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165)
r 165 – 베히모스 – 2
ㅡ파앙!
방금 전까지 내 몸이 있던 자리를 채찍이 찢고 지나갔다. 날카로운 파열음이 방 전체에 울려퍼졌다.
나는 자세를 바로잡으며 아직 제자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은 베히모스를 관찰했다.
‘성격은 똑같네.’
베히모스는 게임에서도 플레이어와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려 드는 보스였다. 너무 오랜만에 나온 인간 세상인지라 함부로 죽지 않기 위해 몸을 사리는 거라나.
그래서 원거리 신성 주문을 주로 사용하는 성직자에게는 거의 날먹이나 다름 없는 보스였다. 적당히 거리 벌리고 신성 주문만 난사하면 알아서 죽으니까.
반대로 근접전을 강요당하는 나머지 직업군은 고생을 좀 했고.
철저히 몸을 사리면서 공격한다는 컨셉은 닼라 모드에서도 아주 충실하게 지켜져서, 플레이어에게 갑자기 달려든다거나 달라붙는 패턴 같은 건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즉, 일단 거리만 벌려둔다면 패턴을 관찰할 시간이 충분하다는 의미였다.
“자꾸 쥐새끼처럼 도망치기야? 더 아프게 맞으려고?”
내가 여태껏 패턴을 관찰한다고 거리만 유지했어서 그런지, 목소리와 표정에 점차 여유가 돌아오고 있었다. 날 향한 핫핑크색 동공에 다시 눈웃음이 깃들었다.
손에 들린 채찍에는 붉은 기운이 스멀스멀 감도는 중이었다. 저건 브닼 4의 상태 이상들 중, ‘출혈’을 유발하게 만드는 무기였다.
출혈은 전용 인챈트나 출혈 속성이 깃든 무기, 혹은 특정 마법을 이용해 걸 수 있는 상태 이상이었다.
일단 출혈에 걸리면, 플레이어는 그 지속 시간인 15초 동안 달리거나, 무기를 휘두르거나, 구르기를 하는 등 각종 행동을 할 때마다 피해를 입는다.
즉, 가만히 있으면 대미지도 없다. 이론상으로는 15초간 가만히 서 있는다면 아무런 피해도 받지 않고 상태 이상을 끝낼 수 있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이론상이다.
마지막으로 남은 적이 죽으면서 출혈 게이지가 터진 것이 아닌 이상에야, 적들이 플레이어를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달려들 텐데 어떻게 가만히 있겠는가. 그러다 맞아죽는다.
특히 포션을 마시는 동작도 행동으로 판정되어 피해를 입히기 때문에, 출혈에 걸린 상태에서 체력 회복 포션을 마시면 말 그대로 피가 줄줄 샌다는 느낌이 뭔지를 제대로 보여줄 수 있었다.
‘어차피 나한테는 의미 없지만.’
다른 상태 이상들이랑 비슷하다. 출혈을 유발하는 공격에 맞으면 게이지가 터지기도 전에 픽 죽어버릴 텐데 뭐하러 신경쓰려고.
“내가 들고 있는 게 채찍이라 무서워서 그래? 걱정 마, 자기! 이것 봐! 안 아파 보이지?”
베히모스가 채찍을 자기 팔뚝만한 길이로 줄이더니 자기 몸을 때려대기 시작했다. 가슴과 엉덩이, 허벅지가 채찍에 휘감기며 찰싹찰싹 하는 소리를 냈다.
아앙, 앙 하고 야하기 짝이 없는 신음 소리도 같이 들렸다. 어디 야동에서나 들을 수 있을 법한 신음소리였다.
채찍이 때리고 지나간 자리의 살점이 터져나가며 피가 흘러나왔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회복되며 새로운 살점이 돋아났다. 자기 자신의 공격도 회복이 적용되는 모양이었다.
“뭐 해? 설마 이런 여자를 눈앞에 두고 구경만 할 생각은 아니지?”
내가 여전히 바닥에 못 박힌 듯 서 있자, 베히모스가 자기 가슴과 엉덩이를 한껏 강조하는 자세로 몸을 베베 꼬았다.
정말 놀랍게도, 저 폭력적인 몸매와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는데 음심이 전혀 동하질 않았다. 아마 몸매가 너무 과해서 그런 듯했다. 과유불급이라더니 엣 말이 틀린 게 하나도 없었다.
비율로만 따져본다면 가슴에 몸통이 매달려 있는 수준인 닉스보다도 훨씬 더했으니 말 다한 거다.
“난 여자가 달아올랐는데 애태우는 남자는 싫더라!”
베히모스가 먼저 행동에 나섰다. 그 오른손이 휘둘러졌다. 다시 원래의 길이로 돌아온 검은색의 SM용 채찍이 쏜살같이 날아들었다.
날개 잃은 악몽을 휘둘러 채찍을 튕겨냈다. 튕겨내자마자 곧바로 다음 공격이 들어왔다. 검은색 채찍과 날개 잃은 악몽이 부딪히며 착 달라붙는 소리를 냈다.
