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167)
r 167 – 베히모스 – 4
‘이단심판관이 벌써 왔다고?’
내가 알기로, 스텔라는 아직 성국에 있어야 했다. 베히모스를 잡는 것은 이단심판관이 아니라 플레이어였으니까 말이다.
플레이어가 악마 잡는 동안 놀고만 있었던 거냐는 소리 안 들으려면 당연히 성국에 있어야지.
베히모스가 잡힌 직후에 문을 열고 들어왔다는 건, 여기까지 순간이동으로 왔다고 가정하더라도 최소 몇 시간 전에 성국을 출발했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베히모스가 완전히 부활한 것도 고작해야 몇 시간 전의 일이다. 내가 룬을 얻으러 출발하기 직전에 여기 잠시 들렀을 때는 도시가 나름 멀쩡히 돌아가고 있었다는 게 그 증거다.
시간 간격이 너무 좁았다. 마치 원래부터 베히모스가 부활하리라는 걸 알고 있었기라도 한 것처럼.
“…….”
스텔라 역시 나와 비슷한 심정인 듯 했다. 나를 보고 엄청나게 놀란 눈치였다. 경악으로 가득 들어찬 얼굴을 한 채, 나를 향해 입을 떡 벌린 모습으로 제자리에 굳어 있었다.
그 손가락 끝이 파르르 떨렸다. 녹안이 쉴 새 없이 진동하며 탱탱 불어터진 돼지처럼 변해버린 베히모스와 그 앞에 서 있는 나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손아귀에 힘이 풀렸는지 철퇴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쿵! 소리가 들리고 근처 바닥이 반쯤 내려앉았으나 그 쪽에는 누구 하나 신경 쓰지 않았다.
“이단심판관님, 괜찮으십니까?”
먼저 침묵을 깬 사람은 나였다. 이대로 가만히 마주보고 서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 저…… 네, 네…….”
네, 라는 대답이 돌아왔지만 표정이건 말투건 괜찮은 것과는 거리가 한참 멀어보였다. 나는 속으로 한숨을 푹 내쉬고, 날개 잃은 악몽을 허리춤에 집어넣었다.
“여긴 어떻게 오셨어요? 전 이곳 영주가 부탁해와서 잠시 들른 건데, 이단심판관님은요? 설마 우연히 오셨다고 대답하시려는 건 아니겠죠?”
여전히 경악스러운 얼굴을 숨기지 못하던 스텔라는, 내 질문에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그, 베히모스의 흔적을 잡았는데…… 이곳으로 연결돼서…… 교황 성하께서, 그, 이제 괴물도 죽었으니 확실하지 않은 일도 꼼꼼히 살펴볼 수 있다고…… 한 번 가보라고 하셔서…….”
‘아.’
말투가 워낙에 두서없는 데다 띄엄띄엄하기까지 해서 이해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지만, 어떻게 되먹은 인과 관계인지는 대충 알 것 같았다.
내가 신에게 버림받은 피조물을 죽여서 걱정거리도 완전히 사라졌겠다, 성국이 본격적으로 악마 숭배자들의 토벌에 힘을 쓰기 시작한 거다. 그러니 베히모스의 흔적을 더 일찍 잡게 됐고.
베히모스의 흔적을 더 일찍 잡게 됐을 뿐 아니라, 더 이상 신에게 버림받은 피조물의 각성을 대비해 이단심판관과 이단심문관을 남겨 둘 필요가 없어졌으니 마음껏 토벌을 내보낸 거겠지.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베히모스를 잡는 건 DLC 스토리를 시작하기 전이었고, 이단심판관과 이단심문관이 번갈아서 놈을 감시해야 했을 테니 확실한 증거 없이 토벌을 떠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만약 허탕을 친 동안 다른 곳에서 악마가 깨어난다면 성국에서 출발할 때보다 대응이 훨씬 더 늦어질 테니까.
‘와, 이게 이렇게 굴러간다고?’
성국 찾아갔다가 신에게 버림받은 피조물을 잡은 행동 때문에 지금 스토리가 대체 몇 번을 꼬인 건가 싶었다.
황궁으로 호출받은 일도 그렇고, 세계를 먹는 자가 찾아온 일도 그렇고, 교황들과 나 사이의 관계도 그렇고. 하나같이 피조물 보스전 이후의 스노우볼이었다.
‘그래도 사건이 꼬인 건 아니니까 괜찮겠지.’
스텔라가 일찍 찾아왔다는 건 전혀 나쁜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영지의 혼란을 더 빨리 수습할 수 있으니 좋은 일이으면 좋은 일이지.
어차피 게임에서도 플레이어가 베히모스를 죽이면 이단심판관이 전투 사제들을 거느리고 찾아오며, 시간이 어느정도 흐를 때까지 정화라는 명목으로 도시에 머무른다.
