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143)
r 143 – 계책 – 1
나는 아우로라의 질문에 어떤 대답을 내놓아야 할지를 잠시 고민했다.
해야 할 일이라면 많았다. 아니, 많은 정도가 아니라 차고 넘쳤다. 너무 많아서 순번부터 정한 다음에 시작해야 할 지경이었다.
일단 닼라 모드에서 근접 캐릭터의 최종 빌드를 완성시키기 위해 얻어야 할 룬이 두 개나 더 남았고, 마찬가지인 이유로 흑마법도 하나를 얻어놓아야 한다.
굵직한 것만 따져봐도 룬 던전을 두 개나 방문해야 하는데, 무기를 강화하거나 레벨링을 하는 등의 온갖 잡다한 일까지 합친다면 당분간은 무척 바쁠 것이 틀림 없었다.
‘메인 스토리는 나중에 진행해도 되겠지. 반지는 정 안되면 아우로라한테 부탁해서 그것만 보내든가 하고.’
이왕 이렇게 된 거, 당분간은 스토리 진행을 제쳐 둔 채 레벨링부터 할 생각이었다. 지금 황궁으로 돌아가는 건 썩 좋은 선택이 아니기도 할테고 말이다.
“네. 있습니다.”
대답을 기다리는 중인 아우로라를 확인하고 적당한 선에서 생각을 끊어냈다. 말 뿐이 아니라 정말로 아쉬운 듯, 아우로라의 표정에 옅은 실망감이 깃들었다.
“그래? 아쉽게 됐네.”
“뭘 부탁하려 하셨길래 그런 표정을 지으십니까?”
“음…… 24시간 밀착 경호?”
“왜 의문형이죠?”
“방금 생각했거든. 딱히 뭘 시키자고 정해놓은 건 없었어. 일단 가능한지 아닌지만 물어본거였지.”
“뻔뻔하기 짝이 없는 대답이시네요, 영주님.”
아우로라는 이런 내 말에도 아무렇지 않게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뻔뻔해도 좋아. 무려 드래곤을 물리친 기사잖아? 어떻게 해서라도 옆에 두고 싶은 게 당연하지.”
“드래곤을 죽인 것도 아니고, 물리친 것도 아닙니다. 그거 다 헛소문이에요.”
“황제 폐하께서 네가 물리친 게 맞다고 직접 공인하셨는데도?”
“…….”
뒷목이 뻐근해지는 느낌이었다. 카이킬리아가 소문을 긍정해주었으니, 사실상 가불기나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겉으로 보기에는 그럴듯 해서 더 문제였다. 차라리 내가 진짜로 그놈을 물리쳐서 저런 별명이 붙은거라면 이해라도 하겠는데, 그것조차 아니지 않은가.
그 뒤로도 나는 아우로라와 일방적인 대화를 나눈 끝에 한 시간 가까이가 지나고 나서야 간신히 풀려났다. 밤 늦게라도 좋으니 자기를 찾아오라고 한 진짜 이유는 결국 끝까지 알 수 없었다.
설마 정말로 대화만 나누려고 했던 건가.
“갔어?”
“네, 주인님. 방금 막 정문을 나가셨습니다.”
델타가 정문을 나섰다는 말을 들은 아우로라가 의자에 추욱 늘어졌다. 그 바로 옆에서 다소곳이 양손을 모은 채 서 있던 라나가 무뚝뚝한 목소리로 질문했다.
“실패하셨습니까?”
“설마 내 방까지 찾아와놓고 몰라서 묻는 건 아니지?”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만, 주인님이 스스로의 한심함을 자각하실 수 있도록 도와드린 것입니다. 어떠십니까. 이제 주인님이 방금 얼마나 한심한 행동을 하셨는지 좀 체감이 되십니까?”
“…….”
할 말이 없어진 아우로라는 멍하니 천장에 매달린 샹들리에를 올려다보았다. 라나도 괜히 자신의 주인에게 먼저 말을 걸 성격은 아니었으므로, 순식간에 침묵이 찾아왔다.
