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166)
r 166 – 베히모스 – 3
“케흑! 콜록, 콜록!”
피 섞인 기침을 잔뜩 토해낸 베히모스가 순간이동으로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는 비틀거리며 도망치려다가 몇 걸음만에 풀썩 주저앉았다. 몸 전체가 상처 투성이였다.
앞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저벅, 내 신발이 찢어진 레드카펫 사이를 내딛으며 발소리를 냈다. 상처 투성이로 변한 몸이 움찔 떨렸다.
베히모스는 공포와 발악이 절반씩 섞인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너, 너 대체 뭐야! 이단심판관이라도 돼? 뭐 하는 놈인데 나를……!”
“이단심판관은 따로 있는데? 애초에 난 성국 사람도 아니거든. 굳이 따지자면 제국 사람이겠지.”
한 발짝을 더 내딛었다. 히익! 하고 새된 비명을 흘린 베히모스가 허둥지둥 몸을 일으켰다. 채찍을 든 오른손이 벌벌 떨려댔다.
이러니까 꼭 내가 악당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금 이 장면만 뚝 떼놓고 본다면 누가 봐도 선량한 여성을 괴롭히는 검은색 괴한이었다.
“그 역겨운 신성력 냄새 때문에 머리까지 아플 지경인데 성국 사람이 아니라고? 날 조롱이라도 하려는 거야?”
역겨운 신성력 냄새, 라. 저게 뭘 의미하는지 콕 집어 대답할 순 없겠지만, 아마 교황들이 내게 걸어주었던 축복을 의미하는 듯했다.
게임에서는 안 나왔던 거라서 그 축복이 정확히 무슨 효과인지는 모른다. 그래도 일단 뭔가 좋은 쪽이긴 할 것이다. 설마 교황들이 나한테 디버프를 걸었을까.
베히모스는 엄청나게 억울하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저 입장에선 억울하긴 하겠지. 부활하자마자 마주친 게 나였으니까 말이다. 정말 재수가 지지리도 없는 놈이었다.
물론 저대로 방치해뒀다면 악마다운 짓을 해댔을 테니 딱히 동정심이 들지는 않았다. 당장 내가 없었더라면 이 도시부터 그대로 끝장이었을거다.
“이이익! 죽어! 죽어버려!”
이를 악문 소리와 함께 채찍이 날아들었다. 나는 그 동작을 유심히 살피다가, 채찍이 닿기 직전에 재빨리 굴러서 앞으로 파고들었다.
채찍이 방금 전까지 내가 서 있던 자리를 후려갈겼다. 자세를 바로잡고 다음 패턴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연격은 튕겨내면 되고, 잡기는 피하면 되고, 둘 다 아니라면 딜타임이다.
베히모스는 그대로 채찍을 회수했다. 단순한 원거리 견제기였던 모양이었다. 그 말인 즉, 한 방 먹여주기에 충분하다는 의미다.
단숨에 거리를 좁히며 날개 잃은 악몽을 양 손으로 붙잡고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검신이 스스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신성 속성 상태의 날개 잃은 악몽이 지닌 특수 능력이었다.
베히모스가 원거리 견제기를 쓴 직후에, 타이밍만 제대로 맞춘다면 이 특수 능력을 사용할 시간이 충분히 확보 된다. 수많은 유저들이 검증한 사실이다.
게다가 저 놈은 체격이 인간보다 조금 큰 수준이라서 그런지 슈퍼 아머가 적용되는 패턴도 없으니, 특수 능력으로 한 방 먹이고 경직에 걸린 틈을 타 빠져나올 수도 있었다.
날개 잃은 악몽에서 찬란한 광휘가 터져나왔다. 작은 태양과도 맞먹는 광량의 빛이 보스룸 구석구석을 밝혔다.
찬란한 태양빛 사이로 은은한 달빛이 섞여들어갔다. 백색광과 은색광이 서로 뒤섞이며 마구 소용돌이쳤다. 검 전체가 새하얗게 변했다.
팔꿈치 뒷부분까지 완전히 뒤덮을 만큼 강렬한 빛무리가 내 머리 바로 위에 있건만, 신기하게도 눈은 전혀 부시지 않았다.
반대로, 베히모스는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지르며 자기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게임에서는 특수 능력을 사용해도 저런 행동을 하진 않았었는데.
