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162)
r 162 – 세 번째 룬 – 3
한쪽 벽이 무너져내리고, 그 안에서 마물이 우르르 걸어나왔다. 전부 다 초반 지역에서나 볼 수 있는 잡몹들이었다. 마치 대놓고 룬의 성능을 시험해보라며 종용하는 듯 했다.
룬 해제 마법이라도 가지고 있지 않은 이상에야, 여기 올 때쯤이면 대체로 룬 슬롯이 꽉 차있어서 시험해보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말이다.
날개 잃은 악몽의 속성을 바꿨다. 검신이 푸른색 빛을 발했다. 흑마법도 일단은 마법이므로 당연히 날개 잃은 악몽의 속성 증폭 효과를 받는다.
다시 무기를 오른손에 쥐었다. 그리고 왼손 손가락을 살짝 굽히며 방금 닉스에게 전수받은 흑마법을 사용할 준비를 했다.
정신을 집중하자, 마나가 빠져나가는 특유의 감각과 함께 체력이 줄어드는 감각도 같이 느껴졌다. 피 묻은 검의 특수 능력을 사용할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흑마법은 위계가 높아질수록 소모되는 체력도 높아지고, 체력을 고정 수치만큼 흡수하니 고작해야 스탯 1짜리의 저질 체력으로는 마법 한 번에 빈사 상태까지 내몰리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부턴 체력 코스트 따위는 전혀 상관 없었다. 흡혈 충동 룬을 얻었으니까.
준비를 끝내자, 왼손 손바닥에 닉스의 눈동자와 똑같은 색을 지닌 흑염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빛을 내뿜는 게 아니라 오히려 빛을 흡수하는 것 같은 특이한 불꽃이었다.
“헤헤, 잘하시네요.”
이런 내 모습을 본 닉스가 실없이 웃었다.
나는 닉스의 말을 흘려들으며 검신의 크로스가드 바로 윗부분에 왼손을 가져갔다. 그리고, 아래에서부터 위로 칼집에서 칼을 뽑듯이 밀어올렸다.
화르르륵, 하는 소리를 내며 손에 피어오른 화염이 날개 잃은 악몽으로 옮겨갔다. 검은 불꽃이 일렁이자 아지랑이가 만들어졌다. 그 너머로 비치는 마물의 모습이 일그러졌다.
이것이 바로, 닼라 모드 근접 캐릭터의 최종 빌드 중 하나인 ‘타오르는 흑염’ 인챈트였다.
검은 불꽃이 일렁이는 날개 잃은 악몽을 양손으로 쥐었다. 내가 시전한 마법이라서 그런지 불꽃은 하나도 뜨겁지 않았다.
마물들이 비척비척 걸어왔다. 겉모습만 저렇지 실제로는 룬 던전의 위치에 맞게 강화되어 있으니, 아마 이 스펙으로도 평타를 2~3번은 쳐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제일 가까이 있는 마물에게 다가갔다. 놈은 이상한 괴성을 질러대며 내게 달려들었다.
ㅡ터엉!
경쾌한 소리가 들리고, 나를 향해 휘둘러졌던 놈의 오른팔이 뒤로 튕겨나갔다. 경직에서 회복할 시간을 줄 생각은 없었다. 검을 휘둘렀다.
날개 잃은 악몽이 놈의 가슴팍을 수평으로 스치고 지나가자, 칼날이 베고 지나간 자리에서 검은색 불꽃이 타올라 살을 태우며 내부를 좀먹어들어갔다.
후속타가 이어졌다. 칼날은 좌하단에서 우상단으로 향하는 궤적을 그렸고, 놈의 머리를 정확히 훑고 지나갔다. 그 다리가 크게 휘청였다.
‘역시.’
놈이 휘청이며 뒤로 무너지려는 순간, 가슴 한복판에 시뻘건 점이 하나 보였다. 이유는 몰라도 게임과 똑같이 생겨먹은 UI였다. 아마 나한테만 보이는 점이겠지.
