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147)
r 147 – 마녀 닉스
그 말이 뇌리에 박힌 순간, 몸에 힘이 풀려버린 나머지 아우로라를 놓칠 뻔 했다. 반사적으로 팔에 힘을 준 덕분에 참사가 일어나는 일은 면했지만, 받은 충격은 그대로였다.
여자가 키득키득 웃었다.
“이제 나랑 말할 마음이 들었어?”
“그 여자는 내려놓고, 저랑 단둘이 대화 좀 해요. 아무 짓도 안 한다고 약속할게요. 진짜로요.”
“여기서 죽은 사람도 없어. 그냥 다 겁에 질려서 도망간거야. 나 진짜 별거 안하고 그냥 걸어다니기만 했는데, 그러니까 내 말대로 해주면 안될까? 헤헤, 나 착하게 있었잖아.”
“같이 가주실거죠? 네? 그렇죠?”
한동안 정신없이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가며 대화를 시도하던 여자가, 벌컥 성을 냈다.
“히, 히히. 닉스, 많이 건방져졌네?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내가 말 걸고 있는 거 안 보여?”
“그러는 닉스 너도 마찬가지잖아. 내가 대화하겠다는데 왜 계속 뛰쳐나오는거야!”
“그래. 내가 대화하겠다는데 왜 계속 뛰쳐나와? 먼저 기회를 잡아준 것도 나고, 여기에 먼저 오자고 한 것도 나고, 저런 반응 이끌어낸 것도 난데. 네가 뭘 했다고? 내가 떠먹여주는 걸 받아먹은 것 말고 한 게 있어?”
그러더니 갑자기 서로 싸우기 시작했다. 목소리는 크게 바뀌지 않았지만, 말투와 표정이 마치 다른 사람처럼 휙휙 바뀌며 자기 자신과 논쟁을 벌여대고 있었다.
‘이중인격인가?’
자기 자신과 말다툼을 벌인다는 진귀한 광경을 보자, 가출했던 정신이 어느정도 되돌아왔다. 굳었던 머리가 조금씩 회전하는 느낌이었다.
저 여자가 정말로 내가 아는, 주인공에게 저주를 걸어 ‘버려진 자’로 만들어버린 마녀가 맞다 한들 게임에서 골랐던 선택지나 대화가 제대로 통할지 의문이 들었다.
성격이 달라져도 너무 달라졌기 때문이었다.
주인공에게 저주를 걸었던 마녀는 굉장히 오만한 성격이었다. 대화라는 걸 성립이라도 시키려면 무조건적으로 오냐오냐 해주며 마녀를 떠받들어 모시는 선택지만 골라야 했다.
본인의 마법 실력 역시 최상위권에 속하고, 평범한 사람들은 근처로 다가서기만 해도 공포에 질려 냅다 도망가버리는 모습을 지겹도록 보아왔으니 성격이 꼬이는 것도 당연한 결과였다.
내가 세상의 중심이고, 그러니 내 결정은 무조건 옳다는 오만함을 도저히 못 견뎌서 대화를 하는 와중에 냅다 선빵을 갈겨버리는 유저도 상당히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성격이 완전히 역변했을 뿐만 아니라 이중인격이라는 괴상한 설정이 추가됐고, 주인공을 길 가는 벌레 보듯이 취급하는 것도 아니었다.
일단, 게임에서처럼 보는 사람의 혈압을 절로 끓어오르게 할 만큼 괴상한 성격과는 거리가 멀단 건 확실했다.
‘적당히 말로 설득하면 따라주지 않을까 싶은데.’
물론 지금 당장 저 여자를 믿고 싶지는 않았다. 저런 모습을 보여준다고 그걸 곧이 곧대로 받아들일 리가 있나. 적어도 감시 배치하고 바짝 긴장한 상태에서 대화 정도는 나눠봐야 한다.
최대한 이성을 되찾으려 노력했다. 묻고 싶은 것이 산더미였지만, 이 상태로 대화를 나눌 순 없었다. 아우로라를 챙기는 것이 우선이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 호기심을 억누르려 노력했다. 그리고, 간신히 질문 공세를 대신해 다른 말이 나올 수 있을 때 쯤에야 입을 열었다.
