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14)
에리카의 한바탕 일장연설이 끝난 뒤, 우리 셋은 다 같이 식당으로 향했다. 물론 에리카 입장에서나 훈계고 연설이지, 리제는 베개에 얼굴을 푹 파묻고선 귓등으로도 안 들었다.
의외로 나한테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는데, 어차피 상황의 주도권은 리제한테 있었을거고 내 힘으로는 그걸 떨쳐내지도 못했을테니 아무말도 안 한거라나.
제법 정확한 판단이었다.
리제는 그 일을 방해받았다는 사실이 못내 아쉬웠는지, 식당으로 향하는 내내 에리카더러 들으라는 듯이 크게 투덜거렸다.
반대로 에리카는 신입이 들어온 첫날부터 그게 뭐하는 헛짓거리냐면서 으르렁댔다. 나는 그 사이에 끼여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고.
리제처럼 몸매 좋은 거유 미인이 내 위에 올라타서 나를 유혹하는 상황 자체는 별로 싫지 않았다. 나도 정상적인 취향을 가진 신체 건장한 남자인데, 설마 그런걸 싫어하겠는가.
하지만 그 뒤에 일어날 나비효과는 두려웠다.
‘쓸데없이 스토리 라인을 비트는 일은 최대한 자제해야지.’
괜히 초반부터 쓸데없이 이것저것 건드리고 다녔다가 스토리 라인이 꼬여서 내가 알고 있는 배경지식들이 무용지물로 변하는 끔찍한 일을 겪을 바에는, 차라리 유혹을 조금 참아내고 마는 편이 낫다.
게다가, 이런 일은 나로서도 처음 겪어봤기에 대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도 확신이 없었다. 게임에서 NPC가 플레이어에게 이런식으로 들이대는 상황이 생겨날 리 없지 않은가.
브닼 4가 야겜도 아닐뿐더러, 모드가 따로 안 깔려 있다면 디폴트 플레이어 캐릭터는 남자고 절대다수의 NPC들도 남자다.
남자한테 저러는 남자 NPC가 있었다면 팬들이 일단 개발자놈들 모가지부터 매달고 시작했을거다.
나중에 후속 패치로 캐릭터 생성 화면에서 성별을 고를 수 있는 기능이 추가되기는 했는데, 거기서 여자를 고른다고 해도 딱히 스토리가 바뀌고 그러는 것 역시 아니었다.
브라이티스트 다크니스 시리즈의 세계관은 딱히 연애질을 할 세계관이 못 되기도 했고.
“신입!”
찰싹, 하고 등에 손바닥이 착 감겼다. 힘도 별로 안 들인 것 같았는데 아프기는 더럽게 아팠다. 등짝의 아픔을 참아내며 뒤를 돌아보았다.
리제가 특유의 장난기 넘치는 미소를 지은 채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또 왜?”
“솔직히 말해봐. 너도 좋았지?”
“이걸 나까지 끌어들인다고?”
“에이, 그러지 말고. 솔직히 너도 좋았잖아? 나 같은 미인이 위에 올라타줬는데 싫었을 리가 없지. 응응. 그럴 리가 있나. 한창 좋은 시간이었는데 에리카 저 상도덕도 없는 애가 중간에 방해해서 마음에 안 들었지? 그렇지?”
리제는 그러면서 악당은 물러가라- 라고 외치며 내 손목을 움켜쥐고 휘둘러 에리카를 톡톡 때려댔다. 내 나름대로 팔 잡힌 걸 풀려고 해봤는데 씨알도 안 먹혔다.
“언니, 또 시작입니까? 자꾸 신입 씨 귀찮게 하지 말고 좀 걸으세요. 그리고 위에 올라타다니, 그런 상스러운 말은 또 어디서 주워들은건가요?”
“야, 나 엄연히 성인이다? 상스럽다니, 성인이 야한 말 하는게 뭐 어때서 그래?”
하는 행동만 보면 성인이 아니라 어린애 수준으로 유치한데. 나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물론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때와 장소를 가려달라는 말이잖아요! 저희끼리 있으면 또 몰라, 신입이 보는 앞에서 품격 떨어지게 그래야겠어요?!”
“에리카 너는 또 얘를 왜 이렇게 싸고돌아? 전혀 너 답지 않은걸. 다른 기사단장들한테도 좀 이랬어봐라. 화염 쓰는 놈 별명이 얼음 공주였던게 말이 돼?”
“아무도 그렇게 안 불렀는데 언니만 그렇게 부르고 다닌거잖아요! 사람을 그런 오글거리는 별명으로 불러댈 사람이 언니 말고 또 누가 있나요?!”
‘이 둘은 지치지도 않나?’
리제와 에리카의 말싸움은 놀랄만큼 오래 이어졌다.
에리카는 쓸데없는 언쟁을 무척이나 싫어하는 타입처럼 보였는데, 의외로 리제의 말을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받아치고 있었다. 괜히 친자매 사이가 아닌 듯 했다.
덕분에 식당으로 가는 길이 심심하지는 않았다.
리제는 에리카와 말싸움을 벌이다가 어느순간부터 슬금슬금 내 옆에 달라붙었고, 그러더니 아예 팔짱을 꼈다. 압도적인 부드러움과 크기를 가진 두 언덕에 팔뚝이 푹 파묻혔다.
나는 나대로 팔에서 느껴지는 물컹한 감촉에 반응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했다. 감촉도 감촉이지만, 복장부터가 대놓고 몸매를 드러내는 옷이어서 더 그랬다.
정작 그런 옷을 입은 당사자들은 모드로 상식 개변을 당한 탓에 스스로의 옷차림이 미치도록 야하다는 사실에 아무런 자각이 없어보이지만 말이다.