나는 몸이 이끄는 대로 마물의 머리통을 덥썩 움켜쥐고선, 붉은색 점이 사라지기 직전에 놈의 목젖으로 날개 잃은 악몽을 푹 찔러넣었다.
그러자, HP가 낮은 상태에서 체력 회복 포션을 마셨을 때와 똑같이 체력이 회복되는 감각이 전해졌다. 흡혈 충동 룬이 제대로 발동됐다는 의미였다.
목에 찔러넣은 칼을 빼고 시체를 아무렇게나 내팽개쳤다. 마물의 시체는 얼마 지나지 않아 흑염에 휩싸여 한줌 잿더미로 변했다.
“와…….”
뒤에서 닉스가 짝짝 박수를 치며 감탄사를 흘렸다. 순간 낯간지러운 기분이 들어서 하지 말라고 해둘까 싶었지만, 그러면 시무룩해 할 것 같았기에 내버려두었다.
다음 마물에게 달려들었다. 방금 전과 똑같이 휘적휘적 휘둘러지는 오른손을 튕겨내고, 재빠르게 검을 휘둘러 평타 두 대를 박아넣었다.
이번에도 몸뚱아리의 중심에 새빨간 점이 보였다. 첫 번째 놈에게 그랬던 것처럼 한 손으로 머리를 잡고, 목에 검을 푹 찔러넣었다. 또다시 체력 포션을 마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날개 잃은 악몽을 뽑아내고 다음 목표를 찾았다. 여기서 튀어나오는 놈들 중에 아마 원거리 공격을 하는 놈이 있었을 건데.
‘아, 저기 있네.’
나는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자리에서 활을 장전하는 마물의 모습을 보고, 다른 흑마법을 시전할 준비를 했다.
혹시 모르니 연습도 할 겸 해서 닉스에게 첫 번째로 전해받았던 마법이었다.
속으로 시전 준비를 끝내자 왼손이 무게추라도 달린 듯 급격히 무거워졌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가벼워졌다. 왼손을 앞으로 쭉 뻗었다.
ㅡ퍼석!
화살은 내 왼손에 닿자마자 한 줌의 검은색 무언가로 변했다. 검은색 무언가는 곧장 내 왼손 안으로 빨려들어갔다. 흡수가 끝난 걸 확인하고 왼팔을 쭉 끌어당기며 팔꿉치를 굽혔다.
성공이었다.
만약 흡혈 충동 룬이 없었더라면, 타오르는 흑염을 사용하고 이 마법을 쓰는 순간 체력이 다 깎여서 마법은 사용도 못하고 죽어버렸겠지. 하지만 지금 나는 멀쩡히 살아 있다.
‘이거, 딜레이는 못 줄이는 건가?’
왼손을 슬쩍 내려다보았다.
이미 사흘 동안이나 연습했던 마법이지만, 이놈의 선딜과 후딜은 도저히 줄어들 생각을 하질 않았다. 혹시나 동작을 중간에 끊을 수 있을까 했는데, 잘 안 됐다.
“와……!”
방금 전보다 한층 더 격한 박수 소리가 들렸다. 왠지 모르게 닥쳐오는 부끄러움을 꾸욱 눌러 참았다.
나는 체력을 회복하기 위해 잡몹 두 마리를 더 죽여버린 후, 나머지는 깔끔하게 무시하고 뒤로 빠져나왔다. 닉스가 평소보다 한층 반짝거리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남은 건 네 몫이야, 닉스.”
“헤헤, 네.”
닉스는 망설임 없이 자기 손바닥 위에 검은색의 커다란 화염구를 만들고, 냅다 손을 휘저어 그걸 날려보냈다. 남은 마물들의 머리 위에 검은 화염구가 직격했다.
흑염을 정통으로 처맞은 잡몹들은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증발해버렸다.
“수고했어.”
나는 닉스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닉스가 헤실헤실 웃었다. 나도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걸로 흡혈 충동의 성능 테스트는 끝났다.
‘흡혈 충동’ 룬은 그 이름답게 적을 처치하면 체력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해주는 룬이었다.