악마에게 한 번 매혹당했던 영주가 내리는 명령보단, 성국의 이단심판관과 전투 수녀들이 내리는 명령이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훨씬 더 안정감 있게 느껴지기도 할 거고.
카산드라에게는 안타까운 일이겠지만, 이후의 일은 스스로 극복해야 한다.
“일단 알겠습니다, 이단심판관님. 그러면 혹시 부탁 하나만 드려도 되겠습니까?”
“아…… 네, 네. 무엇인가요, 귀빈님?”
“제가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이 좀 있는데, 저 대신 악마 뒤처리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는 엄지손가락으로 내 어깨너머에 놓인 베히모스의 시체를 가리켰다. 스텔라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맡긴다는 뜻으로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려주고 방을 나섰다.
그러자마자 등 뒤에서 누군가 풀썩 주저앉는 소리가 들렸다. 딱 봐도 스텔라였다. 그 빛기둥을 본 충격이 정말 어지간히도 컸던 모양이었다.
“…….”
“…….”
복도에는 스텔라를 따라온 전투 수녀 두 명이 서 있었다.
스텔라에 비하면 노출도가 약간 적은 수녀복, 근처에 굴러떨어져 있는 철퇴와 방패. 그리고 나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 중인 얼굴. 여기도 딱히 제정신은 아니었다.
전투 수녀들은 무슨 기적이라도 목도한 것 같이 몽롱한 표정으로 서 있다가, 내 발소리를 듣고 제풀에 화들짝 놀라선 복도 벽에 찰싹 달라붙었다.
그 몸매 탓에 가슴만 잔뜩 튀어나온 자세가 만들어졌다.
나는 애써 시선을 돌리며 헬가를 묶어두었던 자리를 살폈다. 텅 비어 있었다. 커튼을 찢은 것이 아니라 매듭을 풀었는지, 커튼은 군데군데 약간 구겨진 것만 빼면 멀쩡했다.
혹시 헬가를 본 사람이 있지 않으려나, 하는 생각으로 아직도 벽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전투 수녀들에게 시선을 주었다. 내 시선이 닿자, 전투 수녀들이 몸을 파르르 떨어댔다.
저래서야 제대로 된 대답을 듣기는 글러먹었다. 결국 내가 직접 찾아나서야 할 듯했다.
스텔라는 보았다.
저 하늘에 떠 있는 찬란한 ‘태양’으로부터 눈앞의 저택으로 거대한 빛이 내리꽂히는 모습을.
내리꽂히는 빛기둥 근처로 신성한 광휘가 퍼져나가며 마치 한 폭의 장엄한 벽화와도 같은 풍경을 그리던 모습을.
환한 백주대낮임에도 불구하고 태양의 옆에 달의 형상이 그려지던 모습을.
그 모든 것을, 스텔라는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았다.
아니, 스텔라뿐만이 아니었다. 이곳에 있던 모든 전투 수녀들이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아직 성 바깥에 있는 이단심문관 또한 똑똑히 지켜보았을 것이다.
스텔라는 자리에 두 발로 버티고 선 그 짧은 시간에 족히 수백 번을 고민했다. 이대로 무릎을 꿇지 않고 버티어 선 것조차 불경함이 아닐까, 하고.
본인 휘하의 전투 수녀들은 진작부터 그러고 있었다. 철퇴와 방패를 내팽개친 채, 바닥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허리를 숙여 엎드리며 신성한 빛이 강림하였음을 찬양하고 있었다.
혼란스러웠다. 분명 이곳에서 베히모스가 부활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온 것인데, 왜 끔찍하고 더러운 악마의 기운이 아니라 저런 찬란하고도 신성한 광휘가 터져나온단 말인가.
스텔라는 전투 수녀들을 데리고 벌벌 떨리는 몸과 마음을 부여잡으며 저택의 문을 열어젖혔다. 한시라도 빨리 저 빛무리의 정체를 알아야 했다.
그렇게 들어간 저택은 곳곳에 악마의 흔적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평범한 사람들은 전혀 느끼지 못할 정도로 교묘하게 숨겨놓았으나, 이단심판관의 눈을 속이지는 못했다.
하지만, 분명 곳곳에 악마의 흔적이 가득 들어차 있음에도 악마 특유의 역겨운 냄새는 전혀 풍겨오지 않았다. 아마 짐작컨대, 그 빛무리가 삿된 것을 모두 정화해버렸으리라.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한참을 더 올라가, 저택의 맨 윗층에서 유일하게 남은 문을 열어젖혔을 때.
“아아…….”
스텔라는 목도했다.
태양과 달로부터 내리쬐는 찬란한 광휘를 맞으며, 신성이 가득 담긴 무기를 들고, 한낱 시체가 되어버린 악마를 무심하게 응시하는 사내를. 그리고 사내의 주변을 감싼 빛무리를.
