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131)
r 131 – 새로운 무기 – 5
정신을 차린 나는 제일 먼저 미네르바를 돌아보았다.
교황과 내가 눈앞에서 도합 10분 가까이 서로 껴안은 채 혀를 섞어대는 모습을 본 당사자니까. 그걸 보고 무슨 생각을 할지 모른다.
“내게 건넬 말이라도 있는 것이니, 아이야?”
하지만. 미네르바의 표정은 예상 외로 태연하기 짝이 없었다. 예상했던 반응과 너무 달라서 오히려 그 모습을 본 내가 놀랐을 정도였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는 말을 아꼈다.
지켜본 당사자인 미네르바가 저리도 태연하게 서 있는데, 내 쪽에서 교황이랑 제가 딥키스를 하는 걸 보고도 왜 그렇게 태연하실 수 있는건가요, 라고 물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하긴, 미네르바가 놀랄 이유는 없긴 하네.’
일단 미네르바와 나는 딱히 아무런 사이도 아닌데다, 대뜸 애정행각을 하겠답시고 입을 맞추고 혀를 섞어댄 게 아니라 엄연히 교황이 축복을 내려준 것이었으니 말이다.
여태껏 모드로 인해 개변됐던 상식들을 떠올려보면, 미네르바의 입장에선 그저 교황들이 축복을 조금 더 짙게 내려줬을거라고 여겨질 확률이 높았다.
정작 아우로라는 스텔라의 이단 판별법을 듣고 황당해 했었지만.
“오래 기다리시게 하여 죄송합니다! 여기, 부탁하신 빛을 머금은 성수입니다!”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렸다. 미네르바의 눈동자가 자연스레 앞을 향했다. 나도 따라서 시선을 옮겼다.
‘뭐야, 뭐 저렇게 커?’
그리고, ‘한 통’의 양에 경악했다. 내가 생각했던 한 통과 성기사들이 들고 들어온 한 통에는 하늘과 땅 수준의 격차가 있었다.
나는 그냥 평범한 물병 크기 정도, 혹은 조금 더 나가서 1.5리터 페트병 크기쯤 되는 양이 한 통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정작 눈앞에 들이밀어진 건 전혀 달랐다.
성기사들의 손에 들린 것은 내가 그 안에 들어가고도 한참 남을 크기의 유리병이었다.
나는 황당하다는 감정을 담아 미네르바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미네르바의 얼굴은 태연했다. 저 커다란 유리병 하나가 자신이 생각했던 한 통이 맞다는 뜻이었다.
그 상상도 못한 규모의 단위에 내가 할 말을 잃어버린 사이, 무척이나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우리 앞까지 걸어온 성기사들이 마찬가지로 무척이나 조심스러운 손놀림으로 들고 있는 유리병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혹여라도 잘못 건드릴까봐 겁난다는 듯 병에서 다섯 발자국씩 물러난 성기사들은 곧장 제자리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가지고 왔습니다! 귀빈이시여!”
“……그래. 수고했어.”
“예! 감사합니다! 더 필요하신 것은 없으십니까!”
“더 필요한 건 없고, 이 다음은 우리가 알아서 할테니까 이만 물러가도 돼.”
“알겠습니다!”
성기사들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내게 허리를 한번 더 90도로 숙여보인 뒤, 살금살금 발 끝으로 걸으며 건물을 나섰다.
저런 두꺼운 갑옷을 입고 있으면서 잘도 발 끝으로 걸을 수 있구나 싶었다.
“많이 놀란 표정이로구나, 아이야.”
미네르바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나는 어처구니 없다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게 미네르바님이 말씀하셨던 한 통입니까?”
“그렇단다. 나는 아이가 당연히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였는데, 아니었니?”
“저는 이것보단 한참 작을 줄 알았습니다.”
빛을 머금은 성수가 든 유리병을 찬찬히 관찰했다. 내부가 훤히 비치는 원통 속에, 안이 텅 비었다는 착각이 들 만큼 맑고 투명한 액체가 가득 들어차 있었다.
무심코 왼쪽 가슴에 꽂아둔 브로치를 만지작거렸다. 이 브로치만 있다면 성수 1통이 아니라 100통이라도 문제 없이 가져갈 수 있다고 태양의 교황 본인이 직접 말했었지.
새삼 이 브로치가 대체 어느정도의 가치를 지닌 물건인지 실감했다.
“나조차도 처음 보는 양이니 충분히 그럴 수 있단다. 이만한 성수라면, 제국에서 가장 큰 부자가 될 수도 있을 터이니.”
