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144)
r 144 – 계책 – 2
라크시아를 따라 성 밖으로 향한 나는, 난감한 표정으로 서 있는 기사들 너머의 누군가를 발견하고 똑같은 표정을 지었다.
단원들은 내가 도착했다는 사실을 확인하자마자 마침 잘 됐다는 듯 좌우로 우르르 물러섰다. 그 중심에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이 서 있었다.
‘……아우로라?’
아우로라였다.
챙이 넓은 베이지색 모자를 푹 뒤집어 쓰고 검은색 마스크로 얼굴의 2/3을 가렸지만, 등 뒤로 길게 늘어진 흑발과 그 사이에서 빛나는 황금색의 동공이면 누구인지 알아보기에는 충분했다.
저택에 있어야 할 아우로라가 얼굴을 가린 채 뜬금없이 성에 찾아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황당했는데, 입고 있는 옷은 더 가관이었다.
상의로는 달랑 와이셔츠 한 장만을 걸치고 있을 뿐 아니라, 단추를 세 개쯤 풀어놔서 맨살이 그대로 보였다. 와이셔츠 너머로는 가슴을 감싼 검은색 란제리가 고스란히 비쳤다.
아래쪽에는 아무것도 입지 않았다. 엉덩이를 간신히 가리는 길이의 와이셔츠 자락이 끝이었다. 즉, 브래지어는 착용했지만 팬티는 입지 않았다는 의미였다.
저게 대체 어떻게 되어먹은 복장인가 싶었다.
차라리 평소에 입던 드레스처럼 속옷을 아예 배제한거라면 또 몰라, 브래지어는 입어놓고 팬티를 안 입는 건 또 무슨 경우란 말인가.
‘여긴 왜 온거지?’
이 세계 여자들이 저런 옷을 입는 건 일상에 가까우니 제쳐두고서라도, 아우로라가 굳이 여기에 찾아올 이유부터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변장은 왜 한건지 모르겠네. 일부러 알아봐달라고 저러나?’
그 전에 자기 정체를 제대로 감출 생각이 있는지도 의문이었다. 부기사단장들과 일반 단원들은 진작에 다 알아차렸고, 나 역시 보자마자 정체를 직감했으니 말이다.
라크시아가 손님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애매모호한 표정을 지었던 이유도 납득이 갔다.
나름대로 정체를 숨기려는 것 같기는 한데, 변장이 아무런 쓸모가 없으니 혹시 일부러 알아봐달라고 저런 차림을 한 건가 싶었겠지.
나는 옆에 있는 라크시아에게 슬쩍 속삭였다.
“라크시아. 저 복장은 어떻게 생각해?”
“영주님께서 입으신 옷 말입니까? 평범한 외출용 여성 의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름대로 평범한 옷을 고르셨군요. 딱히 의미 없는 행동인 것 같긴 합니다만.”
‘평범해?’
아우로라의 복장을 다시 살폈다.
단추가 세 개나 풀려선 검은색 란제리와 가슴골, 윗가슴을 훤히 드러내놓은데다 재질마저 무척이나 얇아서 란제리의 무늬까지 비칠 지경인 와이셔츠.
음부와 엉덩이를 아슬아슬하게 가리는 길이의 와이셔츠 끝자락. 아래로 아무것도 입지 않은지라 훤히 드러내놓은 허벅지와 종아리. 굽 높은 검은색 하이힐까지.
저런 옷차림이 평범한 외출용 의복이라고?
‘……아. 설마 원본 모델링이 그거였나.’
만약 길거리의 여자 NPC들에게 제일 많이 입혀져 있던 의상인 여성용 천옷이 모드로 인해 알몸 와이셔츠로 바뀐 것이라면, 라크시아는 충분히 저런 반응을 보일 만 했다.
알몸 와이셔츠가 아니라 평범한 외출용 옷을 입고 나온 것처럼 인식하고 있을테니까. 기사단의 정복을 바니걸로 고른 것처럼 말이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아우로라를 향해 다가갔다.
“여기서 뭐 하십니까, 영주님.”
“영주가 누구지? 나는 그런 사람 모르는데?”
“다른 사람인 척을 할 거라면 최소한 목소리만이라도 바꾸려는 노력을 하셔야죠. 제가 설마 영주님 목소리도 못 알아들을거라 생각하셨습니까?”
“…….”
아우로라는 뻔뻔하게 서 있었다. 자기 정체를 드러낼 생각이 조금도 없는 모양이었다. 진심으로 변장이 잘 됐다고 믿는건지, 아니면 대놓고 뻔뻔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후자에 가까울 것이다.
“좋습니다. 정 그러시다면 어쩔 수 없네요.”
