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168)
r 168 – 베히모스 – 5
인영의 정체는 셀레네였다.
스텔라와 똑같이 멍한 표정을 한 채로 복도를 걸어오던 셀레네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몸을 파르르 떨더니 살짝 젖어있는 목소리로 질문했다.
“……귀빈이시여, 당신께서 벌이신 기적이셨습니까?”
“뭐가 말이죠?”
“하늘에서 나타났던 그 빛의 기둥이, 귀빈께서 일으키신 기적이셨냐는 질문이었습니다.”
‘역시.’
셀레네도 봤구나,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리고 셀레네까지 봤다면 이 도시에 있을 나머지 전투 수녀들은 무조건 봤을 거다. 이미 예상했던 사실이긴 하지만 확답을 받으니 기분이 묘했다.
“그렇습니다.”
내가 순순히 그렇다고 답하자 그 눈이 휘둥그레졌다. 셀레네는 그 상태로 한참을 굳어 있다가,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죄, 죄송…… 죄송, 합니다. 귀빈이시여. 너무 놀라서…….”
“괜찮습니다. 충분히 이해하니까요. 이단심판관님도 그런 반응이셨거든요.”
“이단심판관도…….”
셀레네가 멍히나 읊조렸다.
“그런데, 여긴 어떻게 오신거죠? 이단심문관님도 베히모스 때문에 오셨습니까?”
솔직히 여기서 셀레네까지 만날 줄은 몰랐다. 스텔라야 게임에서도 봤으니 그렇다 치는데, 셀레네는 아니었으니까. 이것도 신에게 버림받은 피조물을 잡은 여파인 듯 했다.
“……예. 저도 교황 성하의 명령을 따라, 그 불경한 악마를 잡으러 왔습니다.”
멍한 표정을 한 와중에도 셀레네는 순순히 대답했다. 하도 놀라서 내 질문에 제대로 대답조차 못하던 스텔라보다는 훨씬 더 침착한 모습이었다.
“그러면 마침 잘 됐네요. 이 저택 꼭대기 방에 그놈 시체가 있을 겁니다. 이단심판관님께 뒤처리를 맡기긴 했는데, 이단심문관님도 같이 계신다면 훨씬 더 빨리 끝나겠죠. 저는 아직 할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내가 옆을 지나치기 직전, 연신 입술을 달싹거리던 셀레네가 나를 슬쩍 돌아보았다.
“……귀빈이시여.”
“네?”
발을 멈췄다. 뭔가 할 말이 있는 눈치였다.
“……실례가 된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만, 잠시…… 폐를 끼쳐도 괜찮겠습니까?”
그 눈망울이 살짝 젖어들었다. 혹시 울음을 터뜨리려는 건가 싶어서 순간적으로 멈칫 했지만, 자세히 보니 일단 그러려는 것은 아닌 듯 했다.
내가 대답이 없자, 그걸 승낙의 표현으로 받아들인 건지 셀레네가 자기 가슴 앞에 양 손을 모으고 잔뜩 상기된 얼굴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입으로는 실례가 된다고 말했다지만, 그렇다 해서 멈출 생각은 없어 보였다.
날 향해 점차 젖어드는 눈망울이 제법 부담스러웠기에 무심코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반투명한 타이즈 너머로, 가슴 첨단에서 빳빳하게 솟아 있는 핑크색 돌기가 눈에 들어왔다.
허둥지둥 시선을 다시 위로 올렸다. 유두를 쳐다볼 바에는 차라리 시선을 마주치고 있는 게 낫다.
셀레네의 앵둣빛 입술 사이로 하아, 하아 하는 달뜬 신음이 흘러나왔다. 여자의 향기가 잔뜩 섞인 숨결이 내 입술에 맞닿았다. 축축하고 따뜻했다.
내 바로 앞까지 다가와, 왼쪽 가슴에 손을 얹은 셀레네가 눈을 감았다.
“뭘 하시려고요?”
“……죄송합니다, 귀빈이시여.”
셀레네는 내 질문에도 단지 사과만을 건넨 채로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대체 뭘 하려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한동안 내 심장 근처에 손을 올린 자세로 눈을 감고 있던 셀레네는 시간이 제법 흐르고 난 뒤에야 천천히 눈을 떴다. 젖어있던 눈망울이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되었습니다. 정말로, 정말로 죄송합니다. 귀빈이시여.”
“죄송할 것 까지는 없고요. 왜 그러셨던 건지만 알려주시면 감사하겠는데요.”
“……죄송합니다. 귀빈께서 빛의 기둥을 만드셨다니, 그 신실함이 얼마나 되는지를 알아보고 싶어서…… 상대의 신앙을 측정하는 것은 심히 무례한 짓인 것을 알면서도 저질렀습니다. 처벌을 원하신다면 달게 받도록 하겠습니다.”
고개를 푹 숙인 셀레네가 또다시 사과를 건넸다. 정말 진심으로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몰라하는 태도였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셀레네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는데, 일단 나는 신을 믿지 않으니까. 나한테 신실함이란 그저 포인트를 찍으면 올라가는 스탯에 불과했다.
