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163)
r 163 – 이상 현상
“도착했어요. 헤헤.”
닉스는 한 번만에 제대로 된 좌표로 순간이동을 성공시켰다. 우리 둘은 어느새 그 빌어먹을 파란색 기관차를 잡았던 룬 던전 앞으로 돌아와 있었다.
손을 뻗어 닉스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주었다.
“수고했어, 닉스.”
“히으으…….”
그 입에서 가늘고 긴 숨결이 흘러나왔다. 닉스는 눈을 가늘게 뜬 채로 내 손길을 받아들였다. 조금 뒤에 손을 뗐다. 눈동자가 다시 원래의 음침한 흑안으로 되돌아갔다.
“여기서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 금방 돌아올테니까.”
“천천히 돌아오셔도 되는데…….”
“내가 안 돼. 너 혼자만 여기 세워두고 나는 편하게 쉬라고?”
저쪽에서 계속 살가운 태도를 보여주는데 나 혼자서 마냥 모질게 대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닉스가 비록 숨기는 것 투성이에 이상한 비밀을 감추고 있는데다 황당무계한 망상증을 앓는 여자이긴 해도, 우리에게 피해를 준 것은 딱히 없지 않은가.
기껏해야 도시 한복판에 대뜸 나타나서는 사람들을 공포에 질리도록 만들었던 일이 전부인데, 사망자도 없었고 실질적인 피해도 거의 없었으니 덮고 넘어갈 수 있을 정도의 사고에 불과했다.
“헤헤…… 그러면 갔다오세요.”
그렇게 말한 닉스가 룬 던전 근처의 바위에 등을 붙이며 풀썩 주저앉았다. 닉스는 무릎을 끌어안으려다 멈칫 하더니, 어정쩡한 자세로 옆을 보고 누웠다.
아마 원래는 무릎을 끌어안은 자세로 벽에 기대려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터무니 없는 크기의 가슴 탓에 무릎을 안을 수가 없어서 저런 자세가 된 거고.
‘저런 외형은 대체 누가 디자인했는지 참…….’
나는 인간의 상상력에 감탄하며 도시로 발걸음을 옮겼다. 룬 던전으로 향했을 때와 비슷한 시간이 소요된 뒤, 어느덧 드높은 성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성문에는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어째 내가 나갈 때보다 줄이 훨씬 더 길어진 느낌이었다. 나는 맨 뒤에서 기다리는 대신 줄 옆을 성큼성큼 걸어갔다.
문 옆에서 경비병 네 명이 사람과 마차를 검문하는 중이었다. 경비병은 당연히 여자였고, 검문을 맏는 시민도 여자였다. 옷차림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족히 백여 미터는 될 법한 대기줄에서조차 남자의 모습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여긴 왜 전부다 여자인거지? 모더가 그런 컨셉으로 디자인한 도시인가?’
룬 던전으로 향하기 전에 카산드라를 만나려고 여기 잠시 들렀을 때도 이랬었는데. 그때도 길거리에서 남자를 한 명도 못 만나봤었다.
성문 바로 앞까지 다가가자, 경비병이 날 멈춰세웠다. 애석하게도, 아까 전에 방문했을 때 서 있던 경비와는 다른 사람이었다.
“더 접근하시면 안 됩니다. 줄 맨 뒤로 가주십시오. 차례를 지켜서ㅡ”
경비병은 나를 줄 뒤로 돌려보내려다가, 내가 품에서 신분 증명서를 꺼내기도 전에 말을 멈추더니 나를 위아래로 연신 훑어보았다.
그리고는 뭔가 깨달았다는 듯이 아, 하는 소리를 냈다.
“혹시 칠흑 성야 기사단의 델타 기사단장님 되십니까?”
신분 증명서를 꺼내다 말고 손을 멈췄다.
“어떻게 알았어?”
“영주님께서 경비대에 전달하셨습니다. 검은 머리에 검은 눈을 하고, 허리춤에는 회색빛 칼을 착용한 잘생긴 남자분이 온다면 통과시키라고요. 이름도 그때 들었습니다.”