그걸 장착하고 적의 체력을 다 깎으면 잠시 동안 빨간색 점이 표시되는데, 점이 표시된 대상을 공격하면 처형 모션과 함께 해당 적을 처형해버리고 플레이어가 체력을 회복한다.
처형 모션의 종류는 수십 가지가 넘었다. 몹 종류 하나하나마다 처형 모션을 따로 배정하다보니 숫자가 엄청나게 늘어난 것이다.
심지어 보스는 팔레트 스왑으로 만들어진 개체를 제외하고 하나하나마다 고유의 처형 모션이 배정되어있기까지 했다. 그것 또한 다회차 플레이를 장려하는 요소들 중 하나였다.
‘정작 별 쓸모는 없었지.’
설명만 들어서는 필수 룬처럼 보이지만, 실전에서 흡혈 충동의 채택률은 바닥을 기었다. 기껏해야 할 거 없는 고인물들이 유희 생활을 할 때 써먹는 정도에 불과했다.
회복하는 수치가 어떤 적을 처치하든 고정되어 있는 주제에 그 고정된 회복량조차도 50에 불과하기 때문이었다.
체력 스탯이 30만 돼도 HP가 1500을 넘기는데, 꼴랑 HP 50 회복을 어디에 쓴다는 말인가. 특히 대놓고 뉴비 친화적 과거 행적인 기사라면 체력 스탯 30은 진짜로 금방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지.’
체력 스탯 1짜리 과거 행적, 버려진 자의 초기 체력은 고작 100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기에 흡혈 충동의 HP 50 회복을 누구보다 잘 써먹을 수 있는 캐릭터이기도 했다. 체력이 얼마나 깎였든, 아무나 두 놈만 죽이면 바로 풀피가 되니까.
이 ‘흡혈 충동’ 룬을 끼고 타오르는 흑염 인챈트를 사용해가며 전투를 벌이는 것이 닼라 모드 근접 캐릭터의 최종 빌드였다. 안정성과 대미지를 동시에 잡은 조합이기도 했고.
참고로 바닐라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한 빌드다.
체력 스탯 1짜리를 굴리면서 외줄타기를 할 바에야, 차라리 스탯을 더 찍어서 몇 대쯤은 맞아도 버틸 수 있도록 하는 편이 훨씬 더 낫기에 굳이 그럴 이유가 없을 뿐.
닼라 모드에서는 체력 스탯을 얼마나 올리든지 거의 무조건 한방컷이라 찍을 필요가 없으니까 이런 기형적인 빌드가 탄생한 거다.
‘이제 룬 하나만 더 얻으면 되는데.’
마지막 룬 1개만 더 얻으면, 흑마법을 사용할 때 소모되는 마나마저 제거할 수 있어서 완전한 무한 동력을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했다.
그렇게 되면 잡몹전에서만큼은 더 이상 포션이고 뭐고 아무것도 필요 없었다. 주변에 널린 게 체력 회복 포션인데 뭐하러 그러겠는가.
적을 잡아서 체력을 회복할 수 없는 보스전에서야 불가능한 전술이 되겠지만, 그때는 흑마법이 아니라 일식이나 월식, 혹은 원소 인챈트를 사용하면 그만이다.
“히흐헤헤흐헤헤헤헤…….”
괴상한 웃음 소리에 생각을 멈췄다.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면서 손으로는 계속 닉스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는지, 점차 흐물흐물해지는 중인 닉스가 보였다.
머리에서 손을 뗐다. 녹아내리기 직전이던 닉스가 정신을 차렸다.
“대, 대단해요. 진짜로, 진짜로 대단해요.”
닉스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눈을 음흉하게 빛내며 마구 칭찬을 퍼부었다. 그 어마어마한 가슴이 정신없이 흔들려댔다.
“대단하다니, 뭐가?”
“그 마법이요. 방금 사용하신 거. 어떻게 하면 그렇게 잘 쓰실 수 있어요? 헤헤. 그 마법 만든 저도 제대로 못 쓰는데. 쓰려다가 진짜 무진장 얻어맞고 포기했거든요.”