“잠깐. 내가 말 좀 하자. 이름이 닉스라고 했던가?”
“키히힛, 그래요. 맞아. 닉스야. 드디어 저랑 대화할 마음이 든 거야?”
이러는 와중에도 주도권 싸움을 계속해서 진행중인 건지, 이젠 한 문장 안에서조차 반말과 존댓말이 쉴 새 없이 바뀌고 있었다. 듣는 내가 다 정신이 없었다.
“정 안되겠으면 내가 정해줄게. 반말 쓰는 쪽이 먼저 나와.”
그 말에 닉스는 억장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가, 곧바로 음흉하고 음침한 미소를 띄워올리며 히죽히죽 웃었다. 인격 교체가 끝난 모양이었다.
“헤, 헤헤. 역시 내가 더 좋지? 그런 거지? 나, 앞으로도 쭉 내가 나올까? 응? 그럴까?”
“누가 더 좋아서라거나 그런 건 절대 아닌데. 반말 쓰는 쪽이 먼저 자기소개를 했으니까 먼저 나오라고 한 거지. 그 이상의 의미는 없어.”
나는 선을 그었다. 저 여자가 만약 정말로 이중인격이라거나 혹은 그와 비슷한 성격이 맞다면, 괜히 둘 중 한 쪽의 원한을 살 필요는 없었다.
누구 한 명을 편애해서 먼저 나오라고 한 것이 아니라, 어느 특정한 기준에 따라 행동한거라는 사실을 명확히 밝혀놓아야 했다.
이런 내 말은 조금도 신경쓰지 않은 채 마냥 좋은 듯이 음침한 웃음을 흘려대는 닉스를 내버려두고,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어 상체를 숙인 다음 아우로라를 조심스레 업었다.
아우로라는 내게 업히자마자 목에 팔을 감아왔다. 얼굴이 내 왼쪽 어깨 위에 살포시 올려졌다. 머리카락이 옅은 꽃향기를 풍겼다.
허벅지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아 말캉말캉했다. 복장이 복장인지라 균열이 등에 그대로 맞닿고 있을테지만, 꽤 두꺼운 제복 덕분에 얼굴을 붉힐 일은 없을 것 같으니 다행이었다.
날개뼈 근처에 비벼지는 브래지어의 딱딱한 감촉을 애써 무시하며 입을 열었다.
“지금 사람들 도망간 거, 공포 때문이지?”
“응. 히히.”
나는 닉스의 정체를 다시 한 번 확신했다. 자기 입으로 주인공에게 저주를 건 마녀라며 털어놓았고, 공포 때문이라는 확답도 받았으니 아닐 수가 없었다.
“좋아. 그러면 여기 말고 다른 곳에서 기다려. 먼저 해야 할 일부터 처리하고 갈 테니까.”
“따라가면 안 돼?”
“안 돼.”
“왜? 그래야 할 이유라도 있어? 나 얌전히 있을게. 약속.”
“네 말대로 이곳 사람들이 불안해하니까. 싫으면 존댓말 쓰는 쪽에 주도권 넘기든지.”
“…….”
주도권을 넘겨주기는 싫었는지, 한층 더 음침한 미소를 띄운 닉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간단한 동작만으로도 가슴이 출렁출렁 흔들려댔다.
“역시 날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잘 알고 있네. 어디로 가 있으면 돼?”
“지금 이 길을 따라서 쭉 걷다 보면 큰 성이 하나 보일거야. 도시에 성은 그것밖에 없으니 헷갈리지도 않을거고. 그 안에 들어가 있어.”
닉스의 특징을 생각해본다면 기사들 사이에 끼워놓는 게 최선이었다.
공포는 오로지 공격 능력이 없는 평범한 NPC를 상대로만 통하는 상태 이상이니까. 비선공이지만 공격 능력을 갖추고 있는 기사들 사이에 끼어 있다면 공포가 발동될 일도 없을거다.
“히히. 나 거기 갔다 왔는데. 또 가?”
“……뭐? 언제?”
“먼저 그 성에 찾으러 갔었는데. 그런데 없대. 외출했대. 그래서 여기로 온 거야.”
‘그건 또 어떻게 안 거지?’
