을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일 선두의 기사가 힘찬 대답과 함께 몸을 일으켜 말에 올라탔다. 나머지 성기사들도 그 뒤를 따라 말에 올라타선 흙먼지를 일으키며 사라지고, 남은 세 명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모시겠습니다, 귀빈님.”
이번에도 여자의 목소리였다. 우리는 얌전히 안내를 따랐다. 성기사들이 멈춰선 곳은 4~5층 정도 높이의 건물 앞이었다. 양 옆에서 두 명이 정중한 모습으로 문을 열어주었다.
그 안으로 들어가자 휘황찬란한 장식이 가미된 방이 나왔다. 우릴 안내한 성기사들은 여기서 기다려주시길 바란다는 인사를 남긴 채 마지막으로 머리를 조아리고 떠나갔다.
소파에 앉았다. 미네르바는 엉덩이를 소파에 붙이자마자 꿀이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고맙단다, 아이야. 생각지도 못한 배려를 받아버렸구나.”
사실 여기서 미네르바와 더 친밀해지면 안 되는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솔직히 반쯤은 알 게 뭐야, 하는 심정이었다.
크리스탈 스크롤 하나만으로도 이미 한계까지 치솟아버린 호감도다. 거기에 빛을 머금은 성수가 한 통 끼얹어진다고 해봐야 딱히 달라지는 건 없겠지.
게다가 카이킬리아를 묶어두려면 미네르바를 가까이 하는 것이 제일 옳은 선택이기도 하고. 내가 성국으로 넘어와서 교황들한테 몸을 의탁할 게 아닌 이상에야 말이다.
“감사 인사는 넣어두셔도 됩니다. 저도 미네르바님한테 도움을 받았으니까요.”
“이건 크리스탈 스크롤을 대가로 한 거래 아니었니?”
“마탑의 물품을 빼서 제공해주신단 내용은 없었죠.”
덕분에 중간 과정을 죄다 건너뛰고선 바로 성국으로 넘어올 수 있었으니, 그 보답이라고 생각하면 아주 일방적인 호의까진 아니었다.
“후훗…… 알아들었단다. 그렇다면 나도 이 이상은 언급하지 않으마.”
미네르바는 배려가 과하면 독이라는 본인의 말마따나 깔끔하게 물러섰다.
그 신비로운 미소를 보니, 정말로 눈앞의 여자가 빨리 크리스탈 스크롤을 찾으러 가자며 보채던 그 사람과 동일인물이 맞나 싶었다. 어느쪽 미네르바가 진짜 모습일지 궁금해졌다.
‘지금 모습만 보면 무슨 삶을 초월한 현자 같은 느낌인데.’
ㅡ쾅!
갑자기 문이 힘껏 열어젖혀졌다. 내가 뭔가 싶어 옆을 돌아보려는 순간 찬란한 황금색의 태양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반사적으로 눈을 가렸다. 옆을 쳐다본 미네르바가 살짝 놀라는 모습이 쏟아지는 빛과 손가락에 가려진 시야 사이로 어렴풋이 보였다.
빛은 오래지 않아서 점차 잦아들었다. 눈을 몇 번 깜빡여 시력을 회복하고 고개를 돌렸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하는 의문이 마구 샘솟았다.
“오랜만에 찾아뵈었습니다, 귀빈이시여.”
그리고 플로레타와 눈이 마주쳤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