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13)
“여긴 또 왜 왔어?”
리제는 내 질문을 가볍게 무시하고선 방 안으로 들어오더니, 마치 제 방처럼 자연스럽게 침대에 누웠다. 자기 방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태연함이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회전의자에 다시 앉았다. 저 걸어다니는 음란물이나 마찬가지인 몸이랑 같은 침대에 앉아있을 자신은 없었다.
한동안 침대를 뒹굴거리던 리제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숙소가 생긴 감상은 어때?”
“갑자기 쳐들어와서 남의 침대까지 냅다 뺏어가놓고 처음 한다는 말이 그거야?”
“특별 서비스야. 이러면 이불에서 여자 냄새도 나고 좋잖아.”
“대체 그게 왜 좋은데?”
“내 질문에 먼저 대답해야지. 감상은?”
“……그래, 방 좋네. 정말로.”
이건 진심으로 하는 말이었다.
딱딱한 나무 침대에 형편없는 천이불이랑 곰팡내 나는 돌벽이 아니라, 푹신한 매트리스 침대에 현대적인 벽지를 바른 숙소가 떡하니 나타났는데 그게 싫을 리가 있나.
“역시 그렇지?”
리제는 웃으며 기지개를 켰다. 그 탓에 가뜩이나 커다란 가슴이 한층 더 강조되면서 위아래로 작게 출렁였다. 신경을 쓰지 않으려 해도, 무조건 시선이 갈 수 밖에 없는 크기였다.
아이리스도 결코 작다고는 못할 크기였는데, 리제는 본격적으로 거유를 넘어 폭유라고 지칭할만한 사이즈였다. 가슴의 크기가 거의 본인의 머리와도 맞먹거나 더 큰 수준이니까.
그러고서도 위에 걸친 민소매가 몸에 딱 달라붙는 탓에 복부와 옆구리까지 노출됐으니, 도저히 눈 둘 곳이 없었다.
일단 복부와 등허리는 완전히 드러났고, 방금처럼 기지개를 켠다거나 하면 끄트머리가 밑가슴이 보이기 직전까지 위쪽으로 말려올라가곤 했다.
게다가, 내 자의식 과잉인지는 몰라도 리제가 계속 자기 몸을 강조해대는 것 같았다.
기지개를 켜면서 겨드랑이를 활짝 드러낸다든가, 가슴 밑에서 팔짱을 끼며 가슴을 강조한다든가, 다리를 이리저리 꼬아대며 허벅지끼리 눌리는 모습을 보여준다든가, 돌핀팬츠의 고무 부분을 바로잡으며 골반을 노출시킨다든가.
‘뭐, 내 착각이겠지.’
머리를 흔들어 잡생각을 멀리 치워버렸다.
그냥 본인이 편하게 앉아있을 자세를 찾다가 무의식중에 하는 행동일 것이다. 만난지 한 시간도 안 된 남자를 유혹하려 들다니,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망상이었다.
“그래서, 비결이 뭐야?”
“무슨 비결?”
“내가 마지막에 쓴 기술. 어떻게 막았어? 본다고 막아질 수 있는게 아닐텐데. 그리고 서리랑 얼음 탓에 제대로 볼 수도 없었을거고.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게 있긴 했지만, 실은 나 진짜 많이 놀랐거든.”
몇백 번쯤 죽어보니까 리듬이 외워지던데? 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나는 대놓고 나 숨기는거 있어요, 하는 쓴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리제도 대답을 바라고 한 질문은 아니었는지, 내가 그러든 말든 말을 이어나갔다.
“우리가 어디서 만났던 적이 있는 것도 아닐거고, 그 기술을 네가 어디서 본 적이 있는 것도 아닐거고, 한 번 본다고 해서 완벽하게 파훼할 수 있는 기술도 아니고. 흐음, 그러면 뭐지? 아, 아니다. 어쩌면 우리가 과거에 만났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너 저주 받았다며. 옛날 기억들도 어지간한건 다 날아갔을테니까, 나랑 만났던 기억까지 다 지워졌을 가능성에도 충분히 걸어볼만 한 거 아니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나는 기억을 잃어버렸다고 쳐도, 우리가 서로 만난 적이 있었으면 내가 아니라 네가 기억하고 있었겠지. 넌 기억을 잃은 적도 없잖아.”
“하긴, 그것도 그렇네. 너 같은 남자를 봤으면 내가 잊어버렸을 리가 없지. 근데, 그래도 말이 안 되잖아. 날 처음 보면서 서리폭풍 난격을 완벽하게 막아냈다고? 그거 나름대로 필살기였는데?”
“필살기라니, 힘 조절 해준다며?”
