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152)
r 152 – 들이대기
결국 출발 일정이 하루 뒤로 밀리게 됐다.
기사끼리 가는 거라면 지금 바로 출발해도 상관없지만, 아우로라가 따라붙는다면 신경 써야 할 내용이 제법 많기 때문이었다.
아우로라가 탈 마차야 우리들이 준비할 게 아니니 그렇다 치더라도, 마차의 호위는 물론 행군 속도와 일정까지 새로 짜야 하니 자연스레 할 일이 늘어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내가 해야 될 일은 아니다. 라크시아가 해야 될 일이지.
본인도 무능한 윗사람이 부지런하게 상황을 조져놓는 것 보단, 자기가 처음부터 끝까지 알아서 도맡아 하는 게 훨씬 더 낫다며 나보고 얌전히 있어달라 했고.
그 무능한 윗사람이라는 건 금빛 황혼 기사단의 기사단장을 의미하는 단어일테지만, 나도 경영이나 지휘 쪽으로는 영 문외한이었기에 뜨끔 했다.
그래도 그놈 밑에 있을 때와 비교하면 지금이 훨씬 더 낫다던가. 최소한 잘 돌아가고 있는 일을 자기 주관으로 말아먹는 일은 없다고 했으니까.
부기사단장들은 성에서 누가 원정에 포함될지 열띤 토론을 나누도록 내버려두고, 나 혼자 다시 아우로라의 저택으로 돌아갔다. 따로 이야기 할 것이 있다는 말을 들어서였다.
저택으로 들어서자, 라나가 기다렸다는 듯 저택의 꼭대기층에 있는 아우로라의 또다른 방으로 안내해주었다. 평소에 쓰던 방과 거의 비슷하게 꾸며진 장소였다.
크기는 조금 더 작지만.
아우로라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거대한 창문 바로 앞에 고풍스러운 책상과 의자를 배치해놓은 채로, 그 의자에 앉아 있었다. 검은색의 신도시 미시룩 드레스를 입은 것도 똑같았다.
내가 들어선 걸 확인한 아우로라가 들여다보던 서류를 책상 한쪽 구석으로 멀찍이 치웠다.
“따로 이야기 할 게 있다니, 뭘 말해주시려고 그러십니까?”
“일단 앉아. 서서 할 만한 이야기는 아니거든.”
“자리가 없는데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우로라가 앉아있는 고풍스러운 의자를 제외하면 엉덩이를 붙일만한 곳은 딱히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앉을 거라곤 침대인데, 책상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나도 알아. 여기 앉으면 돼.”
자리에서 일어선 아우로라가 옆의 물건을 가리켰다. 방금 전까지 본인이 앉아 있던 의자였다.
“……진심이십니까?”
“내가 이런 걸로 거짓말 할 사람처럼 보여?”
아우로라는 의자 정면 쪽 책상의 가장자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자기 발 앞에 놓인 의자를 턱짓으로 다시 한 번 가리켰다. 나는 떨떠름한 얼굴로 아우로라를 향해 다가갔다.
의자는 아직 따뜻했다.
“얼마나 거창한 대화를 나누려 하시길래 제가 여기에 앉아있는 거죠?”
“이것저것? 딱히 목적이 있어서 부른 건 아니야. 그냥 출발하기 전까지 시간이나 때우려고 부른 거지. 너도 어차피 성에 있어봤자 할 거 없잖아? 이왕 온 거, 재밌는 이야기나 좀 해봐.”
약간 위화감이 들었다. 얼핏 보기에는 제대로 말하고 있는 것 같지만, 아까부터 시선을 조금씩 피하는 게 훤히 보였다.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고 있었다.
정말 시간이나 때우려고 부른 것이 아니라, 뭔가 다른 이유가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글쎄요. 저한테 재밌는 이야기라고 해 봤자 뭐가 있겠습니까?”
“왜? 있는 거 많을 텐데. 예를 들어서…… 네가 리제랑 몸 섞었던 이야기라던가.”