게임에서도 그랬다.
적들의 스펙 증가가 한계에 달하는 11회차 전까지, 회차가 넘어갈 때마다 가격이 상승하는 몇 안되는 물품들 중 하나가 바로 빛을 머금은 성수였다.
11회차 이후의 빛을 머금은 성수 가격은 정말 억 소리가 나도록 비쌌다. 사실상 퀘스트 전용 물품이라서 구매할 일도 거의 없긴 하지만.
“자, 이제 내가 여기에 온 이유를 충족시켜 주어야 할 시간이구나.”
미네르바가 손가락을 살짝 튕겼다. 원통의 윗부분이 미끄러지듯이 열렸다. 그 손에는 어느새 작은 포션병 하나가 들려 있었다.
원통 내부에서 공기처럼 맑고 투명한 액체가 둥실둥실 떠올라 포션병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손가락을 움직이는 미네르바의 모습은 굉장히 조심스러워 보였다.
빛을 머금은 성수의 특징을 생각하면 당연했다.
‘충격에 진짜 더럽게 약하니까.’
빛을 머금은 성수의 제일 상징적이자 치명적인 특징.
그건 바로, 충격에 미친 듯이 약하다는 점이었다.
어떤 방식으로든 액체가 일정량 이상의 충격을 받는 그 즉시 검게 변질되며 성수로서의 힘을 잃는데, 그 ‘일정량 이상’의 기준이 정말 어마어마하게 낮았다.
세레스의 재료 조달 퀘스트가 지랄맞게 악명 높은 이유도 그래서였다. 충격에 미친 듯이 약하다는 특성상, 캐릭터가 행동을 삐끗하기라도 하는 순간 쓸모가 없어져버리니까.
기본 걸음, 달리기, 구르기, 무기 휘두르기, 피격, 무기의 특수 능력 사용, 인챈트, 마법 영창, 신성 주문 영창, 소모품 사용, 그 외 기타 잡다한 행동까지.
그 모든 것들이 ‘충격’으로 판정되어 성수를 변질시켰다.
즉, 플레이어는 성수를 옮기면서 달려서도 안되고, 굴러서도 안되고, 무기를 휘둘러서도 안되고, 적에게 공격당해서도 안되고, 마법이나 신성 주문을 사용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심지어는 조각상을 이용한 빠른 이동과 각종 휴식마저도 성수에 영향을 끼쳤기에, 빠른 이동으로 세레스의 오두막 근처까지 이동할 수도 없었다.
다른 재료들은 얼마든지 빠른 이동으로 옮길 수 있었으니, 분명 제작사 측에서 의도한 사항이었다.
‘무조건 걸어서 이동하라 이거지.’
따라서, 플레이어는 다른 모든 행동을 봉인한 채로 오직 ‘걸어서’ 세레스가 있는 장소까지 성수를 옮겨야 했다.
심지어 평범하게 이동하는 것조차 충격으로 판정되어 성수를 변질시키니, 그냥 걷는 것도 아니고 Alt키를 누르면 나오는 느린 걸음으로.
성수를 구할 수 있는 장소는 성국 뿐이고, 세레스의 집은 제국의 끝자락 중에서도 끝자락에 있는 장소다. 사실상 맵의 끝에서 끝까지를 제일 느린 걸음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그런 와중에 적한테 피격당하면 그걸로 끝이고, 공격을 피하려고 굴러도 그걸로 끝이고, 원거리에서 처리하려 해도 마법과 신성 주문을 영창하는 순간 끝이다.
중간에 아무런 방해 없이 직선으로 걷는다고 해도 어마어마한 거리인데, 중간에 적이 있다면 반드시 저 멀리 돌아가야 하고 건널 수 없는 지형까지 고려한다면 실질적인 거리는 그 2배 가량이었다.
‘처음에는 죄다 클리어가 불가능한 퀘스트인줄로만 알았고.’
그 어떤 방법으로 재료를 갖다주려 해도 성수가 변질되어버리니, 버그가 있어서 퀘스트 클리어가 불가능한거라고 착각하는 사람까지 나왔을 지경이었다.
결국 마침내 밝혀진 클리어 방법이 커뮤니티에 올라왔을 때, 그 지랄맞은 운송 조건을 확인한 수많은 유저가 경악했다.
‘맵의 끝에서 끝까지를 이동하는데 무조건 천천히 걸어야 되고, 중간에 한 번도 적의 공격을 맞으면 안 되고, 조각상을 이용해서도 안 된다니. 그냥 미친거지.’
