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160)
r 160 – 세 번째 룬 – 1
“황제 폐하께서 당신을 직접 칠흑 성야 기사단의 기사단장 자리에 봉하셨다 그러시었지요.”
“예.”
“그러한 결정을 내리신 것에는 이유가 있으셨던 듯 합니다.”
‘역시.’
이제와서 은빛 여명 기사단 쪽 스토리를 신경쓰는 것도 웃긴 일이긴 한데, 카산드라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내가 기사단의 스토리와 한참이나 동떨어졌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진작에 예상했던 상황이었으니 놀랄 일은 없었다.
루트마다 다르긴 하지만, 은빛 여명 기사단 루트 같은 경우에는 혹시 플레이어가 자신의 영지에서 근무할 생각은 없냐고 넌지시 권유를 해온다.
받아들이면 이후의 스토리가 살짝 바뀌는거고, 거절하면 그대로 은빛 여명 기사단의 스토리를 진행하는거다. 그 정도 분기쯤은 당연히 구현을 해 놓았다.
저건 플레이어가 황제와 연관되는 루트를 탈 경우에 말하던 대사와 비슷했다. 당신을 눈여겨보셨으니 황제 폐하의 안목이 참으로 뛰어나시다고 말이다.
아마 카이킬리아가 나한테 지대한 관심을 보여줬던 것이 큰 듯 했다.
‘반 이상은 황궁 루트로 확정된 것 같긴 한데…….’
나는 적당히 생각하다가 신경을 꺼버렸다. 이후의 스토리를 깊게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그래봤자 별 도움이 되지도 않을테고.
그때그때 맞닥뜨린 순간에 떠올리면 된다.
“제 급작스러운 제안을 수락해주시고, 이렇게 해결하여주신 것에 대해, 정말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칠흑 성야 기사단의 기사단장님. 당신 덕분에 한시름 덜 수 있었습니다.”
카산드라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상체가 약간 기울어지며 가슴골의 드레스가 아래로 내려갔다. 카산드라는 드레스 사이로 노출된 가슴골을 숨길 생각이 조금도 없어보였다.
저만한 작위를 지닌 귀족이 몸가짐에 대해서 배우지 못했을 리가 없으니, 아마 다분히 의도적인 행동일 것이다. 나는 태연하게 인사를 받아주었다.
내 표정에 아무런 변화가 없자 카산드라는 잠시 의외라는 듯한 얼굴을 했으나, 곧 다시 화사한 미소를 띄웠다.
방금의 변화를 보고 다시 한 번 확신했다. 아마 내가 반응을 보였더라면 방금 전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들이댔을거다. 별 반응이 없으니 깔끔하게 포기한거겠지.
“카산드라 영주님, 하나 부탁드릴 것이 있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당연히 괜찮습니다. 얼마든지 말씀해주세요. 무엇입니까?”
“룬을 포함해 던전에서 나오는 모든 전리품과 부산물들을 가지시라고 말씀하여 주셨습니다만, 애석하게도 룬 말고는 딱히 나온 것이 없더군요.”
“예, 알겠습니다. 제가 직접 그 노고에 보답을 해드려야지요. 여러분들 모두, 제 저택으로 초대하겠습니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던전에서 얻은 게 없으니까 그쪽에서 대신 보상을 해달라는 의미였지만, 자기가 했던 말이 있어서인지 카산드라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돌렸다.
나는 카산드라가 멀어지는 동안 조용히 헬가를 불러 속삭였다.
“이 다음 일은 헬가 너한테 맡긴다. 애들 데리고 먼저 저택으로 돌아가 있어. 나는 따로 할 게 있거든. 나는 왜 안 왔냐고 질문 들어오면 그렇게 대답해.”
“알겠습니다. 할 게 있으시다는 건, 혹시 그 마녀 관련 일입니까?”
“맞아. 걔 혼자서만 여기내버려두고 우리끼리 들어갈 순 없잖아. 권한은 모두 일임해줄테니 네가 결정해.”
“네. 단장님. 다녀오세요.”
헬가는 자기 부하들을 모아서 카산드라의 뒤를 따라갔다.
영주는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부기사단장이 서 있는 것을 보고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가, 헬가가 뭐라뭐라 속삭이자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카산드라와 그 직속 기사, 헬가와 부하들이 완전히 떠나간 걸 확인하고, 나는 혹시라도 목소리가 들리는 일을 막기 위해 숲 안쪽으로 조금 더 들어갔다.
