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150)
r 150 – 검증
“그러면, 처음부터 다시 정리해보자.”
끄덕, 내 말에 닉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맞춰 가슴도 같이 흔들렸다. 나는 머릿속으로 지금까지 얻은 정보들을 취합한 뒤, 질문을 던졌다.
“첫 번째. 네가 나한테 건 마법은 두 가지야. 하나는 내 신체 능력을 퇴화시키는 마법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일정량 이상의 공포를 느끼지 못하도록 하는 동시에 항상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마법. 맞지?”
“네.”
닉스가 입을 열어 답했다. 여기까지는 대답할 수 있다. 나는 그 사실을 확인하고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두 번째. 네가 내 기억을 지웠다거나, 혹은 기억을 바꿨을 가능성은?”
“정신을 오염시키는 마법이라면 모르겠지만, 기억을 건드리거나 하는 마법은…… 헤헤.”
닉스는 말꼬리를 흐리며 우물쭈물 웃었다. 여기까지도 대답할 수 있다.
하긴, 여기에 빙의되기 전의 일을 멀쩡히 떠올리는 걸 보면 기억이 건드려지지는 않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기사단장 4명이랑 아우로라는 내가 기억을 잃어버렸다고 알고 있긴 하지만, 그거야 이런 속사정을 사실대로 털어놓을 수 없으니 대충 얼버무린 거였고. 나중에는 제대로 털어놓을 생각이다.
“세 번째. 너랑 나는 옛날에ㅡ”
“전생, 이에요.”
“……그래. 전생에. 아무튼, 내가 너랑 전생에 인연이 있었다고?”
끄덕끄덕끄덕, 닉스가 한층 밝아진 표정으로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슴 역시 아까보다 훨씬 더 세차게 흔들렸다.
‘심각하네.’
나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이중인격을 가진 걸로도 모자라, 자신과 내가 전생에 아는 사이였다며 망상증까지 앓고 있다니. 머리가 보통 심각한 게 아니었다.
저대로 놔뒀다간 또 무슨 설정이 튀어나올지 모른다. 나중에는 아예 우리가 부부 사이였다는 설정까지 막무가내로 던져댈 수도 있었다.
‘전생에 만났다는 건 대체 뭐야?’
모드의 영향으로 그런 설정을 가지게 된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닉스는 우리가 전생에 인연이 있었다는 망상을 아주 굳게 믿는 중이었다.
“그래. 일단 네 말대로 우리가 전생에 아는 사이였다고 치자.”
“……치는 거 아닌데…… 진짠데…… 그리고 아는 사이도 아니라 진짜진짜 깊은 관계였는데…….”
내가 자신의 말을 조금도 안 믿는 눈치자, 닉스는 순식간에 쭈그라들더니 내 쪽을 소심하게 흘끗거리며 검지를 가슴 앞에 맞댄 채로 꼼지락거렸다. 나는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그 ‘아는 사이’한테 마법은 왜 걸었는데?”
ㅡ따악!
윗니와 아랫니가 부딪히는 살벌한 소리와 함께, 무언가 말을 하려던 닉스의 입이 또다시 닫혔다. 보는 내 입이 다 아파올 만큼 커다란 소리였다.
“…….”
닉스가 머리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입이 열리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분명 뭔가를 알고 있는데, 그걸 알 방법이 없었다. 글로 전달해보려고 해도 아예 팔이 뻣뻣하게 굳어버려서 글을 쓰는 게 불가능해졌고.
닉스 본인조차 이랬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말했으니, 무언가 엄청난 힘이 내가 진실에 접근하는 걸 막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그 엄청난 힘이라는 게 대체 뭔지는 몰라도 말이다.
나는 의자에 몸을 기댔다. 이 마녀의 정신 상태가 내 상상 이상으로 심각하단 쓸데없는 정보만 잔뜩 알고, 정작 핵심적인 내용은 건진 게 아무것도 없었다.
내 몸에 신체의 능력을 퇴화시키는 마법이 걸렸단 사실까지는 게임과 일치하지만, 그 이후부터가 문제였다.
나한테 저런 말을 서슴없이 내뱉을 정도로 특별한 감정을 갖고 있는 닉스가, 그 특별한 사람에게 저주나 다름 없는 흑마법을 사용한 이유.
그래놓고선 병주고 약주는 것 마냥 공포를 느끼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는 흑마법도 같이 사용해준 이유. 둘 중 그 어떤 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마법의 종류도 알아냈고, 건 사람도 알아냈고, 언제 걸렸는지도 알아냈는데 정작 그 이유를 모른다니. 웃기는 일이었다.
기껏 의문 하나가 풀렸건만, 그 자리에 새로운 의문이 생겨났다. 결과적으로는 제자리 걸음이나 마찬가지였다.
“……일단 알았어.”