의문을 뒤로 하고 팔을 휘둘렀다.
ㅡ콰아아아아앙!
어마어마한 폭음과 함께, 하늘에서 신성한 빛이 내리꽂혔다.
베히모스가 머리부터 땅바닥에 처박혔다. 순간적으로 터져나온 백색광이 주위를 새하얗게 물들었다. 눈이 전혀 부시지 않음에도 반사적으로 눈을 가렸을만큼 강렬한 빛이었다.
빛무리는 채 1초도 되지 않는 시간만에 사라졌다. 그러자 베히모스의 모습이 드러났다. 찍 소리도 하지 못하고 바닥에 머리를 처박은 모습이었다.
‘……어라?’
나는 어리둥절한 눈으로 손에 들린 날개 잃은 악몽과, 바닥에 머리부터 처박힌 베히모스, 내 키보다도 더 커다란 구멍이 뚫린 저택 천장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거의 박살이 나다시피 한 천장으로 푸른 하늘이 훤히 보였다. 구름들도 뜬금없이 봉변을 당했는지 어느 한 부분이 깨끗하게 증발해 있었다.
방 내부로 환한 태양빛이 쏟아져 들어와 우리 둘을 비췄다.
‘뭐야, 이거? 왜 이렇게 세?’
사용자인 나조차도 당황할 수준의 위력이었다.
모니터로 볼 때는 그냥 화면 바깥에서 하얀색 빛기둥이 내리꽃히는 게 이펙트의 전부였다. 실내에서 쓴다고 천장이 부서진다거나 하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었다. 빛이 정말로 하늘에서부터 시작된 듯 구름이 모조리 찢겨져 있었고, 저택의 천장도 박살나 있었다.
‘아니, 그 여자는 대체 뭔 무기를 만든 거야?’
대체 뭔 짓을 하면 성국과는 연관도 없던 사람이 이런 무기를 만들 수 있는건지 의문이 들었다. 당장 성국에서도 이런 위력을 가진 무기는 몇 안될 거다.
뭐 신한테 직접 계시라도 받았나.
“꺼억…… 꺽…….”
베히모스의 입에서 처절한 꺽꺽거림이 새어나왔다. 머리카락은 어깨 아래로 죄다 타버려서 단발로 변했고, 남은 부분도 시커멓게 그을려서 색이 완전히 변해버렸다.
몸 전체가 회색빛에 가까웠다. 내가 만들어 놓았던 자상을 모조리 덮어버릴 만큼 심각한 화상이었다. 다시 봐도 어이가 없었다.
괜스레 날개 잃은 악몽을 허공에 대고 몇 번 휘둘렀다. 내가 저지르고도 이게 맞나 싶었다. 난 그냥 적당히 아프게 때리는 걸 기대했었는데.
이렇게 베히모스를 산 채로 불태워버리다시피 하고, 저택 천장을 박살내버리고, 하늘에 구멍을 뚫는 수준의 빛기둥을 소환하는 것 따윈 조금도 기대하지 않았었다.
“너…… 이, 이…….”
한동안 땅에 머리를 처박은 채로 꿈틀거리기만 하던 베히모스가 고개를 들었다. 그 얼굴이 조금씩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아.’
그 모습을 보자마자 퍼뜩 정신이 들었다.
이게 어떻게 되먹은 상황인지는 베히모스를 완전히 처리한 이후에 생각해도 늦지 않다. 지금은 저걸 처리해놓는 일이 우선이었다.
베히모스는 날개 잃은 악몽을 움켜쥔 채로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나를 보고 꿈틀거리며 달아나려고 했지만, 몸이 워낙에 망가져버린지라 무의미한 행동밖에는 되지 않았다.
“안 돼! 오지 마! 싫어!”
그 입에서 연약한 비명이 터져나왔다. 목소리가 실시간으로 갈라져가고 있었다. 마치 쇠로 쇠를 긁어대는 듯한 기분나쁜 울림이 간드러지는 미성 사이에 섞여들었다.
무시하고 다가갔다. 흘러내린 피부가 입 근처를 뒤덮자, 말이 드문드문해졌다.
“어떻게, 온…… 인간 세상인데…….”