쿨럭, 나는 순간 물 먹다가 사레가 들리기라도 한 것처럼 격렬하게 기침을 해댔다.
아우로라가 자기 고모를 닮아서 직설적인 성격이란 사실은 알고 있었는데, 설마 눈앞에서 대놓고 저런 단어까지 내뱉으리라곤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다.
“여기서 그 말이 왜 나옵니까?”
“난 그거 진짜로 재밌게 들었거든. 어지간한 모험 이야기보다 더 흥미진진했어. 아니지, 어떻게 보면 모험 이야기가 맞으려나? 아무도 탐험한 적 없는 곳을 처음으로 탐사한ㅡ”
“…….”
내 황당함이 가득 담긴 시선을 알아차렸는지, 아우로라는 히죽거리며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약간 나아졌다 뿐이지 시선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는 건 여전했다.
오히려 저러니까 더 위화감이 들었다. 행동 자체는 똑같은데 뭔가 있다는 듯 시선만 피하는 거라면, 정말로 뭔가 있을 확률이 높았다.
“네, 네. 알겠습니다. 알겠으니까 일찍 주무시고 다음 날에 일찍 일어나서 출발할 준비나 하시죠. 저는 이만 돌아가보겠습니다.”
“아직 4시 밖에 안 됐는데? 지금 자서 한밤중에 일어나라는 뜻이야?”
방 한쪽에 놓인 괘종시계를 흘끗 돌아보았다. 정말이었다. 아직 4시 밖에, 아니, 4시도 안 됐다. 일찍 자라는 말로 대화를 끊기에도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그래서, 안 주무시고 계속 그런 농담이나 하고 계실 겁니까?”
“농담이나 하고 있을 거냐니, 당연히 아니지.”
다행히 여기서 나를 더 곤란하게 하진 않으려는 모양이었다. 그냥 시간이나 좀 보내다가ㅡ
“이제부터 몸으로 직접 해야 하는데.”
“……네?”
입술 사이로 멍청한 되물음이 흘러나왔다.
잘못 들은건가 했지만, 아우로라의 표정을 보아하니 절대로 잘못 들은 것도 아니었다. 몸으로 직접 해야 한다고? 뭘?
‘설마.’
당황은 아주 잠시였다. 머리가 빠르게 식었다. 그래, 아우로라가 나와의 외출에 저리도 집착할 때부터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긴 했다. 그거, 사실상 단어만 바꾼 데이트이지 않은가.
예전에도 심심찮게 날 보는 시선에 무언가 감정이 담기긴 했었고 말이다. 그럴 때마다 혹시나 하면서도 리제를 신경쓰느라 대충 넘겼었는데, 터질 게 터진 건가 싶었다.
이런 내 반응이 의외였는지, 아우로라의 눈썹이 살짝 휘었다.
“생각보다 별로 안 놀라네? 아까부터 뭔가 고민중인 얼굴인데, 뭐길래?”
“……지금 떠올린 거, 그대로 말해도 됩니까?”
“말해도 돼. 나도 네가 뭐라고 말할지는 대충 예상하고 있거든.”
“영주님이 제게 그런 감정을 품고 계신다는 거,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긴 했습니다. 이전까지는 딱히 생각도 안 해봤고, 정말로 혹시나 했던 건 최근부터였지만요.”
“내가 예상한 거랑 비슷하긴 하네. 그런데 있잖아, 델타. 막상 네 입으로 직접 들으니까 진짜 황당한 기분인 거 알지?”
“부정은 하지 않겠습니다. 영주님의 마음을 짐작해놓고도 일부러 무시했다는 뜻이니까요.”
“우와, 진짜 쓰레기같은 소리네.”
표현은 험했지만, 정작 그 말을 하는 아우로라의 표정은 싱글싱글 웃고 있었다. 진심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그냥 의례상 던진 말인 듯 했다.
