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135)
r 135 – 재부름
‘무슨 일이 있었냐, 라.’
나는 아우로라에게 어디까지 설명해야 할지를 고민했다. 나 혼자만의 일이라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미네르바까지 연관되어 있었다. 선택을 잘 해야 했다.
“어디부터 듣고 싶으십니까?”
“될 수 있으면 네가 미네르바 님이랑 같이 나간 이후부터 전부. 하나같이 궁금한 것 투성이거든.”
저러리라고 예상했다.
덤덤히 알았다고 대답한 뒤, 허리춤에서 날개 잃은 악몽을 끌러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새로운 무기를 본 기사단장들의 눈빛에 호기심이 가득 담겼다.
“우선, 이게 제가 미네르바 님과 잠시 외출했던 이유입니다.”
“그 검이?”
“네.”
먼저 세레스의 집으로 향했던 일을 말해주었다. 피 묻은 검이 부러져버렸으니 새로운 무기가 필요했고, 그래서 제국의 변방에 살고 있는 세레스를 찾아갔다는 것.
“델타 네가 찾아갔던 대장장이 이름이 세레스라고 했지?”
“들어본 적 있으십니까?”
“아니, 모르는 사람이야. 은퇴한 지 십 년이 넘었다면 내가 한참 어렸을 때 물러났다는 건데, 아무리 나라고 해도 그렇게 오래 전에 은둔한 사람을 알고 있을 리 없잖아?”
“뭔가 알고 계시는 듯한 눈치셨는데요.”
“알고 있는 게 아니라, 알려고 한거야. 그 무기 때문에. 혹시 나중에 추가적인 의뢰도 가능할까 싶어서 말이지.”
‘……그 NPC한테 무기를 만들어달라는 의뢰를 넣을 수 있던가?’
일단 내가 기억하기론 아니었지만, 불가능하다고 확답하기도 애매했다.
비록 얼마 못 가 사라질 꿈이라 한들, 풍유환의 효과를 한창 만끽하는 중인 지금이라면 혹시 무기를 만들어달라는 부탁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미네르바가 영구히 지속되는 풍유환도 이론상 아주 불가능하진 않을거라 했으니 나중에 재료를 구해서 만들어주면 될테고.
나는 조금 더 생각해보다가, 결국 원론적인 대답만을 내놓았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뭐, 그렇겠지. 자기 의지로 산 속에 틀어박힌 여자가 어디 보통 괴짜겠어?”
아우로라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처음부터 아예 기대를 하지 않았던 듯 했다.
그 뒤로도 설명은 계속 이어졌고, 빛을 머금은 성수와 풍유환을 지나 미네르바와 나 사이에 있었던 크리스탈 스크롤을 찾아주겠단 거래가 언급되자 아우로라가 코웃음을 쳤다.
“크리스탈 스크롤? 어쩐지, 단체로 그런 미친 짓을 벌였던 이유가 있었구나? 죄다 약이라도 한 것처럼 헬렐레 하더니, 다 이유가 있었어. 진짜로 약 한거나 마찬가지였네. 마법사들한테는 고대의 스크롤이 그런 취급일테니까.”
“그래도 설마 사람들 보는 앞에서 그런 짓을 벌일 줄은 몰랐지만요.”
“나도 마찬가지야. 미네르바 마탑이 아무리 마법에 미친 괴짜들 모임이라지만, 어떻게 다른 곳도 아니고 황궁에서 자기를 먼저 밟고 가달라며 싸워댈 생각을 하지?”
아우로라의 넌덜머리를 마지막으로 설명을 끝맺었다. 다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납득했다는 분위기였다.
‘아직 말 안한 게 있긴 하지만…….’
그건 딱히 입 밖으로 꺼내놓고 싶지 않았다. 본인은 머릿속이 꽃밭으로 변해서 자기가 그랬든 말든 상관 없어 보이긴 했는데, 내가 상관이 있었다.
전부 다 미네르바를 위해서였다.
크리스탈 스크롤을 발견하고 기쁨을 견디지 못한 미네르바가 다리 사이에서 투명한 액체를 왈칵 흘려대며 절정에 도달했다는 사실을, 지금 여기서 어떻게 밝히겠는가.
