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17)
“……여자, 말입니까?”
“그래, 여자.”
속으로 살짝 당황하긴 했지만, 티는 내지 않았다.
영주가 플레이어를 상대로 은근슬쩍 거래를 제안하는 것까지는 같았는데, 정작 거래 내용이 내가 기억하는 것과 달라서였다. 게임에서는 돈이나 권력에 관심이 있냐고 물어봤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만.”
“가식 떨 필요 없다. 서로 피차일반이니. 어차피 죄짓고 그곳에 갇혀있던 인간이라면 내가 말하려는 게 뭔지는 알 것 아닌가?”
나는 영주의 말투가 그 짧은 순간에 아주 조금이지만 바뀌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자신 쪽에서 내게 협업을 제안하는 상황이라 그런건지는 몰라도, 아까보다 조금 더 격식을 갖춘 말투였다.
“…….”
내가 섣불리 대답하지 않고 침묵을 유지하자, 영주는 그걸 대체 무슨 의미로 받아들인건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아무튼, 내가 제안하고 싶은 것이 하나 있다는 사실만 알아두면 되네. 우리 둘 다 절대로 손해보는 일은 없을거야. 내 장담하지.”
“일단, 들어보고 결정하겠습니다.”
“아니, 이걸 듣는 순간 나와 함께해야 해. 그리고 명심하도록. 나는 자네를 말 한마디로 기사단에서 짤라버릴 힘을 갖추고 있어. 그리고 다신 이 도시에 발도 붙이지 못하도록 내쫓아버리거나, 아예 감옥에 가둬버릴 권한도 갖추고 있지. 그럴 바에는 차라리 나와 함께 하는 편이 더 이득일텐데?”
“협박입니까?”
“설마. 그냥 제안이지.”
“그렇다면 따르겠습니다. 여기서 어느 쪽에 붙어야 할지는 더 생각할 필요도 없으니까요.”
나는 일부러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이놈은 본인의 성격부터가 강약약강이었기에 자기랑 똑같이 비열한 성격을 지닌 인간을 더 마음에 들어했다.
“좋아, 좋아. 아주 잘 생각했네. 역시 사람은 눈치가 빨라야 몸이 편안한 법이지. 너 같은 놈들은 더 그렇고.”
내 시원스런 대답에, 영주가 능글맞은 웃음을 지었다. 눈, 코, 입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볼살에 푹 파묻혀 한껏 찌그러졌다.
한 대 패고싶게 만드는 웃음이었다.
“자, 그러면 진짜 이야기로 넘어가볼까.”
영주와의 회담을 끝내고, 잘 부탁한다는 의미로 악수까지 나눈 뒤 응접실을 나섰다. 더럽게 축축하고 기분나쁜 손바닥이어서 기분이 확 나빠졌긴 했었지만, 어떻게든 잘 참아냈다.
손바닥을 벽에 박박 문질러 닦고 저택을 나서면서 영주의 제안을 곱씹어보았다.
‘여자 좋아하냐고 물었을때부터 대충 예상하기는 했는데.’
그놈이 최종적으로 은빛 여명 기사단을 완전히 끝장내버리고 싶어한다는 건 같았지만, 세부사항은 정반대였다.
게임에서는 영주도 남자고 은빛 여명 기사단의 기사단장들도 남자였기에, 음식에 독을 타서 신체 능력을 대폭 약화시킨 다음 자신이 직접 검을 휘둘러 죽이고 싶다는 말을 한다.
그 대가는 영주 저택의 기사 작위였고.
하지만 여기서는 달랐다. 은빛 여명 기사단의 음식에 독을 타는 것까지는 게임과 일치하지만, 그 목적이 직접 죽이는게 아니라 기사단장들을 성노예로 만들어 소유하기 위함이었다.
자기가 내려준 음식은 의심할 게 뻔하니, 나더러 기사단장들이랑 친해진 뒤에 저택으로 찾아오면 계획에 필요한 독을 건네주겠다나? 그걸 타는건 내가 알아서 해야되는거고 말이다.