성수가 더럽게 비싼 이유에도 다 그런 사정이 포함되어 있었다. 인간이 들고 빠른 걸음으로 걷기만 해도 변질되는 물건을 대체 어떻게 돌아다니면서 팔겠는가.
“아이야?”
차마 추억이라고조차 부를 수 없는, 옛날의 그 더러운 무언가를 떠올리며 상념에 잠겨 있다가 미네르바의 목소리를 듣고 정신을 차렸다.
“무슨 일이시죠, 미네르바님?”
“생각은 끝난거니? 얼굴이 너무 심각해지길래 불렀단다. 혹시 방해한거라면 미안하구나.”
“아닙니다, 미네르바님. 그냥 쓸데없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 것 치곤 잔뜩 화난 얼굴이었지 않니?”
“…….”
어쩔 수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데 얼굴에 드러나지 않는 쪽이 더 이상한거다. 미네르바는 이런 나를 보고 살짝 웃더니 손가락을 움직였다.
“받으렴. ”
내 손바닥에 포션병이 아주 살짝 얹어졌다. 한꺼번에 서너개는 쥘 수 있을 정도로 작은 크기였지만, 가격은 어마어마할 것이다.
“나머지는 마탑으로 보내시는 겁니까?”
“그리하여야지.”
미네르바가 지팡이를 살짝 흔들었다. 평소보다 훨씬 더 복잡한 형태의 마법진이 사방에 떠올랐다. 마법진 하나하나마다 푸른 빛무리가 떠올라 원통을 감쌌다.
성수가 든 병을 삼중으로 휘감은 빛무리가 환하게 타올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원통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있었다.
“이제 나머지는 다른 아이들에게 맡기면 된단다. 자, 우리도 돌아가자꾸나.”
성수를 옮길 때 쓰였던 마법진이 우리 둘의 몸을 휘감았다. 전체적으로 평소에 사용하던 순간이동보다 훨씬 더 포근한 느낌이었다.
나는 포션병을 양손으로 감싸안은 모습 그대로 제자리에 굳다시피 눈을 감았다가, 빛이 조금씩 잦아드는 느낌을 받고선 눈을 떴다.
“…….”
바로 앞에 깜짝 놀란 표정의 세레스가 서 있었다.
“어떻게 벌써 왔어? 못해도 며칠은 걸릴 줄 알았는데…… 성국 애들이 일처리를 이렇게 빨리 끝낸다고?”
“어쩌다보니 이렇게 됐네요. 여기, 약속한 성수입니다.”
성수가 담긴 포션병을 내밀었다. 세레스는 눈을 휘둥그레 뜬 채로 후다닥 달려오더니, 신줏단지 모시듯 조심스레 성수를 넘겨받았다.
“드디어…… 드디어…….”
세레스는 거의 울기 직전인 얼굴이었다. 눈가에 눈물까지 그렁그렁한 게, 톡 건드리면 쏟아질 듯 했다.
“감동은 성공한 뒤에 해도 늦지 않으니, 빨리 시작하렴. 우리도 약속한 것이 있잖니?”
“그, 그렇지! 빨리 해야지! 얼마 안 걸릴테니까 너희들 집처럼 편하게 쉬고 있어! 나 진짜로 금방 갔다올게!”
세레스는 온 몸을 벌벌 떨어대면서 포션병을 들고 벽 너머로 사라졌다가, 이내 쏜살같이 달려와 책상 위에 올려두었던 나머지 재료들을 긁어갔다.
이내, 무언가 지독한 냄새가 풍겨오기 시작했다.
“다 됐어!”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잔뜩 흥분한 얼굴의 세레스가 작은 포션병 하나를 들고 우리한테 달려왔다. 성수를 담을 때 썼던 그 유리병이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크리스탈 스크롤에 관한 이야기를 싹둑 끊었다. 내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듣고 있던 미네르바가 세상이 무너진 듯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 바로 앞까지 달려온 세레스가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꾸벅 허리를 숙였다.
“고마워. 정말로. 전부 다 너희 덕분이야. 이 은혜는 반드시…… 반드시 갚을게. 내 명예를 걸고.”
나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네르바는 세레스가 아니라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어차피 조만간 실물로 영접하게 될 텐데 이야기 따윌 들어서 뭐 하려고.
“그럼…… 마신다?”
세상에서 가장 기쁜 표정으로 포션병의 코르크 마개를 딴 세레스는, 그걸 울먹이는 눈으로 쳐다보더니 단숨에 들이켰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