검문 통과용 신분 증명서를 주었음에도 혹시 몰라서 미리 언질까지 해준 모양이었다. 나는 반쯤 꺼낸 신분 증명서를 안주머니에 도로 집어넣었다.
“방문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들어가십시오, 기사단장님.”
경비병은 깔끔히 길을 비켜주었다. 그 옆을 지나쳐 성문 안으로 들어갔다.
“……?”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밀어닥치는 왠지 모를 오싹한 느낌에, 몸을 살짝 떨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방금 나를 들여보냈던 경비병은 물론, 줄 서서 검문을 받던 시민들에, 심지어는 길을 걸어가던 여자들과 평범히 근처를 배회하던 여자들까지.
그 모두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도저히 무시할래야 무시할 수가 없으리만치 질척하고도 끈적한 시선이 느껴졌다.
‘뭐야, 왜 저래? 단체로 미쳤나?’
카산드라의 저택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내 움직임에 맞춰 시선도 나를 따라왔다. 찝찝한 기분을 감추기가 힘들었다.
내가 슬쩍 눈치를 줘도 누구 하나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내가 불쾌해하든 말든 신경조차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남자는 여전히 한 명도 안 보이고.’
대로를 걸으며 계속해서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죄다 여자 투성이였다. 내 시야에 잡히는 사람만 수백 명은 됐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모두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이쯤되면 누굴 데려다놓아도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없던 찝찝함도 저절로 생겨날 만큼 소름돋는 시선이었다.
몇 시간 전에 헬가와 같이 잠시 들렀을 때는 시선이 몇 번 모이긴 했어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그냥 곁눈질로 몇 번 훑고 마는 정도였지.
저택을 향해 계속 걸어갔다. 도시 내부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시선이 노골적으로 변해갔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하나같이 정상적인 상황과는 거리가 멀었다.
도시의 대로를 걷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천 명의 사람들 중에서 남자는 전무하다는 것과, 길거리의 모든 여자들이 노골적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다는 것. 둘 모두.
끈적거리는 시선들을 애써 무시하며 저택 앞에 도착했다. 정문을 지키고 있던 기사들이 내게 시선을 주었다. 헐렁헐렁한 흰색 티셔츠와 삼각 팬티 수준의 숏팬츠를 입은 여기사들이었다.
그 와중에 속옷은 또 안 입었는지, 봉긋 솟아오른 티셔츠의 가슴 부분 너머로 핑크색 실루엣이 어렴풋이 보였다.
분명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정상적으로 갑옷을 입고 있었는데.
눈이 마주쳤다. 기사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뜬금없이 손부채질을 하더니, 티셔츠의 끝자락을 잡고 걷어올려 11자 복근이 선명히 새겨진 배를 드러냈다.
걷어올린 끝자락은 가슴 밑에서 질끈 묶였다. 전체적으로 닉스의 하위호환이라고 불릴 법한 옷차림이었다.
“칠흑 성야 기사단의 델타 기사단장님이십니까?”
기사가 태연하게 말을 걸어왔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들어가십시오. 영주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 손이 정중히 정원을 따라 저택으로 향하도록 새겨진 대리석 길을 가리켰다. 분명 얼마 전에 걸어봤던 길인데, 지금은 이상하리만치 찝찝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자기 할 말을 끝낸 기사들이 길거리의 여자들과 똑같은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어서일 수도 있고.
나는 기사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지나쳐 저택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등 뒤에서 내게 빤히 고정된 시선은 무시했다.
그렇게 들어간 저택은 조용했다.
그래, 너무 조용해서 문제였다.
불이 모조리 꺼져 있는 천장의 샹들리에와, 촛농이 딱딱하게 굳은 복도 벽의 촛대를 차례로 살펴보았다. 광원이 죄다 사라진 탓인지, 복도는 대낮임에도 살짝 어두컴컴했다.
‘그러고보니, 커튼이…….’