계획이 성공하면 나한테도 은빛 여명 기사단을 ‘맛볼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고까지 했다.
‘오만하기 짝이 없는 놈이지.’
그런 짓을 시키면서 내게 아무런 제약을 안 걸어놓는 것도 그렇고, 내가 욕망을 못이겨 당연히 자기 말을 충실하게 따르리라 생각하는 것도 그렇고, 오만하기 짝이 없었다.
게임에서조차 이 제안을 받자마자 기사단장에게 바로 까발린다는 선택지가 있을 수준이었으니, 저 답도 없는 성격은 제작사 공식이라고 할 수 있었다.
‘뭐, 그러지는 않을거지만.’
하지만, 영주를 죽이려면 지금 당장은 모두에게 비밀로 해야 했다. 이대로 계획을 까발리면 단순히 그놈이 다른 지역으로 쫓겨나고 끝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런식으로 쫓겨난 뒤에는 주인공에게 앙심을 품고 스토리와 연관된 퀘스트마다 집요하게 방해를 해오기까지 했다.
그걸 당했을 때 기분이 얼마나 더러운지는 직접 당해봐야 안다. 진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좆같음이 확 밀려들어오니까.
“괜찮나?!”
저택 문을 나서니, 벽에 몸을 기대고선 초조한 표정으로 날 기다리고 있던 아이리스가 곧장 달려왔다. 얼굴에 다급함이 잔뜩 떠오른 것으로 보아 나를 꽤 많이 걱정하고 있던 듯 했다.
“보다시피. 난 멀쩡해.”
“정말로, 확실한건가?”
“물론이지. 중간에 뭘 캐내려는 듯이 질문하긴 하던데, 그냥 너한테 물어보라고만 대답했어. 그렇게 몇 번 반복하니까 포기하더라.”
“잘했다. 그래, 정말 잘해준거다. 혹시 기사단에서 탈퇴하라는 협박을 받지는 않았나?”
“그랬었으면 내가 이렇게 태연하게 서있지도 않았겠지.”
“다행이군…… 다행이야.”
아이리스가 하아,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껏 정말 저 영주놈한테 어지간히도 시달렸던 모양이었다.
“일단 기사단으로 돌아가지.”
“그래, 알았어.”
아이리스는 말을 타고 숙소로 돌아오는 와중에도 끊임없이 날 걱정했다. 지금까지 그놈에게 어떤 고초를 겪었는지가 표정으로 전부 다 드러났다.
이제 앞으로 넉넉잡아 2주만 있으면 더 이상 안해도 되는 걱정일테지만.
‘이게 능력 확인 구슬인가.’
영주를 만나고 온 다음 날, 나는 아이리스를 따라 능력 확인 구슬의 앞에 서 있었다. 그 옆에서는 리제와 에리카가 흥미진진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중이었다.
게임에서와 마찬가지로 붉은색 쿠션 위에 놓인, 사람 머리만한 크기의 하늘색 구슬. 손을 표면에 가져가면 대상의 신체 능력을 객관적인 수치로 환산해주는 마도구라는 설정이었다.
게임에서도 이걸 누가 만들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그저 과거의 어느 저명한 대마법사가 창조해냈고, 지금 돌아다니는 건 모두 그걸 고스란히 따라한 복제품이라고만 할 뿐.
구슬의 사용법은 이미 알고 있었기에 망설임 없이 구슬 표면에 손을 얹었다. 구슬이 점멸하더니 푸른색의 광원이 내 몸을 훑었다. 곧이어 구슬 위에 숫자가 그려졌다.
[레벨] 4(+3) [체력] 1 [마나] 1 [신앙] 1 [지구력] 1 [숙련] 1 [힘] 1 [마력] 1 [신성력] 1 [내구] 1“…….”
어느정도 예상은 했지만, 인간 도살자를 잡아 얻은 경험치로 3이나 오른 레벨을 제외하고는 모두 1밖에 적혀있지 않은 화려한 스탯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자 마음이 착잡해졌다.
