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149)
r 149 – 두 개의 인격
“…….”
눈앞의 여자가 지금 알몸으로 이불 안에 누워있다는 고백을 해왔음에도, 나는 무척이나 태연하게 침대로 걸어갔다.
설마 내가 이런 무뚝뚝한 반응을 보이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 닉스는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려댔다.
“어…… 그 정도로 흥분했어? 여기서 바로 하려고?”
쓸데없는 말은 무시하고, 닉스가 돌돌 만 채로 끌어당기고 있는 이불의 끝자락을 찾아 그걸 양손으로 단단히 쥐었다. 꼼지락거리며 이불을 뺏기지 않으려 저항하는 감각이 느껴졌다.
나는 대비할 틈을 주지 않았다. 밥상을 뒤집어 엎듯이 이불을 위로 확 젖혀버렸다.
“흐히.”
내 예상대로였다.
닉스는 옷을 제대로 입고 있었다.
‘아니지. ‘제대로’라기엔 살짝 애매한가?’
가린 부위보다 드러낸 부위가 더 많은 옷이다. 제대로, 라는 수식어를 붙이긴 조금 애매했다.
브래지어는 했을 리가 없고, 바지의 구조상 팬티도 입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니까. 아니면 차마 속옷이라고 부르기 힘든 종류의 무언가를 걸쳤든지.
“들켰네.”
닉스는 흠칫흠칫 웃으며 상체를 일으켰다. 몸을 일으켜 똑바로 앉는다는 간단한 동작만을 했을 뿐인데, 그 반동으로 어마어마한 크기의 가슴이 한껏 출렁였다.
정상적인 성적 가치관을 가진 남자라면 시선이 안 끌릴 수가 없는 모습이었다. 이 세계 남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몰라도 말이다.
“그래, 들켰지. 금방 들킬 거짓말은 왜 한건데?”
“우리 둘 다 손해볼 게 없으니까.”
또다시 음침한 웃음이 되돌아왔다.
대화는 아직 제대로 시작도 하지 못했건만,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오는 느낌이었다. 나는 이마를 누르며 책상 앞에 놓인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닉스도 침대의 가장자리에 오금을 붙이며, 날 바라보는 방향으로 바닥에 발을 딛었다. 자연스레 우리들이 서로 마주보는 자세가 되었다.
이런 모습으로 마주보고 나서야, 닉스의 외모를 제대로 관찰할 수 있었다.
머리카락은 보라색과 초록색이 반씩 섞여 정신이 없어 보이는 것으로도 모자라, 푸석푸석한데다 산발이기까지 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정리가 전혀 되지 않았다는 느낌이었다.
노화조차도 거의 적용되지 않는 존재가 이 세계의 여자들이니, 저 푸석푸석하고 산발로 뻗친 머리는 아마 모드의 산물일 것이다. 모델링 자체가 저렇게 되어 있던거겠지.
푸석푸석한 앞머리 밑으로 자리잡은 검은색 눈동자는 마치 무저갱처럼 어두웠고, 초점이 맞지 않는 동공은 이리저리 휙휙 움직여대다가 나를 빤히 응시하기를 반복했다.
오밀조밀하게 모여든 입술 사이로는 음흉함과 음침함을 동시에 느껴지도록 만드는 이상한 웃음소리가 계속해서 새어나왔다. 라크시아가 떠올리는 것만으로 혈압을 뻗칠 만 했다.
얼굴에서 조금 아래로 내려간 곳엔, 사람의 시선을 강제로 잡아끄는 힘을 가진 무지막지한 거유가 자리잡고 있었다.
얼핏 보기에도 리제나 교황과도 맞먹을 만큼 거대했는데, 닉스의 키가 여자 치고도 조금 작은 편에 속하는 리제보다 훨씬 더 작다보니 상대적으로 더 커다래 보이는 감이 있었다.
리제나 교황의 가슴이 말랑거리는 쪽에 가깝다면, 닉스의 것은 분명 모양이 무너지지도 않았고 전혀 처지지조차 않았음에도 줄줄 흘러내릴 것처럼 부드럽게 느껴지는 쪽이었다.
게다가 그런 터무니 없이 커다란 크기의 거유를 감싼 옷은, 극도로 작은 와이셔츠였다.
상의는 마치 와이셔츠를 밑가슴 근처에서 칼로 잘라낸 것처럼 생겼고, 상반신을 모두 덮기엔 길이가 한참 짧았다. 와이셔츠의 끝자락은 밑가슴 사이에서 묶였다.
