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132)
r 132 – 새로운 무기 – 6
“자! 다 됐어! 오랜만에 힘 좀 썼다고!”
얼굴 가득 함박웃음을 띄운 세레스가 내게로 다가왔다. 온 몸이 땀투성이였다. 피부는 조명을 받아서 번들번들했고, 여기저기 새까만 검댕이 묻었다.
그 손에는 날카로운 검 한자루가 들려 있었다. 세레스는 검을 거꾸로 잡고선 손잡이 부분을 이쪽으로 내밀었다.
“불편하다 싶으면 말해. 맞춰서 바꿔줄테니까. 일단 눈대중으로 맞춰보긴 했는데, 제대로 확인하려면 역시 직접 잡아봐야지.”
그 손잡이를 넘겨받아 쥐었다.
전체적으로 칠흑색을 띠는 검이었다. 손잡이는 완벽히 칠흑색이었고, 무게중심을 잡을 수 있도록 끄트머리에 화려한 문양이 새겨진 무게추가 달렸다.
좌우를 향해 곧게 뻗은 크로스가드 위로, 검신의 한가운데를 타고 올라가는 삼각형의 무언가가 새겨져 있었다. 문양이 새겨진 얇은 삼각형은 검의 1/3 지점에서 끝을 맺었다.
나는 검의 손잡이를 양손으로 잡고, 칼끝이 천장을 향하도록 가슴 앞에서 수직으로 들어올렸다. 그런 내 모습을 본 세레스가 씨익 웃었다.
“마음에 들어? 어디 불편한 곳은? 여기서 한 번 휘둘러봐도 돼. 살림살이는 부수지 말고. 아니다. 너라면 한두개 쯤은 부숴도 봐줄게. 너무 비싼 것만 안 건들면 돼.”
“……없는 것 같습니다.”
신나서 떠들어대는 세레스의 목소리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며, 천천히 칼의 표면을 관찰했다.
회색빛을 띠는 칼날의 표면에 내 모습이 비쳤다. 거울 대용으로 써도 될 만큼 매끈하고 반들거리는 칼날이었다. 아마, 적당히 관리만 해준다면 평생토록 이런 매끄러움을 유지할 것이다.
날 역시 무척 바짝 서 있었다. 브닼 4에 빙의되기 전까지 잡아본 칼이라고는 식칼이랑 커터칼, 조각칼밖에 없는 나조차 그 사실을 단박에 눈치챌 수 있을 정도였다.
“불편한 곳 없다는 거 보니까 나도 감 아직 안 죽었네. 아, 한가지 더 있다. 그거, 내가 예전에 한창 검에 미쳤을 때 만들어뒀던 거라서 기능이 더 있거든. 그게 뭐냐면ㅡ 어?”
나는 세레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손잡이를 꽉 쥐고 내 ‘의지’를 불어넣었다. 그러자, 회색빛이던 칼날이 순식간에 마나처럼 푸른색으로 물들었다.
“뭐야, 어떻게 알았어?”
조용히 입을 다물고 한번 더 의지를 불어넣으며 손잡이를 쥐었다. 푸른색이던 칼날이, 정확히 가운데를 기준으로 왼쪽은 금색, 오른쪽은 은색으로 바뀌었다.
“……그것도 알아? 대체 뭐야, 너? 어떻게 안건데?”
“글쎄요. 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검이 직접 말해줬을지도요.”
“내가 만든 게 언제부터 에고소드였다고?”
게임에서 세레스의 원본이 되는 NPC가 설명해줬던대로 한 것 뿐이지만, 그걸 밝힐 순 없었으니 대충 뻔뻔하게 넘겼다. 세레스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이었다.
다시 손잡이를 꽉 쥐자 칼날이 원래의 회색빛을 되찾았다. 주위를 은은하게 비추던 백색광이 사그라들었다.
세레스가 건네준 칼집에 검을 집어넣었다. 찰칵, 하는 기분 좋은 소리와 함께 검과 검집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맞물렸다. 검집을 허리춤의 벨트에 고정시켰다.
‘드디어 이걸 얻는 날이 왔구나.’
이것이 바로, 게임에서 ‘날개 잃은 악몽’이라는 이름을 가졌던 검이자.
브라이티스트 다크니스 4의 모든 무기를 통틀어 압도적으로 사기적인 스펙을 지닌, 최고이자 최강의 한손검이었다.
