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169)
r 169 – 베히모스 – 6
빛으로 이루어진 기둥이 내리꽂혔다. 콰앙! 하는 폭음이 울려퍼졌다.
‘……?’
그리고 그게 전부였다.
눈이 멀 것 같이 강렬한 빛을 내뿜는다거나, 저택의 천장을 날려버릴만한 위력이 나왔다거나, 하늘의 구름이 사방으로 흩어졌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그저, 나무 말뚝 비스무리한 크기를 지닌 빛기둥이 어중간한 높이에서 게임으로 보던 것과 똑같은 이펙트로 내리꽂히고 끝이었다.
닉스가 깎아두었던 조각상이 박살 나긴 했어도, 근처가 초토화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조각상 하나만 덜렁 부서지고 말았으니 예상했던 위력에 한참 못 미친 것이다.
‘이렇게 되면 가능성은 일단 두 가지인가.’
첫 번째 가능성은 교황들이 걸어주었던 축복이 관여했지만, 그것이 일회성이었을 경우다.
축복으로 인해 내가 지닌 신성력의 수준이 일시적으로 엄청나게 상승했는데, 지속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아서 곧장 사라졌다고 가정한다면 충분히 말이 됐다.
‘완전히 들어맞는 추측은 아니긴 하지만…….’
나는 아직도 교황들이 걸어준 축복이 정확히 무슨 효과를 지녔는지 모르고 있었다.
일단 게임에서는 한 번도 나오지 않았던 개념일 뿐더러, 축복에 대해서 제대로 설명을 들은 것도 아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신에게 버림받은 피조물 보스전에서도 이런 이상한 힘이 작용했었지 않은가. 그때는 교황들에게 축복을 받기 전이었다.
‘그래도 시험해 볼 가치는 충분하겠지.’
나는 머릿속의 해야 할 일 목록에 리스트를 한줄 더 추가했다. 성국으로 찾아가서 교황들에게 다시 한 번 축복을 받기.
방법이 딥키스라서 조금 그렇긴 한데, 나도 손해 볼 건 없었다. 솔직히 싫지만은 않았으니까. 그냥 양심에 조금 찔려서 그런거다.
‘두 번째는…….’
두 번째 가능성은 그 이상한 힘이 오로지 실제 적을 상대로만 발동하는 경우다.
간단했다. 닉스가 나무를 깎아서 만든 조각상은 실제 적이 아니기에 반응하지 않았고, 베히모스는 실제 적이기에 반응했다는 것. 역시 가능성은 충분한 선택지였다.
첫 번째와는 달리 검증도 쉬웠다. 그냥 아무 적한테나 대충 찾아간 다음에 그 앞에서 특수 능력을 사용해보면 그만이었으니까.
일반 적에게는 발동이 안 된다면 악마를 찾아가면 되고, 만약 악마에게조차 발동이 안 된다면 그건 그때부터 고민할 일이다.
“와도 돼, 닉스.”
나는 날개 잃은 악몽을 다시 한 손으로 쥐며 닉스를 불렀다. 이제 마지막 하나만 더 검증하면 끝이었다.
“키히힛. 알았어.”
나무 뒤에서 얼굴과 가슴만을 내밀고 있던 닉스가 예의 그 음침하고 이상한 웃음과 함께 도도도 뛰어왔다.
뛰어오는 속도에 맞춰 가슴이 어마어마하게 출렁여댔다. 저러다 옷이 벗겨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크롭티에 가까운 수준으로 짧은데다 가슴골이 한참이나 파인 상의도 그렇고, 핫팬츠는 핫팬츠인데 이상할 정도로 큰 구멍이 뚫린 하의도 그렇고. 둘 다 위태위태한 옷차림이었으니까.
닉스는 내 바로 옆에서 다리를 멈췄다. 가슴은 다리가 멈춘 이후에도 몇 번이나 더 흔들렸다.
“이제 하나만 더 해보면 끝이야.”
허리춤에서 신성 촉매를 꺼내들었다. 베히모스 보스전에서 사용했던 그 촉매였다.
촉매를 날개 잃은 악몽의 크로스가드 바로 윗부분에 가져갔다. 그대로 위를 향해 밀어올렸다. 신앙이 빠져나가는 느낌과 함께 검신에 태양이 깃들었다.