“그렇ㅡ”
“그런데, 왜 나한테 반말이야?”
내가 순식간에 태세를 전환하자, 아우로라는 물론이고 손님의 정체를 알아차리고 있던 부기사단장과 일반 단원들까지 몸을 움찔거렸다.
“이 영지에서 아우로라 영주님 다음 가는 권력자가 나인데, 처음 찾아와놓고 나한테 반말 쓰면 안 되지. 아니면 네가 누구인지 정체를 밝히든가.”
나는 태연하게 정체를 밝히든 나한테 존댓말을 쓰든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며 양자택일을 강요했다. 원래 뻔뻔한 사람에게는 똑같이 뻔뻔하게 나가주는 것이 최고다.
둘 중 어느 방안을 선택하든 내가 손해 볼 일은 전혀 없었다. 정체를 밝히면 목적은 달성한거고, 안 밝히면 아우로라한테 존댓말 들을 수 있는거고.
아우로라는 한참이나 고민한 끝에 결심을 굳힌 듯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죄송해요, 기사단장님.”
결국 끝까지 모르쇠로 일관하려는 듯 했다.
저렇게까지 하는데 나도 굳이 정체를 캐묻고 싶지는 않았다. 뭔가 나름의 계획이나 생각이 있는거겠지.
“알면 됐어. 그래서 넌 누구야? 내가 누구인지는 알고 있을테니 굳이 말 안해도 될거고.”
“오로라…… 요.”
‘오로라?’
진짜로 정체를 알아봐달라고 저러는건가.
“그래. 아우로…… 오로라. 여긴 왜 왔지?”
“영주님께서 델타님께 명령을 내리셔서요.”
아우로라, 아니, 오로라가 자기 브래지어 사이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 뜬금없는 손놀림에 화들짝 놀란 내가 주위의 눈치를 살폈지만, 하나같이 태연한 반응이었다. 놀란 것은 나 혼자 뿐이었다.
내가 당황하는 동안, 자기 브래지어 사이에서 반듯이 접힌 종이를 꺼내든 오로라가 그걸 내밀었다. 종이를 받아들자 따끈따끈한 온기가 전해져왔다.
받아든 종이를 펼쳤다. ‘오늘 하루동안 그 아이랑 놀아줄 것. 영주 명령임.’이라는 짤막한 아우로라의 서신이 적혀 있었다. 필체를 보아하니 아우로라가 직접 적은 게 맞았다.
아니면 오로라가 직접 적었거나.
“알았어. 일단 영주님 필체인 건 확실하네.”
종이를 다시 선 따라 접으며 오로라를 슬쩍 쳐다보았다.
“굳이 이런 방법이 아니더라도, 놀아달라고 하셨으면 얼마든지 놀아드렸을텐데요.”
내가 왜 굳이 존댓말을 사용했는지 그 의도를 눈치챈 듯, 오로라의 몸이 잠시 움찔 했다. 하지만 곧장 원래의 뻔뻔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아우로라다운 행동이었다.
영주로 있으면서 그 놈이 벌려놓은 일의 뒤처리를 하느라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테니, 그걸 풀 곳이 필요하긴 했을 것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황궁까지 갔다 왔으니 더 힘들었을거고.
스트레스를 풀 방법으로 왜 이런 걸 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라크시아.”
“네, 단장님. 말씀하십시오.”
“나 없는 동안은 네가 대신 지휘해. 혼자 감당하기 힘들 것 같으면 다른 부단장이랑 적당히 나눠서 행동하고. 꼭 지금 뿐만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내가 자리 비울 때마다 대신 지휘하면 돼.”
“……알겠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그러라는 말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던 라크시아는, 아우로라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더니 납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오해를 산 것 같은데.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야, 라크시아.”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라크시아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뭘 충분히 이해했다는거지.
떨떠름한 기분으로 종이를 돌려주었다. 종이를 받아든 오로라는 그걸 다시 브래지어와 가슴 사이에 끼워넣었다.
원래 옷에서는 대체 어디에 달려 있는 주머니길래 브래지어가 그 역할을 대신하는 건지 몹시 궁금해졌다.
“영주님이 너랑 오늘 하루동안 놀아달라던데, 어디 가고 싶은 곳이라도 있어?”
“음…… 딱히 없어요.”
“그래? 그러면 일단 어디 한 군데 먼저 들린다. 괜찮지?”
“네. 그러셔도 돼요.”
오로라는 그새 존댓말에 완벽히 적응한 모습이었다. 나한테 경어를 사용하는 것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허리춤에 걸린 금화 주머니를 확인하고, 라크시아에게 부탁한다는 말을 남긴 뒤 성을 나섰다. 오로라는 얌전히 내 뒤를 따라왔다.