의자에서 일어났다. 닉스는 내가 다가오는 모습을 보고 반사적으로 몸을 움찔거리더니 안절부절 못하며 허둥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눈을 질끈 감고 나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입술이 앞으로 살짝 내밀어졌다. 나는 그걸 황당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의도가 너무 뻔해서였다.
지금 내가 어깨에 손 얹었다고, 자기랑 키스라도 할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내 표정을 확인한다면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입 맞추려는 거 아니니까 눈 떠도 돼.”
“에? 에, 헤헤헤헤…….”
닉스가 한쪽 눈을 살며시 떴다. 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봤는지,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며 한껏 쭈그러들고선 다시 손가락을 꼼지락거려댔다. 나는 속으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원본 NPC의 그 지랄맞은 성격만 아니라면 뭔들 괜찮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는데, 닉스는 내게 호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 괜찮은 경우가 존재한다는 걸 몸소 증명해보이고 있었다.
다른건 아무래도 좋으니 눈치라도 덜 살피면 좋으련만. 행동 하나하나마다 내 눈치를 살펴대니까 꼭 내가 나쁜 놈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무럭무럭 들었다.
“그래서, 날 찾아온 이유가 그냥 내 얼굴이라도 보고 싶어서였다고? 뭐 다른 거창한 게 아니라?”
“네, 헤헤…….”
나는 처음엔 그런 행동을 하면서까지 찾아왔길래 뭔가 중요한 내용이 있는 줄 알았는데, 그냥 내 얼굴 보고싶어졌다고 찾아온 거였다.
그것도 세 번씩이나.
처음에는 내가 황궁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미네르바의 공방으로 찾아갔는데, 정작 미네르바와는 또 사이가 안 좋아서 좌불안석으로 있다가 카이킬리아와 마주쳤다고 한다.
이중인격이라 목숨이 두 개라도 되는 건지, 정체를 묻는 카이킬리아의 면전에다 대고 자신과 내가 아주 깊은 관계였다고 자랑했다가 딱 죽기 직전까지만 두들겨 맞은 채로 내쫓겼고.
왜 카이킬리아가 나를 불렀을 때 전투복으로 취급되는 정장을 입고 있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는 정보였다.
닉스의 저 말이 본인의 망상이라는 걸 짐작했든 짐작하지 못했든, 자기 면전에서 나와의 관계를 자랑하는 행동을 곱게 봐주지는 않았을 테니까.
황제가 내게 보이던 관심과 그 살벌하기 짝이 없는 성격을 생각해본다면, 그런 짓을 해놓고 목숨이라도 건진 게 기적이었다.
‘처음엔 여기 사람들 배려해서 분신을 대신 보냈댔으니, 게임에서처럼 지랄맞은 NPC도 아닌 것 같고…….’
황궁에서 막 돌아온 직후에 라나가 아우로라에게 보고했던, 우리를 찾는 보라색과 초록색 머리카락의 여자가 바로 닉스였다.
대신, 직접 온 게 아니라 똑같이 생긴 분신을 보내서. 자기가 직접 오면 공포 때문에 도시는 도시대로 난리가 나고, 대답은 대답대로 못 들으리라는 걸 알았다나.
게임에서 보스전을 치를 때는 분신 같은 거 안 썼지만, 여기서는 미네르바와 아는 사이였으니 어련히 배웠겠지 하고 넘겼다.
그리고 세 번째가 이번 만남이었다.
날 만나겠다는 일념만으로 세 번씩이나 찾아왔다니 잘 대해줘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긴 했는데, 정작 그 행동의 원동력이 망상이었으니 약간 미묘한 느낌이었다.
“흐.”
눈이 마주치자 닉스가 헤벌쭉한 미소를 지었다.
이상하게 안 웃고, 옷 좀 정상적으로 입고, 이중인격이 아니고, 망상증도 없고, 머리카락 좀 다듬고, 음침한 기색만 좀 없애면 그냥 작고 귀여운 애완동물처럼 생긴 인상인데.
‘아, 그러면 다른 사람 수준인 건가?’
“저기…….”
연신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던 닉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이제, 뭐 할 거예…… 요?”
“뭐 할 거냐고?”
사실,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뭔가 알아낸 게 있다면 또 몰라, 이상한 정보만 잔뜩 알았지 정작 핵심적인 내용은 밝혀진 게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말이다.
닉스의 입에 걸린 저 금제 비스무리한 마법의 정체를 알아내는 걸 목표로 삼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저것이 대체 뭔지조차 짐작이 가질 않으니 무리였다.
그러면 달리 할 것이 있겠는가. 옛날에 하려던 걸 마저 해야지.
“하던 대로 마물 잡아야지. 왜?”
“헤헤, 그러면…….”
[능력치] [레벨] 65(+3) [체력] 1 [마나] 10 [신앙] 4(+3) [지구력] 5 [숙련] 1 [힘] 25 [마력] 10 [신성력] 10 [내구] 7나는 최종적으로 스탯을 확인하고, 그걸 확정지은 다음 능력 확인 구슬에서 손을 뗐다.