팔과 어깨에 집중했다. 원거리에서 채찍만 날려대는 보스인지라, 거리를 벌린다면 패턴이라고 부를만한 것은 거의 없었다.
저 악마도 굳이 플레이어에게 다가오는 게 아니라 멀리서 채찍만 휘둘러댔고. 그러니 나는 채찍을 튕겨내는 일에만 집중하면 됐다. 쉬운 일이었다.
‘정박, 엇박, 한 박자 늦게, 정박, 정박, 엇박, 엇박, 엇박, 정박, 그리고 마지막도 정박.’
물론 엇박과 정박이 랜덤하게 섞여서 나오는데, 그 와중에 반 박이 늦는 엇박이 아니라 한 박이 늦는 엇박까지 포함된 저딴 쓰레기같은 패턴을 다 외웠다는 전제 하에서 말이다.
저런 건 그냥 처맞고 죽어가면서 타이밍을 외우는 수밖에 없었다. 모르면? 엇박 페이크에 낚이거나 역으로 정박을 엇박처럼 튕겨내려 했다가 조각상으로 사출당하겠지.
“끝까지 이러기야, 자기? 응?”
내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공격을 죄다 받아치자, 베히모스의 눈에서 안광이 흘러넘쳤다. 채찍이 두 갈래로 찢어지더니 조금 전보다 약간 느린 속도로 날아들었다.
가드를 올려 전투 피로를 줄이다가 타이밍에 맞춰 옆으로 굴러서 빠져나갔다. 채찍이 허공에서 빙글빙글 꼬였다.
방금은 잡기 패턴이었다. 괜히 느린 공격이라 쉽겠다면서 좋아라고 튕겨내려 했다간, 무기랑 팔을 하나씩 붙잡힌 채로 끌려가서 저 가슴 사이에 머리가 파묻힐거다.
그리고 척추뼈가 부러지겠지.
게임에서는 그런 공격을 당하고도 HP만 남아있다면 멀쩡히 일어서겠지만, 여기서는 아니다. 죽거나 혹은 죽는 것만도 못한 꼴이 되거나 둘 중 하나다.
채찍이 되돌아가는 틈을 타서 땅을 박차고 달려나갔다. 저런 연타 패턴이 늘 그렇듯이, 전부 다 튕겨내거나 피하면 아주 확실한 딜타임이 나온다.
베히모스는 갑자기 거리를 좁히려 드는 나를 보고 당황하며 채찍을 들었지만, 내 접근이 더 빨랐다. 은은한 달빛을 발하는 날개 잃은 악몽이 베히모스의 옆구리를 베고 지나갔다.
“꺄아아아아악!”
찢어질듯한 비명이 터져나왔다. 베히모스는 비틀거리며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가, 반대편 벽 쪽에서 나타났다. 순간이동이었다.
공격에 썼다면 사람 골머리를 좀 썩혔을 기술이겠지만, 다행스럽게도 저걸 공격용으로 사용하는 패턴은 없었다. 지금도 저걸 공격용으로 사용할 생각은 없는 듯했다.
“아파, 아파, 아파, 아파, 아파!”
칼에 베인 자리를 부여잡은 베히모스가 발버둥을 쳤다. 그대로 눈물 몇 방울을 뚝뚝 흘려대다가, 입을 우물우물거리더니 왼손을 턱 밑으로 가져가서 베에ㅡ 하고 타액을 잔뜩 뱉어냈다.
그리고 침으로 질척한 손바닥을 옆구리에 열심히 문질렀다.
“너……!”
“겨우 그거 베였다고 난리야? 엄살도 심하지.”
조롱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저놈의 전체 HP에 비하면 평타 한 대 대미지는 별것도 아닐 건데, 무슨 팔이라도 떨어져 나간 것마냥 울먹이기까지 하고 있으니 말이다.
베히모스가 눈물 맺힌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엄살?”
“판별이 끝났습니다, 이단심판관님.”
휘하의 전투 수녀가 마지막 한 명까지 ‘이단 판별’을 끝마친 걸 확인한 스텔라는, 철퇴를 바닥에 쿵 내리찍었다. 붉은 피와 뇌수, 살점이 근처 땅으로 후두둑 떨어졌다.
그 앞에는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과 머리가 터진 시체들이 대략 2대1 정도의 비율로 늘어서 있었다.
정확히는, 멀쩡히 살아있는 게 아니라 아직 악마에게 영혼이 붙잡히지 않은 사람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열심히 태양과 달께 구원을 바라면, 적어도 죽은 후에 지옥으로 끌려갈 일은 없을테니.
하지만 머리가 터진 사람들은 이미 늦었고, 그렇기에 깔끔히 조치를 취해주었다.
스텔라는 온갖 액체와 덩어리로 범벅이 된 철퇴에서 손을 놓고 셀레네를 돌아보았다. 셀레네는 조금 떨어진 자리의 나무 앞에서 열심히 팔을 꼼지락대는 중이었다.
“기도 시작하세요.”
“예, 이단심판관님.”
스텔라를 향해 머리를 꾸벅 숙여보인 전투 수녀들이 철퇴와 방패를 내려놓았다. 쿵, 쿵 소리가 연속해서 들렸다. 그 허리춤에서 일제히 신성 촉매가 꺼내졌다.