나는 괜찮았는데, 닉스는 눈이 부셨는지 고개를 살짝 돌리며 손으로 눈가를 가렸다. 닉스를 내 등 뒤로 숨겼다. 키히힛 거리며 음침한 웃음을 흘린 닉스가 내 허리를 꼬옥 끌어안았다.
팔에 이상하리만치 힘이 잔뜩 들어간 백허그였다.
‘이유는 대충 알겠네.’
허리 근처에 닿는 묵직한 느낌을 알아차리고 바로 납득했다. 가슴 때문에 힘을 꽉 주지 않으면 나를 제대로 안지도 못하는 것이다. 지금도 팔이 부들부들 떨려대고 있었다.
그 무시무시한 진실에 괜스레 헛기침을 하며, 신성 촉매를 다시 날개 잃은 악몽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방금 전과 똑같이 인챈트를 시작했다.
대신, 이번에는 일식이 아니라 월식이었다. 그래야 인챈트가 덧씌워졌다는 걸 쉽게 확인할 수 있으니까.
찬란한 태양이 청명한 만월로 바뀌었다. 황금빛 광휘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검신에서 은은한 달빛이 새어나와 옅은 그림자를 만들었다.
태양빛이 아니라 달빛이라서 그런지, 이번에는 별로 눈이 부시지 않은 듯 닉스가 내 왼쪽 겨드랑이 밑으로 고개를 슬쩍 내밀었다.
나는 또다시 신성 촉매를 날개 잃은 악몽으로 가져갔다. 여태껏 해왔던 것처럼 크로스가드 윗부분에 대고 검신의 끄트머리로 밀어올렸으나, 검에 깃들어 있는 것은 여전히 월광이었다.
일식이 발동되지 않았다.
그 말인 즉, 신앙이 바닥났다는 의미였다.
‘스탯이 뻥튀기 된 건 아닌 것 같은데.’
방금의 결과로 미루어보아, 신앙이나 신성력 스탯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폭증했다거나 하지는 않은 것이 분명했다.
신성력이 그 정도로 늘어났다면 신앙 또한 무지막지한 속도로 차올라야 할테니까 말이다. 마지막 가능성까지 부정당했으니, 그런 현상이 벌어진 원인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추가로 알아봐야 할 것만 잔뜩 생기고, 딱히 건진 게 아무것도 없었다.
“됐어, 닉스. 나와도 돼. 검증 끝났어.”
내 겨드랑이 밑에서 고개를 끄덕인 닉스가 허리를 끌어안았던 팔을 풀었다. 쭈우욱, 그리고는 겨드랑이를 드러내며 기지개를 켰다. 꼭 작은 동물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실제로도 키가 많이 작긴 하지만.
나도 날개 잃은 악몽을 허리춤에 맸다. 은은한 달빛을 내뿜던 검신이 검집 안으로 사라졌다. 닉스는 음침한 웃음을 지으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 이제 뭐 하면 돼? 여기서 계속 기다리고 있으면 돼?”
가녀린 손가락이 커다란 나무집을 가리켰다. 닉스가 머무르고 있는 장소였다.
처음에는 간이 움막에서 산다는 말을 듣고 기겁했었는데, 막상 찾아가보니 도저히 간이 움막이라고 불릴만한 수준이 아니었던지라 한층 더 놀랐다.
과장 하나 안 보태고, 어지간한 사람들은 여기서 평생을 살라고 해도 기꺼이 그럴 수 있을 만큼 잘 만들어진 집이었다. 집으로써 갖춰야 할 건 전부 다 갖추고 있었다.
닉스의 말로는 전투 수녀들이 많이 도와줬다나.
‘도와준 이유는 나 때문인 것 같긴 하지만…….’
누군지는 몰라도 일단 나랑 친분이 있는 것 같아 보이니, 자연스레 깍듯이 대접하게 된 것이다. 칠흑 성야 기사단이랑 비슷한 경우였다.
참고로 흑마법을 사용한다고 해서 닉스가 이단으로 지정되고 그럴 일은 없다. 이름이 흑마법이라서 그렇지, 악마와는 아무런 연관성도 존재하지 않으니까.