한손검이면서 리치가 특대검 급으로 길고, 공격 판정도 어마어마하게 좋고, 특수 능력에는 브닼 4의 모든 공격을 버텨내는 압도적인 슈퍼아머가 붙어 있고, 공격력 보정치도 뛰어나고, 자체 스펙도 더할 나위 없이 출중하고, 강화로 올라가는 공격력 수치도 훌륭하고, 무게도 가볍고, 공격 속도 역시 단검보다 조금 느린 수준으로 빠르고, 특수 능력의 대미지는 엄청난데 소모 마나는 적고, 특수 능력의 종류도 속성에 따라 3가지나 되고, 몬스터의 속성에 공략당해 대미지가 덜 들어갈 일도 없고, 인챈트까지 자유롭게 할 수 있는데 인챈트 배율을 자체적으로 증폭시키는 기능까지 달렸다.
이 무기 하나만 있으면 물리 대미지와 마력 대미지, 그리고 신성 대미지를 모두 입힐 수 있었다. 조금 전처럼 검의 속성을 바꾸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냥 사기라고 불릴 수 있는 조건이란 조건은 싸그리 다 갖춘 무기라고 보면 됐다.
이런 개사기 무기를 통상적인 방법으론 발견조차 못할 서브 퀘스트 라인에 넣어두고, 퀘스트를 수행하면서도 그 지랄맞은 성수 배달을 성공시켜야 했으니, 제작사의 의도가 뭔지는 뻔한 일이었다.
그런 개같은 조건을 지닌 배달 퀘스트가 필수였으면 브닼 4 만든 놈들은 진작 태평양 밑바닥에 처박히고도 남았다.
“제가 원하던 그대로입니다. 감사합니다, 세레스 씨.”
“나한테 감사하긴 무슨. 내가 더 감사해야지. 다 너희들 덕분인데.”
세레스가 방긋 웃으며 은근슬쩍 팔을 가운데로 끌어모아 가슴을 강조했다. 대장장이 일을 할 때 입는 언더붑 크롭티 아래에, 실로 무지막지한 크기의 가슴이 모여들었다.
교황들과 맞먹거나 어쩌면 몇 치수쯤 더 클, 폭유라는 명칭이 아깝지 않은 가슴이었다. 가슴골에 송골송골 맺힌 땀이 커다란 둔덕을 따라 곡선을 그리며 미끄러졌다.
원래 입던 옷들은 죄다 사이즈가 안 맞아서, 어쩔 수 없이 적당한 천조각들을 끌어다가 임시로 만든 옷이었다. 덕분에 유두를 가리는 것조차 아슬아슬했다.
“아, 그래도 조금 불편한 점이 있긴 해. ‘가슴이 너무 커서’ 대장장이 일을 하기가 힘들더라고.”
일부러 어느 특정한 문장을 강조한 세레스가 연신 싱글싱글 웃어댔다. 내 시선은 개의치도 않는 것처럼, 아니, 오히려 나더러 실컷 감상하라는 듯 자기 가슴을 주물러대는 건 덤이었다.
자신이 완성한 비약을 들이키자마자 머리보다 더 큰 크기로 성장한 가슴을 본 세레스는, 자기 상의가 모조리 찢어져 유두가 드러난 것도 개의치 않고 그걸 주무르며 뛸 듯이 기뻐했다.
보다 못한 미네르바가 옷 좀 입으라고 말하지 않았더라면, 필시 한참 동안이나 위아래로 출렁대는 가슴을 주물럭거리며 온 사방을 뛰어다니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간신히 제정신을 차리고선, 나한테 무기를 그냥 줄 순 없으니 자기 영혼까지 쏟아부어서 개량해주겠다며 공방에 틀어박혔던 게 몇 시간 전의 일이었다.
창문 밖으로는 이미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며 노을진 하늘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앞으로 계속 불편하실텐데, 익숙해 지셔야죠.”
“알아. ‘가슴이 너무 크니까’ 불편하긴 하겠지. 그런데 어쩌겠어? 다 내 가슴이 커서 그런건데 받아들여야지.”
‘머리카락이 너무 풍성하면 씻을 때 힘들다’며 껄껄 웃어대던 NPC가 떠올랐다. 살짝 미묘한 웃음을 지었다. 다행히도 세레스는 이런 내 표정을 눈치채지 못한 듯 했다.
