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146)
r 146 – 등장
“더 깔끔하게.”
“알겠습니다.”
라나는 주위를 한층 더 깔끔히 정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열 명이나 되는 숫자의 메이드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그 명령을 따랐다.
여기는 아우로라의 방이었다. 이 장소의 주인은 옆에 남자를 끼고선 분주히 도시를 돌아다니는 중일 테고, 그 틈을 타서 방을 정리하고 있는 것이다.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한 청소다.
물론 외출을 종용한 사람은 라나였다. 제 주인의 답답함을 참다 못한 나머지 아우로라가 아닌 평범한 사람으로 대화를 이어가라고 조언을 해주었다.
아우로라는 처음엔 솔깃한 표정이더니, 그 다음에는 약간 고민하는 듯 하다가 최종적으로는 약간 불안한 얼굴로 저택을 나섰다.
저래서야 잘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지만, 라나 역시 남자 경험이라고는 전무했으므로 딱히 남녀 관계에 조언을 해줄만 한 위치는 아니었다.
‘되면 좋지만, 안 돼도 어쩔 수 없어.’
라나도 반쯤은 내려놓은 상태였다. 평소에는 그토록 강하고 굳센 주인님이시건만, 이상하게 그 남자와 엮이기만 하면 솔직해지지 못하고 빙빙 돌아댔다.
이번에도 분명 그럴 것이다. 라나는 정체를 끝까지 숨기라고 말했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중간에 직접 드러내든지 아니면 들키든지 둘 중 하나겠지.
‘여자를 밝히는 성격도 아니신 듯 하니…….’
저택에서 몇 번 대화를 나누고, 자신의 주인님께 이것저것 설명을 들은 이후, 라나는 델타의 성향을 나름 잘 파악한다 자부하고 있었다.
그 남자는 먼저 다가오기를 기다리면 안 된다. 다가오기를 기다렸다간 평생을 기다리기만 하게 될 것이다.
게다가 이미 몸을 섞은 여자까지 옆에 있으니 더더욱 그래서는 안 됐다.
옆자리가 비어버린 지금을 틈타야 한다고 아우로라의 등을 떠밀며 강력하게 주장한 것 역시 라나였다.
예로부터 거느리는 여자의 숫자란 곧 남자의 능력을 상징했다. 델타에게도, 그리고 라나의 주인에게도. 둘 모두에게 좋은 일이었다.
유일하게 신경써야 할 사항이라면 남자가 여럿을 감당할 수 있느냐인데, 라나는 그 점에 대해선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어차피 델타는 그럴 능력이 충분히 되는 남자였기에.
‘주제넘는 행동일 수도 있지만…….’
여차하면 모든 책임을 라나 자신이 지면 된다. 실제로 아우로라를 부추겨 움직이도록 만들기도 했으니 딱히 없는 죄를 뒤집어 쓰는 행동도 아니고 말이다.
그리고 뭐, 정 안 된다면 차선책으로 불륜이라는 방법도 있으니까.
주인이 들었다가는 제정신이냐고 기겁할만 한 발상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면서, 라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호통을 쳤다.
“더 꼼꼼히 살펴!”
그 주인에 그 메이드였다.
“오랜만에 재밌었네. 그렇지?”
“……아마도요?”
나는 아우로라와 도시 중앙의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옷만 주구장창 둘러봤을 뿐인데 뭐가 재밌었다는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재밌었다고 하니 그걸로 된 거겠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도 않고.
아우로라가 데리고 간 옷가게의 시설은 무슨 현대식 백화점과 맞먹을 정도로 좋았다. 중세 시대에 현대식 백화점이 존재할 리 없으니, 아마 모드의 영향일 것이다.
“뭐야, 반응이 왜 그래? 나만 좋았어?”
“이제는 아예 정체를 숨길 생각도 없으신 것 같습니다, 영주님?”
아우로라는 지금 얼굴을 고스란히 드러내놓았다. 중간부터 옷 입는데 방해된다고 슬쩍 모자를 벗더니, 나중에는 아예 마스크까지 벗어던진 이후로 계속 저 모습이었다.