‘어차피 측정해봤자 얼마 되지도 않을텐데.’
그리고 내 신실함을 측정했다 쳐도, 아마 성국의 평균치에조차 미치지 못할 것이다. 내 신앙 스탯은 고작 4에 불과하고, 신성력 스탯도 10밖에 되지 않으니 말이다.
‘아, 그러면 한 줌밖에 안되는 신앙으로 그런 기적을 발휘했다면서 더 신기하게 여기려나.’
어느 쪽이든 가불기였다.
“일단 알겠습니다. 대신, 저도 이단심문관님께 하나만 질문드려도 될까요?”
측정치가 어떻게 나왔는지는 묻지 않기로 했다.
결과가 어느 쪽이든지 내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될 거고, 셀레네가 저렇게까지 죄책감을 느껴대고 있으니 최대한 빨리 주제를 돌리고 싶어서이기도 했다.
“……예, 귀빈이시여. 무엇이 궁금하십니까?”
“혹시 헬가라는 이름의 기사가 어디에 있는지 보셨나요? 키는 저보다 한참 작고, 어깨까지 내려오는 단발에ㅡ”
“아, 혹시 귀빈 휘하의 기사단을 의미하시는 것이라면, 보았습니다. 제가 찾은 것이 아니라 전투 수녀들이 이단을 판별하는 과정에서 기사단의 정복을 입은 사람들을 한 곳에 모아둔 것이긴 합니다만. 그 기사들 사이에 자신이 칠흑 성야 기사단의 부기사단장이라고 말하던 여기사 또한 있었습니다.”
헬가를 이미 찾았다는 생각에 속으로 안도하다가, 이단을 판별했다는 소리를 듣고 살짝 긴장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그런데, 이단을 판별했다는 건 혹시……?”
셀레네는 표정으로 내가 우려하는 바를 읽었는지,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신을 칠흑 성야 기사단의 일원이라 소개한 기사들 중에는 이단이라고 판별된 영혼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도시 전체로 구역을 확대하여도, 귀빈께서 빠르게 악마를 죽이셔서인지 영혼을 빼앗긴 사람이 드물었으니 안심하셔도 좋을 듯 합니다.”
“……그건 다행이네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칠흑 성야 기사단이 한 명이라도 악마에게 휩쓸려서 전투 수녀에게 ‘구원’ 당했다고 한다면, 입맛이 좀 많이 썼을 거다.
이단을 판별한 방법에 대해서는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같은 여자끼린데 그럴 수도 있지. 내가 당하는 것보다야 부끄러움이 덜하지 않겠는가.
“혹시 그 기사들이 어디에 모여있는지도 아시나요?”
“물론입니다. 안내해 드릴테니 따라와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귀빈이시여.”
몸을 돌린 셀레네가 복도 반대편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옷차림 탓에 반투명한 타이즈로 감싸인 엉덩이의 모습이 고스란히 보였다. 길다란 포니테일이 엉덩이골에서 이리저리 흔들렸다.
엉덩이를 강조해대는 여자들 특유의 걸음걸이와 옷차림이 합쳐져 엄청나게 야했다. 나는 시선을 최대한 셀레네의 뒤통수에 고정시키며 그 뒤를 따라갔다.
오랜만에 보는 셀레네였지만, 그 옷차림은 여전했다.
스텔라와 셀레네가 이 도시를 찾아온 지도 벌써 사흘이 지났다.
이단심판관과 이단심문관, 그리고 그 휘하의 전투 수녀들은 물론, 칠흑 성야 기사단도 아직 카산드라의 도시에 머무르고 있었다.
원래는 바로 돌아가려고 했다. 이후의 일은 스텔라와 셀레네가 알아서 해줄테고, 무엇보다 닉스가 여전히 숲에서 나를 기다리는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도시의 치안을 유지하려면 데려온 전투 수녀들만으로는 일손이 부족할테니 부디 도와주시길 바란다는 간곡한 부탁을 듣고 마음을 바꿨다.
‘속내는 양쪽 다 조금씩 다르지만.’
성국 측이 나를 여기 남기려는 이유야 뻔했다. 내가 만들어 낸 빛의 기둥을 보고 어지간히도 크게 놀랐던 모양이니까, 나를 최대한 옆에 모셔두고 싶겠지.
나도 어떻게 돼먹은 일인지를 알아내려면 교황들의 도움이 필수적이었기에, 어차피 아우로라의 영지로 돌아갔다가 곧장 성국으로 출발하려 했다.
그런데 스텔라와 셀레네가 있다면 닉스를 칠흑 성야 기사단이랑 같이 돌려보내고 곧장 성국으로 향할 수 있으니, 양쪽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셈이었다.
‘뭔가 거하게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긴 한데…….’
하지만, 성국 측의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리만치 떠받들기 시작했다는 부작용 아닌 부작용도 있었다.
특히 전투 수녀들이 나를 보는 시선은 스텔라와 셀레네보다 훨씬 더했다.