“그러면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어? 벌써 가게? 오랜만에 술이나 까려고 했는데. 그거 먹고 가도 돼. 돈 내라고 안할게.”
“저희도 할 일이 남아있어서요. 언젠가 시간이 되면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아까부터 뺨을 잔뜩 부풀린 미네르바가 내 옷소매를 꾹꾹 잡아끌고 있었다. 슬슬 크리스탈 스크롤을 찾으러 가야 했다.
여기서 시간이 더 끌렸다간 대마법사의 체면이고 뭐고 다 내팽개친 채로 바닥에 드러누워 빨리 스크롤 찾으러 가자고 바동거리기라도 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너희들이라면 여기 언제든 들러도 되니까, 신경쓰지 말고 아무때나 찾아와!”
세레스는 멀어지는 우리를 집 밖까지 나와서 배웅해주었다. 손을 붕붕 흔들 때마다 머리보다 더 큰 가슴이 압도적인 위압감을 뽐내며 출렁출렁 흔들렸다.
그 모습이 충분히 멀어진 것을 확인한 미네르바가 입을 열었다.
“아이의 표정을 눈치채지 못하여서 다행이구나.”
“……그러게 말입니다.”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효과가 영구히 지속되는 게 아니지?”
미네르바는 내 표정 하나만으로도 정답을 도출해 낸 모양이었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게임에서도 발모제를 개발해 아주 풍성한 머리카락을 가지게 된 세레스의 원본 NPC는, 아주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플레이어가 선택한 무기를 만들어준다.
하지만, 그 효과가 영구 지속이 아니라는 게 문제였다.
각 루트의 최종 보스를 잡고 메인 스토리를 모두 클리어 한 뒤에 다시 찾아가면, 생겨났던 머리카락이 모두 빠져 좌절한 채 술만 마셔대는 NPC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니 세레스의 운명도 뻔했다. 몇 년쯤 뒤엔, 유두를 제외하면 일말의 굴곡조차 없는 그 처절한 모습으로 되돌아가겠지.
내가 차마 같이 웃어줄 수 없었던 이유도 그래서였다. 저 가슴의 결말을 알고 있으니까.
“이제 크리스탈 스크롤을 찾으러 가는거니, 아이야?”
“무기도 구했는데 그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상념에서 빠져나와 지도를 펼치고, 기억을 더듬거리며 크리스탈 스크롤이 있었던 위치를 찾았다. 미네르바가 애타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곳입니다.”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아주 깊은 산 속에 위치한 골짜기였다. 미네르바는 좌표를 확인하자마자 곧장 지팡이를 치켜올려 순간이동을 사용했다.
그리고, 우리는 말 그대로 눈 깜짝할 사이에 내가 가리킨 장소로 이동해 있었다. 주위 풍경이 바뀐 것을 본 내가 어안이 벙벙해져 있는 사이, 미네르바가 날 재촉했다.
“여기서는 뭘 하면 좋을지 말해주렴.”
“어…… 일단은 폭포를 찾아주시면 됩니다. 엄청나게 큰 걸로요.”
미네르바는 그 즉시 마나 파동을 펼쳤다. 눈을 감고 한참을 집중하다가, 지팡이를 휘둘렀다. 또다시 눈 깜짝할 사이에 주위 풍경이 바뀌었다.
바로 근처에서 콰아아아아ㅡ 하고 굉장한 볼륨의 폭포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이것도 게임보다 더 커졌네.’
나는 족히 20층 아파트 높이는 될 법한, 마법이나 다를 바 없는 폭포의 풍경을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커다란 강 자체가 절벽 밑으로 떨어지는 형태의 폭포인데, 그 절벽이라는 게 높이가 어마어마한지라 무슨 소나기 수준으로 물을 흩뿌려대는 중이었다.
미네르바가 쳐준 결계가 아니었더라면 분명 물에 흠뻑 젖은 생쥐 꼴이 됐을 것이다.
ㅡ여기니, 아이야? 괘념치 말고 그냥 말해도 된단다. 다 알아들을 수 있으니.
머릿속에 직접 목소리가 울렸다. 미네르바의 목소리였다.
“네. 이곳입니다.”
ㅡ그런데 이 폭포는 예전에도 몇 번이나 조사팀이 둘러보았던 장소인걸? 한참 전에 아무것도 없다고 결론이 내려졌었단다.