분명 대낮인데 왜이리 어둡나 했더니, 복도의 창문마다 죄다 커튼이 쳐져 있었다. 그걸 보고 언제든 뽑아들 수 있도록 날개 잃은 악몽의 손잡이를 살짝 쥐었다.
일단 아무나 사람을 찾아보기로 했다. 이렇게 넓은 저택이니 누군가 있긴 할거고, 만약 아무도 찾을 수 없다면 그건 그거대로 무슨 일이 생긴거다.
나는 지나치는 창문마다 커튼을 싹 걷어버리면서 저택 구석구석을 돌아다녔고.
“뭔 일 터졌네.”
한 명도 찾지 못했다.
‘설마 그렇게 생각 좀 했다고 이런 사달이 난 건 아니겠지.’
흡혈 충동을 얻고 나서, 고작 몇 시간밖에 안 됐는데 설마 무슨 일이 있겠냐고 생각했던 일을 떠올렸다. 괜히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해가지고. 그냥 얌전히 있을걸.
내가 뭔 일 있겠냐고 생각해서 뭔 일이 터진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찝찝한 기분은 감출 수 없었다. 나는 속으로 투덜대며 저택의 맨 꼭대기층으로 올라갔다. 마지막으로 둘러볼 장소였다.
저택의 꼭대기층에 있는 거라곤 거대한 복도와 화려하게 장식된 문 하나 뿐이었다. 아마 여기가 카산드라의 방일 것이다.
날개 잃은 악몽을 빼들었다. 자칫 잘못했다간 영주의 방에 칼 빼들고 쳐들어간 미친 놈이 될 수도 있긴 한데, 무기 없이 들어갔다가 기습당해 죽는 것보다야 훨씬 낫다.
전자의 상황에서는 최소한 변명을 할 여지라도 주어질테니까 말이다.
“단장…… 님……?”
문에 팔을 뻗으려다가, 날 부르는 희미한 소리를 듣고 동작을 멈췄다. 고개를 돌렸다. 어두컴컴한 복도 저 편에서 누군가 이쪽을 향해 비척비척 걸어오고 있었다.
머리 위에 쫑긋 솟은 분홍색 토끼귀. 유두와 음부를 간신히 가리는 X 모양의 스티커. 훤히 드러난 가슴과 복부의 맨살. 그 반대급부로 빈틈 하나 없이 꽁꽁 싸맨 팔과 다리.
헬가였다.
“헬가? 어디에 있다가 지금 나타난…….”
나는 반사적으로 헬가에게 다가가려다 잠시 멈칫 했다. 이런 상황에, 저런 이상한 모습을 하고서 걸어오는 사람을 무작정 믿긴 힘들었다. 설령 그게 아는 사람이라 해도 말이다.
날개 잃은 악몽의 칼 끝을 헬가에게로 돌렸다. 미안한 행동이지만, 저기 있는 것이 진짜 헬가고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검증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거기 멈춰, 헬가. 더 다가오지 말고 그 자리에서 얘기해.”
“단장, 님…… 단장님…….”
내가 칼까지 겨누며 멈추라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헬가는 여전히 비척비척 걸어오고 있었다. 다리를 멈출 생각이 전혀 없는 듯 했다.
거리가 점점 더 좁혀졌다. 고작 X 모양의 스티커 하나만으로 중요 부위를 간신히 가린 흉부지방이 그 걸음에 맞춰 무척 야하게 흔들렸다.
“단장 명령이다. 헬가, 그 자리에 멈춰.”
“명령…… 네. 알겠습니다.”
흐느적거려도 할 때는 하는 철저한 성격 때문인지, 헬가는 반쯤 넋을 놓았음에도 명령이라는 단어에 반응했다.
단장 명령이라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헬가의 몸이 제자리에 우뚝 멈춰섰다. 날개 잃은 악몽이 목젖을 찌르기 직전이었다. 한 발짝만 더 걸어왔어도 분명 찔렸다.
그 전에 기겁한 내가 칼을 내리긴 했겠지만. 여기서 내 손으로 헬가를 찔러 죽일 생각은 추호도 없다.