흑마법이란 이름이 붙여진 이유는 그냥 사용자의 생명력을 같이 소모해서다. 순수한 마나만 사용하면 마법이고, 생명력도 같이 소모하면 흑마법이다.
“아마도? 혹시 여기 떠나게 되면 말해줄게. 그러면 닉스 네가 우리 애들 데리고 성으로 돌아가면 돼. 난 다른 곳에 들리게 될 것 같아서.”
닉스가 음침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주었다.
그러면서 헤실헤실 웃는 닉스를 구경하고 있으려니, 저만치에서 전투 수녀 한 명이 다가왔다. 머리에서 손을 뗐다. 닉스의 표정이 대번에 시무룩해졌다.
“귀빈님을 뵙습니다.”
전투 수녀는 내 근처에 오자마자 허리를 90도로 숙였다. 출렁, 가슴이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아래쪽으로 한껏 쏠렸다.
“무슨 일로 왔어? 이단심판관님이나 이단심문관님이 부탁하신 거라도 있나?”
도리도리, 전투 수녀가 고개를 저었다.
“황궁에서 보냈다는 은빛 갑옷을 입은 기사가 귀빈님을 찾으시길래, 귀빈님께 알려드리려고 온 것입니다.”
“그래?”
도착이 예상보다 훨씬 늦었다.
편지를 보낸 지 벌써 사흘이나 지났건만, 사람이 이제서야 왔다는 건 카이킬리아의 성향을 생각해보았을 때 제법 많이 늑장을 부렸다고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카이킬리아가 직접 온 것이 아니라 휘하의 기사를 보냈다는 것도 상당히 의외였다. 내게 보였던 관심을 생각해보면 직접 왔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을텐데 말이다.
특히 이번 사건은 악마가 나타나기까지 했으니 더더욱.
“나 갔다올 동안 얌전히 있을 수 있지, 닉스?”
내 질문에 음산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닉스를 몇 번 쓰다듬어주고 도시로 발걸음을 옮겼다. 전투 수녀는 얌전히 내 뒤를 따라왔다.
그대로 도시를 향해 걸어가다가, 문득 궁금한 점이 생겨 뒤를 돌아보았다.
“아까 황궁에서 기사가 왔다고 했는데, 누구였어?”
기사의 정체는 어느정도 예상이 가긴 했다. 확인차 던진 질문이었다.
“자신이 누구인지는 귀빈님께 알려드리지 말아달라고 하셨습니다. 은빛 갑옷을 입었다는 사실 정도만 전달하고, 정체를 아는 건 만날 때의 즐거움으로 남겨두라더군요. 그래도 귀빈님께서 원하신다면 당연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시겠습니까?”
정체는 만난 다음의 즐거움으로 남겨두라니.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었으나, 역으로 그렇기에 누구인지가 더 쉽게 짐작이 갔다.
은빛 여명 기사단의 기사단장 중에서 저런 장난스러운 부탁을 할 사람은 리제 아니면 클라우디아 뿐인데, 리제를 놔두고 클라우디아가 여기 올 리는 없으니까 남은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다.
설령 클라우디아가 여기 오겠다고 주장한다 한들 리제가 그걸 두고보지도 않을테고.
“아니, 됐어. 그렇게까지 말하는데 미리 아는 건 예의가 아니잖아. 가서 직접 볼게.”
“알겠습니다.”
‘성격은 하나도 안 변했네.’
나는 기대 반, 불안 반의 마음을 하고 도시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또 무슨 서프라이즈를 준비해놨길래 만날 때의 즐거움 씩이나 말하는 건가 싶어서였다.
그리고, 뜻밖의 인물과 마주했다.
등 뒤로는 허벅지까지 내려오는 길다란 은발이 찰랑였다. 머리카락과 마찬가지로 은색을 띠는 눈동자가 옅은 눈웃음을 지으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몸에는 흰 민소매와 은색 돌핀팬츠를 걸쳤다. 돌핀팬츠 밑으로 뻗은 늘씬한 허벅지는 물론, 흰 민소매 아래에서 속옷조차 없이 봉긋 솟아오른 가슴마저 여전했다.
“……아이리스?”
아이리스였다.