전투 수녀들은 땅에 무릎을 꿇고 신성 촉매를 손으로 감싸쥔 채 기도를 시작했다. 찬란한 황금색의 태양빛이 뿜어져 나와 멍하니 주저앉은 사람들의 모습을 뒤덮었다.
그걸 확인한 스텔라가 셀레네의 근처로 다가갔다.
“성과는 좀 있었어요?”
“원하는 정보를 얻었습니다.”
놈의 입 근처에 귀를 가져다 대고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던 셀레네가 몸을 일으켰다. 그 앞에는 웬 커다란 핏덩이 하나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피부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조리 벗겨지고, 두 눈이 파이고, 코와 귀도 잘려나가고, 이빨이 모두 뽑히고, 잇몸조차 뭉게지고, 입이 귀밑까지 찢어지고, 몸 전체의 근육 조직이 상당수 잘려나간.
막 잡아왔을 때와 비교해서, 몸의 크기가 1/2로 줄어있는 악마 숭배자였다.
더 놀라운 점은 저런 꼴을 하고도 의식이 멀쩡하리라는 사실이다. 단지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모두 뜯겨나갔기에 제대로 표현을 하지 못하고 있을 뿐.
“성과가 있었다니 다행이네요. 뭐라던가요?”
“베히모스가 부활했다고 합니다.”
“……쯧, 조금 더 빨리 움직일 걸 그랬나봐요. 악마가 부활했다니, 여기를 정화 구역으로 선포해야 할까요?”
스텔라는 눈살을 찌푸리며 도시 내부를 쳐다보았다.
정말 어마어마하게 큰 도시였다. 이단심판관과 이단심문관 휘하의 전투 수녀를 모두 데려왔음에도 이곳 전체를 틀어막으려면 한참은 모자랄 만큼.
마음같아서는 성국에 지원을 요청하고 싶지만, 글쎄. 스텔라와 셀레네 휘하의 정예 전투 수녀들이 아니라 일반 전투 수녀들이 악마와의 싸움에서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였다.
이제 그 더러운 괴물도 없겠다, 자유의 몸이 되신 교황 성하께서 직접 지원을 와주신다면 또 몰라.
셀레네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는 없을 겁니다, 이단심판관. 저것의 말에 따르면 아직 불완전한 부활일 가능성이 큽니다.”
“하긴, 그렇겠네요. 악마가 정말로 완전하게 부활했다면 여기에 영혼을 빼앗기지 않은 사람이 남아있을 리 없겠죠. 그러면 우리로도 충분할지도요?”
초록색 눈동자가 황금빛 광휘 내부에서 쓰러져 있는 사람들을 향했다. 영혼을 빼앗기지 않은 사람이 저 정도로 많이 남아있다는 건, 그만큼 악마의 힘이 불완전하다는 의미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먼저 들어가서 내부의 사람들을 ‘판별’ 하여주시겠습니까, 이단심판관?”
“당연히 그래야죠. 이단심문관 당신은요?”
셀레네의 보라색 눈동자가 자기 휘하의 전투 수녀들 손에 들린 ‘심문 도구’들을 가리켜보였다. 스텔라는 그 뜻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악마 숭배자와 볼 일이 남았다는 뜻이었다.
이제 저것은 마지막 숨결 하나까지 철저하게 고통받은 뒤, 영혼의 찌꺼기 중에서도 찌꺼기만 남은 채 지옥으로 던져질 것이다.
스텔라도 인간을 고문하는 방법은 아주 잘 안다고 자부할 수 있었으나, 셀레네가 지닌 기술에 비하면 스텔라의 기술은 갓 걸음마를 뗀 아기나 마찬가지였다.
제 휘하의 전투 수녀들조차 기가 질릴만큼 잔혹하고 지독한 것이 셀레네의 이단 심문이었으니 말이다.
“여기 있는 사람들에게 신성 장벽을 펼쳐줄 한 명만 남고, 나머지는 절 따라오세요. 안으로 진입할 테니.”
철퇴를 다시 어깨에 짊어진 스텔라가 성 정문을 통해 도시 내부로 성큼성큼 걸어들어갔다. 몇 명을 제외한 나머지 전투 수녀들이 일제히 그 뒤를 따랐다.
“3명씩 뭉쳐서 도시 전체의 사람들을 판별하면 돼요. 두 명이 남을 테니 저를 따라오고요.”
명령이 떨어지자, 전투 수녀들은 레이피어를 얼굴 앞에 수직으로 세우거나 철퇴로 방패를 텅텅 두드리며 기합을 불어넣었다. 그리고는 곧장 3명씩 뭉쳐 도시 곳곳으로 향했다.
바로 뒤에서 따라오던 두 명만이 남자, 스텔라가 몸을 돌렸다.
“자, 서둘러요. 우리는 따로 갈 곳이 있거든요.”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전투 수녀 하나가 질문했다. 스텔라는 당연한 거 아니냐는 투로 답했다.
“당연히 이곳 영주의 저택이죠.”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