“……이게 무슨 일이랍니까, 영주님?”
“나도 모르니까 묻지 마. 고모님이 뭔가 또 변덕을 부리셨겠지.”
크리스탈 스크롤을 가져온 바로 다음 날, 갑자기 아침부터 황제를 알현해야 한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에 우리들은 급히 준비를 끝마치고 중앙 홀로 향했다.
그런데 앞에 선객이 있었다. 금빛 황혼 기사단이었다.
제일 선두에 휘황찬란한 금색의 갑옷을 입은 기사단장이 자리를 잡았고, 그 뒤로는 부기사단장들과 일반 단원들이 위치했다.
기사단장을 제외한 나머지는 갑옷이 아니라 스포츠 브라와 레깅스를 단단히 조인 정복 차림이었다. 덕분에 얼굴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자기도 여기에 왜 불려왔는지 모르겠단 눈치였다.
선객이 있다고 중앙 홀 앞에서 대기하라는 명령을 어길 순 없으니, 아우로라를 필두로 그 옆에 자리를 잡았다. 금빛 황혼 기사단장의 머리가 이쪽으로 돌아갔다.
우리를, 특히 나를 집중적으로 한참이나 쳐다보던 기사단장이 퉁명스럽게 입을 열었다.
“너희는 왜 왔지?”
대놓고 기분 나빠하는 목소리에, 우리들을 아래로 깔아뭉개려는 티가 팍팍 나는 말투. 투구 안의 표정을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을 정도였다.
쟤가 갑자기 저러는 이유를 아주 추측하지 못할 건 아니었다.
게임에서도 저놈은 첫 만남 땐 엄격하고 근엄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플레이어가 전공을 쌓아가면 쌓아갈수록 점점 더 질투심과 열등감을 드러낸다.
애초에 은빛 여명 기사단이 자기네 기사단보다 더 잘나가는 게 아니꼬와서 전 영주놈과 짜고 은빛 여명 기사단을 해체시켜버린 놈이다. 본래 성격 어디 안 가는거다.
방금 전에 나를 집중적으로 쳐다봤다는 걸 생각하면, 내가 드래곤과 맞서 싸웠다는 소문이 도는 것에 열등감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설마 싶기는 한데…….’
나로서도 설마 그렇게까지 답이 없는 성격이라고? 싶긴 하지만, 저놈이 게임에서 보여줬던 행적을 떠올려보면 가능성은 충분했다.
그리고, 만약 끝까지 저 성격을 못 고친다면…… 내 손에 죽을거다.
스토리가 그랬으니까.
“니가 뭔데 아침부터 시비질을ㅡ”
“잠시 기다려, 클라우디아.”
아우로라가 그 말을 듣고 울컥한 얼굴로 나서려는 클라우디아를 막아세웠다. 그리고는 가슴 밑에서 팔짱을 끼고 짝다리를 짚으며 놈을 노려보았다.
“말 한번 재밌게 하네. 그렇지?”
“…….”
저놈으로서도 카이킬리아의 조카와 말다툼을 하기는 껄끄러웠는지, 슬쩍 고개를 원래대로 되돌렸다. 하지만 그걸 호락호락 두고 볼 아우로라가 아니었다.
“머리는 또 왜 돌려? 내가 말하고 있잖아. 나 무시하는거야?”
“……아닙니다.”
“그럼 이쪽 봐. 빨리.”
놈이 다시 아우로라를 쳐다보았다. 머리에 뒤집어 쓴 황금색 투구 탓에 표정을 읽을 순 없었지만, 절대로 좋은 얼굴은 아닐 것이다.
“너 방금 뭐랬어. 너희는 왜 왔지, 라고 했나? 맞아?”
“……예.”
“재밌네. 고모님께 반역이라도 하려는거야?”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뜬금없이 자기를 반역자로 몰아가려는 논리적 비약에, 기사단장은 자리에서 펄쩍 뛰다시피 하며 부정했다.
뒤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우리는 물론이고 부기사단장들과 일반 단원들마저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아우로라는 눈 하나 깜짝 않고 말을 이었다.
