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155)
r 155 – 불참
“죄송한 말씀이지만, 영주님께서 이번 여정에 합류하시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예?”
라나가 전해온 통보를 듣고, 영주를 보필하기 위한 방법을 어제 온종일 고민했다던 부기사단장과 일반 단원 여럿이 황당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저런 반응을 보인 이유는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
아우로라가 따라갈거라는 사실 자체도 뜬금없이 정해진거였는데, 급히 의견 조율해가면서 준비를 해놨더니 출발 당일날 아침에 갑자기 못 가게 됐다고 일방적인 통보를 해왔으니까.
나 같아도 어이가 없을거다.
“……일단 알겠습니다만, 그러시는 이유라도 알려주시죠. 단순한 변덕 때문이라면 조금 많이 슬플 것 같거든요.”
헬가가 손가락으로 눈두덩이를 꾹꾹 누르며 질문했다. 라나는 황당함과 어이없음이 골고루 섞여 있는 기사들의 눈빛을 덤덤히 받아넘기며 입을 열었다.
“허리가 빠지셔서 마차를 못 타시겠답니다.”
“…….”
“…….”
부기사단장과 일반 단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를 향했다. 저 말이 의미하는 바를 곧바로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당연했다. 기사단장이 어젯밤 영주의 저택에서 머물렀는데, 어째서인지 입고 갔던 옷이 아니라 다른 옷을 입고 왔을 뿐더러, 영주는 허리가 빠져서 마차를 타지 못하겠다고 한다.
그런 쪽에 아주 약간의 지식만 있더라도, 우리 두 명이 밤새 무엇을 했을지 추측하기란 식은 죽 먹기였다.
심지어 저 애들은 아우로라와 나의 관계를 오해하고 있기까지 하니 더더욱.
“진짜 하셨습니까, 기사단장님?”
흐리멍텅한 눈이 아니라 초롱초롱한 눈빛을 한 헬가의 입에서 질문이 던져졌다.
“예. 정말로 하셨습니다.”
대답을 해준 사람은 라나였다. 헬가는 라나의 대답을 듣고선 “오.” 하는 짤막한 감탄과 함께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누군가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라나의 눈이 그 방향을 향했다. 평범하게 예쁜 일반 기사단원이었다.
“그래도 마차는 타실 수 있지 않으실까요? 귀족분들이 타시는 마차라면 내부에서 몸을 누일 수도 있게 설계되어 있다고 알고 있는데요.”
그 눈에는 약간의 불신이 어려 있었다. 단순히 가기 싫다며 변덕을 부린 건데, 허리가 빠져서 마차를 못 탄다는 거짓말로 넘어가려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품은 듯 했다.
라나는 저런 질문이 나오리라고 예상을 한 건지 아주 태연하게 맞받았다.
“아니요. 불가능하십니다. 이유는 굳이 제가 아니더라도 기사분들의 단장님께서 더 잘 알고 계실테죠. 저 분께서 원인을 제공하셨으니까요.”
대답을 들은 기사는 잠시 멈칫 했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잠시만요. 얼마나 격렬했길래……?”
“어제 오후부터 오늘 아침까지 같은 침대에 계셨다고 한다면 납득해주시겠습니까?”
침대에 계셨다, 라고 돌려서 말하긴 했지만, 그 진의를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눈치가 없는 사람은 이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날 향한 시선에 경악과 경외가 깃들었다.
내가 생각해도 좀 심하긴 했다. 오후 4시쯤에 시작했는데 다음날 아침이 되고 나서야 끝을 맺었으니까.
아우로라는 막판엔 아예 반쯤 기절하다시피 했었다. 열두 시간이 넘게 박아댔으니, 일반인에 불과한 아우로라가 버티는 것이 더 이상했다.
사실, 일부러 조금 과하게 움직인 것도 없지 않아 있었다. 아우로라를 저택에 남아있도록 하기 위해서 말이다.
계획은 정확히 먹혀들어갔다. 아우로라는 정신을 차린 이후에도 제대로 몸을 일으키지조차 못한 채 팔만 흔들어서 작별 인사를 건넸을 뿐이었다.
몸 상태가 그러니 마차를 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
질문을 던진 기사가 나를 흘끔 쳐다보더니 얼굴을 확 붉히며 뒤로 물러났다. 다른 단원들의 반응도 비슷했다. 오직 헬가만이 태연하게 박수를 쳐줄 뿐이었다.
“우와. 단장님. 진짜 대단하시네요.”
“그래. 칭찬 고맙다.”
“별 말씀을요.”