“아, ‘재는 재로’ 말하는 거야?”
“네. 헤헤.”
닉스가 말하고 있는 건 ‘재는 재로’라는 이름의 마법이었다. 내가 화살을 막을 때 사용한 마법 말이다.
그건 일단 투사체이기만 하면 종류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흡수해버린 뒤, 투사체가 지닌 대미지에 비례해서 다음에 사용할 흑마법의 위력을 최대 50%까지 증폭시켜주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타오르는 흑염처럼 인챈트형 마법 역시 무기에 부여하는 대미지가 늘어나고, 정말 강력한 공격 마법을 사용한다면 위력 증폭 한 번에 대미지의 자릿수가 바뀌는 일도 잦았다.
투사체 공격이라면 일단 무조건 흡수해버리는 데다 위력을 증폭해서 되돌려주기까지 하니, 사기 마법이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었다.
제대로 쓸 수 있다면 말이다.
‘이거 연습한다고 대체 몇 시간을 투자했는지 기억도 안 나네.’
이거, 타이밍 맞추기가 정말 지랄맞은 마법이다.
선딜레이도 더럽게 길고 후딜레이도 더럽게 긴데, 그 동안 슈퍼아머가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무적 상태가 되는 것도 아닌데다 심지어 투사체를 흡수할 수 있는 시간도 더럽게 짧다.
누군가 데이터 마이닝을 해 본 결과, 투사체 흡수의 지속 시간은 고작 0.35초밖에 안 됐다. 즉, 그 0.35초 안에 내밀어진 손을 투사체와 접촉시켜야 한다는 뜻이다.
그나마 히트박스는 제법 큰 편이긴 한데, 앞뒤로 넓은 게 아니라 좌우로 넓은거라서 타이밍이 조금만 늦거나 빨라도 ‘이게 안 된다고?’ 라며 뒷목을 부여잡는 일이 상당히 많았다.
게다가 그 와중에 범위는 또 전방 한정이라 옆이나 뒤에서 오는 투사체는 못 막기까지 하니, 제대로 안 쓰이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라고 할 수 있었다.
‘뭐, 일단 적응하기만 하면 이만한 사기 기술도 없지만.’
물론 나는 예외다.
잘 쓰면 좋은 기술이 언제나 그렇듯이, 발로 해도 흡수 타이밍을 맞출 수 있는 고인물들은 이걸 기본 소양처럼 쓰고 다녔다. 나 역시 그 고인물들 중 하나였고.
선딜과 후딜이 조금 거슬리기는 하지만, 무슨 공격에 언제 발동해야 되는지는 이미 다 외워뒀으니 안 써먹을 이유가 없었다.
체력이 소모되는 건 이제 룬으로 보충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쉬워. 연습하면 돼.”
“저는 연습해도 안 되던데, 헤헤헤…….”
닉스는 가슴 앞에서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틀린 말은 안 했다. 그냥 연습을 조금 많이 해야 할 뿐이지. 게임으로 죽어가면서 연습해도 지금처럼 되는데 수십 시간쯤 걸렸으니까, 여기서는 아마 십 년 단위로 해야 되지 않을까.
“이제 도시로 돌아가면 되는 거죠?”
“그래야지. 순간이동 좌표는 일단 룬 던전 앞으로 설정하고, 미안하지만 이번엔 닉스 너 혼자서 기다리고 있어야 할 것 같아. 갔다가 애들 데리고 금방 돌아올게.”
“헤헤, 괜찮아요. 천천히 오셔도 돼요. 혼자서 기다리는 건 익숙해요.”
이미 한 번 갔던 자리라서 좌표를 외웠는지, 내가 지도를 꺼내기도 전에 검은색의 마법진이 닉스와 나를 감쌌다. 익숙한 부유감과 함께 발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별 일 없겠지?’
여기 온지 몇 시간밖에 안 됐는데, 설마 그 짧은 시간만에 일이 터졌으려고.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