아니면 내가 자기 마음을 짐작하고 있었단 확답을 들은 게 그만큼 기쁜 일이거나.
“그러는 영주님은, 왜 갑자기 이렇게 적극적으로 변하신 겁니까? 며칠 전에는 가명까지 쓰시더니.”
아우로라는 정곡을 찔린 듯 잠시 움찔 하더니, 애써 표정을 가다듬었다.
“가능성을 봤거든.”
“가능성, 이요?”
아우로라는 대답을 하는 대신, 내 양쪽 어깨를 손으로 단단히 붙잡은 다음 허벅지를 타고 무릎 걸음으로 허벅지 위에 올라오기 시작했다.
리제가 날 덮쳤을 때도 이거랑 비슷한 상황이었던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침대에 누워 있었고, 지금은 의자에 앉아 있다는 점만 빼면 제법 비슷한 점이 많았다.
아우로라는 무릎을 꿇은 자세에서 다리를 좌우로 벌리고, 자신의 허벅지 사이에 내 허벅지를 끼웠다. 의자가 어마어마하게 컸던지라 이런 자세를 하고도 공간이 남았다.
자연스레, 아우로라의 음부와 내 고간이 맞닿았다. 아우로라가 허리를 안쪽으로 더 바싹 붙였다. 무릎이 내 치골 근처까지 올라왔다. 분명 일부러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아예 못 빠져나갈 건 아니긴 한데.’
성국에서 리제가 나를 덮쳤을 땐 정말로 힘이 한참 딸려서 못 빠져나갔다면, 지금은 내가 그럴 마음을 먹는 즉시 아우로라를 뿌리치고 몸을 일으켜 세울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혹은, 그러지 않았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나 역시 하반신에 서서히 반응이 오는 중이었으니까. 아우로라를 차마 매정하게 뿌리칠 수 없다는 마음이 반, 내 욕망을 못 이겨 그러지 않고 싶다는 마음이 반이었다.
어째 날이 갈수록 자기 합리화만 늘어나는 기분이었다.
“그래. 가능성. 델타 넌 처음 만났을 때부터 범상치 않은 남자였잖아? 날 보자마자 내뱉은 게 영주가 되고 싶지 않냐는 질문이었고, 그 다음에는 더러운 돼지 새끼를 죽이고 싶지 않냐고도 말했었지. 그 누가 그런 말을 할 수 있었겠어?”
“…….”
“뭐, 그때 나는 가진 거라곤 몸뚱아리 하나밖에 없는 주제에 자존심만 더럽게 세서 주제도 모르고 내가 널 어떻게 믿냐는 둥 쓰잘데기 없는 헛소리나 지껄였었는데…… 그, 진짜 혹시나 해서 묻는건데, 내가 그런 말 했다고 화난 건 아니지?”
아우로라의 얼굴이 약간 붉어졌다가, 나를 흘끗거리며 내 눈치를 살폈다. 뭘 말하는 건가 했는데, 처음 만났을 때 나한테 널 어떻게 믿냐며 악을 썼던 게 신경쓰이는 모양이었다.
정작 나는 게임에서 봤던 그대로라 별 생각 없이 넘겼었다. 그런 모습을 보인 것이 이해가 아주 안 가지도 않았고 말이다.
눈앞에 동앗줄이 내려왔는데, 그게 매달리자마자 끊어질 썩은 동앗줄인지 믿고 매달려도 될 튼튼한 동앗줄인지는 검증을 해 봐야지.
사실 그걸 말하는 태도가 조금 많이 뻔뻔하긴 했지만. 게임에서 수백 번씩 보아온 모습이 아니었더라면 화까지는 내지 않더라도 울컥 정도는 했을 거다.
내가 고개를 좌우로 젓자, 아우로라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화 안 났다니 다행이네. 결국 넌 성공했잖아? 그리고 그 돼지한테 시원하게 복수도 해냈고. 솔직히 말하면, 그때부터 감정은 품고 있었어. 근데 내가 끼어들기에는 살짝 애매해서 빙빙 돌고만 있었거든. 옆에 리제 기사단장이 먼저 자리잡고 있었으니까.”