여전히 반쯤 졸려보이는 듯한 얼굴 탓에 날 비꼬는 건지 아니면 진심으로 칭찬하는 건지는 모르겠다. 아마 헬가의 성격상 후자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면 저희들도 따라갈 필요가 없어진건가요?”
아우로라를 호위할 목적으로 차출됐다던 부기사단장이 손을 들고 질문했다. 라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결정 자체는 델타 기사단장님의 손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만, 영주님께서 따라가지 않으신다면 인원을 더 늘릴 필요는 없으리라 사료됩니다.”
“…….”
추가적으로 차출됐던 부기사단장 두 명과 일반 단원들의 얼굴이 조금 침울해졌다. 하지만, 그 침울함은 곧바로 이어진 라나의 말로 인해 눈 녹듯이 사라져버렸다.
“대신, 멋대로 일정을 변경해 미안하다며 다음번 봉급을 5배로 지급하고, 호위를 무사히 완수한 것으로 간주하여 칠흑 성야 기사단의 모든 기사분들께 봉급의 2배에 달하는 추가적인 사례금을 드리기로 했습니다.”
“아프면 당연히 쉬셔야 합니다. 아픈데 괜히 움직이시면 무조건 탈 나요.”
“영주님께서 명령하시면, 저희는 따릅니다. 그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동이죠.”
그 말과 함께 영주 저택에 있던 기사들이 커다란 궤짝을 몇 개나 들고 들어오자 분위기가 역변했다.
여기로 오기 전엔 오직 명예만을 보고 황궁에서 근무했던 기사들이니만큼 돈을 밝히는 성격도 아니고, 진심으로 화를 낸 것도 아닐거다. 그냥 가벼운 앙탈 수준이었겠지.
내버려뒀어도 자기들끼리 침울하게 몇마디 투정을 주고받다 끝났을 뿐이었겠지만, 막대한 돈을 이용하니 그 약간의 투정마저 싹 사라졌다.
더 많은 돈으로 기사들의 침울함을 순식간에 잠재워버린 라나가 내게 다가왔다. 주변의 부기사단장들이 쫘악 길을 터주었다. 라나가 내 바로 앞에 자리를 잡았다.
어째 표정이 평소보다 한층 더 싸늘하고 무뚝뚝한 느낌이었다.
“언제 출발하실 예정이십니까?”
“지금 바로 가야지. 여기서 더 해야 할 일도 없으니까.”
“예. 애석하게도, 제대로 된 배웅을 해드리기는 힘들 듯하군요. 죄송합니다. 아직 청소할 구역이 한참이나 더 남아있는지라.”
“…….”
12시간이 훌쩍 넘게 해댔으니, 아우로라의 방이 엉망진창으로 변한 것은 당연지사였다.
카펫은 물론 침대 시트에까지 체액이 스며들어서 가구를 통째로 갈아엎어야 할 수준이라던가. 물론 그 청소 담당은 라나를 비롯한 메이드들이었다.
“굳이 배웅해주지 않아도 괜찮아.”
“저는 어제 오후부터 안 괜찮았지만, 알겠습니다. 무사히 다녀오시기를 빌겠습니다.”
라나는 가시 돋힌 농담으로 나를 콕콕 찔러대며 제복 옷깃을 정리해주고는, 꾸벅 인사를 한 뒤에 몸을 돌렸다. 궤짝을 들고 왔던 저택의 기사들도 내게 목례를 하고선 라나와 함께 돌아갔다.
방금의 말이 나름의 농담이라는 건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었다. 나한테 저런 농담을 스스럼 없이 해올 정도로 관계가 편해진 거겠지.
라나가 사라지자, 가뜩이나 엄청났던 시선들이 한층 더 반짝거려댔다. 칠흑 성야 기사단의 55명 전원이 한 명도 빠짐없이 나를 쳐다보는 중이었다.
“저, 단장님?”
“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질문 하나만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분명 실례가 될 것 같긴 한데. 일단 말해봐.”
“어제 오후부터 오늘 아침까지 하셨다는 게 진짜인지ㅡ”
“실례 맞잖아. 사실이니까, 그거 언급은 여기까지만 해.”
들려오는 수군거림이 한층 커졌다. 개중에는 은근슬쩍 내 아랫도리를 향하는 시선도 몇 개 있었다. 라크시아마저도 뺨을 붉게 물들이고 있는 모습이었다.
하나같이 저렇게 놀라는 반응인 걸 보면, 일단 여자의 평균 외모가 어마어마하게 상향 평준화 되어있듯이 남자의 평균 사정량도 이 정도로 상향 평준화가 된 것은 아닌 듯 했다.
‘짐작가는 게 있긴 한데…….’