불경한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정말 불경하기 짝이 없는 그런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아주 잠깐이나마, 스텔라는 눈앞의 사내가 태양의 교황과 달의 교황보다도 훨씬 더 태양과 달께 가까이 다가간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한 번 가치관이 흔들리자 혼란에 빠지게 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스텔라는 끊임없이 밀어닥치는 혼란 탓에 이후에 벌어졌던 일들을 제대로 기억조차 하지 못했다.
눈앞의 귀빈께서 무엇인가를 계속해서 질문하셨지만, 뭐라고 대답했는지 알 수 없었다. 아니, 그 전에 대답을 했는지도 의문이었다. 무언가를 웅얼거리긴 했는데, 그게 대답이긴 한 건지도.
결국 귀빈께서는 포기하셨는지 스텔라에게 악마의 처리를 맡긴 다음, 그대로 어깨를 몇 번 두드려주고 밖으로 나가셨다. 손이 닿았던 어깨에서 짜릿한 쾌감이 밀려들었다.
몸이 욱씬욱씬했다. 고통과는 또 다른, 미지의 욱씬거림이었다.
“신이시여…….”
그러니, 스텔라가 귀빈의 모습이 사라지자마자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은 것도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을지 모른다.
교황 이상의 신성함이 느껴지는 존재라니, 있을 수 없어야 했기에.
‘하필 도착해도 이런 때…….’
일단은 별다른 말 없이 헤어지긴 했어도, 나는 스텔라의 넋이 나간 듯한 표정에 찝찝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저건 100% 본 거다.
아니, 못 봤을 수가 없었다. 그 정도 크기를 지닌 빛의 기둥이라면 도시 어디에 있더라도 육안으로 확인이 가능했을테니까.
하늘에서 직접 내려온 데다 저택 천장을 박살낼만큼 커다란 빛기둥이었는데, 그걸 못 봤다면 눈이 없거나 물리적으로 관찰이 불가능했거나 둘 중 하나다.
스텔라가 온 것 자체는 혼란을 빨리 수습할 수 있으니 환영할만한 일이었지만, 빛기둥을 본 것은 딱히 환영할만한 일이 아니었다.
‘전투 수녀도 아마 있는 대로 다 긁어모아서 왔을거고.’
게임에서는 이단심판관이 직접 자기 휘하의 전투 사제들을 전부 다 데려왔다고 말해준다.
하물며 베히모스가 토벌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뒤늦게 찾아왔을 때조차 그런데, 자신들이 직접 베히모스를 토벌하기 위해 찾아왔다면 대체 얼마나 되는 병력을 동원했으리란 말인가.
그 말인 즉, 스텔라가 베히모스의 토벌을 위해 데려왔던 수십 명 단위의 전투 수녀들이 방금 하늘에서부터 내리꽂힌 빛의 기둥을 목격했을 확률이 아주 높다는 것이다.
그리고 방금 본 것과 비슷한 반응일 테지.
‘별 수 없나.’
나는 그러려니 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고, 계속 생각하고 있어봤자 방법이 있지도 않으니까.
어차피 이런다고 성국에서의 내 지위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교황들의 귀한 손님이라는 브로치를 받은 시점에서, 내 실질적인 지위는 사실상 교황 바로 밑이었다.
그 교황들은 주변에 사람이 없을 때 자신에게 반말을 써달라고 부탁해 올 만큼 나와 친밀한 관계고. 그러니 어쩌면 교황과 동급이거나 그 이상일 수도 있었다.
어디 그 뿐이던가. 이단심판관과 이단심문관도 확실히 내 편이었다.
스텔라와 셀레네는 내가 성국 지하의 괴물을 잡았단 사실을 알고 있는 데다 교황과 몸을 섞은 사이라는 사실도 알고, 스텔라는 내게 루치아란 개인적인 빚도 있다.
성국의 핵심 그 자체인 태양의 교황, 달의 교황, 이단심판관, 이단심문관이 모두 내 편인 시점에서, 내가 지닌 권력은 사실상 무소불위에 가까웠다.
그러니 거기에 이상 현상 하나가 더 추가된다고 해서 무언가 극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그럴 일은 없을 거다.
‘이거 헬가를 대체 어디서 찾아야 되는…… 어?’
나는 헬가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를 고민하다가, 복도 저 편에서부터 들려오기 시작한 발소리를 듣고 걸음을 멈췄다. 매혹에 걸린 헬가가 나를 찾아왔을 때와 비슷한 구도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그림자 속으로 얼핏 보이는 머리카락이 은색이었다. 그리고, 몸을 한 바퀴 돌고도 남을만큼 길었다.
“셀레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