“괜찮아. 어차피 여기 사람들은 내 얼굴 잘 모르거든. 자기들 영주를 직접 볼 일이 얼마나 된다고? 저택에 틀어박혀서 거의 나오지도 않는데. 혹시 할 말이 있더라도 밑에 애들이 먼저 처리할거고. 델타 네가 특수한 경우인거지.”
“그러면 처음부터 변장이 의미 없던 것 아니었습니까?”
“걔들도 눈은 있잖아. 화려한 드레스 입은 걸 보면 누군지는 몰라도 높으신 분이구나 할 걸?”
‘화려한 드레스?’
내가 보기에는 신도시 미시룩인데.
잠시 고민하다가, 게임에서 아우로라가 입던 옷을 생각하고 간신히 납득했다. 그 제복이라면 충분히 화려하다고 불릴 만 했다.
“델타 너라면ㅡ”
그 순간, 아우로라가 입을 닫았다.
무언가 심상치 않은 기색이었다. 허벅지에 올려놓은 손이 파들파들 떨리고, 겁을 잔뜩 집어먹은 황금빛 동공이 불안하게 주위를 훑었다.
“왜 그러시죠? 안색이 좋지 않은데, 괜찮으십니까, 영주님?”
“뭐, 뭔가. 뭔가 이상해…….”
“이상하다니. 어떤 점이요?”
“그, 그게…….”
“영주님?”
치아끼리 딱딱 마주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정도로 몸을 떨어대고 있는 것이다. 자리에서 다급히 몸을 일으킨 나는 아우로라의 옆으로 다가갔다.
옆에 앉자, 아우로라가 반사적으로 내 손을 붙잡았다. 나도 손을 마주 잡아주었다. 손을 쥐는 힘이 어마어마했다. 손가락이 새하얗게 변하기까지 했다.
‘갑자기 왜 이러시지?’
나는 옆으로 픽 쓰러지려는 아우로라의 어깨를 조심스레 끌어안았다. 본능적인 행동인지, 꾸물거리며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절대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저택으로 돌아가야 한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몰라도, 최소한 여기에 덩그러니 있는 것보단 훨씬 더 나을 것이다.
아우로라는 다리가 풀렸는지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했다. 몇 번을 휘청거리며 주저앉은 다음에야 간신히 일어설 수 있었다. 몸을 지탱한 두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댔다.
“영주님. 걸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모, 몰라. 모르겠어. 이상해. 많이…….”
“네. 척 보기에도 그래 보이시네요. 일단 저택으로 돌아가죠.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조금이라도 몸이 떨어지는 그 즉시 땅에 쓰러져버릴 듯 했기에, 나는 아우로라의 겨드랑이 밑에 조심스럽게 팔을 둘러 몸을 지탱했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아무도 없나?’
나는 그제서야 주위가 이상하리만치 조용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사방을 살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여기저기 돌아다녔었는데, 지금은 텅 비어 있었다.
이 드넓은 거리에 단 한 명의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소름이 오싹 끼쳐올 만큼 비현실적인 광경이었다. 브닼 4에 이런 이벤트가 있었던가?
“영주님. 잠시 실례하겠ㅡ”
“아, 안녕하세요. 잠시 대화 괜찮으세요?”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돌리며 아우로라를 지탱하고 남은 한 손을 날개 잃은 악몽으로 가져갔다.
길 저 편에서 웬 여자 한 명이 얼굴에 음침한 미소를 띄운 채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보라색과 초록색이 반씩 섞인 머리카락에, 엄청나게 커다란 가슴을 지닌 여자였다.
아우로라를 데리고 싸울 순 없으니, 여차 하면 도망칠 생각으로 옆구리를 돌아보았다. 아우로라는 내 허리를 으스러져라 끌어안고선 몸을 심각하리만치 벌벌 떨어대고 있었다.
“영주님.”
“…….”
“영주님. 정신 차리세요.”
“…….”
“아우로라.”
나는 아우로라의 이름을 부름과 동시에 품 안으로 확 끌어당겼다. 마음 같아서는 등 뒤에 숨기고 싶었다. 하지만 여차 하는 순간 안고 뛰어야 할테니, 그 예비 동작이었다.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자 정신이 조금 돌아온 듯, 아우로라가 잔뜩 겁에 질린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데, 델타…… 나. 모, 몸이…… 이상해…… 다리가 안 움직여…….”