성으로 돌아오면서, 이런 짓이 가능한 이유를 하나 떠올리긴 했다.
브닼 4에는 스태미너라는 개념이 존재한다. 이 세계에도 스태미너라는 개념은 그대로 존재한다. 그리고, 정력은 대체로 스태미너와 연관되어 불리는 경우가 잦다.
그런데 브닼 4에서 스태미너는 오로지 구르기와 방패 방어에만 쓰인다.
다시 말해, 사정이라는 행위에 스태미너가 소모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떠올린 내가 보기에도 미친 생각이지만, 이것 말고는 수십 수백 번을 사정해도 정액량이 그대로에 발기 또한 멀쩡히 된다는 사실을 설명할 수 있는 이유가 없었다.
“이제 출발할 거니까 헬가는 여기 집합하고, 나머지는 성으로 들어가 있어. 라나가 주고 간 돈도 알아서 분배해 놓고.”
점점 아랫도리에 시선이 집중되기 시작하고 있다는 걸 느끼고 단원들을 성으로 돌려보냈다. 수십 명이나 되는 바니걸들이 엉덩이와 가슴을 씰룩이며 성 안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돈이 가득한 궤짝을 든 역바니 4명도.
이제 조만간 기사단 내부에 소문 하나가 더 추가되지 싶었다.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왔다.
나는 근처에 서 있는 헬가와 그 휘하의 기사 10명을 돌아보았다. 어떻게 되먹은 머리띠인지, 삐죽 솟아오른 토끼귀가 위아래로 쫑긋거리고 있었다.
“준비는?”
“지금 바로 떠나도 됩니다. 다 끝내놨거든요.”
준비를 다 끝내놓았다는 말이 무색하게도, 헬가는 유두와 음부에 두꺼운 알파벳 X 모양 스티커를 붙인 역바니 차림에 나머지는 맨다리를 고스란히 드러낸 바니걸 차림이었다.
칠흑 성야 기사단의 갑옷을 제작한다면서 원래 쓰던 황금빛 갑옷을 모두 수거해갔기에, 마땅히 입을만한 것이 없었다나.
내 입장에서는 황당하기 짝이 없었지만, 당사자들의 표정은 무척 진지했다. 흐물흐물한 표정인 헬가만 빼고.
솔직히, 미친 치녀 집단으로밖에는 안 보였다. 차라리 은빛 여명 기사단이 입었던 흰 민소매에 돌핀팬츠 조합이 훨씬 더 낫다는 생각이 간절하게 들었다.
“좋아, 그러면ㅡ”
“자, 잠시만, 요!”
마굿간으로 이동하려는 찰나, 닉스가 커다란 가슴을 출렁출렁 흔들며 뛰어왔다. 체형이 체형인지라 단순히 뛰는 것만으로도 시선을 사로잡는 힘이 어마어마했다.
“저 여자가 여긴 왜…….”
헬가는 닉스의 모습을 보자마자 인상을 찌푸리며 쯧, 하고 혀를 찼다.
여기 거주하면서 사고를 친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첫 등장의 임팩트가 워낙에 강렬했던데다 마녀라는 이름값이 있는 탓에 경계를 완전히 풀지 못한 모양이었다.
“여긴 왜 왔어?”
표정은 여전히 반쯤 졸려 보였지만, 오른손은 언제라도 무기를 뽑아들 수 있도록 허리춤에 가 있었다.
닉스는 닉스대로 그런 헬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날 보며 음침한 미소를 지었다.
“저기…… 나도 데려가주면 안될까요? 헤헤.”
“닉스 너를?”
“네. 헤헷. 영주님이 안 가신다니까, 제가 대신 가도 되는 거잖아요. 저는 호위도 필요 없는데…….”
닉스는 가슴 앞에서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내 눈치를 살폈다.
그렇긴 했다. 아우로라와 그 시중을 들 메이드가 없으니, 닉스가 따라간다 한들 공포에 질릴 것을 걱정하지는 않아도 되니까.
딱 하나, 문제가 있다면.
“우리는 그렇다 치더라도, 도시에는 어떻게 들어가게? 영주랑은 어떻게 만나고?”
“아.”
나한테 의뢰를 해온 그 도시의 영주가 평범한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닉스의 공포 사정거리에 들어서는 순간 미쳐서 발광하고 아주 난리도 아닐거다.
“……헤헤. 죄송해요. 제가 너무 주제넘었죠. 못 들은 걸로 해주세요.”
면전에서 거절을 당했음에도 닉스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음침하게 웃었다. 침울해 하는 것도 아니고, 헤헤거리며 웃으니까 오히려 뭔가 더 안쓰러워보였다.