다른 과거 행적이라면 못해도 레벨 10부터 시작했을텐데.
이런 반응은 나머지 셋도 다를 바 없었다. 원래부터 활발한 성격인 리제는 물론이고, 에리카와 아이리스마저도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구슬을 바라보고 있었다.
“신입, 너…… 어떻게 내 공격 어떻게 버텼어?”
제일 먼저 충격에서 빠져나온 사람은 리제였다.
“모든 능력치가 1이라는 거, 실제로 보니까 더 충격인데? 능력치 차이가 이렇게 심했으면 네 실력이 아무리 좋아도 그냥 졌어야 해. 처음 검끼리 부딫혔을 때 네 쪽이 일방적으로 튕겨나갔어야 했다고.”
“그렇지.”
“그렇지는 뭐가 그렇지야? 넌 안 그랬잖아. 대체 어떻게 한거야?”
어떻게 한 거냐고 물어봤자 나도 모른다. 그냥 게임에서 가능했었으니까 여기서도 가능할 뿐인데, 그런걸 대체 무슨 수로 설명하겠는가.
게임에서는 되던데? 라니. 미친놈 소리 듣기에는 딱 좋은 말이겠지.
브닼 4에선 스탯 차이가 얼마나 심하게 나든지, 튕겨내기를 실수하지만 않는다면 전투 피로 게이지는 절대로 터지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튕겨내기를 한 번도 실수하지 않은 것 뿐이다.
당연히 스탯의 차이와는 상관없이 리제와 공방이 가능했을 수 밖에.
‘잘 모르겠네. 저 셋한테 튕겨내기 공방을 가르칠 수 있으려나?’
애초에 완벽한 타이밍의 튕겨내기 같은 건 NPC들에게는 없는 개념이다. 그건 어디까지나 플레이어의 전유물이었다. 아무리 나라고 해도, 그걸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지는 않았다.
물론 가르칠 수 있는 상황이라면 가르쳐주고 싶기는 한데, 쓸 수 있는 것과 가르칠 수 있는 것은 엄연히 별개였다.
‘그러고보니, 스탯 찍어야 되는데.’
화려한 1의 향연을 보고있자니 퍼뜩 정신이 들었다. 레벨 옆에 +3이라고 표시된 숫자. 저게 내가 올릴 수 있는 스탯의 횟수였다.
하지만 정작 주위의 시선이 신경쓰여서 스탯을 찍을 수가 없었다. 당장 내가 손가락 몇 번 휘적인걸로 능력치가 올랐다는 사실이 들통났다간, 여기가 한바탕 뒤집어질테니까.
게임에서야 언제든지 Esc를 눌러 캐릭터의 스탯과 스킬을 확인할수도, 그걸 올릴수도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혹시나 싶어서 몰래 상태창을 외쳐봤는데 뭐 아무것도 안 나오더라.
그 말인 즉, 스탯을 찍으려면 무조건 이 능력 확인 구슬이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꼭 브닼 1의 감성을 다시 체험하는 것 같았다.
그딴 불편한 감성을 다시 느끼는 건 사절이었건만.
“……!”
순간, 아이리스가 뭔가를 감지한 듯 몸을 움찔거리더니 고개를 홱 돌렸다.
“클라우디아가 돌아왔다.”
“어? 진짜로?”
“그래. 지금 성 정문에 거의 다 도착했다. 아무래도 나가봐야 할 것 같군.”
내가 대체 어떻게 클라우디아가 돌아왔는지를 알아차렸냐고 묻기도 전에 아이리스가 급히 밖으로 향하고, 에리카도 그 뒤를 따랐다.
리제는 끝까지 내 옆에 붙어있으려는 듯 손을 잡아 끌고 나가려 했지만 나는 곧 뒤따라가겠다며 억지로 먼저 보냈다.
그리고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스탯을 ‘신성력’에 몰빵하고 재빨리 세 명을 쫓아갔다.
오