알고 있었다. 게임 내에서 찾을 수 있는 문서에 여길 몇 번이고 조사했었다고 적혀 있었으니까.
이 정도로 커다란 폭포라니, 반드시 저 뒤에 무언가 있을 것처럼 생기지 않았는가. 고대의 스크롤에 미친 마법사들이라면 필시 여길 조사해봤겠지.
여기 뭔가 있다는 생각 자체는 맞았다.
하지만, 위치가 틀렸다.
“폭포 뒤가 아니라, 폭포 아래입니다.”
나는 폭포가 쏟아지는 자리를 가리켰다. 대체 얼마나 물의 양이 많은지 물보라가 튀는 것으로도 모자라 소용돌이까지 휘몰아치고 있었다.
“저 폭포의 물을 잠시 다른 곳에 흘려보내 주시겠습니까, 미네르바님? 지금 물이 떨어지는 장소를 비워주시면 됩니다.”
미네르바는 곧장 내 말을 따랐다. 지팡이가 바닥을 가볍게 내리찍었다. 거울처럼 생긴 원형의 공간이 열리며 폭포의 물을 모조리 빨아들이고선 조금 떨어진 위치로 흘려보냈다.
양 옆에서 새어나온 물이 빈 자리를 채웠지만, 더 이상 폭포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떨어지는 물줄기 사이로 고요한 연못이 생긴 듯 기묘하기 짝이 없는 광경이었다.
폭포가 사라지자 주변이 조용해졌다.
“되었단다. 더 할 것이 남았니?”
“계속 마법을 유지해주시면 됩니다.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을겁니다.”
나는 태연하게 자리에 서 있었다. 미네르바는 발을 동동 구르며 내 옆을 지켰다. 스크롤에 거의 다 왔다고 생각하니 인내심이 무지막지한 속도로 바닥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아!”
놀라움 섞인 감탄사와 함께, 폭포가 쏟아지던 자리에서 돌로 된 구조물이 수면 위로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저 구조물 자체에 압력을 감지하는 장치가 있어서 폭포가 사라지면 톱니바퀴가 돌아가고 그로 인해 구조물이 위로 올라온다던데, 나도 자세한 원리는 모른다.
“……그렇게 된 것이었구나. 땅 속에 묻혀 있었다면 당연히 탐지 마법으로는 찾을 수 없었겠지. 설령 찾는다 하더라도 그냥 돌인 줄 알았을테고.”
미네르바가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탐지 마법의 개념은 물체의 겉을 스캔하는 것과 유사하니, 지반 속에 묻힌 구조물을 발견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게다가 무지막지한 규모로 쏟아지는 폭포가 구조물의 발견을 실컷 방해했을테고 말이다. 이 세계에서 마법은 절대로 만능이 아니었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은 거의 만능에 가깝게 쓰고 있긴 하지만, 예외 사항에 가까웠다.
“정말로, 이런 곳에…….”
미네르바는 거의 넋을 놓다시피 한 표정이었다.
눈앞에서 손을 휘적거려도 아무런 반응이 없길래, 이마를 톡 건드렸다. 크리스탈 스크롤이 코앞인데 이 정도는 넘어가주겠지.
“……읏?”
“들어가시죠, 미네르바님. 이대로 보고만 계실겁니까? 크리스탈 스크롤이 저 밑에 있는데도요?”
“아니란다, 아이야. 물론 아니지. 그래. 서둘러 들어가자꾸나.”
나는 허둥지둥 발걸음을 옮기는 미네르바의 뒤를 따라가며 외쳤다.
“함정은 조심하셔야 합니다, 미네르바님!”
내 말을 듣는둥 마는둥 한 미네르바가 구조물 위에 발을 내딛는 순간.
ㅡ콰지직!
바로 옆에서 솟아오른 가시가 미네르바의 방어 결계에 부딪히며 박살났다. 그 살벌한 소리를 들은 미네르바가 제정신을 차린 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던전의 종류에는 몬스터만 냅다 등장하는 계열도 있지만, 저렇게 악랄하기 짝이 없는 함정을 배치해놓는 던전도 있었다.
암석 지네가 있던 룬 던전이 몬스터만 배치된 곳이라고 보면 되고, 이번 크리스탈 스크롤 던전 같은 경우는 함정과 맵 구조가 몬스터의 역할을 대신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계속 들어가면 되니, 아이야?”
압도적인 힘 앞에서, 고작 함정 따위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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