성을 나서는 우리 둘을 보며 자기네들끼리 작게 속삭이는 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그 내용까지는 알아듣지 못했지만, 추측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아마 아우로라와 나의 관계에 대해 설왕설래 하는 내용일테지.
‘이미지 조졌네.’
황궁에서는 리제랑 섹스하느라 집합 시간을 저녁에서 다음날 아침으로 미루기까지 했었는데, 돌아와서는 아우로라랑 이러고 있으니 말이다.
라크시아의 표정은 별로 나쁘지 않았었지만, 다른 기사들도 그렇게 생각할지는 불명이었다.
“기사단장님. 우리 지금 어디로 가는 거에요?”
“대장간.”
“거긴 왜요?”
“무기 강…… 무기 손볼 게 좀 있어서.”
무기 강화 때문에, 라고 하려다 급히 단어를 바꿨다.
아이리스에게 활력 강화 룬을 설명했을 때 스태미너라고 말해도 알아먹었던 걸 돌이켜보면 무기 강화라는 개념 역시 있을 법 하긴 한데, 혹시 모르니까.
나는 자신이 오로라라고 주장하는 아우로라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이것저것 대화를 나누며 거리를 걸어갔다.
그런데 어째 사람들의 시선이 심상치가 않았다. 전체적으로 날 보는 눈빛이 예전과 조금 많이 달랐다. 이목이 훨씬 더 집중되는 느낌이었다.
기분탓인가 싶다가도, 내가 고개를 돌리는 자리마다 경외감 가득한 눈빛으로 날 쳐다보거나, 여자들이 뺨을 화악 붉히며 고개를 돌려대는 걸 보니 절대 기분 탓은 아니었다.
찜찜한 느낌을 애써 무시하며 마물 토벌 계획에 대한 이야기까지 막 끝냈을 때 쯤, 우리는 대장간 건물 앞에 도착해 있었다.
‘게임보다 훨씬 크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오로라가 곧장 내 뒤를 따라들어왔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후끈한 열기가 우리를 맞이해주었다. 사우나보다 살짝 못한 수준의 열기였다. 한 발짝만 더 나가도 덥다가 아니라 뜨겁다에 속할 것 같았다.
온갖 무기가 걸린 벽은 물론이고 저 뒤편으론 시뻘겋게 타오르는 제련로까지 보였다. 게임에서 보던 것과 똑같은 풍경이었다.
손님용 공간과 작업 공간을 구분하는 넓다란 선반 너머로, 누군가 턱을 괴고 앉아 있었다.
‘여자네.’
게임에서는 근육질의 노인이었지만, 여기서는 당연히 여자였다. 불을 다루는 직업이라서인지 머리가 목에도 간신히 닿을만큼 아주 짧았다. 색깔은 평범한 검은색이었다.
상의는 모조리 탈의한 채 가슴을 붕대로 둘둘 말아 고정시켰다. 무더운 열기 때문인 듯 했다. 하반신에 뭘 걸쳤는지는 선반으로 가려져셔 볼 수 없었다.
지루한 표정으로 손톱을 물어뜯던 여자가, 날 보더니 상반신을 일으켰다.
“와, 이거 영업 첫 날부터 거물이 오셨네. 무슨 일로 왔어?”
“무기를 강화…… 하러 왔습니다.”
나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그래? 무기 줘 봐.”
여자가 손을 내밀었다. 다행히 무기 강화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나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날개 잃은 악몽을 끌러 손 위에 얹어주었다.
여자는 무기를 받아들자마자 오, 하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역시 기사단장이라 이건가? 무기 한 번 좋은 거 쓰네. 척 봐도 알겠는걸.”
한동안 날개 잃은 악몽을 만지작거리던 여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 얼마나 강화하고 싶은데?”
“할 수 있는 곳 까지요.”
지금 당장은 아마 10강까지만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강화치를 11강 이상으로 높이려면 게임을 어느정도 진행해야 했다.
스토리를 진행하다가 단서를 얻고, 그 단서를 따라 던전을 클리어해서 무기 강화 재료에 대한 잊혀진 고서를 발견한 뒤 그걸 아무 대장간에다 전달하면 추가 강화가 열리는 방식이었다.
10강 이후로 무기 UI에 ‘추가 강화를 위해서는 특별한 재료에 대한 지식이 필요합니다’라고 뜨기에 모르고 지나칠 일은 없었다. 설명을 아예 안 읽는 놈이라면 또 몰라.
“돈은ㅡ”
“아, 잠깐, 잠깐. 돈은 됐어.”
“네? 그게 무슨 소립니까?”
“내 부탁 하나만 들어주면, 해달라는 거 공짜로 해줄게. 어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