서로의 머리가 조금씩 가까워졌다. 아우로라는 몸을 살짝 비틀어 내 왼쪽 어깨에 얼굴을 묻고, 머리를 내 뺨에 바싹 붙였다. 뺨이 어깨에 부벼지는 감각이 느껴졌다.
상체가 맞닿았다. 흉부에서 물컹한 가슴의 감촉이 전해져왔다. 어깨를 잡고 있던 손이 뒤로 돌아가더니 내 등을 꼬옥 끌어안았다.
“그런데, 들어봐. 네가 이번에 드래곤을 물리쳤댔잖아?”
“……일단은요.”
나는 약간 떨떠름한 기분으로 답했다. 그 놈 하나 때문에 착각이 대체 어디까지 이어지는지 모르겠다.
“드래곤씩이나 물리친거면, 여자 한 명 더 추가할 자격은 충분한 거 아니야? 안 그래?”
“어…… 안 그럴 것 같은데요?”
“아니. 그래야 돼. 내가 방금 정했거든.”
“그런 중요한 걸 영주님 마음대로 정해도 되는겁니까?”
나는 손을 어디에 둬야 할지 고민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아우로라를 같이 끌어안아주었다. 손바닥이 등에 닿자마자 아우로라가 몸을 움찔거렸다. 다리가 살짝 오므라들었다.
역시 속옷 따위는 입지 않은 듯, 등을 손바닥으로 천천히 쓸어주고 있음에도 걸리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부드러운 맨살의 감촉 뿐이었다.
“델타. 큰일 났어.”
“지금 이 상황보다 더 큰일인 게 있다고요?”
“네가 끌어안아서 조금 젖었는데, 이거 어떡해?”
“……방금은 못 들은 걸로 할 테니까 그냥 하려던 말이나 계속 하시죠.”
나는 아우로라를 끌어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아우로라는 그대로 한참이나 더 움찔거리다가, 간신히 마음을 진정시켰는지 드문드문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나도 기회다 싶어서 이러는 거지.”
“오로라랍시고 저랑 도시 돌아다녔던 일은요?”
“그, 건…….”
아우로라는 내 어깨에 얼굴을 묻은 채로 우물쭈물하더니,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부끄러워서 그랬어.”
“부끄럽다니, 뭐가 말입니까?”
“그, 있잖아. 원래는 황궁에 갔다가 여기 돌아온 첫날에 이러려고 했었거든? 왜, 너 저택으로 불렀을 때 밤 늦게라도 찾아오라고 한거.”
나는 애써 태연한 표정을 유지했지만, 아우로라를 끌어안은 팔에 힘이 들어가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가슴의 부드러운 감촉이 훨씬 더 강하게 느껴졌다.
어쩐지, 밤 늦게라도 꼭 찾아오라더니 이럴 목적이었나.
“그런데 막상 불러놓고 보니 부끄러워서 실패하셨다?”
“……맞아. 그리고 내가 다른 사람인 척 하면서 너랑 돌아다닌 것도, 내가 하도 이런 쪽으로만 쥐약이니까 라나가 답답해 죽으려고 하다가 혹시 다른 사람처럼 행동하면 조금 솔직해질 수 있지 않겠냐 해서 시도해본 거고.”
“그런데 그건ㅡ”
“웬 마녀가 찾아와서 실패했지.”
닉스의 방문은 진짜로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설마 그런 이상한 정신병을 가지고 있을 줄은 더 상상도 못했고.
만약 그날에 닉스가 타이밍 맞춰서 찾아오지 않았더라면 오늘이 아니라 그 때 침대로 향할 수도 있었다는 건가.
“솔직히, 지금도 부끄러워서 죽을 지경이야. 죽을 지경인데, 이번 기회 놓치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나도 진짜로 부끄러운 거 꾹 참고 이러는 거라고.”