얼굴이 무너지는 속도가 빨라졌다. 잘 익은 복숭아처럼 살짝 연분홍색을 띠던 피부가 점차 거무죽죽하게 바뀌었다.
“자, 진짜 모습을 보여줄 시간이다.”
“…….”
나는 베히모스의 목을 노리고 날개 잃은 악몽을 치켜들었다. 금색과 은색으로 반씩 나눠진 검신이 태양빛을 받아 찬란하게 빛났다.
그걸 본 베히모스가 마지막 발버둥을 쳤다. 열린 입술 사이로 흉측하게 돋아난 송곳니가 보였다. 몸에서 흘러나오는 피가 서서히 검은색으로 변했다.
날개 잃은 악몽을 내리쳤다. 서걱, 그 목은 너무나도 손쉽게 잘려나갔다. 역으로 내가 어리둥절해졌다.
인간의 목조차도 한 번에 자르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데, 하물며 인간보다 기본적으로 몇십, 몇백 배는 더 튼튼한 악마의 목은 어떻겠는가.
그런데 나는 그걸 별로 힘조차 들이지 않고, 무슨 칼로 케이크를 자르듯이 잘라버렸다.
‘신성력 때문인가?’
어쩌면 날개 잃은 악몽에 깃든 신성력 때문인지도 몰랐다. 나로서도 확실한 건 아니었지만.
데구르르, 몸통과 분리된 머리가 나를 향해 굴러왔다. 나는 그걸 도로 걷어찼다. 머리가 다시 몸통 옆에 안착했다. 두 눈이 부릅떠져 있었다.
문득, 놈의 외형이 바뀌기 시작했다.
터무니 없이 커다란 가슴과, 저러다 부러지는 게 아닐까 싶었을 만큼 잘록한 허리, 포동포동한 허벅지가 사라지고 몸 곳곳이 부풀어올랐다.
피부가 흉측하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찢겨갔다. 마치 악어 가죽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 피부였다. 하지만 악어 가죽보다는 훨씬 더 흉측했다.
체형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비현실적인 볼륨감을 자랑하던 몸매는, 다른 의미로 비현실적인 볼륨감을 자랑하는 몸매로 바뀌었다.
어디 야겜에서 따왔다고 해도 믿었을법한 외형이 사라지고, 물에 며칠동안 탱탱 불려놓은 돼지처럼 생긴 외형이 나타났다.
머리도 비슷했다. 여성들의 외모가 한참 상향 평준화된 이 세상에서도 미인 소리를 듣기에 충분했던 얼굴은 온데간데 없고 이상한 색깔의 염소 머리로 변해 있었다.
“으.”
나는 눈살을 확 찌푸렸다. 예상보다 훨씬 더했다. 게임에서는 그냥 더럽게 못생겼다 정도였는데, 여기서는 보고 있자니 불쾌감이 들 정도였다.
‘헬가 매혹은 풀렸겠지?’
생각을 다른 데로 돌렸다. 베히모스가 죽었으니 아마 헬가에게 걸린 매혹도 풀리긴 했을 거다.
이제 남은 건 악마가 강림했다는 소식을 듣고 100% 확률로 이곳에 찾아올 성국의 이단심판관과 이단심문관에게 순수성을 검증받는 일뿐인데.
나야 괜찮을테지만, 헬가나 일반 단원들은 만약 재수가 지지리도 없다면 영혼이 악마에게 붙잡혔다며 ‘구원’ 당할 수도 있었다.
그건 아무리 나라도 못 막는다.
ㅡ삐걱…….
순간, 문이 아주 조심스럽게 열렸다. 문 너머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헬가인가?’
역시 매혹이 풀린 모양이었다. 제정신을 찾았다면 매듭은 쉽게 풀 수 있었을테지.
“헬가, 정신이 좀…… 어?”
나는 헬가를 찾으며 몸을 돌렸다가, 예상치 못한 인물을 확인하고 멈칫 했다. 나와 마찬가지로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도 내가 여기 있으리라고는 예상 못했는지 제자리에 쩌적 굳었다.
우리는 그렇게 마주보고 굳은 채로 한참을 서 있었다. 한참을 서 있다가, 저쪽에서 간신히 먼저 입을 열었다.
“……귀빈, 님?”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스텔라였다. 그것도 어안이 잔뜩 벙벙해져 있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