어쨌든 방금의 일로 하나는 확실해졌다. 지금 헬가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 정상적인 상태였으면 저렇게 칼로 찔리기 직전까지 다가오지도 않았을거다.
복도는 여전히 어두컴컴했기에 거리가 이만큼이나 좁혀지고 나서야 헬가의 얼굴을 똑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잔뜩 상기되어 빨갛게 달아오른 뺨과 얼굴, 열락이 잔뜩 깃들어 있는 숨결, 몽롱하게 떠진 눈동자, 후끈 달아오른 체온과 피부에 송골송골 맺힌 땀.
이런 비유를 하긴 뭣하지만, 나와 몸을 섞으면서 잔뜩 흥분했을 때의 리제 같은 모습이었다.
“이제 좀 이야기가 되겠네. 헬가,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무슨 일이 있었던거고? 카산드라 영주랑 나머지 애들은 어디로 갔는데?”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아무 일도 없었다고? 거짓말인 거 뻔히 보이거든?”
도시로 들어오자마자 여자들 시선이 나한테만 집중되고, 남자는 한 명도 없고, 저택은 텅 비어있고, 간신히 만난 헬가도 제정신이 아닌데 아무 일도 없었다니?
나는 황당한 감정을 담아 헬가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헬가는 내가 이런 반응을 보이든 말든 다시 비척비척 움직였다.
“단장님…….”
“가까이 오지 말랬잖아. 그 자리에서 얘기해.”
날개 잃은 악몽을 칼집에 집어넣고 그 끝으로 헬가를 밀어냈다. 저 모습을 보아하니 손으로 밀어내려 했다간 밀기도 전에 팔을 붙잡힐 것 같았다.
헬가의 몸이 뒤로 밀려나며 크게 휘청였다. 바닥에 쓰러질 뻔 했다가 간신히 균형을 되찾은 헬가는, 몽롱한 눈으로 연신 달아오른 숨결을 내쉬며 내게 시선을 주었다.
그러다 문득, 입술을 혀로 핥았다. 머리에 쓴 토끼귀가 쫑긋거렸다.
“단장님은…… 남자시죠?”
“갑자기 그게 뭔 소리야?”
“단장님. 단장님은 남자 맞죠?”
한 발짝. 헬가의 하반신이 움직인 거리였다. 그 가슴이 위아래로 흔들렸다.
“저는 여자고요. 가슴에 이런 게 달려있으니까요.”
헬가의 양손이 제 가슴을 하나씩 붙잡았다.
그리고는, 그걸 떡 주무르듯이 주물러대기 시작했다.
좌우로 쭉 잡아당겨 땀에 젖은 가슴골을 훤히 드러내거나, 역으로 가운데를 향해 모아서 가슴끼리 비비기도 하고, 무게감을 과시하듯 위아래로 흔들어대기도 했다.
무척이나 선정적인 광경이었지만, 지금 당장은 저걸 보고 흥분이 끓어오르기 보단 어이없다는 감정이 훨씬 강했다. 앞으로 뻗은 칼 끝이 파르르 떨렸다.
“헬가, 너…….”
“단장님. 이래도 모르시겠어요?”
그 몸이 앞으로 한 발짝 다가왔다. 가슴을 주무르던 손이 떨어졌다. 어찌나 강하게 주물러대고 있었는지, 피부에 빨간 자국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남자가 흥분한 여자를 눈앞에 두고 할 짓은…… 하나밖에 없잖아요?”
그 손가락이 자기 유두를 가리고 있는 X모양 스티커를 향해 뻗어졌다. 왼손으로 자기 오른쪽 가슴 밑을 받치고, 오른손으로 유두에 붙여진 스티커를 갉작댔다.
톡, 톡. 검지 손톱이 스티커의 끄트머리를 건드렸다. 스티커 사이로 핑크색 무언가의 모습이 보였다. 헬가의 손짓에는 조금의 망설임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스티커가 조금씩 벗겨지기 시작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