그리고 쩌렁쩌렁하게 외쳤다.
“닉스!”
그러자마자 닉스의 모습이 내 바로 앞에 나타났다. 내가 자신을 불러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해도 무방할 수준의 반응 속도였다.
순식간에 내 앞까지 다가온 닉스가 음침하게 웃었다.
“키히힛, 나 불렀어?”
“불렀지. 저 영주 때문에 숨어있던 거야?”
끄덕끄덕, 그 머리가 위아래로 격하게 흔들렸다. 가슴도 같이 출렁였다. 나는 그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주었다. 이제 이런 행동도 완전히 적응이 된 것 같았다.
“너는 따라서 안 가? 나는 그냥 너희들 일 끝날때까지 혼자서 기다려도 되는데.”
이미 혼자서 기다리는 건 많이 해봤고, 라는 중얼거림이 덧붙여졌다.
“딱히. 여기에 저런 걸 바라고 온 것도 아니라서.”
그건 나 뿐만이 아니라 저 애들도 마찬가지일거다.
딱히 보상을 바라고 온 건 아니지만, 그렇다 해서 공짜로 일을 처리해줄 수도 없는 노릇이니 뭔가를 요구하는 것이다. 카산드라의 심리적 부담감도 덜어줄 겸 해서 말이다.
순전히 호의로 이번 일을 도와줬다고 말하는 것 보다는, 보상을 챙겨 떠나는 편이 부담감을 덜어주는 데 훨씬 더 도움이 된다. 뭔가 주고받는 게 있어야 안심을 할테니까.
“그러니까, 쟤들 기다리는 동안 나랑 잠깐 어디 좀 가자. 순간이동 아직 쓸 수 있지?”
원래는 적당한 때를 골라볼 생각이었는데, 어차피 닉스는 도시에 못 들어가니까 시간이 붕 떠버린 틈을 노리기로 했다.
걔들이 보상 받고 밖으로 나오는 걸 숲에서 하루종일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순간이동도 쓸 수 있겠다, 그럴 시간에 재빨리 해치우는 편이 훨씬 낫다.
“알았어. 키힛. 어디로 가면 돼?”
닉스는 내용조차 묻지 않고선 곧장 어디로 가면 되냐고 달라붙었다. 제복 안주머니에 넣어둔 지도를 꺼내 기억 속의 맵과 차근차근 대조하며 던전이 있는 위치를 찾았다.
바로 옆에서 나를 빤히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시선을 무시하고 제국의 산 중턱 어딘가에 쯤 위치한 골짜기를 가리켰다.
“여기야. 갈 수 있지?”
고개를 세차게 끄덕인 닉스가 내 옆에 바짝 다가와 순간이동을 준비했다. 나는 지도를 손에 든 채로 기다렸다. 아직 지도를 접을 타이밍이 아니었다.
정확한 좌표만 안다면 제국 끝에서 성국 끝까지도 정확하게 갈 수 있던 미네르바에 비해, 닉스의 순간이동은 정밀도가 상당히 부족했다.
아우로라의 영지에서 이 도시까지 왔을 때도 미네르바였다면 몇 시간이나 소요될 필요 없이 그냥 지팡이를 한 번 휘둘러서 도착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미네르바가 규격 외의 괴물인거지 닉스가 부족한 것이 절대로 아니었기에, 나는 잠자코 기다려주었다. 곧이어 검은색 마법진이 우리 둘을 집어삼켰다.
“도착했어.”
닉스는 거의 대여섯 번 가량이나 좌표를 수정한 이후에야 룬 던전의 바로 앞에 순간이동을 성공시킬 수 있었다. 나는 그 사실을 확인하고 지도를 다시 품에 집어넣었다.
던전의 입구는 게임에서 보던 그대로였다. 누가 와서 확인하더라도 이거 던전이에요, 라고 확신할 수 있을법한 모습.
여기가 깎아지른 듯한 절벽의 한복판인데다, 근처는 바위와 나무로 절묘하게 가려져서 통상적인 방법으로는 뭔가 있으리란 사실조차 짐작하지 못할거라는 사실만 빼면 말이다.
“들어가자.”
“응.”