“신입 네가 못 막을거 같다 싶었으면 바로 앞에서 멈췄을거야. 그 정도 실력은 있다고.”
리제는 그렇게 말하며 찡긋 윙크를 했다.
하긴, 아이리스가 갑자기 끼어든 상황에서도 단검이 닿기 직전에 팔을 멈췄으니 내 바로 앞에서 멈추는 것 역시 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만 더.”
“응?”
“내가 마지막 공격 패링하려던 거, 어떻게 알았어?”
그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빠졌다. 표정이 순식간에 진지해졌다. 방금 전까지 눈웃음을 짓던 게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의 변화였다.
“그래, 다른건 다 그렇다 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반사신경도 좋고, 눈썰미도 좋고, 예전의 네가 무척이나 뛰어나서 몸이 싸움 방법을 기억하고 있다면 처음 보는 공격을 죄다 쳐내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지. 이미 아이리스라는 선례가 있기도 하고. 그런데, 마지막에 그건 도저히 말이 안 돼.”
상체를 뒤로 살짝 기울이고, 두 팔로 몸을 지탱했다. 그러면서 다리를 꼬아 오른쪽 허벅지를 위로 올렸다. 가슴과 허벅지가 심히 부각되는 자세였다.
자꾸 몸이 반응하는 탓에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기 뭐했지만, 상대가 저렇게까지 진지하게 나오는데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 눈을 쳐다보았다.
푸른 벽안이 내 눈동자와 정확히 마주하자마자, 리제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 반동으로 가슴이 크게 출렁였다.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내 쪽으로 한 걸음씩 다가오기 시작했다.
내가 몸을 움찔했다.
“아이리스도 사전 지식이 없는 상태였다면 꼼짝없이 속았을거라고 인정했는데, 너는 그게 아니었단 말이지. 내 카운터 패링을 간파하고 그 짧은 순간에 공격 궤도를 꺾었어.”
리제는 그 말과 함께 다리를 좌우로 벌려 내 허벅지 위에 걸터앉았다. 우리는 순식간에 서로를 마주보고 껴안듯이 앉은 자세가 되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아무런 행동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대체 뭐야?’
눈 둘 곳이 굉장히 엄했다.
내 얼굴 바로 앞에서 얇은 민소매 한 장으로 감싸인 거유가 출렁였고, 시선을 조금만 옆으로 꺾어도 바로 겨드랑이가 보였다. 깊게 파인 쇄골과 우유 향기가 나는 목덜미는 덤이었다.
허벅지에서는 리제의 허벅지 감촉이 고스란히 느껴졌고, 다리를 좌우로 벌려서 걸터앉았으니 그 사이의 은밀한 부위가 내 고간과 거의 맞닿을 듯이 다가와 있었다.
돌핀팬츠는 양옆으로 팽팽히 당겨져 허벅지를 깊게 파고들며 골반의 윤곽을 그대로 드러냈다. 아마도 그 사이에 있을, 다리 사이 균열의 윤곽마저도.
“대답해. 어떻게 한거야?”
“……질문의 의도를 모르겠는데.”
리제가 얼굴을 더 바싹 붙였다. 내 시야가 파란 눈동자와 파란 머리카락, 하얀 피부로 가득 메워졌다. 오죽 가까웠으면 리제가 내뱉는 숨결이 내 입술에 직접 닿고 있을 지경이었다.
“지금 모르는 척 하고 있다는 거, 다 알고 있는데?”
얼굴 사이의 거리가 서서히 좁혀졌다. 여기서 벗어나보려고 해도, 리제는 이미 의자 목받이를 양손으로 붙잡아선 내 머리를 자신의 두 팔 사이에 고정시켜두고 있었다.
나는 그걸 풀지 못했다.
안 푼게 아니라, 못 푼거다. 내가 힘으로 리제를 이길 수 있을 리 있나. 게다가 엉덩이에 얼마나 힘을 주고 있는건지 그 밑에 깔린 허벅지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내 몸은 옴싹달싹하지 못한 채로 리제의 몸 아래에 잡혀 있었다. 그런 자세로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바로 앞까지 들이밀어졌던 얼굴이 조금 물러났다.
“뭐, 대답할 생각이 없는 것 같으니 이건 더 안 물어볼게.”
내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잠시, 갑자기 내 몸을 깔아뭉겐 허벅지가 앞으로 전진하기 시작했다. 톡, 내 고간에 뭔가 부드러운 물체가 맞닿았다.
“그 대신, 넌 나한테 물어보고 싶은 거 없어? 네가 원하는거라면 전부 대답해줄 수 있으니까 뭐든 사양말고 물어봐.”