그 압도적인 윗가슴과 가슴골은 거의 드러나다시피 했다. 가슴을 가리기 위해 입은 것이 아니라, 가슴을 강조하기 위해 입었다는 느낌이 들 만큼 심한 차림이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가슴 끝의 핑크빛 첨단이 보일까 걱정해야 하는 수준은 진작 뛰어넘었다. 역으로 유두가 저 얇디 얇은 천조각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지탱해주고 있는건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아낌없이 드러난 복부에는, 말캉말캉하지만 절대로 과하지 않고 딱 보기 좋은 정도로 붙은 살집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나마 하의는 평범한 청바지처럼 생긴 숏팬츠가 될 수 있었다.
양쪽이 모두 파여있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가뜩이나 치골에 아슬아슬하게 걸릴만큼 짧은 길이인데, 정중앙의 지퍼 라인과 허리의 벨트 라인, 바지 끝자락의 일부만을 남기고는 모조리 뜯겨나가 있어서 노출도가 무지막지하게 높았다.
그 탓에 허벅지와 골반을 구분짓는 Y존의 맨살은 물론 음부로 이어지는 자리까지 훤히 보였다. 음부를 가린 지퍼의 너비는 교황들이 입은 성복의 가리개와 거의 비슷했다.
심지어 그 와중에 청바지의 버클을 또 반쯤 풀어놔서, 가뜩이나 아슬아슬한 옷차림이 아래로 흘러내리다시피 하기 직전이었다.
‘어떻게 되먹은 세계야?’
분명 아이리스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설마 이것보다 더 한 복장이 있겠어?’라는 생각을 계속 했었던 거 같은데. 어떻게 되먹은 세계인지 예상이 죄다 빗나갔다.
흰 민소매와 돌핀팬츠, 아우로라의 신도시 미시룩, 스텔라의 수녀복, 셀레네의 전신 반투명 타이즈, 교황들의 성복, 미네르바의 목욕 가운, 금빛 황혼 기사단의 스포츠 브라와 레깅스, 칠흑 성야 기사단의 바니걸과 역바니.
하나같이 처음 본다면 입이 떡 벌어질 조합들이었다.
‘그나마 카이킬리아가 정상적인가?’
제복 치마가 엉덩이 밑부분의 살을 그대로 드러낼만큼 짧긴 해도, 나름 제복이라는 구색을 갖추긴 했었으니까.
“호, 혹시 내 몸에 관심, 있는거야? 나 진짜로 벗을까?”
내 시선이 너무 오래 머물렀던건지, 닉스가 말을 더듬으며 자기 숏팬츠의 지퍼에 손을 가져갔다. 그대로 뒀다간 정말로 있는 옷마저 벗어던질 기세였기에, 나는 닉스를 말렸다.
“아니, 됐어. 그러려고 여기 온 거 아니니까.”
“흐, 나 분명 맛있을텐데.”
“그런 말은 또 어디서 배운거냐?”
“도, 독학했어.”
닉스는 그러면서도 힐끔거리며 내 눈치를 살펴댔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떠오르는 게 있었다.
‘딱 그거네.’
왜, 흔히 음침 거유 찐따녀라고 불리는 캐릭터 컨셉이 있지 않은가.
머리카락이 초록색과 보라색이 섞인 탓에 제법 화려하고, 옷차림이 펑퍼짐한 게 아니라 몸매를 고스란히 드러낸다는 것만 제외하면 딱 그런 캐릭터를 생각나도록 하는 외형이었다.
흑마법 쓰면서 공방에서 안 나오는 마녀라고 저런 컨셉으로 모델링을 한 듯 했다.
쓸데없는 대화는 제쳐두고, 이제는 본론으로 들어가야 했다. 나는 양쪽 허벅지 위에 팔꿈치를 하나씩 올리고, 허리를 살짝 숙여 손등으로 턱을 괸 채 질문했다.
“물어보고 싶은 건 많지만…… 제일 먼저 질문할 건 이거야.”
이런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된 시점에서부터, 내가 선택할 것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나는 닉스와 눈을 마주쳤다.
“내 머리에 걸었다는 마법, 정체가 뭐야? 나한테 그런 짓을 한 이유는 또 뭐고?”
“히힛. 그러니까, 어떤 마법?”
“둘 다. 뭘 말하는지 모르겠다는 소리는 안 할거라고 믿을게.”
둘 중 어느 쪽이든지 궁금하긴 매한가지였다.
