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161)
r 161 – 세 번째 룬 – 2
제자리에 우뚝 멈춰선 닉스의 흑안이 날 향했다. 음침하기 짝이 없고, 주변의 눈치만을 이리저리 살펴대던 평소의 눈동자와는 전혀 다른 시선이었다.
혼탁했다. 온갖 복잡한 감정이 휘몰아치며, 더없이 탁하게 변해버린 검은 동공이 나와 시선을 마주하고 있었다. 내가 의문을 느끼고 입을 열기도 전에 저 쪽에서 선수를 쳤다.
“알고 있잖아.”
“뭐?”
닉스는 그 말을 끝으로 입을 다물어버렸다. 입이 닫힐 때 들린 소리로 추측컨대, 이번에도 자의로 다문 것은 아닌 듯 했다. 즉, 저 말 역시 금제 비스무리한 것이 적용된다는 뜻이다.
머릿속으로 방금 전에 들었던 말을 되새겼다. 이미 죽어 나자빠진 지 오래인 지네 시체를 갈기갈기 찢어놔놓고선, 내가 그 이유를 알고 있다고?
딱히 떠오르는 건 아무것도 없ㅡ
‘어.’
잠시만.
가능성 하나에 생각이 미쳤다. 아주 미약한 가능성이었지만,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 세계를 뿌리부터 부정해야 할 만큼 터무니 없는 가능성이기도 했다.
오싹한 심정으로 닉스를 내려다보았다. 날 향해 있는 흑안은 여전히 혼탁하기 짝이 없었다.
내가 떠올린 가능성. 그건 브라이티스트 다크니스 3의 배경 설정이었다.
설정상으로 단 한 번도 죽거나 실패하지 않고 작중의 모든 위업을 이루어낸 브닼 4의 주인공과는 달리, 브닼 3의 주인공은 죽어도 죽어도 무한히 되살아나는 불사자였다.
주인공의 몸에 깃든, ‘불사 지네’라는 생물 때문이었다.
불사 지네에게 몸을 잠식당해 숙주가 된 인간은 아무리 죽어도 계속해서 부활하는 불사자가 되지만, 반대로 이성 또한 지네에게 잠식당해 짐승이나 다름없는 존재로 변해버린다.
브닼 3의 주인공은 지네에게 몸을 잠식당하고도 이성과 지능을 인간일 적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불사자 중 하나였고.
그런 설정 탓인지 브닼 3는 보스의 대부분이 불사 지네의 숙주 상태여서, 체력을 다 깎은 다음에 특수한 무장을 이용해 지네까지 처리해야만 보스전을 완전히 클리어 할 수 있었다.
한국어로는 ‘진혼’이라고 번역되었던 과정인데, 다른 시리즈와 비교해 제일 차별화된 브닼 3의 특징이었다.
이러한 배경 설정 탓에, 불사 지네가 깃든 생명체를 죽일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 뿐이었다. 앞에서 언급된 특수한 무장으로 몸을 찔러 지네를 불태우거나, 혹은…….
‘지네를 강제로 뽑아내어, 형체조차 남기지 않고 갈가리 찢어놓거나.’
닉스가 했던 것처럼 말이다.
‘……정말로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나로서는 브닼 4를 하기에도 늘 시간이 모자랐던지라, 3편은 아무리 잘 쳐줘봐야 200시간을 조금 넘는 정도로밖에 못 해봤다.
그래서 나도 확신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아는 지네란 그것뿐이었다.
‘그것뿐이긴 한데…….’
문제가 있다면, 그건 브라이티스트 다크니스 3의 설정이라는 것이다.
브닼 4는 그 전 시리즈와 이어지는 세계관이 아니라 완전히 독립되어 새롭게 시작하는 세계관이고, 닉스의 원본이 된 NPC는 브닼 4의 등장인물이다.
브라이티스트 다크니스 1부터 3까지는 시간 간격이 조금 많이 커다랄 뿐 같은 세계를 배경으로 두기는 했는데, 브닼 4는 그것조차 아니었다.
그러니, 닉스가 저 설정을 언급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불가능했어야 했다.
“……설마, 아니지?”
나는 많은 것을 눌러담아 닉스에게 질문을 던졌다. 닉스는 방금 전보다 훨씬 더 혼탁해진 것 같은 눈동자로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뜬금없게도 평소의 어리숙한 눈으로 돌아왔다.
“어, 어라?”
그 입에서 어리둥절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닉스는 눈을 깜빡거리고는 자기 자신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내 눈치를 살피며 가슴 앞에서 손가락을 꼼지락대기 시작했다.
“헤, 헤헤…… 혹시, 저 뭐 실수라도 했나요? 표정이 안 좋으신데…….”
존댓말을 쓰는 쪽이었다.
내 질문에 대답을 하는 대신 그냥 인격을 교체해버린 것이다. 참 편리하겠구나 싶었다. 한숨을 내쉬며 그대로 덮고 넘어가려다, 문득 인격끼리는 기억을 공유한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방금 반말 쓰는 쪽이 뭐라고 했는지 못 들었어?”