이전까지는 그저 ‘교황 성하의 귀하신 손님이니 반드시 잘 모셔야 한다’ 정도였다면, 이제는 ‘기적에 가까운 일을 행하신 분이시니 영혼과 목숨을 갈아넣어서라도 필사적으로 모셔야 한다’ 로 바뀌어버렸다.
저런 터무니 없는 마음가짐 탓에, 대접을 받는 쪽은 나인데도 오히려 내가 죽을 맛이었다.
자신들이 해주겠다며 하도 호들갑을 떨어대서 물 한 잔도 제대로 못 마실 지경이었으니 말 다한 거다.
그 와중에 일반 단원들은 평범하게 잘 대해주는 정도라고 해서 더 어이가 없었다.
‘……헬가는 어떠려나. 그 뒤로 한 번도 못 만났는데. 설마 나랑 비슷한 처지이지는 않겠지.’
결론부터 말하자면, 헬가는 자기가 했던 짓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매혹에 걸려서 자기 가슴을 주물러대며 나를 유혹했던 일부터, 내 어깨에 얼굴을 묻고 냄새를 맡아댔던 일, 그리고 제발 몸을 섞어달라며 애달프게 애원했던 일까지 모두.
부끄러움이 너무 컸던 건지, 처음 마주쳐서 간신히 대답 몇 마디를 들은 이후로는 얼굴을 한 번도 못 봤다. 보고조차 일반 단원이 대신 올렸고.
왜 그러는지는 충분히 납득이 갔다. 나 같아도 부끄러워서 죽기 일보 직전이었을 거다.
명령을 내린다면 내 앞으로 끌고 올 수도 있겠지만, 그러지는 않기로 했다. 부끄러움이 어느정도 가실 때까지 기다려준다고 해서 손해 볼 것도 없고 말이다.
대신 일반 단원들한테는 다 말했다.
내가 딱딱한 분위기를 싫어하는지라 느슨하게 풀어주고 있어서 그렇지, 칠흑 성야 기사단도 엄연히 위계가 존재하니까. 제대로 된 이유 없이 저런 행동을 벌이는 건 납득 못할 거다.
예상대로, 일반 단원들은 헬가가 갑자기 저러는 이유를 듣고 그런 거라면 얼마든지 납득해 줄 수 있다며 히죽히죽 웃었다.
다른 사람들한테는 말하지 말라고 했지만, 걔들이 나머지 동료들에게 비밀을 지켜줄지는 나도 모른다. 이후부터는 헬가 혼자서 감당해야 할 일이다.
그러게 누가 부끄럽다고 내 얼굴 피하래나.
‘어차피 황궁에서 사람 오기 전까지만 회복하면 되니까. 이번에는 누가 올지 모르겠네. 설마 또 카이킬리아가 직접 오지는 않겠지.’
아우로라에게 사건이 터져서 여기 좀 더 머물러야 될 것 같다는 편지를 보내면서, 황궁에도 편지를 한 장 보냈다.
베히모스라는 이름의 악마를 토벌했다고 말이다. 전혀 생각지도 않았는데, 어쩌다보니 카이킬리아에게 염원을 이루어주겠다고 했던 말을 지킨 셈이 되어버렸다.
“키히힛…… 준비 다 됐어.”
마법으로 나무를 이리저리 깎아대던 반말 쪽 닉스가 뿌듯한 표정으로 내 옆에 다가왔다. 방금 전까지 닉스가 앉아있던 자리에는 조잡하게 깎인 사람의 조각이 놓여 있었다.
“알았어. 혹시 모르니까 좀 멀리 떨어져 있을래?”
“히히. 응.”
닉스가 가슴을 출렁이며 도도도 물러났다. 그리고 나무 뒤에 숨어서, 얼굴이랑 가슴만 빼꼼 내밀고 이쪽을 쳐다보았다.
가슴은 일부러 내밀려고 한 게 아닌 것 같지만, 워낙 커다란 탓에 알아서 삐져나왔다.
날개 잃은 악몽이 찬란한 빛을 발했다. 금색과 은색으로 찬란하게 빛나고 있는 검신을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지금부터 날개 잃은 악몽의 신성 속성 특수 능력을 시험해 볼 예정이었다. 그것이 일시적인 현상인지, 아니면 지속적으로 적용되는 현상인지는 반드시 알아봐야 했다.
이런 일도 벌써 두 번째였다. 첫 번째는 신에게 버림받은 피조물 보스전에서 겪었고, 두 번째는 베히모스 보스전에서 겪었다.
내용도 거의 비슷했다. 내가 신성력을 활용한 공격을 할 때, 그 공격의 대미지가 어마어마한 수준으로 증폭되어 들어가는 것.
‘시험해 볼 가치는 충분해.’
만약 이게 일시적인 효과가 아니라 영구적으로 적용되는 효과라면, 그냥 성직자 빌드로 갈아타면 된다.
회차당 1회 한정이지만 스탯을 리셋시켜서 다시 찍을 수 있도록 해주는 장소도 알고 있으니, 지금 빌드를 갈아타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그대로 날개 잃은 악몽을 내리치며 특수 능력을 발동시켰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