아이리스는 나를 향해 입꼬리를 아주 어렴풋하게 끌어올리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나도 마주 손을 흔들며 그 옆으로 다가갔다.
옷차림을 보아하니, 갑옷은 어딘가에 벗어놓은 듯 했다.
“네가 여긴 웬 일이야? 리제는 어디로 가고? 황궁에서 은색 갑옷 입은 기사가 찾아왔다길래 무조건 리제가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이리스는 내 질문을 듣고 피식 했다.
“네 생각대로다, 델타. 원래는 리제가 올 예정이었지.”
“원래는?”
“따로 해야 할 일이 생겼다더군. 그래서 내가 대신 온 거다.”
“그런 이유 때문에 못 왔다니, 무슨 반응이었을지가 훤히 보이는 기분인데.”
“억울해 죽으려고 하더군.”
“그럴 거 같더라.”
우리는 서로 마주보고 웃었다.
예전의 명예와 지위를 모두 되찾아서인지는 몰라도, 아이리스는 처음 만났을 때와 비교하면 상당히 유해져 있었다. 이렇게 서로 마주보고 웃을 수 있을 정도라니 말이다.
“황궁 생활은 어때? 지낼만 해?”
“편하다고는 할 수 없겠지. 편한 것만 따지자면 아우로라 영주님과 같이 있었을 때가 훨씬 더 나았으니까. 하지만, 이건 명예와 연관된 일이니 그런 걸 따질 수는 없지 않겠나.”
“잘 지내는 것 같아서 다행이네. 리제는 어때?”
“나중에 다시 만나게 되면, 침대에서 아주 많이 달래줘야 할 거다. 스트레스가 제대로 해소되지 않는 모양이니까.”
“아.”
나는 그 말을 듣고 아이리스가 하려는 말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욕구불만이라는 의미다. 다른 표현 다 놔두고 굳이 침대라는 단어를 언급한 이유야 뻔했다.
“……그러면, 클라우디아랑 에리카는? 걔들도 잘 지내?”
“당연히 잘 지낸다. 그러니 우리 걱정은 하지 말도록. 나는 오히려 델타 네 근황을 듣고 싶군.”
“뭐, 나도 보다시피.”
나는 전투 수녀들을 흘끗 돌아보았다. 길을 걸어가는 와중에도 나를 향해 경외심 가득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아이리스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델타 너라면 그러리라고 생각했다. 너는 언제나 기상천외한 행동을 벌이곤 했었지.”
그 은색 동공이 아련해지기 시작했기에, 나는 황당함을 담아 되물었다.
“우리 아직 헤어지고 한 달도 안 지난거 알지? 어째 십 년쯤 된 일을 회상하는 말투다?”
“당연하지. 함께 한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것이 무색할 정도로 우리 사이에 깊게 들어오지 않았나.”
“……응?”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은 내가 되묻자, 아이리스도 자신이 뭐라고 말했는지를 눈치 챈 듯 어버버거리며 눈에 띄게 당황하기 시작했다.
정말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모양이었다. 저게 아이리스의 진심일 확률이 높다는 의미고.
“그래서, 여긴 무슨 일로 왔어? 아니다, 이유는 대충 예상이 가긴 해. 악마 때문이지?”
아이리스가 워낙 안절부절 못하는 얼굴이길래 내 쪽에서 못본 척 슬쩍 넘어가주기로 했다. 이런 내 의중을 알아차렸는지, 아이리스도 냉큼 화제를 바꿨다.
“정확히 짚었군, 델타. 네가 악마를 잡았다는 소식을 듣고 황제 폐하께서 친히 칙서를 보내셨다.”
아이리스는 바로 옆에 띄워두었던 고풍스러운 편지지를 조심스럽게 두 손으로 쥐고 나를 향해 내밀었다. 특수한 마법적 처리가 된 편지지인 듯 했다.
나도 그걸 두 손으로 받아들었다. 그 카이킬리아가 나를 직접 찾아오는 대신 칙서를 써서 보냈다고 하니, 무슨 내용일지를 확인하기가 더 두려워졌다.
“확인은 네 몫이다, 델타.”
나는 조심스럽게 편지를 감싼 끈을 풀었다. 그러자, 돌돌 말려 있던 편지가 저절로 펼쳐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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