“네, 못 들었어요. 헤헤. 질문 들은 이후부터 공유가 끊겨서…….”
하지만 그것도 미리 대비를 해 둔 모양이었다.
질문을 전해들은 이후부터 기억 공유가 끊겼다. 그 말인 즉, 반말을 쓰는 닉스 쪽이 일부러 기억 공유를 끊어가면서까지 그런 대답을 내놓았다는 의미가 된다.
나는 찝찝함을 감추지 못한 채로 닉스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를 계속 되새겼고, 존댓말 닉스는 내 옆에서 입으로는 음침한 웃음을 흘리면서도 표정은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으로 서 있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작게 혀를 찼다. 내가 혀 차는 소리를 들은 닉스가 몸을 움찔 떨었다. 그 어깨가 점점 움츠라들었다.
“아, 미안. 너 때문은 아니야. 반말 쓰는 닉스 때문이지. 잠깐 고민할 게 있었어서 머리가 복잡했거든.”
“……네.”
“혹시 몰라서 그러는데, 너도 닉스가 지네를 왜 그래놨는지 알ㅡ”
내가 질문을 미처 끝내기도 전에, 닉스의 입이 굳게 다물어졌다. 그 눈이 어리둥절하게 떠진 것으로 미루어보아, 본인의 의지로 다문 것은 아니었다.
깔끔하게 추궁하기를 포기했다. 여기도 저런 금제 비스무리한 것이 걸려 있다면, 내가 알아낼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나중에 교황한테 물어봐야 하나?’
이곳은 엄연히 신이라는 개념이 실존하는 세계다. 신성력이 그 증거였다. 그러니, 교황이라면 신이랑 직접 소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신이랑 소통을 할 자격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교황들한테 부탁하면 어떻게든 될 거다.
플로레타와 루나는 자격이 없다면 만들어서라도 부탁을 들어주려고 하겠지. 날 향한 감정을 이용해먹는 것 같아서 미안하긴 한데, 궁금증이 너무 컸다.
나는 조용히 머릿속 계획에 성국 방문을 추가했다.
“일단 알았어. 계속 들어가자.”
흘끔 내 눈치를 살핀 닉스는 다시 슬금슬금 옆에 달라붙었다. 나도 굳이 밀어내지 않았다. 내 머리를 복잡하게 만든 닉스는 존댓말이 아니라 반말 쪽이니까 말이다.
첫 등장부터 지금까지, 죄다 비밀 투성이인 여자였다.
“됐어. 여기야.”
우리는 어느 벽 앞에서 멈춰섰다. 터무니없이 얇고, 곳곳에 금이 가 있어 안쪽의 모습이 훤히 드러나는 벽. 그 균열 사이로 은은한 초록색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균열 사이로 보이는 룬 비석을 확인한 닉스가 고개를 돌렸다.
“저게 그 룬인 거죠?”
“맞아.”
반말 쪽 인격은 아직도 감감무소식이었다. 존댓말 닉스의 말로는 저렇게 안쪽에 틀어박히면 다른 한쪽 인격을 강제로 끄집어내는 것 이외에는 딱히 방법이 없다나.
나는 내버려두라고 말해주었다. 알려주기 싫어서 저러는거든 알려주지 못해서 저러는거든, 저 금제 비스무리한 걸 뚫을 방법이 있지 않은 이상에야 굳이 추궁에 힘을 쏟을 이유는 없었다.
“이건 어떡하죠? 부수면 되나요? 헤헤. 저 그러는 거 진짜 자신 있는데. 지금까지도 잘했잖아요.”
“아니, 그건 안 돼.”
척 보기에도 부술 수 있을 것처럼 위태위태한 벽이고, 이 던전 초반부에 실제로 이것과 비슷하게 생겨먹은 벽을 등장시켜놔서 더더욱 저것도 부숴버리면 된다는 생각이 들거다.
실제로도 그랬다. 어떤 무기로 치든 3번 안에 확정적으로 박살나고, 심지어 맨손으로 쳐도 5~6번 정도면 부서지는 벽이니까.
안에 있는 룬 비석이랑 같이 말이다.
이 벽이 부서지는 순간, 룬 비석까지 같이 부서져버린다. 그렇게 된다면 이 룬을 얻기 위해서는 다음 회차로 넘어가야만 했다.
함정 던전이라는 명성답게 마지막까지 함정을 깔아두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러면 저 비석도 같이 부서지거든. 부수면 안 돼.”
“어…… 죄송해요. 몰랐어요.”
시무룩해진 닉스가 순순히 사과를 건넸다. 나는 그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주었다.
“사과는 됐어. 원래는 중간에 퍼즐 풀 때 경고를 해주는데, 그걸 다 스킵하고 왔으니까 모를만도 하지.”
당연히 아무런 예고도 없이 저런 악랄한 함정을 배치해놓은 건 아니다. 어렵기는 해도 불합리하지는 않게, 가 브라이티스트 다크니스 시리즈의 모토니까.