“평소에는 그렇게 당당하신 분이 저랑 관련된 일에만 소녀스러우시다니. 의외네요.”
“너 방금 라나랑 똑같이 말했던 거 알아?”
“그랬던가요?”
내가 그 메이드장이랑 똑같은 말을 한 거라면, 라나도 어지간히 황당해 했던 듯 했다.
“지금 이러고 있는 거에 불만 있으면 말해. 안 들어줄 테니까.”
“안 들어준다고요? 들어주는 게 아니라?”
“내가 알 게 뭐야? 싫으면 밀어내. 너라면 나 같은 건 얼마든지 밀어낼 수 있잖아? 이건 내 멋대로 저지른 행동이니까, 델타 네가 그러더라도 신경 안 쓸거야.”
“정말로요?”
아우로라를 끌어안았던 손을 풀고, 양쪽 겨드랑이 밑에 손을 넣어 몸을 뒤로 밀었다. 힘 스탯을 한참 올려놨으니 사람 하나 미는 것 정도는 가뿐했다.
내게 상체만 들어올려진 모습으로 겨드랑이를 붙잡힌 채 뜬금없이 뒤로 물러선 아우로라가, 내가 정말 이럴 줄은 몰랐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정말로 신경 안 쓰십니까?”
나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겨드랑이 아랫쪽을 붙잡아 금방이라도 들어올릴 수 있을 듯한 자세를 한 채 아우로라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
그리고, 아우로라의 눈가에 눈물이 조금씩 맺혀가는 걸 보고 다시 그 몸을 끌어당긴 다음 꼬옥 안아주었다. 아우로라는 더듬더듬 내 등을 만지다가, 이번에는 목에 팔을 둘렀다.
“그것 봐요. 못 지킬 말은 하는 거 아닙니다.”
“야이씨…… 너…… 놀랬잖아…… 진짜로 그냥 가버리려는 줄 알고…….”
목소리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진짜로 심장이 철렁 했던 모양이었다.
“영주님.”
“……응.”
“저한테는 이미 리제가 있는 거 아시죠?”
“알고 있어. 다 알고 이러는 거야. 혹시 뭐라고 하면, 책임은 다 내가 질게.”
나는 아우로라의 몸을 조금 떼어내고, 손바닥을 뺨으로 감싸쥐고선 눈가에 맺힌 눈물을 엄지로 닦아주었다.
“영주님께서 책임을 지도록 만들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러면?”
“제가 노력해 봐야죠. 남자 하나가 여자 여러명이랑 결혼하는 게 아주 불가능한 것도 아니고.”
“델타 너…….”
아우로라의 눈이 동그래졌다. 전혀 예상치도 못한 말을 들었다는 듯한 얼굴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어차피 보스를 다 때려잡을 때 쯤이라면 명성과 업적 따위는 저절로 따라올 거다. 괜히 이런 상황에서까지 바깥 세상의 상식을 들먹이면서 망설이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브닼 4에 빙의된 건 어디 상식적인 일이던가.
“그리고, 이미 한 번 저질렀는데 두 번을 못 저지르겠습니까.”
그렇게 말하며 아우로라를 다시 끌어안아주자, 잠시 그 뜻을 되새긴 아우로라가 경악성을 내뱉었다.
“뭐? 잠깐. 이미 한 번 저질러? 야, 델타 너 설마 리제 말고 여자가 또 있는 거야? 아니, 진짜로? 내가 두 번째가 아니라 세 번째라고?”
“글쎄요.”
나는 능글맞게 웃었다. 아우로라는 손등으로 눈물을 쓱쓱 훔치고선, 어디 두고보자는 기색으로 허리를 쭉 폈다.
“씨이…… 그런 건 진작 말했어야지. 너 진짜 두고 봐.”
“두고 보다니, 어떡하시려고요?”
아우로라의 몸이 더 바싹 밀착했다.
“그 사람이 짜낸 것 보다 더 많이 짜낼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