사실 한심한 행동이라고 한다면 이미 임자가 있는 남자를 좋아한다는 것부터 트집을 잡아야 할 것이나, 아우로라는 어느 가능성 하나에 모든 것을 걸고 있었다.
드래곤을 물리쳤다는 소문을 황제가 직접 진실이라고 긍정했을 때부터 믿기 시작한 가능성이었다.
본인은 아니라고 펄쩍 뛰며 부정하는 중이지만, 크리스탈 스크롤을 찾고 나서 그 공로를 전부 미네르바에게 돌렸던 걸 보면 이번에도 비슷한 경우일 것이다.
부정하는 이유는 아마 과한 관심이 부담스러워서겠지. 델타는 본인의 업적을 으스대는 것과 거리가 먼 성격이니까.
“……하지만, 신기하군요.”
침묵은 얼마 가지 않았다. 의외로 라나가 입을 먼저 연 것이다. 그 사실에 깜짝 놀란 아우로라가 고개를 돌렸다.
“나도 그런데. 방금 진짜로 신기했어.”
“무엇이 말입니까, 주인님?”
“라나 네가 나한테 먼저 말 거는 거.”
“제가 이런 행동을 할 정도로 주인님의 행동이 답답했다고 받아들이시면 됩니다.”
메이드가 주인을 욕하는 행동은 그 주인의 성향에 따라 목이 날아가도 할 말이 없을 수준의 무례였으나, 아우로라는 단지 약간 뚱한 표정으로 라나를 쳐다볼 뿐이었다.
라나는 제일 믿을 수 있는 아군이었으니까. 고작 제 주인을 답답하다 칭한 것 가지고 화를 낼 이유는 조금도 없었다.
거기에 아우로라 스스로도 자각하고 있었으니 더더욱 그랬다. 여태껏 보인 행동을 돌이켜보면, 오히려 라나가 화를 내야 할 입장에 가까웠다.
“그래서, 뭐가 신기한데?”
“주인님은 분명 부끄러움을 많이 타시는 성격이 아니신데, 왜 그분 앞에만 서면 솔직하게 마음을 전달하지 못하고 말을 빙빙 돌리거나 장난을 치며 넘어가시는지가 말입니다. 방금도 평소처럼 말하셨더라면 분명 저 대신 그분께서 여기 들어와 계셨을겁니다. 그리고 저는 저택의 모든 메이드에게 별도의 명령이 하달되기 전까지 이 근처에 아무도 접근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겠죠.”
“…….”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청산유수처럼 쏟아진 기나긴 설명에, 말문이 막힌 아우로라가 눈동자를 슬쩍 다른 곳으로 돌렸다.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라나의 시선을 더 견딜 수가 없어서였다.
표정 자체는 평소와 비슷했으나, 찔리는 게 있으니 어쩐지 더 매섭게 느껴졌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주인님의 평소 성격대로라면 그런 한심한 유혹을 할 것이 아니라 벽으로 밀어붙이고 지금 당장 한 판 뜨자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ㅡ”
“알았어. 내가 잘못했으니까 그만 좀 해주면 안 될까?”
제 주인의 반응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한 라나는 냉큼 입을 다물었다. 날이 갈수록 뻔뻔해지는 메이드였지만, 아우로라로서는 그게 딱히 싫지 않았다.
라나가 저런 식으로 편히 행동한다는 것 자체가 마음의 안식을 찾았다는 의미였으니까. 오히려 장난을 더 쳐주었으면 하는 마음도 아주 약간은 있었다.
정말로 아주 약간이긴 하지만, 어쨌든.
게다가 라나에게 이상한 농담을 가르쳐 준 사람이 아우로라였으니, 다 본인의 업보였다. 자기가 저지른 행동인데 어떡하겠는가. 받아들여야지.
“그래, 나도 알아. 이런 멍청한 행동은 나랑 안 어울린다는 거 아는데, 어쩔 수 없잖아.”
새하얀 빰에 홍조가 깃들었다. 피부가 복숭아빛으로 물들었다. 아우로라가 몸을 살짝 꼬았다.