날개 잃은 악몽을 얻었으니 신앙에 어느정도 스탯을 투자해서 나쁠 건 없었다. 일식과 월식의 성능이 워낙 뛰어난 탓에, 신성 저항을 가진 적만 아니라면 언제 써도 밥값은 넘치도록 하니까.
‘이 근처에서 잡을 수 있는 보스는 다 잡았고…… 좀 더 멀리까지 나가야 하나?’
슬슬 보스를 토벌하는 걸로도 레벨링에 한계가 찾아오고 있었다. 초반 지역의 보스라고 해봤자, 중후반 지역에 들어서면 나오는 정예 적만도 못한 경험치밖에 안 주기 때문이었다.
참고로 잡몹은 먼저 덤벼드는 놈들 빼면 아예 건드리지도 않았다.
여기 주위는 초반부 지역이라 적들의 레벨 역시 전체적으로 낮은데, 이런 곳에서 잡몹을 잡아봤자 지금의 내 레벨대에선 간에 기별도 안 가는 수준이다.
그 와중에 나는 여전히 스치기만 해도 한 방이니, 가성비가 더럽게 안 맞는 짓이었다. 주변을 돌면서 보스 모가지만 싹 따고 돌아온 이유도 그래서였다.
“돌아오셨습니까, 기사단장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능력 확인 구슬이 놓인 방을 나서자, 라크시아가 나를 보며 고개를 숙였다. 타이밍을 보아하니 내가 돌아왔단 소식을 듣고 방 밖에서 기다렸던 모양이었다.
거의 사흘이 넘도록 밖을 돌아다녔던지라, 저 말대로 오랜만에 마주치는 거긴 했다.
“별 일 없었지?”
“예. 전부 경비대 선에서 정리되는 사건들 뿐이었습니다.”
“닉스는? 여전해?”
“……하루 24시간 중에 20시간은 잠으로 보내는 것 같습니다.”
닉스가 내게 한 부탁은 자기도 이곳에 머물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당연히 공짜는 절대 아니고, 필요한 사람에게 흑마법을 가르쳐 준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마녀가 여기서 같이 살겠다는 말에 부기사단장과 일반 단원들은 물론이고 아우로라까지 난색을 표했지만, 조건을 확인한 내가 다른 사람들을 설득시켜서 결국 허락을 얻어냈다.
닉스가 직접 흑마법을 가르쳐준다면, 굳이 필요한 마법서를 가지러 던전에 갈 필요가 없어지니까.
그 대신 절대로 혼자서 칠흑 성야 기사단이 거주하는 성 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조건이 붙어 있었고, 닉스는 태연하게 그 조건을 수락했다.
그리고 약속을 지켰다.
너무 과할 정도로 잘.
닉스는 성에 거주하기 시작한 첫날부터 방 안에 틀어박혔고, 결국 사흘이 지난 뒤에 우리 쪽에서 혹시 창문을 통해 도망친 건가 싶어 문을 따고 들어가야 했다.
당사자는 이불을 동그랗게 만 채로 쿨쿨 자고 있었다.
말을 들어보니 18시간쯤 자고, 4시간쯤 뒹굴거리고, 2시간쯤 마법 연구하다가 다시 잤다던가. 외형에 걸맞은 행동이었다.
“잠만 자는 거면 사고는 안 친다는 뜻이네.”
“그렇습니다. 저희 입장에서야 나쁜 일은 아니긴 합니다만…… 몸은 괜찮으십니까?”
라크시아가 내 왼팔을 흘끗거렸다.
나는 태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흑마법은 지팡이나 신성 촉매같은 매개체가 없었다. 그냥 사용자의 손을 통해 발휘되니까.
오른손으로는 검을 들어야 하니 자연스럽게 왼팔로 흑마법을 사용하게 됐는데, 그러니 내 왼팔을 걱정하는 것이다. 사용에 체력을 소모한다는 흑마법의 특성 때문이었다.
흑마법을 배운 바로 그 날에 시험해보겠답시고 내리 사흘을 밖으로 나가 있었으니 불안해 할 만도 하겠지.
“살아서 돌아온 거 보면 모르겠어?”
“알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여기, 편지입니다.”
품을 뒤적여 편지 하나를 꺼내든 라크시아가 그걸 내밀었다.
“편지? 누가 보낸 건데?”
“저도 모릅니다. 하지만 찍혀 있는 직인을 보니 신원 자체는 확실한 것이더군요.”
의문을 담아 편지를 뜯었다. 귀족 가문이 보내기라도 했는지, 온갖 미사여구로 점칠된 문장들이 편지지에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나는 그 문장들을 찬찬히 읽어나갔다.
‘……어라?’
그리고 멈칫 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메인 스토리가 진행되어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