리제가 은근한 목소리로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어…… 딱히 생각나는 게 없으니까 내려와주면 안될까?”
“생각나는 게 없어? 정말로?”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처음 봤을 때부터 장난을 치기 직전에 떠오르던 바로 그 미소였다. 불길함이 뇌리를 스쳤다. 이런 상황에서 대체 무슨 짓을 하려고 저런 표정을 짓는거지?
“정말로 아무거나 다 물어봐도 돼. 깊게 생각할 거 없어. 예를 들어서…… 내 구체적인 가슴 크기라든가. 몸의 어디가 약하다든가. 이런것도 얼마든지.”
조금 멀어지나 싶던 얼굴 사이의 거리가 훨씬 더 좁혀졌다. 조금만 더 밀고들어온다면 아예 입술끼리 맞닿을 것 같았다.
‘아니, 대체 왜 이러는데?’
이렇게까지 육탄공세를 퍼부으니 그렇고 그런 종류의 생각도 당연히 들었지만, 그 이상으로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건가 하는 혼란이 앞섰다. 간신히 이성을 유지할 수 있던 것도 그래서였다.
당연히 그랬다. 게임에서는 한 번도 겪어본적 없는 일이었던데다, 내가 이걸 받아들인다면 스토리가 대체 어떻게 꼬일지 모르니까.
NPC가 플레이어를 유혹하는 일 따위는 당연히 존재하지도 않았었다.
“저기, 리제. 일단 이것부터 좀 놓고ㅡ”
“그건 안 되겠는데?”
이제는 옅은 복숭아빛의 얼굴과 파란 눈동자만이 시야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어깨를 감싼 민소매의 끈이 불현듯 아래로 흘러내렸다.
리제는 허벅지 힘까지 동원해서 나를 의자에 붙잡아두는 중이었다. 머리는 팔 사이에 고정됐고, 허벅지는 진작부터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붉은 입술 사이로 혀가 살짝 삐져나왔다.
그리고, 이제는 숨결이 아니라 입술까지 맞닿기 직전.
ㅡ똑똑.
“신입 씨, 안에 있나요? 저녁 시간이라 데리러 왔는데요.”
노크와 함께 나를 부르는 에리카의 목소리가 들렸다.
리제는 처음엔 노크 소리를 무시하고 입술을 밀어붙이려 했다. 하지만 또다시 노크 소리가 들리자, 결국 맞닿기 직전이던 얼굴을 한껏 일그러뜨리며 뒤로 물렸다.
그러고선 문 밖을 향해 버럭 소리쳤다.
“야! 이 상도덕도 없는 인간아! 왜 좋은 타이밍에 방해하고 난리야! 산통 다 깨졌잖아!”
“좋은 타이밍……? 아니, 그것보다 언니가 왜 신입 씨 방에 있는겁니까?! 좋은 타이밍은 또 뭐고요?!”
“놀러왔으니까 그렇지! 나 1시간 뒤에 알아서 떠날테니까 우리 둘이서 노는거 방해하지 말고 그냥 알아서 가주면 안되냐?”
“뭘 1시간 뒤에 찾아옵니까?! 언니 미쳤어요? 빨리 이 문 열어요!”
밖에서 에리카가 문을 쾅쾅 두들겼다.
방금 전의, 금방이라도 날 잡아먹을듯한 표정에서 툴툴거리는 표정으로 돌아온 리제가 뭔가를 궁시렁대며 허벅지 위에서 내려갔다. 흘러내린 어깨끈을 바로잡고, 침대 위에 푹 엎어졌다.
배개 위에 파묻은 얼굴에서 웅얼거리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안 열어주고 뭐해?”
“……내가?”
“난 손님이거든? 당연히 방 주인이 열어줘야지.”
저게 딱히 틀린 말은 아닌데, 방금 전까지 방 주인을 힘으로 찍어눌러서 겁탈하려 들지 않았나?
떨떠름한 기분으로 문의 잠금장치를 풀자, 에리카가 불쑥 몸을 들이밀었다. 표정과 동작에서 다급함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평소의 그 예의바르던 태도는 어디로 사라지고, 들어온다는 말 한마디 없이 바로 침대에 엎드린 자기 언니에게 향하는 걸 보면 어지간히도 당황한 듯 싶었다.
“언니!”
그러고는 곧장 침대에 엎어진 리제를 향해 잔소리를 시작했다. 리제는 그걸 듣는둥 마는둥 이불을 푹 뒤집어썼다. 곧바로 한바탕 난리가 벌어졌다.
아무래도, 저녁을 조금 늦게 먹어야 할 모양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