“그, 좋아한다고 눈앞에서 말하기는 부끄러우니까.”
아우로라의 표정을 본 라나가 잠시 멍해졌다가, 한심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방금 깨달은 사실입니다만,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주인님. 방금 지으신 표정을 그 분께 보여주신다면, 굳이 눈앞에서 좋아한다는 말을 하지 않으셔도 그 분께서 먼저 주인님을ㅡ”
“라나!”
“농담입니다. 왜 그분과 연관되기만 하면 이런 가벼운 수위마저도 버티지 못하시는 겁니까? 정작 주인님이 그러실 때는 잘만 하시면서.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따로 있으십니까?”
“……나도 몰라.”
아우로라가 새침하게 몸을 돌렸다. 라나는 쯧쯧, 하고 혀를 차는 얼굴이었다. 꼭 엄마가 철부지 딸을 보는 듯한 모양새였다.
실제로 둘은 모녀 관계라고 칭해도 딱히 이상하지 않긴 했다.
“주인님.”
한동안 무언가를 고민하던 라나가 아우로라에게로 한 발짝 다가섰다.
“왜?”
“그렇다면, 이런 방법을 써 보시는 것은 어떠신지요?”
“…….”
나는 라크시아가 최종적으로 확정지었다며 가져온 정복의 그림을 보고, 할 말을 잃은 채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일반 단원들의 옷차림은 거의 그대로였다. 노출도 높은 바니걸 차림을 베이스로 스타킹의 길이와 종류에 바리에이션을 두어 편제를 구분하는 것.
끽해야 디테일이 조금 더 다듬어지고 노출이 살짝 더 늘어난 수준의 차이에 불과했다. 거기서 더 노출이 늘어났다는 사실에 잠시 아연실색하긴 했어도.
문제는 부기사단장들의 정복인 역바니였다. 첫 그림에 바리에이션이 없길래 스타킹을 입기 곤란하니 디자인을 하나로 통일하려는 건가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역바니 그림의 바로 옆에는 아주 친절하게도 유두와 음부를 가릴 용도의 스티커가 종류별로 표시되어 있었다.
각 스티커 밑에는 그걸 착용할 부기사단장들의 이름이 적혔고 말이다. 그걸로 편제를 구분하겠답시고 가져온 것이다.
스티커의 종류는 동그라미. 별. 하트. 세잎 클로버. 알파벳 X. 이렇게 총 5개였다.
‘아니, 이런 걸로 구분이 가?’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입는 당사자들이 그렇다는데 내가 뭐라 말하기도 애매했다. 결국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종이를 4등분으로 접었다.
“단장님, 잠시 괜찮으십니까?”
그때였다. 누군가 문을 똑똑 두드렸다. 나는 깜짝 놀라선 허겁지겁 종이를 품에 집어넣었다. 꼭 야한 책을 보다가 들킨 사람 같은 행동이었다.
왠지 이래야 할 것 같은 기분이라서였다.
칠흑 성야 기사단의 정복이 그려진 종이를 품 안에 넣고, 자리에 앉아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입을 열었다.
“들어와.”
문이 벌컥 열리더니 라크시아가 안으로 들어왔다. 예전 금빛 황혼 기사단 시절의 정복인 스포츠 브라와 레깅스를 입고 있는 모습이었다.
예전에 나랑 대련을 했다가 먼지나게 두들겨 맞은 경험 탓인지, 어지간하면 내게 보고하는 사람은 라크시아로 정해진 분위기였다. 본인도 딱히 싫어하는 것 같지 않아서 내버려뒀다.
“무슨 일이야?”
위엄 있는 말투는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쓰려고 노력은 해 봤는데, 나는 그런 말투랑은 안 어울릴 사람이라는 확신만 얻었다.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손님? 누군데?”
“저, 그것이…….”
라크시아가 우물쭈물했다. 이걸 정말로 말해도 되나, 하는 얼굴이었다. 뭔가 아주 심각한 내적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듯 했다.
뭔데 저러는거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