“왜? 내가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닌데. 우리가 여길 왜 왔겠어? 황제 폐하께서 불러서 온 것 말고 다른 이유가 더 있어? 그런데 네가 방금 뭐랬더라. 우리가 왜 왔냐고? 그건 황제 폐하께서 내리신 결정을 의심한다는 뜻이잖아. 틀려?”
“…….”
말도 안 되는 논리였다.
하지만 카이킬리아의 변덕스러운 성격과 황족의 핏줄이라는 아우로라의 특수한 위치를 감안한다면, 저 말도 안 되는 논리로도 정말 목이 날아갈 수 있었다.
당장 본인들부터가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은빛 여명 기사단을 사실상 해체시켜버린 전과가 있지 않은가. 아무리 전 영주였던 것의 도움이 있었다 해도 말이다.
아우로라도 그 사실을 알기에 그냥 대놓고 트집을 잡으며 억지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니가 이래도 우리한테 사과 안 하고 배겨? 하는 식으로.
“……절대 그럴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사과를 왜 나한테 해? 할 사람이 따로 있지 않나?”
순간, 놈의 꽉 쥔 주먹이 파르르 떨렸다. 내 옆에 붙어있던 리제가 키득거렸다.
“……미안하다. 그럴 의도는 아니었다.”
“좋아. 이제 가 봐. 앞으로는 말 조심하고.”
“……예.”
놈은 우리에게도 사과를 했고, 아우로라는 마치 선심이라도 쓰듯 손을 휘저어 돌려보냈다. 기사단장이 몸을 돌리자마자 아우로라가 피식 웃었다.
“쟤, 예전에 델타 감시하겠다고 찾아왔던 놈이지? 중앙 홀 바로 앞에서 저런 말을 하다니 간도 크네.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모가지 날라간 인간이 제국 역사에 얼마나 많은데.”
기사단장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뭔가를 말하려는 찰나, 빠악ㅡ 하는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짧은 비명이 들려왔다. 뭔가 싶은 우리들이 금빛 황혼 기사단 쪽을 돌아보았다.
“곧 황제 폐하를 알현해야 하는데 대열을 흐트러뜨린다고? 이 멍청한 녀석!”
부기사단장 하나가 몸을 휘청여대고 있었다. 왼쪽 얼굴이 벌겋게 부풀어 오르는 게 뺨이라도 맞은 듯 했다. 앙 다문 입술 사이로 한 줄기 피가 흘러내렸다.
“죄송합니다, 기사단장님.”
뜬금없이 뺨을 가격당한 부기사단장은 고개를 푹 숙이며 제자리로 돌아갔다. 저쪽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자기네 기사단장의 눈치를 살펴댔다.
‘저거 완전 미친놈이었네?’
명목상의 이유는 대열을 흐트러뜨렸다는 거였지만, 나는 똑똑히 지켜봤다. 부기사단장은 제자리에 똑바로 서 있었는데 저놈이 제 분을 못 이겨서 아무나 붙잡고 화풀이를 했단 걸 말이다.
솔직히 성에서 저놈을 처음 봤을 땐 게임과 달리 스탯이 힘에 몰빵된 뇌근육인줄로만 알았다. 나를 감시하라는 명이 내려왔다고 진짜로 24시간 내내 따라다녔으니까.
그런데 이제 보니 성에서 보여줬던 행동은 그냥 자기가 더 우월하다고 생각해서 진짜 성격을 드러낼 필요가 없었기에 그랬던거였고, 본성은 여전히 글러먹은 놈이었다.
“중앙 홀 앞에서 저런 개짓거리 하는 것도 모가지 날릴 수 있는 행동인데. 아깝네.”
아우로라가 그렇게 중얼거린 건 덤이고 말이다.
저쪽 기사단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얼어붙은 지 얼마나 됐을까, 누구 하나 손대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알현실의 문이 양 옆으로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이게 들어오라는 무언의 신호인 듯, 금빛 황혼 기사단의 기사단장이 먼저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부기사단장들과 나머지 기사단원들이 그 뒤를 따랐다.
다음이 우리 차례였다. 아우로라가 첫 번째에, 기사단장들이 클라우디아부터 에리카까지 순서대로 들어갔다. 당연히 내가 제일 마지막이었다.
나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었고.
‘…….’
나를 노골적으로 쳐다보는 카이킬리아와 눈이 마주쳤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