이후로도 그런 리제를 본 에리카가 제발 체통 좀 지키라며 일장연설을 늘어놓고, 리제는 그런 에리카를 놀리듯이 내게 더 찰싹 달라붙는 일의 반복이었다.
‘존나 빡세네, 진짜.’
내 정신력도 그와 비례해 팍팍 깎여나갔다.
팔에 대놓고 들이밀어지는 가슴의 감촉을 의식하지 않으려 애써야 하는건 물론이고, 우리 둘의 자세가 이런지라 리제와 에리카도 자연스레 내 근처에서 싸울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한술 더 떠서 둘이 옥신각신하며 에리카의 몸도 내 등에 비벼지곤 했는데, 그건 그거대로 파괴력이 엄청났다. 가슴이 빈약하다 뿐이지, 아예 없는 게 아니었으니까.
근본이 억소리 나는 미소녀이기도 하고.
“도착했습니다, 신입 씨. 여기가 식당이에요.”
영원토록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자매 싸움은, 식당 문 앞까지 도착하고 나서야 에리카가 한 발 물러나는 걸로 막을 내렸다. 리제는 대체 뭐가 그리 좋은지 의기양양한 표정이었다.
식당이 가까워지자 리제도 팔짱을 풀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까지 이런 짓을 할 의향은 없던 모양이었다. 아니면 그냥 나랑 에리카를 놀리려고 이랬든지.
리제가 히죽이며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아쉬우면 말해. 얼마든지 더 해줄게. 물론 값은 제대로 치러야겠지만.”
“필요 없거든.”
대체 뭘 요구하려고.
식당의 문은 엄청나게 거대했다. 내가 두 팔을 옆으로 활짝 뻗은 상태에서 족히 세 명은 한꺼번에 설 수 있을 너비였고, 높이는 내 키의 두 배에 달했다.
식당 문이 아니라 성문이라고 해도 믿을 크기였다.
에리카는 그런 엄청난 규모의 문을 별로 힘들어하는 기색조차 없이 한 손으로 잡아당겼다. 쿠구구궁, 하는 육중한 소리와 함께 닫힌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단면의 두께는 아무리 적게 잡아도 한 뼘 이상이었다. 내가 전력을 다해 잡아당기거나 밀어본다 한들 열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리제는 어느새 나머지 한쪽을 열고 있었다. 저 가녀린 팔로 손쉽게 문을 열어젖히는 걸 보고있자니, 새삼 대련 때 힘조절을 해줬다는 말이 떠올랐다.
“뭘 그렇게 열심히 쳐다봐? 나한테 반했어?”
“문 두께가 엄청나길래 그거 보고 있었지. 여기 식당이라며? 식당 문이 이렇게 두꺼울 필요가 있는거야?”
“아, 이거? 여기 원래 그 영주 놈이 쓰던 성이잖아. 여기가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서 피난처 역할을 겸하는 곳이었대나봐. 그래서 문이 저렇게 두꺼운거고. 우리한테는 별 의미 없는 특징이니까 무시해도 돼.”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나는 리제를 빤히 바라보았다. 내 시선을 받은 리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흐음…… 굉장히 의외네.”
“뭐가?”
“리제 넌 그런건 모른다고 대답할 줄 알았거든.”
“요놈 봐라?”
히죽거리는 미소와 함께 내 양쪽 뺨이 붙잡혔다. 그게 좌우로 주욱 잡아당겨지기 직전에, 바로 옆에서 끼어든 목소리가 제지했다.
“허튼 짓 그만하고 들어가시죠, 언니. 그리고 신입 씨가 제대로 봤는데 뭘 그래요?”
“20년 넘게 봐온 언니보다 만난지 2시간밖에 안 된 신입을 먼저 챙기는거야? 이 언니 너무 슬픈데? 아주 그냥 남자에 미쳐서 언니고 뭐고ㅡ”
“한마디만 더 하면 화덕에 머리부터 처박아버릴겁니다. 그 입 다무세요.”
에리카의 신경을 살살 긁어대는 리제를 따라 식당으로 들어서자마자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직사각형 모양의 길다란 테이블이었다.
세로 방향에는 의자가 딱 하나만 놓여 있고, 가로 방향에는 얼핏 보기에도 스물이 넘는 의자가 놓여 있을 정도로 긴 테이블. 저 하나만으로도 50명이 넘는 인원을 앉힐 수 있을 듯 했다.
그런 크기의 테이블이 4개씩이나 있으니, 자연히 식당의 넓이도 어마어마하게 컸다. 과장 좀 보태서 바깥이 아니라 여기를 연무장으로 쓰기에도 손색이 없어보이는 넓이였다.
“왔나.”
그 테이블들 중 하나에서 혼자 묵묵히 식사를 하고 있던 아이리스가 우리를 맞이했다.
“뭐야, 먼저 먹고 있었어?”
“10분까지는 기다렸었다.”
“아, 그렇네. 우리가 좀 늦긴 했구나.”
“에리카가 자기 일을 소홀히 했을 리는 없고…… 리제 네가 또 뭔가를 저지르고 있었던 모양이군.”
“정확하게 보셨습니다, 아이리스. 언니가 또 말썽이었죠.”
아이리스는 단순히 우리가 조금 늦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정확한 추리를 해냈다.
리제는 너무한거 아니냐고 한마디를 툭 내뱉긴 했지만, 그래도 양심은 있는지 말 자체를 부정할 생각은 없어보였다.
자기들끼리 대화를 시작한 셋은 내버려두고, 식당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
이 넓은 식당에, 사람이라고는 우리 넷 뿐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