내가 어디 사는지를 저 여자가 알아낼 방법이 있었던가.
“한번 본 얼굴이면 더 괜찮네. 거기서 사고 일으키고 온 건 아니지?”
키도 작고, 가슴만 크고, 음침해보이는 인상이라 무해한 것처럼 보여도, 눈앞의 여자는 엄연히 브닼 4의 선택형 보스들 중 하나였다.
중간 보스의 포지션인 부기사단장들과, 황궁 필드에서 대거 등장하는 잡몹 포지션인 일반 단원들로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기는 게 불가능할 것이다.
“안 그랬어. 그러면 미움받잖아.”
다행히 내가 우려하던 사태는 일어나지 않은 듯 했다.
“그러면 됐네. 나는 들러야 할 곳이 있으니까 먼저 성으로 들어가 있어. 혹시 안 들여보내주면 기사단장 명령이라고 해.”
“헤, 내가 말하는 것보다는 직접 명령하는 게 더 나을 텐데.”
“그 명령을 내리려면 성으로 돌아가야 된다고. 말했잖아. 나는 먼저 들러야 할 곳이ㅡ”
“하지만, 여기로 오는걸.”
누가, 라고 묻기도 전에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황금빛 갑옷들의 모습이 포착됐다. 그 숫자가 상당했다. 아무리 못해도 스물은 넘어보였다.
아직 정복만 정하고 갑옷의 외형을 정하진 않았기에, 금빛 황혼 기사단 시절의 갑옷을 꺼내든 모양이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더 화려하게 치장된 갑옷의 숫자를 살폈다.
‘3명.’
부기사단장급이 셋. 그렇다면 이곳에 온 총 인원은 33명이었다.
가용 병력의 절반 이상을 데려왔으니 사실상 나를 대신해 기사단을 지휘하던 라크시아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단장님! 무사하십니까!”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렸다. 라크시아였다. 닉스는 뒤로 돌아볼 가치조차 없다는 듯, 나를 향해 괴상한 웃음을 흘리며 음침하기 짝이 없는 미소를 지어보일 뿐이었다.
이쪽으로 다가오던 기사들이 내 등에 업힌 아우로라를 본 즉시 닉스에게 무기를 겨누었다. 나는 눈짓으로 그걸 말렸다. 괜한 시비는 피해야 했다.
혹시라도 게임에서의 그 지랄맞은 성격이 저 포동포동한 몸 어딘가에 남아있을지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최악의 경우에는 여기서 보스전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된다 해도 이기는 것 자체야 가능하겠다만, 여기 있는 사람은 나 빼고 다 죽을거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은 다른 사람을 지키면서 싸우는 일에는 전혀 쓸모가 없으니까 말이다.
내 의도를 알아차린 라크시아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되물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괜찮을거야. 아직은. 앞으로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계속 괜찮을지도 모르고. 여긴 어떻게 왔어?”
“성에 시민들이 몰려와서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길을 걸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극심한 두려움이 느껴져서 도망쳐왔다고요. 그 뒤로도 수십 명의 사람들이 성으로 몰려왔고, 사태가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기에 급히 여기로 찾아온겁니다. 나머지 스물 두 명은 성으로 도망쳐 온 사람들을 진정시키고 있습니다.”
“잘 했어. 좋은 판단이었네.”
“해야 할 일을 한 것 뿐입니다.”
라크시아는 간단히 고개를 숙이는 걸로 내 칭찬에 답했다.
“라크시아, 너는 부하 몇 명 뽑아서 걔들이랑 같이 저 여자를 성으로 데려가. 나머지는 도시 돌면서 사람들 안심시키고. 죽은 사람은 없다니까 아마 금방 진정할 수 있을거야. 일 끝나도 바로 복귀하지 말고, 조금 더 도시 순찰하다가 돌아와.”
“알겠습니다. 저 여자는 지하에 가두면 되겠습니까?”
“아니. 일단 내 방으로 데려놔 줘. 대화를 좀 해봐야겠어.”
“……예.”
고개를 끄덕이긴 했어도 여전히 믿음이 가는 건 아닌지, 라크시아는 목소리에서부터 강한 불신을 드러내고 있었다.