닉스는 군말없이 내 뒤를 따라 던전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혹시 몰라 들고 있었던 날개 잃은 악몽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이 던전에서는 적이랑 전투를 벌일 필요가 없었다.
여긴 함정형 던전이니까.
예전에 크리스탈 스크롤을 찾으러 들어갔던 장소처럼 말이다.
‘이번에는 닉스가 있으니까 괜찮겠지.’
그땐 눈이 완전히 뒤집혀버린 미네르바가 알아서 함정들을 싸그리 다 정리해버렸지만, 지금은 닉스가 그 역할을 대신 해줄 예정이었다. 처음부터 그걸 목적으로 데려온거기도 하고.
몬스터가 등장하는 던전보단 함정형 던전이 대체로 ‘게임 좆같이 하네’ 소리를 들을 확률이 높았다.
빌어먹을 함정 탓에 앞으로 조금만 더 걸어가면 도착할 거리를 10분이 넘게 빙빙 돌아간다거나, 점프로 넘어가면 되는데도 골짜기를 끝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와야 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하지만 지금은 그러지 않아도 될 거다.
“여긴 룬이 있는 곳인데, 함정이 잔뜩 깔린 던전이야.”
“응.”
“함정 해체랑 길 찾기는 내가 할 건데, 가끔 해체가 불가능하거나 귀찮게 구는 함정이 있어.”
“응.”
“그걸 닉스 네가 다 부수면서 가면 돼.”
“키히힛, 알았어.”
‘……얘는 아무것도 안 물어보네?’
다른 사람들이라면 이쯤에서 그걸 어떻게 알고 있냐, 여기는 어떻게 찾았냐, 룬 파동 조사도 안 해놓고 여기에 룬이 있다는 사실은 어떻게 눈치챘냐 등등을 질문했을 건데.
뭐, 나한테 좋은 일이니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여기서 닉스가 그런걸 어떻게 아느냐고 물어온다 한들 제대로 된 대답을 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잠깐만. 멈춰.”
내부로 얼마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바닥에 교묘하게 튀어나온 함정이 우리를 맞이해주었다.
얼핏 보기에는 방향이 어긋나서 살짝 튀어나온 벽돌처럼 보이지만, 저걸 밟는 순간 덫에 발목이 붙잡히고 위에서 커다란 돌이 떨어진다. 당연히 즉사 판정이었다.
커다란 돌이 으드득 하는 살벌한 소리와 함께 플레이어를 으깨고, 근처 바닥으로 피가 번져나가면서 유다희양을 영접하게 된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은 유저가 한둘이 아니었다.
“그거 안 밟게 조심해. 위에서 돌 떨어지거든.”
“응.”
닉스는 또다시 짤막하게만 대답하고선 나를 따라 스위치를 옆으로 빙글 돌아서 건넜다.
이후부터는 쉬웠다. 내가 처리할 수 있는 함정은 모조리 다 처리하고, 미로처럼 빙빙 돌아가야 한다거나 중간 과정이 귀찮은 함정은 닉스를 불러서 싸그리 다 박살내버렸다.
특히 퍼즐을 풀어야 문이 열리는데, 퍼즐을 풀려면 온갖 곳을 왔다갔다 하면서 재료를 모아야 하는데다 재료를 모으는 과정에 또 퍼즐이 있는 구간.
그런 곳은 퍼즐이고 나발이고 화력으로 문을 녹여버리고 지나갔다. 아주 상쾌한 기분이었다.
내가 온갖 미로와 함정을 일말의 고민조차 없이 해체해버리자, 내게 연신 감탄어린 시선을 보내오는 닉스와 함께 던전의 중심부까지 진입했다. 앞으로 조금이었다.
닉스는 비탈길의 뒤에서 굴러오는 둥그런 바위를 마법으로 박살내버렸다. 원래는 타이밍 맞춰서 뛰었다 멈췄다를 반복해야 하는 구간이지만, 우리 둘 다 발걸음이 느긋했다.
잠시 한가해진 틈을 타 입을 열었다. 지금이 물어볼 기회였다.
“닉스.”
“응.”
“헬가한테 들었어. 지네 시체를 부수는 일이 ‘여기서는’ 쓸모 없다고 대답했다던데, 그게 무슨 의미야?”
“…….”
닉스가 제자리에 우뚝 멈춰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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