플레이어가 벽을 부수고 룬 던전으로 진입한 이후에, 다신 그런 짓을 하지 말라며 몇 번이나 경고를 해 둔다. 그런 짓을 한다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질거라면서 말이다.
물론 별 도움은 안 됐다.
상식적으로, 벽 부수고 들어갔더니 다신 그런 짓을 하지 말라는 경고가 적힌 걸 보고 ‘아, 경고 받았으니까 안 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할 유저가 몇이나 되겠는가. 그냥 냅다 부수고 들어가지.
10주년 기념 통계에서도 80%가 넘는 유저들이 초회차에서 룬을 부숴먹었다고 나왔을 정도다.
“그러면 저건 어떻게 얻죠?”
닉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쳐다보았다. 벽을 깨면 룬도 같이 부서진다니, 저건 어떻게 얻는 건가 의문이 드는 모양이었다.
“이렇게.”
나는 벽의 옆쪽으로 돌아가 어설프게 쌓여 있는 상자더미를 찾았다. 이런 깊숙한 룬 던전 한복판에 이런 상자더미라니, 대놓고 힌트를 던져준 셈이었다.
처음 벽 앞에 도착했을 때는 교묘하게 가려져셔 안 보이고, 살짝 돌아가야 확인할 수 있는 장소에 놔뒀기는 하지만.
상자들을 향해 날개 잃은 악몽을 휘둘렀다. 처음부터 내구도가 그리 높지 않은 것들이었기에 칼날이 닿자마자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무너져내렸다.
나무 파편들이 한가득 쌓인 자리 너머로, 길 하나가 나타났다.
“여기로 들어가자.”
“네, 헤헤.”
실없이 웃은 닉스가 내 뒤를 호다닥 따라왔다. 모퉁이를 두 번 돌자 룬 비석의 뒷모습이 나타났다. 통로는 한글 기호 ‘ㄷ’처럼 생긴 구조였다.
벽에 뚫린 균열로 들여다 볼 때는 각도상 닫힌 공간처럼 보여서 어지간히 눈썰미가 좋은 사람이 아니고서야 알아차리는 게 불가능했다.
바로 앞에 놓인 룬 비석에 손을 뻗었다. 그리고 얼마 전에 느꼈던, 몸 속으로 흘러들어오기 시작한 이상한 감각을 왼손 손등에 집중시켰다. 경험이 쌓여서 그런지 저번보다는 쉬웠다.
몇 초 지나지 않아 마나 증진 룬을 의미하는 문신 맞은편에 새로운 문신의 획이 그려졌다. 얻은 순서로는 네 번째에 해당하겠지만, 실질적으로는 세 번째인 룬.
닼라 모드 근접캐 최종 빌드의 한 축을 담당하는 ‘흡혈 충동’ 이었다.
나는 손등을 만지작거렸다. 새겨진 문신의 크기가 점점 커져가고 있었다. 이러다 나중에 네 번째 룬까지 얻으면 손등 전체가 문신으로 뒤덮이는 건 아닐까 싶었다.
그래. 네 번째 룬을 얻은 이후에 말이다.
루치아를 잡고 얻었던 심연 속 안식 룬은 이미 지워진 지 오래였다.
‘설마 회차 플레이 같은 게 있진 않겠지.’
심연 속 안식은 플레이어에게 귀속되지 않는다. 즉, 플레이어는 회차를 넘어갈 때마다 그 룬을 새로 구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해야 회차마다 그 빌어먹을 지형을 타고 내려가서 루치아를 잡도록 시킬 수 있으니까.
설정상으로는 신에게 버림받은 피조물의 강대한 힘을 버티지 못한 룬이 녹아내린 거라곤 하지만, 유저들이 보기에는 그냥 제작사가 만든 핑계에 불과했다.
피조물 보스전을 안 치르고 회차를 넘어가도 사라지는데 힘을 버티지 못했기는 무슨.
“닉스. 저번에 말했던 흑마법 기억하지?”
나는 왼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닉스에게 질문했다. 흡혈 충동까지 얻었으니, 완벽하진 않더라도 최종 빌드를 대충 흉내는 낼 수 있을거다.
“네? 아, 네. 알려달라던 거 말씀이시죠? 헤헤.”
“지금 알려주면 될 것 같아.”
“알겠어요.”
고개를 끄덕인 닉스가 내게 다가왔다.
게임에서는 그냥 전용 UI창에서 배울 마법을 선택하면 끝이라 어떻게 마법을 전수해주려나 싶었는데, 닉스가 내 손을 살포시 쥐자마자 머릿속으로 지식이 흘러들어왔다.
배움은 순식간이었다. 닉스는 몇 초 지나지도 않았는데 손을 뗐고, 나는 원하던 마법을 곧장 이해할 수 있었다.
“이제 그 도시로 돌아가면 되는 건가요?”
“그래야지. 대신, 그 전에ㅡ”
내가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천둥이 몰아치는 듯한 우르릉ㅡ! 소리와 함께 던전 전체가 크게 진동했다. 나는 덤덤히 하려던 말을 이었다.
“방금 얻은 거 테스트 좀 하고.”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