닉스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게임의 설정대로 마녀가 길 가는 아무나 붙잡고 저주 마법을 실험했는데 그게 나였던줄로만 알았었다. 그게 ‘버려진 자’의 배경 설정이었기도 했고.
하지만 게임 속에서 마녀로 불렸던 눈앞의 여자는, 이유를 모르겠지만 내게 상당한 호감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즉, 게임에서처럼 길 가는 아무나 붙잡고 저주를 썼을 수는 있을지언정, 그게 나라는 걸 알면서도 저주를 걸었을 이유는 없다는 뜻이다. 뭔가 속사정이 있다면 그게 뭔지부터 알아야 한다.
아니면 자기가 나를 이런 꼴로 만들어놓고선 아무렇지 않게 달라붙어오는 미친 싸이코패스던가.
“흐…… 그건 내가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닌데.”
“뭐? 그러면ㅡ”
설마 제대로 말 안하고 도망치려는 건가, 하고 반사적으로 눈살을 찌푸리며 어깨를 쥐려는 찰나, 닉스의 눈이 어리둥절한 형태로 바뀌었다.
“어, 어?”
“어?”
나와 닉스가 동시에 얼빠진 소리를 내뱉었다.
닉스는 눈을 끔뻑거리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바지를 내리기 직전인 스스로의 손과 자기를 향해 뻗어오는 내 팔을 보더니 음침함과 기쁨이 반씩 섞인 미소를 지으며 헤, 하고 웃었다.
“저, 저랑 하려는 거예요?”
“인격 바뀌자마자 뭔 헛소리야?”
그건 자기가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라고 말한 것과 동시에 존댓말을 쓰기 시작했으니, 아마 다른 쪽의 인격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나오자마자 저런 소리나 지껄여대고 있으니, 인격은 바뀌어도 성격은 안 바뀌는 모양이었다. 둘 다 하는 행동이 거기서 거기였다.
“헤헤, 아니었나요. 죄송해요.”
닉스는 머쓱하게 사과를 건넸다. 이쪽도 저 이상한 웃음은 그대로였다.
“그래서, 대답은?”
“네?”
“네? 는 무슨. 내 질문 대답 말이야. 그건 네…… 가, 그러니까, 반말 쓰는 쪽. 걔가 대답할 게 아니라면서?”
“아…… 제가 그랬었나요? 기억이 안 나서 그런데, 한 번만 더 설명해주실 수 있으세요?”
“뭔 소리야? 너네 둘이서 기억 공유 안 해?”
인격이 두 개인데 인격끼리 기억을 공유 안 한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더럽게 불편할 것 같은데.
내 얼굴에 의문이 섞여들어가는 것을 본 닉스가 허둥지둥 변명을 내뱉었다.
“그런건 아니에요. 평소에는 하는데…… 헤헤. 자의로 공유를 끊을 수 있거든요. 방금도 그랬었어요.”
“자의로 기억 공유를 끊을 수 있다고? 그러면 어느 한 쪽 인격으로만 살아갈 수도 있지 않나?”
“영원히는 불가능해요. 기억 공유를 끊은 채로 버틸 수 있는 시간은 최대 사흘 정도고, 그 이상이 경과하면 인격이 강제로 교체되니까요. 그리고 나와서 기억 공유를 끊고 있었던 시간만큼 잠들어 있어야 하고요. 저는…… 아니, 닉스는, 아니…… 우리는? 네, 우리는. 우리는 그런 걸 원하지 않으니까요.”
그런거였나.
정말 궁금한 건 다른 쪽이었기에, 적당히 납득하고 바로 넘겨버렸다.
“뭐, 그렇다면 다시 말해줘야지. 내 머리에 걸려 있는 마법에 대해서 있는 대로 털어놓으라고 질문했는데. 이러면 대답할 수 있어?”
“마법 말이죠? 둘 다요?”
“그래. 둘 다.”
“음…… 하나는 신체의 능력을 퇴화시키는 마법이고, 다른 하나는…….”
닉스가 음침히 웃었다.
“공포를 느끼지 못하도록 만들어주는 마법. 맞죠?”
“맞아. 나한테 그런 마법을 건 이유가 뭐야?”
“왜ㅡ”
ㅡ따악!
닉스가 대답을 하려는 순간, 윗니와 아랫니가 세게 부딫히는 살벌한 소리와 함께 입이 다물어졌다.
처음에는 그렇게 말해주기 싫은 건가 했지만, 어리둥절함으로 가득 들어찬 채 꿈뻑거리는 눈을 보니 결코 자의로 닫은 것이 아니었다.
뭔가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