나는 잠시 기억을 되짚어보다가, 어느 사실 하나를 떠올리고 축 늘어진 뒷모습으로 터덜터덜 자기 방에 돌아가려는 닉스를 멈춰세웠다.
“잠깐, 닉스. 너 순간이동 쓸 수 있지 않아?”
“……순간이동?”
헬가를 비롯한 휘하 기사들의 눈이 작게 반짝였다.
12명 전원이 말을 타고 가더라도 일주일이 훌쩍 넘게 소요될 거리다. 하지만, 순간이동을 사용할 수 있다면 거리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닉스는 우물쭈물 다시 내게로 돌아왔다.
“헤헤, 쓸 수 있긴 한데……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옮기려면 몇 시간이 걸릴지 모르는데…….”
“일주일씩 걸리고 그러진 않을 거잖아?”
“그, 그렇긴 해요. 아무리 오래 걸려봐야 몇 시간, 정도일 거라…….”
고작 몇 시간. 1~2주의 시간이 몇 시간으로 줄어든다면 엄청나게 남는 장사였다. 나는 헬가를 돌아보며 말했다.
“어떡할래, 헬가?”
“……상당히 이른 시간에 도착하셨군요.”
내가 도착했다는 보고를 받고 저택에서 뛰쳐나오다시피 한 영주가 헉헉거리며 숨을 골랐다.
영주는 당연히 여자였다. 이제 원본이 남자였던 NPC가 여자로 바뀌어 있는 것 따위는 놀랍지도 않았다. 날 놀라게 하려면 더 심상치 않은 걸 들고와야 할거다.
한참동안이나 숨을 고른 영주는 마지막으로 숨을 깊게 들이쉬고선 허리를 똑바로 폈다. 가슴이 반동을 받아 크게 출렁였다.
“그런데, 오신 것은 두 분이 전부이신…… 아닙니다. 드래곤을 물리치셨다니, 그걸로도 충분하신거겠죠.”
영주는 나와 헬가를 번갈아 쳐다보고선 왜 둘만 온 건지 의문을 품는 듯 하다가, 자기 혼자 알아서 납득하고선 고개를 주억이며 우리를 저택 안쪽으로 안내했다.
같이 데려온 일반 기사들은 닉스랑 같이 룬 던전 근처의 숲에 대기시켜놓았다. 닉스를 여기 데려올 순 없는데, 그렇다고 숲에 혼자 내버려두기도 좀 그러니까.
얌전히 있으라고 신신당부를 해둔 것도 있고, 순간이동을 써준 덕분에 닉스를 바라보는 시선이 약간 호의적으로 변했으니 괜찮을거다.
나는 영주를 따라 복도를 걸어가던 와중에, 문득 편지를 읽다 느껴졌던 궁금증이 떠올라 입을 열었다.
“그런데, 정말 의외시네요.”
“……뭐가 의외라는거죠?”
영주가 멈칫거렸다. 걷는 속도가 차츰 느려지기 시작했다.
“황제 폐하께 들키기 싫어서 제게 도움을 요청하셨는데, 제가 누구 덕분에 기사단장의 자리에 올랐는지를 잊으신 것 같아서 말입니다.”
우뚝, 그 발걸음이 제자리에 못 박힌 듯 굳었다.
“제가 그쪽 제안을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황제 폐하께 알리는 쪽을 택하면 어떡하시려고 편지에 그리도 구구절절하게 사연을 써놓으셨습니까?”
“…….”
제자리에 굳어버린 몸이 파들파들 떨렸다. 영주의 앞모습이 천천히 우리 쪽을 향했다. 그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피부가 무척이나 창백해 보였다.
‘어라. 잠깐만.’
영주의 반응을 보고 내 실수를 알아차렸다.
나야 별 생각 없이 단지 궁금하단 이유로 물어본 거였지만, 이 상황에서 저런 말을 내뱉는다면 누가 들어도 협박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심지어 말투까지 애매해서 더 그랬다.
다급해진 내가 실수를 바로잡으려 하기도 전에, 영주가 벌벌 떨리는 목소리로 매달렸다.
“……뭘, 무엇을 원하십니까. 돈이 더 필요하신 것입니까?”
“아무것도 아닙니다. 진짜로 호기심 때문에 그런 거예요. 이상하게 느끼셨다면 죄송합니다.”
하지만 영주는 내 말을 믿을 생각이 조금도 없어보였다. 새하얗게 질린 얼굴을 한 채 입술을 짓씹더니,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드레스 자락을 꽉 쥐었다.
“그, 그게 아니라면. 제 몸을 바치면 되겠습니까?”
“……?”
갑자기 뭔 미친 소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