키히힛, 하는 이상한 웃음을 흘린 닉스가 몸을 돌려 라크시아와 마주보았다. 라크시아는 반사적으로 몸을 움찔 하며 칼자루를 쥐었다.
“너희 성에서 나 봤잖아. 나 그때 아무것도 안 했는데. 지금도 아무것도 안 했어. 봐.”
“시끄럽다. 지금 이 모습을 보고도 아무것도 안 저질렀다고?”
“흐, 나도 제어가 안 돼서 어쩔 수 없는데.”
“그렇다면 네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알면서도 이 도시에 들어왔다는 뜻이냐?”
“둘 다 조용.”
분위기가 더 험악해질세라 냅다 말을 끊었다. 닉스는 얌전히 손바닥으로 자기 입을 막았고, 라크시아도 칼자루를 쥔 손에서 힘을 풀었다.
나는 라크시아를 손짓으로 불러, 그 귀에 조곤조곤 속삭였다.
“나도 그 점은 불쾌하게 생각하지만, 지금 당장은 어쩔 수 없으니 참아. 여기서 싸웠다간 이겨도 이긴 게 아니게 될테니까.”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저 여자, 흑마법사거든? 절대로 긴장 풀지 마. 방에 들여보낸 이후에도 감시 확실히 붙여두고. 최소 다섯 명 이상은 필요해.”
“어쩐지. 마녀였군요. 그러겠습니다.”
라크시아는 알아들었다는 얼굴로 자기 휘하 단원들을 전부 데리고 닉스를 둘러쌌다.
닉스는 열한 명이나 되는 기사들에게 호위 겸 감시를 받고 있음에도 태평하게 손을 흔들며 점차 멀어져갔다. 남은 기사들이 도시 곳곳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나도 아우로라의 저택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아우로라는 내 등에 업힌 채로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외출이 이런 식으로 끝나버렸으니 상심도 무척 크겠지.
“괜찮으십니까, 영주님?”
“…….”
아우로라는 대답 대신 내 목을 끌어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두려움이 사라지자 힘이 조금씩 돌아오는 모양이었다.
“죄송합니다. 일이 이렇게 돼서.”
“……델타 네가 왜 죄송해. 너 때문도 아닌데.”
내가 짤막하게 사과를 건네자, 내 사과마저 그냥 넘길 순 없었는지 아우로라가 슬며시 입을 열었다.
“아마 제가 원인 맞을걸요? 저 보려고 찾아온 모양인데, 제 인기가 너무 많아서 그런거니 저 때문인 거 맞죠.”
가볍게 농담을 던졌다. 아우로라는 내 어깨에 머리를 파묻으며 살짝 웃었다.
“그 말 듣고보니 맞는 것 같네. 영주로서 처벌을 내려야 하나?”
“최대한 가벼운 쪽으로 부탁드립니다.”
“생각은 해볼게.”
아우로라는 피식 웃으며 내게 달라붙었고, 나는 아우로라가 하반신에 아무것도 입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리지 않으려 노력해야 했다. 손바닥에 느껴지는 말랑말랑한 감촉은 덤이었다.
그렇게 아우로라의 저택 앞에 도착했을 무렵, 이상함을 느낀 내가 발을 멈췄다.
“……?”
저택의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영지와 저택을 구분하는 거대한 철문부터, 저택 안으로 향하는 정문까지 말이다. 마치 누군가를 일부러 들어오게 만들기라도 하려는 듯이.
그리고, 항상 저택 앞에 서 있던 기사들도 보이지 않았다. 주위를 이리저리 둘러보아도, 정원 한 구석에 있는 기사들의 숙소 역시 문이 단단히 닫혀 있었다.
나는 몸에 바짝 긴장을 불어넣고 정원 안으로 발을 내딛었다.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내가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정원의 풀숲 안에서 누군가 튀어나왔다. 나는 그 생각지도 못한 등장을 보고 화들짝 놀라선 뒤로 한 발짝 물러났다.
“외출은 즐거우셨습니까, 주인님?”
풀숲 안에서 튀어나온 사람은, 터무니없는 등장과 전혀 맞지 않는 태연한 표정으로 머리와 몸에 붙은 풀잎을 툭툭 털어대고 있는 라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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