“압니다. 진정하세요.”
머리가 조금 냉정해졌다. 이것과 비슷한 모습을 게임에서 본 적이 있었다. 100% 확신하는 건 아니고, 대략 90% 쯤.
브닼 4의 상태 이상은 빙결, 출혈, 전뇌, 혼란, 중독, 화상으로 총 6가지가 있지만, 그 6개에 속하지 않는 특수한 상태 이상이 두 개가 더 존재했다.
바로 매혹과 공포였다.
저것이 다른 종류로 취급되는 이유는, 적이나 플레이어가 아니라 오로지 공격 능력이 없는 NPC에게만 통하기 때문이었다. 게임 시스템상으로도 완전히 다른 카테고리로 분류됐고.
플레이어를 먼저 공격하지도 않고, 공격해도 반격하는 게 아니라 도망을 치는 NPC에게만 통하는 상태 이상이 바로 매혹과 공포였다.
‘사실상 스토리 진행을 위한 일회용 설정에 가깝지.’
플레이어가 정상적으로 걸 수 있는 방법이 없는데다, 사용할 수 있는 적 역시 손에 꼽을만큼 적고, 해당 스토리를 끝낸 이후에는 다신 등장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특정 스토리를 위한 일회용 설정에 가까웠다.
그리고, 해당 스토리가 진행되고 있을 때 NPC들이 보여줬던 반응이 지금의 아우로라가 보여주는 반응과 상당히 비슷했다.
‘…….’
만약 저 여자가 지금 상황의 원인이라면,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은 많아봐야 셋 정도였다. 나는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지금 상황에 나를 찾아올만한, 그것도 공포를 거는 NPC가 있던가?
아우로라는 계속해서 내 품 안으로 파고들어왔다. 그 모습을 본 여자가 괴상한 웃음을 흘렸다.
“키힛. 저기, 있잖아. 그 여자는 그냥 놔주면 안 될까? 나 진짜로 아무것도 안 할게. 약속. 우리 둘이서만 대화하자. 둘이서만. 분명 즐거울거야. 응. 그럴거야.”
‘반말?’
방금 전까지만 해도 존댓말을 쓰지 않았었나.
“그건 안 되겠는데. 여기서 손 놓으면 바로 쓰러지실 것 같거든.”
나는 단칼에 거절했다. 여자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가, 고개를 푹 숙이며 무언가를 중얼거려댔다.
“안 놓으시겠다는데, 어떡해?”
“강제로 떼어내자.”
“안돼! 그러다 미움받을수도 있잖아!”
“여기까지 와서 착한 척이야? 사람들은 너 때문에 다 도망갔는데?”
“나 때문이라고? 너는? 혼자서 착한척이라도 하게?”
목소리가 점점 격해졌기에, 나 역시 대화의 내용을 어느정도 엿듣는 게 가능했다. 여자는 각각 다른 목소리를 내면서까지 자기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브닼 4에 저런 정신병을 가진 NPC는 없었던 것 같은데.
한동안 자기 자신과 격렬한 말싸움을 이어가던 여자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간절한 눈빛으로 날 쳐다보았다.
“저기, 나 알죠? 나 몰라요?”
말투가 또 바뀌어 있었다. 존댓말에서 반말로. 그리고 다시 존댓말로.
“전혀 모르겠는데.”
브닼 4에 이중 인격을 지닌 NPC나 인간형 보스는 없었고, 모드로 외형이 변경되었을테니 겉모습을 보고 추측하는 것 역시 불가능했다.
나는 아우로라에게 닿지 않도록 조심하며 날개 잃은 악몽을 살짝 빼들었다.
“흐. 진짜 모르나 보네. 그러면 이런 설명은 어때?”
눈앞의 여자가 작게 웃었다.
이번에는 반말.
“너한테 저주를 건 마녀.”
여자가 손가락으로 자기 머리를 톡톡 건드렸다.
“그게 나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